데뷔 30주년 공일오비, 빛나는 현재진행형 뮤지션
이즘 특집
연차가 오래된 뮤지션은 대개 느슨해지고 나태해진다. 그런 이들과 달리 공일오비의 음악은 조금도 낡지 않았다. 야무진 작품 세계를 확립한 거장이 이제는 부지런함까지 갖췄다. (2020.08.14)
대중음악은 대중과의 교감을 기본 덕목으로 갖는다. 기쁨, 슬픔, 외로움,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이나 설렘 등 보통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여러 감정을 노래함으로써 대중과 친분을 맺는다. 여기에 많은 이가 공통적으로 접하는 세상의 이모저모를 다루는 일도 공감대 형성의 중요한 면을 차지한다. 정서와 사고를 너르게 나누는 음악가가 많은 이에게 오랫동안 사랑받는다.
뮤지션이 길이 기억되기 위해서는 음악성도 필수다. 작품이 견고하고, 매번 산뜻함을 내보여야 음악 애호가들의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여기에 다채로움도 장수를 위한 불가결한 조건으로 따른다. 여러 형식을 두루 소화할 때 많은 지지자를 확보하기가 수월하다. 이 세력은 활동에 추진력을 부여한다.
정석원과 장호일이 이끄는 공일오비(015B)는 일련의 사항을 만족하는 대표적인 뮤지션이다. 그룹의 노래들은 획기적인 변화를 도모한 6집을 제외하고 항상 대중적이었다. 그러면서도 곳곳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살폈다. 앨범들은 튼실했고, 호화로웠다.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이한 공일오비는 뛰어난 교감 능력과 탄탄한 작품으로 대중음악계에 선명한 자취를 남겼다.
공일오비 노래의 으뜸 매력은 참신한 서정성이다. 여느 가수들과 마찬가지로 사랑 얘기를 주로 풀어냈지만 고리타분하지 않았다. 1990년 데뷔 앨범의 타이틀곡 '텅 빈 거리에서'는 사랑하는 이를 잊지 못한 나머지 몇 번이나 전화를 걸려고 하지만 주저하는 화자의 모습을 "야윈 두 손에 외로운 동전 두 개뿐"이라는 가사로 에둘러 표현한다. 당시 공중전화 통화 요금이었던 20원이 용기를 내지 못하는 화자의 상태를 극적으로 나타냈다. 손에서 사라지지 않는 동전이 처연함을 훌륭하게 연출했다.
2집 <Second Episode>의 '변해 간 세월 속에서'는 다른 사랑으로 옛 연인을 잊으려 했지만 "결국 너의 틀에서 비교할 뿐이잖니"라며 지나간 사랑을 갈구하고 있음을 전한다. 5집 <Big 5>의 '그녀의 딸은 세 살이에요'는 이제는 다른 사람과 결혼한 옛사랑의 아이를 매개로 이별 후 흘러간 시간을 수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과거의 연인을 기억에 붙잡아 두려는 한 남자의 연모를 묘사한다. 다소 지질해 보이긴 하지만 아이를 가사에 들인 덕에 털어놓는 소회가 담담하게 다가온다.
변함없는 일상에 대비해 이별 후의 상실감을 극대화하는 4집 <The Fourth Movement>의 '모든 건 어제 그대로인데', 헤어진 연인이 불행하길 바란다는 말로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함을 역설적으로 말하는 7집 <Lucky 7> 수록곡 「I hate you」도 공일오비 사랑 노래의 뻔하지 않은 모습을 설명해 준다. 그럼에도 이들 가사는 사랑과 이별 때문에 생겨나는 갖가지 감정을 폭넓게 포섭해 많은 이의 공감을 샀다.
사회와 밀착한 내용도 공일오비 노래들의 특징이었다. 이 역사는 2집의 첫 곡 「4210301」로 시작된다. 노래는 소음, 매연, 등 굽은 물고기 등을 언급하면서 날로 심해지는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키우던 개가 산성비를 먹고 죽었다는 간주의 영어 내레이션은 픽션치고는 지나치게 앞서 나가긴 했지만 노래 덕분에 음악 팬들은 환경 문제를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룹은 3집 <The Third Wave>의 「적(敵) 녹색인생」에서 다시 한번 환경 문제를 다뤘다. 하지만 딱딱하지 않았다. 무스와 일회용 용기 같은 화학제품의 만연, 궁상맞게 보이기 싫어서 식당에서 음식을 어느 정도 꼭 남기는 행위 등 누구나 일상에서 접하는 일들을 기록해 친근하게 느껴졌다. 「적(敵) 녹색인생」은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실천 가능한 환경보호 캠페인송으로 남았다.
4집 중 「제사부(第四府)」는 계층 간 괴리를 부추기는 미디어와 진실에 무책임한 황색언론을 비판하고, '교통 코리아'는 일부 운전자들의 폭력적인 운전 습관을 꼬집는다. 5집 <Big 5>에 수록된 「Netizen」은 정보화 사회에서 인터넷만 바라보는 탓에 사람들과는 단절되는 상황을, '결혼'은 좋은 스펙을 가진 사람을 배우자로 두려고 하는 천박한 결혼 문화를 지적한다. 이때 공일오비가 던진 화두가 긴 세월이 지난 지금도 한국 사회의 문제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퍽 씁쓸하다.
사회현상에 대한 고찰이 매번 무겁지는 않았다. 2집의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장관리'를 하듯이 거리를 두며 대하는 젊은 여성을 소재로 다룬다. 2011년에 낸 EP <20th Century Boy>의 「고귀한씨의 달콤한 인생」은 허세와 포장된 자랑에 집착하는 SNS 삶을 들춰낸다. 4집의 「요즘 애들 버릇없어」는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의 간극을 논하며 서로 이해가 필요함을 주장한다. 공일오비가 전한 사회적 메시지는 우리가 생활에서 흔히 마주하는 일들이기에 까다롭지 않게 들렸다.
음악은 항상 다채로워 감상을 즐겁게 했다. 전신이었던 무한궤도 때와 마찬가지로 1집은 아마추어 느낌이 나는 풋풋한 팝 록, 발라드가 다수였다. 그러나 2집의 「4210301」,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에서는 국내에 흔하지 않던 랩을 선보이며 트렌드의 선두에 섰다. 같은 앨범에 수록된 연주곡 「동부 이촌동 새벽 1:40」으로는 이지 리스닝 재즈를 소화하며 편안함을 제공했다.
이후 변화와 새로운 스타일의 모색은 더욱 활발해졌다. 3집 중 1분 20초에 달하는 긴 길이의 전주로 파격을 행한 「아주 오래된 연인들'로는 하우스 음악을, 「적(敵) 녹색인생」에서는 아카펠라를 들려줬다. 4집도 서프 음악(「신(新) 인류의 사랑」), 힙 하우스 성격을 띤 댄스 팝(「남자들이란 다」), 하드록과 랩을 결합한 댄스음악(「교통 코리아」) 등을 시도함으로써 음악 스펙트럼을 넓혔다. 5집은 인더스트리얼 음악(「바보들의 세상」), 포스트 디스코(「단발머리」), 뉴 잭 스윙(「마지막 사랑」), 펑크(funk)(「결혼」), 인텔리전트 댄스음악과 록의 퓨전(「Netizen」) 등을 아우르며 전보다 더 화려한 면모를 보였다.
1막 마지막이 된 1996년의 6집 The Sixth Sense Farewell To The World>도 어마어마했다. 테크노(「인간은 인간이다」, 「구멍가게 소녀」), 인더스트리얼(「마르스의 후예들」, 「Nuclear energy」), 얼터너티브 록(「콩깍지」), 뉴에이지(「Femme fatales」) 등 다양한 장르로 꾸몄다.
2006년 7집으로 10년 만에 컴백했을 때에도 유행을 포착하는 민첩성은 그대로였다. 「처음만 힘들지」로는 비디오게임 음악에 착안한 칩튠을, 「그녀에게 전화 오게 하는 방법」에서는 피치를 올린 샘플링 기반의 힙합을 들려줬다. 「잠시 길을 잃다」로는 R&B를, 「성냥팔이 소녀」로는 라틴음악을 접목한 하우스를 시도하는 등 새로운 양식을 향한 탐구심은 변함없이 강했다.
공일오비를 언급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객원 가수 시스템이다. 지금 흔한 피처링 방식이 이들로부터 정착됐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들이 객원 가수를 둔 국내 최초 뮤지션은 아니었지만 1집부터 게스트 보컬리스트들을 기용해 작품에 개성을 부여해 왔다. 음색과 가창이 저마다 다른 인물들이 노래를 부르니 앨범이 한층 풍성하게 느껴질 수 있었다.
터줏대감은 현재에도 공일오비와 활발하게 교류하는 윤종신이다. 이후 '아주 오래된 연인들'의 김태우, 「5월 12일」의 이장우, 「신(新) 인류의 사랑」을 부른 김돈규 등 재능 충만한 가수들을 배출했다. 김태우, 이장우, 김돈규는 솔로로서 각각 「날 떠나보내려는 너에게」, 「훈련소로 가는 길」, 「나만의 슬픔」 같은 노래로 큰 사랑을 받았다.
공일오비의 객원 보컬은 3집 중 윤종신과 박선주가 듀엣으로 부른 「우리 이렇게 스쳐 보내면」을 제외하고 여가수가 맡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당시 음악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장필순, 신윤미 등도 보컬로 참여했으나 백업 보컬만 맡았다.
남성 보컬리스트만 찾던 관례는 컴백을 알린 2006년의 리믹스 앨범 <Final Fantasy>에서 깨졌다. 이곳에서 여성 멤버가 리드 싱어인 블루 샤벳(「수필과 자동차」), 캐스커(「21C 모노리스」)를 초청해 여성의 목소리를 들였다. 같은 해 출시한 7집에서도 요조(「처음만 힘들지」), 호란(「성냥팔이 소녀」), 신보경(「잠시 길을 잃다」) 등을 초대해 소녀, 숙녀의 감정을 표출했다. 2017년 시작된 3막부터는 여성 가수와의 협업이 더욱 늘어났다. 신현희, 심규선, 유라, 열두달의 나율, 장재인, 와인 등 많은 여성 보컬리스트가 공일오비의 노래에 목소리를 제공하고 있다.
공일오비는 게스트들을 왕창 모은 '단체 곡' 포맷으로도 돋보였다. 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응당 아는, 친구들과 노래방을 갔을 때 우정을 다지며 꼭 부르던 2집의 「이젠 안녕」이 대표적이다. 이 노래가 많은 사랑을 받자 유영석과 송경호의 푸른하늘도 1993년 「이젠 안녕」을 흉내 낸 「마지막 그 아쉬움은 기나긴 시간 속에 묻어 둔 채」를 발표했다. 그룹의 단체곡 형식은 3집의 「수필과 자동차」, 4집의 「우리들의 이야기」에서도 만날 수 있다.
2012년 하반기 들어 갑자기 종적을 감춘 공일오비는 2017년 본인들의 노래를 리메이크하는 <Anthology> 프로젝트에 착수하며 3막을 열었다. 이듬해부터는 직접 레이블을 설립하고 젊은 뮤지션들과 협업해 신작을 만드는 <New Edition> 시리즈를 병행하고 있다. 이 과업은 7월로 22회를 맞이했다. 2018년 이후 발표해 온 신곡들의 장르 역시 예스러운 솔뮤직(「나의 머리는 녹색」), 포크(「서울의 눈」), 사이키델릭 록(「동백꽃」), 뉴 잭 스윙 스타일의 R&B(「Murky time」), 얼터너티브 록(「Random」) 등으로 무척 다양하다.
강한 대중성과 높은 완성도를 함께 나타낸 역사가 30년이 됐다. 연차가 오래된 뮤지션은 대개 느슨해지고 나태해진다. 그런 이들과 달리 공일오비의 음악은 조금도 낡지 않았다. 여전히 젊은 감각을 유지하고 있으며, 짜임새도 좋다. 야무진 작품 세계를 확립한 거장이 이제는 부지런함까지 갖췄다. 데뷔 30주년이 더없이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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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