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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이태원

이즘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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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태원 거리는 을씨년스럽다. 지하철 6호선 녹사평-이태원-한강진을 가득 메웠던 발길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클린 이태원!”이라는 로고 아래 임대 문의와 폐업을 선언한 빈 가게들이 황량하다. (2020.08.07)


7월 1일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는 코로나 19 여파로 인한 음악 산업계 피해 규모가 약 877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중소 레이블 및 유통사의 발매 연기 및 취소, 인디 뮤지션들의 소규모 공연부터 대규모 페스티벌까지 사라져 버린 공연 시장의 실태를 반영한 통계다. 그러나 이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외로운 싸움을 이어나가는 음악인들의 목소리가 있다. IZM은 코로나 19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모든 종사자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한다. 첫 번째로 IZM이 찾아간 곳은 이태원이다.

 


2019년 8월 4일 발표된 기린과 박재범의 합작 앨범 <Baddest Nice Guys>의 '오늘밤엔' 뮤직비디오에는 정확히 1년 전 이태원의 여름밤이 담겨있다.

'오늘 밤에는 준비한 게 딱히 별로 없지만 / 왠지 모르게 난 기대가 되는걸….'

들뜬 마음의 노래와 함께 카사 코로나(Casa Corona) 루프탑에 모인 각양각색 아티스트들이 해맑은 표정으로 술을 마시고 음악에 몸을 맡긴 채로 춤을 춘다. '이태원에 시작해서 홍대까지 달려보자'라 노래하는 사람들. 분명 작년의 이태원은 이랬다.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소프 서울(Soap Seoul)의 공동 설립자 DJ 팰런스(Fallens) 역시 반복되어온 일상을 의심하지 않았다. 올해 3월 첫째 주에는 소프의 오픈 3주년 기념 파티가 예정되어 있었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파티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코로나바이러스가 무섭도록 확산됐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재난 경보 문자가 요란하게 길거리를 덮었다. 권고나 제약 사항은 없었지만 내부 논의를 거쳐 3월 5일부터 한시적으로 임시 휴업을 결정했다.

이태원 언더그라운드의 상징적인 클럽 케이크샵(Cakeshop) 역시 3월 22일부터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에 따라 15일간 영업 중지를 선언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은 초기 방역에 성공했다는 뉴스가 들렸다. 불안했지만 잠시 생각했다.

2016년 한남동에 문을 연 서울커뮤니티라디오(Seoul Community Radio)는 올해 5월 5일 더 많은 팬들과의 소통을 위해 한남동에 위치했던 작은 스튜디오를 이태원 초등학교 옆으로 옮겨 넓혔다. 바로 그다음 날인 5월 6일 용인시에서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 한 명이 발생했다. '이태원 발 집단감염'이 시작된 날이었다.

이후 5월 9일부터 서울시가 내린 집합 금지 행정명령에 따라 지금까지 이태원의 모든 클럽이라고 사료되는 공간은 문을 닫고 있다. 서울커뮤니티라디오의 기획자 이슬기는 이렇게 말한다.


"그나마 오프닝 파티라도 한 게 다행이었어요."

 


세 달이 지난 지금 이태원 거리는 을씨년스럽다. 지하철 6호선 녹사평-이태원-한강진을 가득 메웠던 발길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클린 이태원!”이라는 로고 아래 임대 문의와 폐업을 선언한 빈 가게들이 황량하다. 이슬기의 회상이다.

“클럽에 발길이 끊긴 것보다 이태원에 거주하는 한 사람으로서 '유령 도시'처럼 아무도 찾지 않는 동네가 된 게 더 슬펐어요. 택시 기사님께 이태원으로 가 달라고 하니 거절당한 적도 있네요.“

지난 6월 2일 상가정보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이태원 상권 중대형 상가 평균 공실률은 전 분기 대비 9% 증가한 28.9%였다.

누군가에게는 매주 유흥의 공간이 사라진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매주 그곳에서 삶을 이어나가던 수많은 언더그라운드 문화계 관계자들과 아티스트들에게는 중대한 문제였다. 음악을 틀 수 있는 곳, 아이디어를 나누던 장소, 즐거운 파티를 위한 기획 모두가 백지화됐다. 유명 브랜드의 후원이 끊기며 운영에도 차질이 생겼다.

로컬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들을 인터넷 방송으로 소개하던 서울커뮤니티라디오는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수익을 얻었으나 코로나 확산으로 현재 수익의 90%가 끊긴 상태다. 1년 치 마케팅 비용을 회수해 간 곳도 있었다.

방송에 출연해 음악을 소개하던 아티스트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본래 DJ가 가장 바쁜 시기는 7~8월. 그러나 공연도, 클럽도, 파티도, 페스티벌도 사라진 지금 음악 하나만 하고 있었던 이들은 아주 힘든 시기를 맞이했다.


상심하신 분들도 많고, 당장 어려워진 분들도 많죠.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문화예술계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이 없진 않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화예술인 긴급지원”이라는 이름으로 문예진흥기금 351억 원을 추가 편성하고,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 예술인들을 위한 지원 방안을 마련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7월 8일 3차 추경 예산 1,569억 원을 지원계획을 밝히며 232억 원은 '예술인 창작준비금'으로, 공연예술계 일자리에는 319억 원을 투자할 것이라 알렸다.

그러나 대중음악계의 체감은 미미하다. 특히 이번 코로나 사태는 소속사가 없는 아티스트들과 공연장들에 더 타격이 큰데 이들에게는 거의 유의미한 지원이 제공되지 않고 있다.

특히 이태원의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들은 목소리조차 내기 어렵다. '인디'라는 개념으로도, '전자음악'이라는 개념으로도 하나의 집단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이에 대해 팰런스는 '클럽 문화에 대한 인식이 나빠진 건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어찌 됐든 이태원 클럽에서 대규모 감염 확산이 있었으니까.'라 이야기하면서도, '다만 그 한 면만으로 모든 게 평가받는 게 속상하다'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DJ는 음악을 '연주' 하지 않으니까 아티스트가 아니고, 클럽 하면 퇴폐적이고 어둡고 음산하고… 그런 이미지가 계속 굳어지는데 이를 극복하려면 아직 힘이 많이 모자란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상처는 사회 전반으로부터 쏟아진 차별의 시선과 혐오 표현이었다. 케이크샵의 오너 가브리엘(Gabriel)과 사무엘(Samuel)이 특히 이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언더그라운드 클럽이라는 공간은 단순히 술을 마시고, 시끄러운 음악에 춤만을 추는 공간은 아니다. 커뮤니티를 통해 서브컬처라는 개성 있는 또 다른 특질의 문화를 생산하고, 또 그를 통해 다양한 음악을 포함한 예술 등의 문화가 공존할 수 있음을 대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젊은 사람들, 외국인들, 동성애자들, 그리고 나이트클럽 등 요소들을 자극적으로 묘사하며 혐오를 부추긴 미디어 행태가 속상했다. 언론이 이태원에 낙인을 찍은 것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는 커뮤니티가 특히 취약한 상황이었다.”

이슬기 역시 '이태원'이라는 이름에 부정적 프레임이 씌워진 것을 경계했다.

“'이태원 발 코로나 확산'이 화제가 된 5월 6일 서울커뮤니티라디오 모든 구성원들이 용산구청에 가서 검사를 받았어요. 운영하는 이들은 물론 이태원에 거주하는 많은 DJ들과 프로듀서들, 아티스트들도 검사받았죠. 단 한 명도 양성반응을 보인 사람이 없어요.”

 


이태원 커뮤니티는 이번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뭉쳐야 산다'를 깊이 새겼다. 6월 12일부터 소프 주도로 진행한 '서포트 이태원(Support Itaewon)'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볼노스트(Volnost), 파우스트(Faust) 같은 언더그라운드 클럽은 물론 서울커뮤니티라디오, 이태원 일대 음식점과 카페, 바까지 포함해 이태원을 지지하는 티셔츠를 발매했다.

인스타그램에서 3천 회 이상의 '좋아요'를 받으며 화제를 모은 이 프로젝트는 일주일 만에 온라인 티셔츠 판매를 완료 지었다. 수익금의 절반은 프로젝트 참여한 업장들과 나눴고, 나머지 절반은 용산구청에서 출연한 비영리 공익재단 '용산복지재단'에 기부했다.

케이크샵도 '리플라이 이태원(Reply, Itaewon)'이라는 이름의 커뮤니티 프로젝트와 함께했다. 언더그라운드 베뉴 피스틸(Pistil), 서울커뮤니티라디오 및 다양한 지역 사업체들과 함께 지구본 모양의 티셔츠를 제작했다.

이어 케이크샵은 6월 27일에는 서울커뮤니티라디오와 함께 '아트 오브 더 포스터' 큐레이션을 진행했다. 올해로 오픈 8주년을 맞는 케이크샵을 다녀간 수천 명의 아티스트와 디제이들의 포스터가 서울커뮤니티라디오에서 갤러리처럼 전시됐다.

언더그라운드 구성원들을 위한 비영리 사단 법인도 조직되고 있다. 코로나 사태 전까지는 언더그라운드 클럽이나 아티스트들 간의 교류가 흔하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이 심각해지며 서로 손을 잡고 연대해야 할 필요성이 생겨났다.

관계자의 소개에 의하면 비영리 사단 법인의 목적은 “인증된 단체를 조직해 공식적으로 아티스트들과 클럽들의 목소리를 담고, 나아가 한국 클럽 문화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다.


클럽 문화는 불확실하고 혼돈스러운 시기에 오히려 잘 자란다.



7월부터 제한적으로 클럽들이 문을 열고 아티스트들도 다시금 활동을 재개하는 추세다. 그러나 여전히 이태원에 일상은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도 이들은 난생처음 경험했던 침묵을 결코 잊지 못한다.


“대규모 감염이 터진 그 주 토요일 밤에 이태원 초등학교 쪽에서 녹사평역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 봤어요. 한창 사람들로 붐볐을 12시 정도였는데 이태원역까지 사람이라곤 한두 명밖에 없었어요. 그 후 한동안 사람 보기가 어려웠죠.”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우연히 작년 소프에서 음악을 트는 제 모습을 봤는데 든 게 꿈같았어요. 아무도 마스크를 끼지 않아도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도 제재받지 않고, 그 앞에서 제가 음악도 틀 수 있다는 세상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 거예요.”

그럼에도 코로나 이후의 일상을 그리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이태원에 거주하는 로컬 아티스트들과 기획자들, 운영자들 모두가 인식 개선을 위해 연대하고 있다. 이것이 음악인, 문화인들만을 위한 연대를 넘어 이태원이라는 지역 자체를 아우르는 로컬의 개념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 역시 고무적이다.

이태원의 아티스트들은 오늘도 투쟁 중이다. 보편을 위해, 일상을 위해, 편견 없이 사람들과 함께했던 즐거운 시간을 되찾기 위해.

“코로나바이러스를 비롯한 온갖 사태들 때문에 세계 각지의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씨가 말라가고 있다. 도시에 특색과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언더그라운드 문화다. 우린 이 사태를 이겨내고 언더그라운드의 생명을 지켜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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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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