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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김현영의 여자들의 사회] 열렬하게 미워하고 사랑했던

<권김현영의 여자들의 사회>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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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뒤통수를 맞은 것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화가 나기보다는 주로 슬펐다. 나는 늘 여자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으니까.(2020. 08. 05)

<권김현영의 여자들의 사회> 연재를 시작합니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이 영화, 소설,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등에 나온
‘여자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3주에 한 번 글을 씁니다.


언스플래쉬


실패의 기억들

17세부터 25세. 인간은 대체로 이 시기에 개성을 가진 독자적 인간으로 자란다고 한다. 저 나이 때 내게 가장 중요했던 건 여자친구들과의 관계였다. 시간이 너무 천천히 흘러서 ‘아마 이 장면을 나는 평생 기억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순간도 있었고, 갑작스럽게 단절된 관계의 퍼즐을 풀지 못해 망연자실하다가 기어이 가슴이 뻥 뚫렸던 기억도 있다. 가장 큰 행복을 준 것도 가장 큰 상처를 주고받은 것도 여자친구들이었다. 어쩌다 보니 관계가 끊어진 친구도 있었고, 헤집고 헤집다가 결국은 아무 것도 봉합하지 못하고 완전히 끝나버린 관계도 있다, 요란하게 절교하기도 했고, 모르는 새 절교당하기도 했다. 나는 언제나 여자들과의 관계가 어려웠고 자신이 없었다. “언니는 친구 없잖아”라고 몇 년 전 친구이자 후배가 툭 던진 놀림에 나도 모르게 “응 난 친구 없지”라고 답해서, 나중에 그 얘기를 들은 친구들에게 “너가 친구가 없긴 왜 없어”라고 구박을 받은 적도 있다. 그런 쭈그러든 마음이 조금씩 다림질되고 풍화되어서 지금은 어떤 관계는 실패가 아니라 그냥 기한이 만료된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또 다른 관계는 이제 문제가 뭐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굳이 다시 이어 붙이려고 하지 않는다. 

한번은 “쟤는 남자 무서운 걸 모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 스물두 살쯤에 여자 선배한테 들었던 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칭찬도 비난도 아닌 건조하고 차가운 말투였다. 젊은 여자를 유독 함부로 대하는 한국 사회에서 흔하게 흔하게 겪는 일을 나만 피해간 것도 아니었는데, 그 선배의 말이 사실이긴 했다. 어떤 일을 겪어도 나는 남자가 무서워지지 않았다. 그 말을 듣고는 생각했다. 내가 진짜 무서워하는 건 늘 여자였다고, 여자한테 미움을 받는 일에는 영 면역이 생기지 않는다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 친구가 쯧즈 하는 표정으로 말해주었는데, 나는 사람들의 악의를 눈치채는 데 아주 무능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몰랐던 악의가 더 있다는 거냐고 되물었지만 현명했던 그 친구는 그냥 웃으면서 몰라도 된다고 했다. 거대한 뒤통수를 맞은 것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화가 나기보다는 주로 슬펐다. 나는 늘 여자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으니까.


여자친구들과의 완전한 순간

돌이켜 생각해보면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거의 완벽한 여성 동성 사회에서 살았다. 17세부터 19세까지, 나라는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을 처음으로 가지기 시작한 가장 초입의 시간에 온몸의 감각은 여자친구들과 관계의 퍼즐을 맞추는 데 쏠려 있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남녀공학이었지만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중학교 때는 긴 복도 가운데에 철문이 잠겨 있었고, 중앙계단은 보통 때는 이용하지 않았다. 중앙계단은 친구와 오래오래 이야기해야 할 때 사용되는 공간이었다. 둘이 얘기를 하고 있으면 그 자리를 피하는 게 암묵적인 룰이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한 기억이 난다. 옆옆 고등학교는 합반이래. “와아아~~” 분명히 부러워하는 소리를 내려고 한 것일 텐데 어째 뒤끝이 영 시시하게 잦아들었다. “불편할 거 같은데?”라고 누가 말하면 “그래 정신이라도 승리하자” 이렇게 농담을 주고받았다. 어딘가 연극적이었다. 합반을 갈망하는 여고생의 연기랄까. 사실 합반을 원하지도 않았으면서. 공학이라는 걸 실감하는 순간은 주로 운동장을 바라볼 때였다. 운동장에는 항상 남자애들이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난 다음 좀 어둑어둑해져야 아주 잠깐 운동장이 빌 때가 있었는데, 야간자율학습이 시작되면 중년의 남자 교장이 화려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운동장을 뛸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교장은 남자애들의 농구 경기에 기웃거리며 말을 걸곤 했고, 그게 불편했던지 아니면 옷 갈아입어야 하는 시간이 필요했는지 모르겠지만 남자애들은 쉬는 시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운동장에서 사라지곤 했다. 그때를 이용해서 자율학습이 시작된다는 경고를 들을 때까지 몇몇 여자애들이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그리고 교장이 나타나면 운동장을 뛰던 여자애들이 우르르 다시 교실로 향해 달려갔다. 그 짧은 순간에 교복치마를 입고 웃으면서 최대한 큰 보폭으로 겅중겅중 달리는 장면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렇게 뛰면 폭이 넓은 치마가 활화산처럼 퍼졌다. 운동장 저쪽 끝 벤치에는 가끔 한두 명의 남자애들이 있었는데, 나중에 성인이 되어 자신이 바로 그 벤치에 있었다는 동창을 만난 적이 있다. 남자 동창이라니 그때서야 내가 공학을 나왔다는걸 실감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오픈리 게이로 지낸 그는 남자애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왕따였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운동장 얘기를 하자 그도 운동장에서 다른 남자애들이 다 사라지고 여자애들이 팔을 벌리고 하늘을 보며 소리를 지르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중고등학교 내내 남녀공학의 남학생은 2D로 존재했고, 여자친구들과의 관계는 아이맥스로도 담지 못할 다면체였다. 나는 그 퍼즐을 도저히 풀 수 없어 종종 길을 잃곤 했다. 하지만 나에게 여자친구와의 관계는 너무나 중요했다. 엄마는 늘 엄마의 친구들에게 나를 ‘손이 하나도 안 가게 해서 기특한 막내’라고 소개했다. 엄마를 귀찮게 하지 않는 게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가족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나는 친구들과의 시간에서만 나의 중력을 다 쓸 수 있었다. 내가 여기 다 와 있는 느낌. 17세 즈음에 만난 인생의 친구들은 그 모든 관계의 공백과 쓸쓸함을 메워줄 수 있는 존재들이었고, 나는 열렬하게 그들의 관심을 끌고 싶었다. 아빠가 취미로 배운 수지침과 손금, 그리고 이름풀이를 곁눈질로 배워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언니의 책장에서 뽑아 읽은 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소화와 정하섭의 사랑 이야기를 에로영화처럼 묘사했고, 귀신이야기를 비롯하여 각종 이야깃거리를 언제나 잔뜩 가지고 있었다. 


내가 나일 수 있었던 

당시에는 말이 통하고 마음이 맞는 친구와 몇 시간이고 이야기하고는 했다. 그 대화가 어떤 주제였는지를 거의 잊어버리고 있다가 이 글을 쓰려고 하자 편린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그 길고도 긴 대화들은 대부분 나는 어떤 사람인지, 너는 어떤 사람인지, 내가 본 너는 어떤지, 너가 본 나는 어떤지에 대한 내용들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정말 다양한 버전으로 지치지도 않고 했다. 때로는 『질문의 책』을 손에 들고 하기도 했고, 투명 아크릴에 담긴 질문카드 상자를 이용하기도 했다. 루시 몽고메리의 소설 『빨간머리 앤』에 나오는 앤과 다이애나처럼 강경옥의 만화 『17세의 나레이션』도 세영이와 현정이의 관계가 서사의 핵심을 차지한다. 

『17세의 나레이션』 여주인공 세영이는 공부도 외모도 재능도 딱 중간 정도의 인물로 나온다. 반에서 제일 예쁜 애는 따로 있고, 공부를 제일 잘하는 친구도 따로 있고, 늘 성숙하고 현명해서 마음을 털어놓게 되는 친구도 따로 있다. 세영이는 내내 자신이 어디쯤에 있는지 자신 없어 한다. 대부분의 주인공들이 그렇듯이 세영 역시 실제로 평범하다기보다는 스스로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었지만, 세영의 내면이 꼭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나로 살기는 좀 자신이 없다는 생각. 갑자기 말을 하지 않는 친구와 화해하기까지 몇 권이 지나가고, 속 깊은 친구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 같은 감정이 아주 공들여 묘사되어 있다. 자신감이 없고 늘 실수할까 두렵고 이제야 자기가 자기 자신인 것에 겨우겨우 적응해가는 17세 세영이의 감정은 빈칸에 드문드문 적혀 있었다. 당시 순정만화에 종종 도입되었던 주인공의 마음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이러한 내레이션 장치는 17세의 평범한 여고생을 ‘내면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도록 해주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한데, 내면을 가진 독자적 존재여야 상호동등함에 기반한 우정이란 관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강경옥, <17세의 나레이션>의 한 장면

『인권의 발명』을 쓴 역사학자 린 헌트에 따르면 인권이라는 개념이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은 내면을 가진 자율적 존재이며, 타인 역시 그러한 존재라는 것을 상상을 통해 그려볼 수 있었을 때 비로소 가능했다고 한다. 낸시 암스트롱은 『소설의 정치사』에서 18세기 여성들이 쓴 소설을 통해 내면을 가진 도덕적 주체로서의 근대적 개인의 형상이 탄생했다고 했다. 이왕 인용한 김에 한 사람을 더 언급하자면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의 저자 슈테판 볼만은 책 읽는 여자가 위험한 존재로 취급당한 이유로 다음 세 가지를 든다. 책 읽는 여자는 어떤 사람도 들어올 수 없는 자신만의 자유 공간을 획득하고, 그것을 통해 독립적인 자존심을 세우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나는 집 안에 있는 책들을 수십 번씩 다시 읽었었다. 하지만 아무도 내 머리 속에 어떤 세계가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리고 상대와 같은 페이지에서 의문을 가졌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17세가 사회와 세계에 대해 얘기할 때 그것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친구를 만났을 때의 깊은 안도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과제 노트에 빽빽하게 피드백을 해준 전교조 선생님에게 받은 인정과는 또 다른 기쁨이었다. 말이 통하고 생각을 교환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난다는 건 내가 나로 살아도 된다는 커다란 오케이 사인 같은 거였다. 


Pieter Janssens Elinga, <Reading Woman>, 1663

내가 혼자가 아닌 그 곳, 언니네 방

그리고 스물다섯이 된 2000년에 여성주의로 숨 쉬는 마을 <언니네> 운영진으로 합류했다. <언니네>는 페미니스트를 위한 대중적인 포털 사이트를 꿈꾸었다가 나중에는 비영리민간단체로 바뀌었는데, 당시 <언니네> 사이트 이용자는 가입자 수 기준으로만 5만여 명에 달했다. <언니네> 사이트의 주요 서비스 중 하나였던 ‘자기만의 방’은 네이버 블로그 서비스보다 먼저 시작했었던 개인 블로그 형식의 페이지였다. 2000년에 개설하여 5년간 총 1300여개가 만들어졌다. <언니네>는 여자만 가입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남자 회원들도 소수지만 있었다. <언니네>는 페미니스트 공동체이자 여성 동성 사회성을 경험하게 했던 공간이기도 했다. 동성사회적 공간이었다는 의미를 『비평이론의 모든 것』을 쓴 로이스 타이슨의 설명을 빌어서 조금 더 풀어서 써볼까 한다. 


<언니네> 사이트

동성사회적(homosocial)이라는 용어는 동성성애적(homoerotic)이란 용어와 구별되어서 사용된다. 도식적으로 구분하자면 동성성애적이라는 말은 주로 동성 간의 성애적 끌림을 묘사하는 말이고, 동성사회적이라는 말은 동성 간의 우정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하지만 동성사회적이라고 해서 성애가 완전히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이브 코소프스키 세즈윅에 따르면 남성들의 동성사회성은 동성성애적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여성혐오(misogyny)와 호모포비아(homophobia)를 동원하는 데 반해, 여성들의 동성사회성에서는 성애가 완전히 제거될 필요가 없다. 여성들 간의 낭만적 우정은 종종 에로틱하게 발전하기도 하는데 이것에 대한 사회적 금기는 그다지 강력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로이스 타이슨은 가부장제 사회가 여성들이 본성상 감정 과잉임을 내보이는 것을 매력이라고 부추겼기 때문에 여성들이 서로 낭만적 우정을 격렬하고 열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분석한다. 여자들의 관계는 남근 중심의 의미화 경제 속에서 ‘한때’의 문제로, 남자 없는 세계의 대리 보충 같은 형태로 이해되어왔다. 그러나 가부장제에 포섭되지 않는 여자들의 사회가 설령 불완전하고 임시적이었다고 해도 그것은 남자가 없기 때문은 아니었다. 여자들 간의 관계는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중간 지대에 놓여 있다. 오히려 남자친구가 생기면 여자들의 사회는 종종 냉각되곤 했다. 남성 동성 사회에서 여자가 이성애 남성의 알리바이로 등장하여 혐오 혹은 숭배의 대상으로 타자화되었던 것과 비교하자면, 여성 동성사회에서 남자는 구성 요소로 등장조차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애당초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여자들의 사회다

『언니네 방』은 언니네 회원들이 자기만의 방에 올린 글을 엮어서 만든 책이다. 당시 출판팀은 솔직하고 당당하고 통쾌하고 때로는 함께 분노할 만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는 이 ‘페미니즘’ 책을 한참 인기였던 여성들의 자기계발서 칸에 두어 부지불식간에 읽히게 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 결과 2006년 출간 당시 2만 부 가량 판매되었고, 대만에도 번역 출간되었으며, 2007년에는 『언니네 방2』가 나왔으니 어느 정도는 목표를 달성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여자들이 서로를 응원하여 만들어낸 공동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았다는 점이 뿌듯했는데, 무엇보다도 여자들의 사회에 대한 관음증적 욕망에 더 높은 벽을 만드는 식으로 대응한 게 아니라 그것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는 점이 통쾌하기도 했다. 당시 문화일보는 이 책을 <언니네>의 ‘자기만의 방’에 5년 동안 가장 많은 회원들의 호응을 받았던 글을 추린 비밀 실화 에세이라고 소개했다. 책의 띠지에는 “일기장에도 차마 쓰지 못했던 이야기”라는 문구가 달려 있었다. 여자들끼리의 공간에서 나눈 은밀한 비밀 이야기를 훔쳐볼 수 있는 것처럼 ‘낚시’를 한 셈이다. 


『언니네 방』 표지 

이 에피소드처럼 여성 동성 사회는 언제나 관음의 대상으로 욕망되곤 했다. <언니네> 운영진이 되기 전 피시통신 여성 모임을 운영할 때 가장 큰 골칫거리는 몰래 아이디를 만들어서 들어온 남자 회원들을 걸러내는 일이었다. 익명게시판에 올라오는 글을 모두 퍼가서 자기들끼리 돌려보는 일도 있었고 심지어 모 주간지의 남자 기자는 거기에 르포에세이라고 스스로 이름을 붙여 기사화를 한 적도 있다. 다들 꽤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남자친구에 알려준 회원은 강퇴를 당했다. 하지만 막으면 막을수록 어떻게든 몰래 들어오는 것을 완전히 막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웠다. 인터넷 기반의 페미니스트 공동체 커뮤니티를 지향했던 <언니네>에서는 진짜 여자가 맞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아예 주민등록번호도 수집하지 않았다. 사이트의 지향과 가치에 동의하는지를 물었을 뿐 남자를 걸러내기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대신 모두가 동일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자유게시판, 익명게시판, 토론게시판, 소모임게시판 등을 사용하는 중앙 집중적 형태가 아니라 관심사와 활동 방식에 따라 여러 개의 중심을 두었고, 익명게시판은 아예 없앴고, 커뮤니티와 개인 블로그, 지금의 위키백과 같은 지식놀이터 같은 것을 만들었다. 결국 자본력을 비롯한 여러 복합적인 이유에서 사이트를 닫게 되었지만 이때의 경험은 여자들의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지를 생각할 때 지금까지도 가장 중요한 참조점이 되었다. 

내가 경험하고 꿈꿔온 여자들의 사회는 남자 없는 사회가 아니라 남자가 필요 이상 중요해지지 않는 사회, 그리고 여자들 관계의 의미가 과소평가되지 않는 사회이고, 서로 친구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감각을 공유한 사회이며, 여자라는 동질성 아래 동일한 구호를 외치는 사회가 아니라 우리 모두는 각각의 고유한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고, 바로 그 점을 충분히 존중받기 때문에 함께 있는 것이 의미 있는 그런 사회다. 그런 이야기들을 언제나 하고 싶었다. 여자의 인생에서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는 여자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지나치게 적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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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권김현영(여성학자)

여성학 연구자. 언제나 여자들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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