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조각으로 채우는 가족 희비극 - 뮤지컬 <펀홈>
나와 꼭 닮았고, 하나도 닮지 않았던 나의 아버지
앨리슨은 레즈비언임을 커밍아웃한 지 4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모으기 시작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고 4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를 마흔셋의 엘리슨이 기록하기 시작한다.
트럭에 치인 아버지의 죽음은 사고사로 판명 났지만, 앨리슨은 아버지가 자살했다고 생각한다. 열아홉 살에 집을 떠나 대학에 다니며 레즈비언임을 정체화한 앨리슨은 부모에게 편지로 커밍아웃한다. 이후 성 정체성을 숨기고 클로짓 게이로 산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어머니로부터 전해 듣는다. 4개월 후 아버지가 트럭에 치이는 사고를 당한다. 앨리슨은 이 죽음이 자신의 고백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마흔셋 앨리슨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며 과거를 되돌아본다.
뮤지컬 <펀홈>은 부모의 세계에 머물며 아직 자기 자신을 정립하지 못한 아홉 살 앨리슨과 부모를 떠나 대학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은 열아홉 엘리슨의 이야기가 큰 축을 이룬다. 두 시기의 기억을 마흔셋 앨리슨이 해석하고 설명한다.
마흔셋 앨리슨은 아버지와 추억이 담긴 물건과 자신의 일기장을 토대로 과거의 기억을 부른다. 아버지는 벡델 가문의 가업인 장례식장을 물려받기 위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장의사만으로는 수입이 충분치 않아 고등학교 영어 교사 일을 병행한다. 고풍스러운 취향과 남의 눈을 의식하는 성격 덕분에 늘 예민하다.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고, 치마를 입지 않는 앨리슨을 못마땅해한다. 어린 앨리슨은 몇 가지 일화로 아빠의 성향을 추정한다. 지금도 ‘왜 그랬냐’고 묻고 싶은 게 많지만, 대답해줄 아빠가 없다.
집을 떠난 열아홉 살 앨리슨은 자기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레즈비언 정체성을 인정하자마자 부모에게 편지를 보내지만, 둘 다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펀홈>은 레즈비언이자 페미니스트인 엘리슨 벡델 작가의 그래픽 노블 <펀홈>을 원작으로 한다. 2006년 아버지 이야기를 담은 <펀홈>을 발표했고, 뮤지컬로 만들어지면서 다시 주목받는다.
제목인 펀홈은 아버지의 가업인 장례식장(Funeral Home)에서 따왔다. 극중 벡델가의 아이들이 장례식장을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중앙의 회전무대가 있고 객석을 중심으로 왼쪽 벽은 그림이, 오른쪽은 책장이 배치되어 있다. 낡은 집을 구매해 18년 동안이나 집을 꾸미는 데 시간을 썼다는 브루스 벡델의 취향이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된 모습은 아니었지만, 이와 같은 연출이 앨리슨의 회고에 좀 더 집중하게 한다.
앨리슨이 조각을 하나씩 꺼내놓는 방식이기에 시간 순서대로 극이 진행되지는 않지만 마흔셋 앨리슨의 ‘캡션 설명’이 극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캡션 설명. 아빠와 난 정말 많이 닮았다. 캡션 설명. 아빠와 난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
아빠의 물건을 발견한 앨리슨이 회상을 시작하는 첫 번째 장면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빠가 세상을 떠난 지 20여 년 만에 회고를 시작하면서 앨리슨은 자기 자신을 알고 싶었던 것일지 모른다. 사랑하고 미워했던 아빠, 너무 닮았고 하나도 닮지 않은 아빠를 떠올리면서.
뮤지컬 <펀홈>은 10월 11일까지 동국대학교 이해랑 예술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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