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안현모 “난 완벽주의자가 아니라 ‘최선주의자’”
번역서 『언제나 길은 있다』 출간
이 책은 쉽고도 어려워요. 내용을 다 이해하려면 굉장히 어렵지만, 표현 자체는 단순하거든요. 그래서 독자들이 쉽게 읽고 지혜를 탐구할 수 있도록,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번역했어요. (2020.07.27)
동시통역, 앵커, 예능 등 다채로운 안현모의 길에 ‘번역’이 추가됐다. 처음 본 순간부터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오프라 윈프리의 책이다. 『언제나 길은 있다』에는 세계적인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가 토크쇼에서 만난 90여 명 현자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명사들의 삶에서 건져 올린 문장들은 안현모의 삶에도 단단한 뿌리가 되어 주었다. 미국 빌보드 뮤직 어워드, 북미 정상회담 방송 동시통역 등 중대한 행사에 서면서도, 늘 중심을 잃지 않았던 이유다.
인터뷰 내내 안현모는 ‘최선’을 강조했다. 인생의 길에는 너무나도 변수가 많으니, 다만 할 수 있는 일은 철저히 조사하고 연습하는 것뿐이라고. 실제로 그는 카메라 앞에 서는 한순간을 위해 밤새 정보를 수집하고, 행사의 세부 사항을 체크한다. 스스로 “완벽주의자가 아니라 ‘최선주의자’”라 말하는 그의 모습은 심플하되 깊다.
“목적 있는 삶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나 역시 세상이 바라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 사이에서 갈등하던 때가 있었죠. 지금은 내가 무얼 하기 위해 여기 있는지 분명히 알아요. 나의 본능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매일 매일의 결정에 주의를 집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 오프라 윈프리
동시통역, 앵커, 예능까지 다양한 분야에 도전해오셨어요. 이번엔 ‘번역가 안현모’예요. 어떻게 번역 작업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책을 번역했다고 하니, 주변에서 의외라며 놀라기도 하는데요. 사실 제게 완전히 새로운 일은 아니에요. 대학생 때 번역 아르바이트를 했고, 통ㆍ번역도 공부했으니 늘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던 거죠. 오프라 윈프리의 『언제나 길은 있다』는 번역 제안을 받기 전에 이미 북 페어에서 접한 책이에요. 구성과 내용이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의뢰가 와서 기뻤죠. 조금의 의심 없이 반갑게 수락했어요.
이 책의 매력 포인트가 무엇이었나요?
정말 지혜로 꽉 찬 책이에요. 오프라 윈프리뿐만 아니라 토크쇼 <슈퍼 소울 선데이>(Super Soul Sunday)에 출연한 90명의 현자들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데요. 단순히 나열한 게 아니라, ‘씨앗’에서 시작해 ‘등반’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구성으로 짜여 있어요. 끝까지 읽고 나면, 세계적인 연사들의 손을 잡고 여행한 듯한 기분이 들죠.
바쁜 스케쥴을 다 소화하면서도 어떻게 번역 작업을 했을까 궁금했어요.
다른 일을 병행했기 때문에 규칙적으로 하진 못했고, 단기간에 집중해서 끝냈어요. 마침 코로나19로 행사가 취소되면서 시간이 많아졌거든요. 저도 거리두기 캠페인에 동참하면서, 번역 작업을 몰아서 할 수 있었죠.
통역과 번역 모두 외국어를 다루는 일이지만, 두 작업은 다를 것 같아요.
확실히 달라요. 통역은 실시간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순발력이 중요해요. 번역은 기록으로 남으니까, 시간적 여유를 두고 작업해야 하죠. 저는 둘 다 잘 맞는 것 같아요.
번역을 하며 특별히 도움 됐던 것이 있나요?
인도로 명상 여행을 떠났던 경험이 예상외로 도움 됐어요.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읽고 명상에 빠졌는데, 오프라 윈프리의 이 책에 바로 그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말이 나오거든요. 오랫동안 영향을 받은 작가의 글을 제가 번역하게 된 거죠. 그 모든 시간이 헛되지 않았구나 싶었어요.
와, 놀라운 우연이네요!
실제로 제가 다닌 명상학교 선생님들이 오프라 윈프리의 케이블 방송 ‘오프라 윈프리 네트워크(OWN)’에서 강의했어요. 오프라 윈프리도 그 강연을 들은 사람이니까 사고방식과 언어가 비슷하겠죠. 그래서 이 책을 번역할 때, 훨씬 수월했어요. 좋은 번역은 배우가 연기하듯이, 실제 그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번역할 때만큼은 오프라 윈프리가 ‘되려고’ 했기 때문에, 배경을 아는 것이 큰 도움이 됐어요.
말을 건네는 듯한 ‘해요’체로 번역하셔서, 더 마음에 와닿았어요. 문장과 단어 면에서 신경 쓰신 부분이 있다면요?
사실 이 책은 쉽고도 어려워요.(웃음) 내용을 다 이해하려면 굉장히 어렵지만, 표현 자체는 단순하거든요. 그래서 독자들이 쉽게 읽고 지혜를 탐구할 수 있도록,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번역했어요. 한자어나 어려운 단어를 쓰면, 깊은 세계에 들어가는데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으니까요.
“오프라 윈프리에게는 사람들의 내면을 보듬으며 지혜를 이끌어내는 힘이 있다”고 하셨어요. 그에게서 가장 배우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방송인으로서 오프라 윈프리의 장점은 상대방의 마음을 여는 능력이에요. 대통령이든 평범한 시민이든 선입견 없이 경청하기 때문에, 상대방도 솔직히 속마음을 털어놓죠. 진행자로서 꼭 필요한 자질이에요. 그런 면모 덕분에, 세계적 명사들이 자신의 지혜를 선뜻 나눌 수 있었고 이 책도 나올 수 있었겠죠.
90명의 세계적인 길잡이들의 말이 나오지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면요?
다 좋아서 고르기가 어려운데.(웃음) 굳이 하나 꼽자면, 오프라 윈프리의 말이 기억나요. 그는 세계적인 토크쇼의 진행자인데도, 하버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축사를 할 때 너무 긴장됐대요. 불안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대목을 읽고, 이렇게 말을 잘하고 성공한 사람도 큰일을 앞두고 고민하는구나 싶더라고요.
역자님도 미국 빌보드 뮤직 어워즈 등 중요한 행사에 여러 번 섰죠. 긴장되지는 않았나요?
행사 직전보다는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가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 늘 걱정해요. 그래서 준비를 더 철저히 하죠.
늘 프로답게 해내서 ‘완벽주의자’처럼 보이는데요.(웃음)
많은 분들이 완벽주의자로 봐주시지만, 스스로를 ‘최선주의자’라 생각해요. 사실 어떤 것도 완벽하게 할 수는 없죠. 능력, 환경, 운이 따라야 가능하기 때문에, 완벽하다는 말은 오만한 것 같아요. 그저 게으름 피우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해요.
2018년 북미 정상회담 CNN 방송처럼 큰 행사를 맡을 때, 어떤 준비 과정을 거치시나요?
모르는 건 다 찾아봐요. 조금이라도 모르는 게 생기면, 잠이 안 와서 알아내야 직성이 풀려요. 큰 행사일수록 제가 모르는 정보가 있으면 큰일 나잖아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해서 힘들긴 하지만 결국 남 주는 게 아니더라고요. 행사 당일, 막상 쓰는 정보는 절반에 불과하다 해도, 다음 행사를 진행할 때 나머지 지식을 활용하게 돼요. 그래서 늘 만반의 준비를 하는 걸 선호해요.
역대급으로 힘들었던 행사가 있었나요?
솔직히 말할까요?(웃음) <어벤저스> 기자 간담회 행사가 역대급으로 힘들었어요. 통역 제의를 받았을 때, 마블 시리즈의 전편을 다 봤어요. 모든 고유 명사들을 메모해가면서 그야말로 정주행한 거예요. 그런데 막상 행사 당일에는 하나도 못 써먹었어요. 기자 간담회에서는 미리 영화 내용을 언급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제작 과정에 대해서만 말하는 거예요. 영화를 볼 시간에 다른 기자 간담회를 많이 찾아볼 걸 후회가 되더라고요.
행사 당일 변수가 많아서 말 그대로 완벽하게 준비하는 건 불가능하겠네요. 그래서 동시통역을 “서커스 공중 곡예”에 비유하셨군요.
네, 간발의 차이로 외줄에서 떨어지는 공중곡예처럼, 동시통역도 잠깐이라도 집중력이 흩어지면 실수하게 되죠. 자료조사를 철저히 준비하고 수없이 연습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어요.
실수를 한 번이라도 하면, 마음에서 털어내기도 힘들 것 같아요.
신기하게도 제가 털어내는 건 잘해요. 이별의 아픔은 새로운 사랑으로 푼다는 말이 있잖아요. 일에서 실수한 건 다음에 맡게 될 일로 만회하려고 해요. 현재가 좀 미흡하더라도 다음 번에 잘하면 되지 하고 잊어버려요.
“결혼은 하나의 모험이고 그 속에서 우리는 따로 또 같이 삶을 창조한다”(128쪽)는 문장이 인상 깊었어요. 역자님에게 결혼 생활은 어떤 의미인지요?
저도 그 문장이 공감됐어요. ‘따로 또 같이’가 결혼 생활에서 정말 중요한 것 같거든요. 너무 각자의 인생만 살아도 안 되고, 24시간 붙어 있어도 바람직하지 않아요. 각자의 시간과 함께의 시간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어야 좋죠. 저희 부부도 바쁜 일정 속에서도 조화를 찾을 수 있도록 늘 노력하고 있어요.
가족이 ‘통역사 집안’이라고요. 어머니와 작은 언니의 영향을 언급하기도 했어요.
작은 언니만 말했다가, 큰 언니가 한 달 동안 삐져서 풀어주느라 혼났어요.(웃음) 제가 막내였기 때문에, 나이 차 많이 나는 두 언니들을 보고 배우면서 자랐거든요. 지금도 저희 가족은 이야기가 끊이지 않아요.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단체 대화방을 통해서 24시간 수다를 떨죠. 이런 환경에서 자랐기에 저도 소통을 좋아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역자님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소통’인 것 같아요. 지금도 그 마음에 변함이 없으신지요?
네, 거창한 문제의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일상의 작은 소통에 관심이 많아요. 우리는 다 똑같은 물이지만, 댐처럼 사이에 수문으로 닫혀 있는 것 같아요. 그 문만 열면 서로 섞일 수 있는데 말이죠. 그렇게 마음이 닫혀 있다가도 문득 열리는 순간을 좋아하고요. 그 소통은 저와 남편 사이, 부모님 사이에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은 것부터 시작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어떤 독자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나요?
번역 작업 내내, 독자들을 상상했어요. 진로에 대한 글에서는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며 서점을 기웃거릴 학생을, 자녀 양육에 대한 문장에서는 아이가 잠시 낮잠 자는 사이에 책을 펼쳐볼 주부 독자를 생각했죠. 그런 얼굴들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내 떠올랐어요. 제 번역을 통해 이 책의 메시지가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해진다면, 더 바랄 게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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