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 “좋은 작가가 되려면 먼저 좋은 독자가 되어야”
정여울 작가의 북클러버 ‘삶의 체험 한가운데서 글쓰기’
내게 필요한 책 단 한 권을 고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읽을 것인가가 중요해요. 어떤 책을 읽고 다른 사람보다 훨씬 많이 공감하고 발견하는 사람이 있죠. 느낄 줄 아는 심장을 가졌다는 것, 그게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첫 걸음이라고 생각해요. (2020. 07. 14)
7월 6일 북카페 피터캣에서 ‘예스24 북클러버’ 정여울 작가의 북클러버, 두 번째 글쓰기 세미나가 ‘삶의 체험 한가운데서 글쓰기’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참여자들은 정여울 작가의 강의 후 ‘내가 살지 못한 삶’이라는 주제로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정여울 작가의 글을 함께 읽었다.
글 쓰는 사람들은 세상을 바라볼 때 연민이 아니라 공감하는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난민 사태를 바라보며 난민으로 태어나지 않았음을 다행스럽게 여기며 후원금을 내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연민일 수 있다.
“연민조차 없다면 큰 문제죠. 하지만 연민은 당신이 나보다 불쌍하다는 생각이고, 공감은 연민보다 한 차원 높은 감정인 것 같아요. 이 지구상에 고통받는 사람이 있는 한 마음이 아픈 것. 나 혼자 행복한 건 진짜 행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공감이죠.”
코로나19로 많은 강연이 취소되고 시간이 많아지면서 글쓰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정여울 작가는 자신의 글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세상에 필요한 일이 꼭 병을 고치는 일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글을 쓰는 것으로 사람을 고칠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버려 두지 않고 공감하고 위로를 건네고 치유할 수 있다.
“본의 아니게 이렇게 되니까 강연을 많이 했던 내가 그립기도 하고, 평소 잠자던 자기 혐오의 씨앗이 나를 많이 괴롭혔어요. 나는 지금 필요없는 사람인가, 나만 좋기 위해 글을 쓰는 건가, 생각하게 된 거죠. 이런 고민이 필요하지만 자기혐오 방식으로 드러날 필요는 없어요. 세상에 필요한 일이 병을 고치는 일만은 아니잖아요. 자기 마스크도 부족한데 마스크를 나눠 쓰는 사람들이 있고, 저금통을 털어서 기부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글을 쓰면 되는 거예요. 내가 중요한 글을 쓰고 있다고, 최고의 나와 만나는 글을 쓰고 있다고 믿는 거죠.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알아야 해요. 일단 내가 필요로 하는 글을 써야 남에게도 필요한 글이 되는 거예요. 나의 절실한 필요를 말하면 타인의 필요와 만나는 공감의 글을 쓸 수 있어요.”
정여울 작가는 좋은 글을 쓰는 첫 번째 걸음으로 ‘좋은 독자가 되는 것’을 꼽았다. 수만 권의 책 중 내게 필요한 책 한 권을 고르는 일은 쉽지 않다. 단 한 권의 책을 고르는 것보다 어떻게 읽을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어떤 책을 읽었을 때 한 사람은 아무런 감흥이 없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몇 시간이고 그 책과 작가의 좋은 점에 대해서 말할 수 있게 된다.
“좋은 글을 찾아서 읽는 감식안을 기르는 것 자체가 최고의 글쓰기 수업이에요. 느낄 줄 아는 심장을 가졌다는 게 중요해요. 그게 글쓰기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의 글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좋은 글을 쓸 수 있어요. 좋은 작가가 되는 것보다 먼저 좋은 독자가 돼야 해요.”
쓰고자하는 주제를 선정했다면 대상에게 끊임없이 가까워지려는 마음과 거리를 두려는 마음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 정여울 작가가 말하는 ‘거리를 둔다는 것’은 투사의 위험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투사는 ‘내 생각을 상대에게 덮어씌우는 것’으로 상대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특수한 상황을 겪은 사람에게 ‘너무 슬프셨죠?’라고 묻는 것은 질문자가 상대의 감정을 이미 결론지은 후 확정적으로 묻는 것이다. 글을 쓸 대상에게 접근할 때는 나의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걸 전제한 후 접근해야 한다.
“청소부의 일상에 관해 쓰고 싶다고 할 때는 청소노동자의 노동에 관한 수백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3일 동안 체험해보는 게 나을 수 있어요. 체험이라는 건 그만큼 엄청난 거죠. 대학에 다닐 때 농활에 관한 글을 쓰려고 체험하러 간 적이 있었는데, 2박 3일째 되는 날에 병에 걸려서 쓰러져서 돌아왔던 경험이 있어요. 그렇게 체험해보니까 나의 허약함을 깨닫게 되고, 그 세계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더라고요. 농활에 관한 수십 권의 책을 읽고, 의기양양하게 갔다가 열흘의 일정도 마치지 못하고 보기 좋게 패배한 경험이었죠.”
그렇다고 모든 것을 체험하거나 경험한 후 글을 쓸 수는 없다. 어떤 때는 친밀하게, 어떤 때는 적절한 거리 두기가 되어야만 글을 쓰려는 대상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글을 쓸 수 있다.
글 안에서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글쓰기를 할 때 중요한 것은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사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가능성으로만 남겨두고, 잠재력으로만 남아있던 삶을 글로 쓰는 것이다. 보통은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삶을 자식에게 투영하게 된다.
“정말 좋은 부모이고, 너무 심하게 아이들을 몰아세우지 않는 친구인데도, 자신이 접영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이가 접영 할 수 있게 한다고 열 살 이전부터 트레이닝을 시키더라고요. 그것 역시 내가 살지 못한 삶이 남에게 영향을 끼치도록 하는 것이거든요. 자식도 남이잖아요. 우리가 살지 못한 삶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해서 괴롭게 하는 것보다는 내 글을 통해 내가 살아보는 거예요.”
글 속에서는 리듬체조 선수도, 파일럿도 될 수 있다. 어린 시절 이루지 못한 꿈, 해보지 못한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는 것은 타인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지만, 내가 다시 살아보는 것은 나를 알고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글쓰기를 통해 내 상처를 인정하고, 대면하는 게 가능해져요. 상처를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면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치유하기도 힘들고요. 인정도 대면도 하지 못하고 급하게 치유를 찾으면 잠깐 진통제를 먹는 것과 같아요. 대면하는 고통이 상처로 인한 고통보다 더 클 수 있거든요. 그렇지만 대면해야 해요. 어떤 말과 삶이 우리 내면에 상처를 주었는지 들여다보고 치유하는 것, 글쓰기를 통해서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정여울 작가는 강연을 마치며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주제로 한 편의 글을 완성해보기를 권했다. 부모가 살지 못한 삶이 내게 끼친 영향을 생각해 볼 수도 있고, 어린 시절 꿈을 포기했던 순간의 나를 떠올려볼 수도 있다. 지금 너무 힘들다면 상처가 치유됐을 미래의 나를 떠올리며 써보기를 권했다.
각자의 글쓰기 시간을 가진 후 정여울 작가는 저서 『마흔에 관하여』 중 「내면의 아이에게 귀를 기울이다」를 읽었다. 이 글에는 정여울 작가가 들여다보았던 자기 안의 내면아이에 관한 이야기가 담겼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좋아하고 동경했던 친구로 인해 상처받은 내면아이와 스물아홉부터 11년 동안 가족의 빚을 갚으며 ‘몸만 커버린’ 내면아이에 관해 써내려간 글이었다.
“성인 자아가 내면아이에게 말을 걸어줘야 진짜 대화가 시작돼요. 어린아이일 때만이 아니라 성인일 때도 내면아이가 남아있을 수 있어요. 11년 동안 사진 강사며, 학원 아르바이트, 시간 강사까지 정말 많은 일을 하면서 빚을 갚았어요. 그땐 너무 힘들어서 감정을 느낄 새도 없었어요. 다 갚고 나니까 그제야 진짜 감정이 오더라고요. 가족과 나에 대한 원망이 몰려왔죠. 여러분도 우리 안의 내면아이를 만나서 말을 걸어보세요. 내면아이와의 만남은 언제라도 절대 늦지 않아요. 만나야 그 아이에게 할 말도 생기고, 지금이라도 무슨 이야기든지 해보라고 기회를 줄 수 있어요. 어디선가 울고 있을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달래주고, 말을 걸어보세요. 내면아이와의 만남에서 주도적으로 말을 걸어야 하는 쪽은 성인인 나예요.”
글쓰기는 사용 방법에 따라 흉기가 될 수 있고, 기능적인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정여울 작가는 자기 자신을 치유하고 다른 사람을 어루만져주는 무기로 글쓰기가 사용될 때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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