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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리움>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에서 생존의 조건이란

낯설고 기괴한 인류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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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비슷한 사이즈의 마스크를 착용하는 풍경은 낯설고 생소하고 또 한편으로 기괴하다. 꼭 ‘비바리움’에서 사는 것 같다. (2020.07.09)

영화 <비바리움>의 한 장면

우리는 지금 현실이 아닌 듯한 현실을 살고 있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초현실주의(?)의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바깥 활동을 최대한 자제하고, 대면 활동을 가급적 줄이고,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를 웬만해서 피하는 쪽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거리에 사람은 줄었고, 경제와 사회와 문화 활동은 타격을 입었고, 모든 사람이 비슷한 사이즈의 마스크를 착용하는 풍경은 낯설고 생소하고 또 한편으로 기괴하다. 꼭 ‘비바리움 vivarium’에서 사는 것 같다. 

비바리움은 관찰이나 연구를 목적으로 동물이나 식물을 가두어 사육하는 공간을 말한다. 톰(제시 아이젠버그)과 젬마(이모겐 푸츠)의 처지도 그렇다. 둘은 함께 살겠다고 중개인을 찾았다가 ‘욘더’라는 주택 단지를 추천받는다. ‘당신의 가장 완벽한 안식처가 되어줄게요’ 단지 입구에 붙은 광고판의 문구처럼 2층 구조에 마당까지 갖춘 집이 그럴싸하다. 중개인은 특별히 9호 집을 준비해뒀다며 소개하지만, 톰과 젬마는 선뜻 마음이 가지 않는다. 개성이라고는, 인간미라고는 전혀 없이 단지 내의 수백, 수천 채의 집이 모두 똑같이 디자인되어 있어서다. 

집 잘 봤습니다, 작별 인사로 거절 의사를 밝히려는데 중개인이 사라졌다.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하고 톰과 젬마는 욘더를 떠나려는데 출구가 나오지 않는다. 9호 집에서 멀리 떠나온 것 같은데 결국엔 다시 9호 집이다. 자동차의 배터리도 떨어진 상황. 어쩔 수 없이 톰과 젬마는 9호 집에서 하루를 보낸다. 다음 날 아침, 문 앞에는 인스턴트 먹을거리가, 그다음 날에는 갓난아이까지 배달된다. 그리고 상자에는 이 아이가 성장할 때까지 잘 키우면 욘더에서 나갈 수 있다는 메모가 적혀있다. 

좋은 집에, 일용할 양식에, 똘똘해 보이는 아이까지, 욘더의 광고 문구처럼 ‘완벽한 안식처’를 얻었지만, 톰과 젬마는 노력으로 이 가정을 이룬 것도 아니고, 집 안의 인테리어를 직접 꾸민 것도 아니고, 둘의 사랑으로 얻은 아이도 아닌 까닭에 완벽은 무슨, 자신들이 끼어들 틈이 없어 불청객 같은 심정이고, 안식이 웬 말, 주인 없는 집을 무단으로 점유한 것만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다. 게다가 엄마라니, 연고도, 핏줄도, 관계도 없는 아이가 톰과 젬마를 부모처럼 따르는 것도 왠지 소름 끼친다. 

욘더에 들어와 톰과 젬마가 유일하게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자동차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음악 소리에 맞춰 즉흥적으로 춤을 출 때이다. <비바리움>은 삶의 행복이란, 가정을, 가족을 만들어가는 과정 그 자체와 그에서 발생하는 뜻밖의 순간에 이뤄지는 감정의 공유로 정의하는 듯하다. 그런데 거기서 과정과 순간은 쏙 빼버리고 생활의 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진 상황에 톰과 젬마를 툭 떨어뜨려 놓는다. 우리가 목격하게 되는 건 톰과 젬마가 영문도 모른 채 실험에 참여한 기니피그처럼 탈출구를 찾지 못해 땅을 파고 제자리를 빙빙 도는 기괴한 풍경이다. 

<비바리움>을 연출한 감독은 로칸 피네건이다. 각본가 가렛 샌리와 함께 영화 속 세계를 창조했다. 두 사람은 2008년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로 시작된 부동산 시장 침체가 야기한 유령 부동산에 주목했다. '비슷한 모양의 주택 개발이 양자 현상처럼 영원히 지속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호기심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비바리움>으로 확장됐다. 로칸 피네건의 표현에 따르면, “이 영화는 인류가 당면한 정치, 문화, 사회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은유하고 풍자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영화 <비바리움>의 포스터

정말 그렇다. 감독의 괜한 자신감이 아니다. 톰과 젬마가 처한 상황을 보고 있으면, 생활의 제반 조건이 복지라는 제도로 제공되는 복지 선진국에서 부족한 것이 없어 일부 삶의 의욕을 잃어 우울증을 앓는 이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는 대기업의 상품이 전 세계를 장악함으로써 이를 소비하는 이들이 비슷해져 가는 정체성의 상실을 짚어볼 수도 있다. 전례 없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 시대에 해결책을 찾지 못해 실험동물이 된 것처럼 갈팡질팡하는 지금 이 시대의 인류의 모습이 중첩되기도 한다. 

초현실주의의 핵심은 ‘낯섦’이다. 이성과 상식을 넘어선 세계다. 현실이 초라해지고 끔찍해질수록 우리가 사는 세상은 초현실에 가까워진다. 그럴 때,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이를 목격하고 경험하는 우리는 혼란해진다. 환한 대낮인데 거리에 사람이 없고, 낮 기온은 30도가 훌쩍 넘는데 모두 답답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고, 눈에 보이는 위험은 없는데 위험을 피하려 혈안이 되어 있다. 낮인데 밤이고, 밤인데 낮인 ‘빛의 제국’의 상황에서 우리는 톰과 젬마이고, 톰과 젬마는 우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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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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