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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쉘> 한 명의 목소리가 이끈 변화의 함성

권력에 맞서 세상을 바꾼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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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권력에 맞서 세상을 바꾼 여성들의 폭탄선언을 다룬 작품이 <밤쉘>이다. (2020.07.02)

영화 <밤쉘>의 한 장면

<밤쉘>의 부제는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이다. 현(現)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 후보로 나섰던 2016년 미국 최고의 보수 언론이라 평가받는 폭스뉴스의 회장 로저 에일스를 상대로 앵커 그레천 칼슨이 성희롱 소송을 벌였다. 이는 당시 미디어산업에서 최초로 이뤄진 직장 내 성희롱 소송이었다. 그레천 칼슨의 소송 이후 성희롱 폭로가 이어지고 폭스 뉴스의 간판 앵커 메긴 켈리도 목소리를 더하면서 결국, 로저 에일스는 회장직에서 사퇴한다. 거대 권력에 맞서 세상을 바꾼 여성들의 폭탄선언을 다룬 작품이 <밤쉘>이다.

<폭스 앤 프렌즈>를 진행한 그레천 칼슨(니콜 키드먼), <아메리카 라이브 위드 메긴 켈리> <더 켈리 파일> 등을 진행하고 무엇보다 트럼프의 여성을 향한 막말과 관련해 생방송 TV토론에서 설전을 벌이기도 했던 메긴 켈리(샤를리즈 테론)의 실제 사연이 등장하는 가운데 가상 인물 케일라 포스피실(마고 로비)의 존재가 눈길을 끈다. 각본가 찰스 랜돌프(<빅쇼트>(2015) <데이비드 게일>(2003) 등)가 창조한 캐릭터로, <밤쉘>이 드러내려는 바가 케일라에 응축되어 있다. 

케일라는 폭스 뉴스의 열정 넘치는 신입 사원이다. “제가 새로운 스타가 될 수 있어요.” 자신만만한 케일라는 로저 에일스를 1:1로 대면하는 기회를 잡고는 그에게 주요한 프로그램의 앵커 자리를 부탁한다. 고개를 끄덕인 로저 에일스는 그러기 위해서는 충성이 필요하다며 치마를 올려 보라는 지시를 한다. 폭력적인 요구에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케일라는 어쩔 수 없이 그에 응한다. 이때 카메라는 부당한 성희롱의 현장을 은유하거나 생략하지 않고 여러 각도에서 조망하는 방식으로 이 장면을 설계한다. 

지위를 권력 삼아 성희롱을 일삼는 이들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영화가 이 장면을 볼거리로 삼으려는 것은 아닐 터. 실제 인물의, 실제 사연이 바탕이기는 해도 당시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실재하는 피해자들을 향한 또 다른 폭력이기에 가상 인물을 설정함으로써 피해를 방지하는 차원을 전제한다. 그것이 바로 그레천 칼슨과 메긴 겔리 외의 케일라가 주요하게 필요했던 이유다. 그런 배경의 케일라를 대상으로 보기 힘든 순간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데에는 몇 가지 의도가 있다. 

첫 번째, 로저의 시선으로 케일라를 비추는 카메라는 로저의 도덕적 불감증을 여실히 드러낸다. 케일라와 마찬가지로 이에 노출된 관객이 느끼는 감정은 크게 두 가지다. 해서는 안 되는 전혀 상식 밖의 요구를 거리낌 없이 행하는 로저에게 우선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상황을 파악한 순간, 스크린에 개입할 수 없는 관객의 특성상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 없어 그저 지켜봐야만 하는 처지는 무력감을 일으킨다. 

두 번째로, <밤쉘>의 카메라는 이 무력감을 공범의식으로 전환하는 구도로 케일라가 처한 상황에 관한 주변의 반응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 장면에서 로저의 시선에 이은 카메라의 시점은 영화를 보는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 그때 관객이 바라보는 대상은 바로 로저다. 로저는 이 광경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그렇다고 뭘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권력을 과시하는 듯하다. 실제로 로저가 직장 내 여성을 상대로 벌인 성희롱은 폭스 직원들이 알고 있으면서도 쉬쉬하는 바이기도 했다. 로저의 눈 밖에 나 일자리를 잃는다면 나만 손해라는 의식이 퍼져 있었던 것이다. 


영화 <밤쉘>의 포스터

부당한 권력에 맞서고 더는 성희롱의 피해자가 없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것, 두 번째의 카메라 구도는 <밤쉘>이 의도하는 질문과 직결하는 것이기도 하다. 침묵이 범죄와 무관함을 증명하는 알리바이는 아니라고, 그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부당함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카메라는 관객을 이 상황에 참여 시켜 말한다. 니콜 키드먼은 이 영화에 출연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누군가 이 영화를 본 후, 침묵을 깨고 ‘더는 참을 필요 없어. 나는 말할 수 있고,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듣고 날 믿어 줄 수도 있어’라고 말할 마음이 생길지도 모른다.”

이는 여성, 남성, 보수, 진보 누구에게나 해당하고, 모두가 마주해야 할 문제다. 각본가 찰스 랜돌프는 “단지 여성을 위해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라 남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이야기다. 여성은 그 경험이 무엇인지 알지만, 남성이 자신이 깨닫지 못했던 무언가를 목격할지도 모른다. 현재와 미래의 논의를 더 밀고 나갈 방법을 찾고자 했다.”고 전한다. 이 영화가 그 뜻을 잘 살린다면 “앞으로 더 많은 지지와 변화가 올 것”이라는 <밤쉘>의 연출자 제이 로치는 이렇게 호소한다. “때로는 한 사람의 목소리가 새로운 흐름을 만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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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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