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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윤이 칼럼] 나의 포르투갈은 어떨까?
<월간 채널예스> 2020년 7월호 『당신의 포르투갈은 어떤가요』
처음에 일러스트 작가로 활동하는 분의 책이라고 해서 그림 중심의 책인 줄 알았는데, 데이터를 받아보고 그림 뿐 아니라 포르투갈에서 생활하며 감각적으로 담아 낸 사진들만 감상하는데 시간을 다 보내고 말았다. (2020. 07. 08)
여행을 가지 못하는 요즘, 여행서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회사에 다닐 때는 오히려 먼 곳으로 길게 떠나는 휴가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던 것 같은데, 프리랜서가 되면 여행을 가는 상상은 많이 하지만 현실적으로 길게 떠날 날짜를 잡는 것은 더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능한 날을 예측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약 2-3년 동안 세계여행을 다니는 가족의 이야기, 교토, 포르투갈 등 여행에 관련된 책 작업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가본 적이 없는 곳이지만 많은 사진들과 글들로 그 여행지에 다녀온 것 같은 만족감을 느꼈다. 좋은 사진들, 그림들,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진 책을 작업하는 일은 정말 행복하다.
처음에 일러스트 작가로 활동하는 분의 책이라고 해서 그림 중심의 책인 줄 알았는데, 데이터를 받아보고 그림 뿐 아니라 포르투갈에서 생활하며 감각적으로 담아 낸 사진들만 감상하는데 시간을 다 보내고 말았다. 게다가 작가가 직접 인디자인에 이미지들을 편집하여 공유해주었는데, 디테일한 부분에 신경을 쓴 것이 느껴져 어디까지 반영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며 작업을 했다. 예를 들어 이 내용과 관련된 부분에 맞는 스케치가 있고, 상징하는 이미지, 정보를 줄 수 있는 사진이 함께 있다면 그걸 다 넣는 것이 좋을까, 적절히 덜어내는 것이 좋을까, 사진이 더 큰게 좋을까, 일러스트가 강조된 게 좋을까... 끝도 없는 고민이지만 작가가 인디자인에 배치한 구성이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많은 부분을 참고, 반영하게 되었다.
편집하는 이미지들이 마치 자연스러운 콜라쥬처럼 보이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이 아닌 수작업처럼 느껴져야 한다는 것이 과제였는데, 이미지 위에 올라간 드로잉을 겹치게 해서 보여주거나 색 조합을 바꾸는 등 자연스러운 컨셉으로 본문 끝까지 이어져나가야 했다. 본문보다 먼저 나오는 면지에 인쇄를 하여 여행을 다녀온 흔적을 마치 스캔하여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으로 시작했고, 본문 첫 페이지에는 여권에 찍히는 도장처럼 넣어주었다. 무엇 하나 버릴 수 없었기에 모든 것을 하나에 넣는 것을 선택한 것인데 하다보니 어렵지 않았다. 다 이쁘기 때문이다! 대신에 도비라 디자인에서 여러 가지 요소를 배제한 강한 컬러와 타이포, 사진으로 정리해주었다. 이 책 역시 처음에 잡은 컬러는 포르투갈을 떠올릴 수 있는 청색과 벽돌색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씩 하나씩 버리지 못하고 다 꾸역꾸역 넣는 바람에... 1교지에 500페이지가 나오고 말았다. 텍스트만 있는 것도 아니고 여러 가지 요소가 다 들어갔는데 500페이지가 나온다면 딱 떠오르는 것은 두가지. 제작비와 디자인 수정 시간이다. 콜라쥬는 참 재밌는 작업이었는데 실제로 이 만큼 인쇄가 된다면 검토해야할 이미지가 엄청나게 되고, 몇 번을 검토해야하며, 사고가 날 것이 두려워질 수 밖에 없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공들인 페이지들을 다시 하나씩 정리, 삭제해 나갔다. 그만큼 이미지에 푹 빠져 작업했던 것이다.
지금 현재 나와 있는 이 책의 표지는 리커버 버전이다. 사실 나는 기존의 표지를 더 좋아하는데 그냥 이 책이 담고 있는 첫인상이랑 가장 잘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가보지 않았던 곳이기에 막연히 상상하고 있던 느낌을 담았다고 해야 할까? 딱 보자마자 ‘가고 싶다!’라고 느꼈으면 했다. 하지만 이 책은 포르투갈의 풍경과 정보만을 담고 있지 않다. 작가의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요소가 표지에 담기는 것도 중요했다. 처음 표지의 과정을 보면 여행지로서의 포르투갈과 함께 신선한 공기가 가득한 것 같은 느낌의 색을 담은 사진과 포르투갈이 주는 색채, 타이포에 집중했다. 제목은 <리스본을 그리다>에서 <당신의 포르투갈은 어떤가요>로 결정되었고, Portugal 영문을 강조하며 마치 타이틀인 것처럼 상단에 박스로 넣었다. 줄이고 줄였지만 464p가 나왔기에...(나도 덩달아 제작비 걱정) 책등은 통통하여 포르투갈의 타일 패턴으로 씌우기에 적합했다. 작가의 작업 소스가 너무나 많았기에 오히려 고르는 것은 정말 쉬웠고, 처음에 담고자 했던 콜라쥬의 느낌을 그래도 표지에 담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후 리커버를 진행하게 되면서 시원한 사진 대신에 좀 더 차분하면서 작가의 일러스트와 작업이미지에 초점을 맞추는 시안으로 작업을 했는데, 작가가 그렸던 건물, 사람 그리고 많은 스캔이미지들을 띠지에 넣어 두 가지를 다 충족하는 디자인을 해보았다. 띠지를 벗기면 차분한 그레이 혹은 크라프트지 느낌의 컬러에 오렌지박이나 화이트박 등의 후가공으로 포인트를 주고 싶었다. 연한 회색 위에 영문을 좀 더 강조한 오렌지 타이틀, 띠지는 스캔이미지와 일러스트를 조합한 콜라쥬 스타일로 전체를 펼쳤을 때 띠지만으로도 여행지의 수집과 작가 스타일이 잘 나타날 수 있도록 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럴 일이 없겠지만, 디자인 작업을 할 때는 표지는 펼침면으로 보게 된다. 그래서 제작된 책을 받아도 앞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보게 되는데, 전체가 흘러가는 느낌을 하나로 보고 작업을 하는 습관이 책을 볼 때도 뒷면, 날개까지를 연결해서 보고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기존의 경쾌한 여행지 느낌보다는 좀 더 세련되고 어찌보면 함축적인 디자인이 된 것 같다. 만약에 두 개의 책이 내 앞에 놓여있다면 나는 어떤 책을 펼쳐보게 될까? 표지라는 것은 참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구나... 스스로 생각하게 된 작업이었다. 나의 포르투갈은 어떨까, 이런 여행 언젠가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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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에서 오랫동안 북디자인을 했다. 현재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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