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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꾸러기 표정 - 놀려먹을수록 더 강해지는 에고

이렇게 된 김에 퍼질러 앉아 같이 놀다 가자는 광대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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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희한하게 풀리기 시작한 건 2019년쯤부터였다. ‘깡’의 뮤직비디오 유튜브 댓글란 댓글작성 금지가 해제됐다는 걸 발견하면서, 사람들은 모닥불로 날아드는 부나방떼처럼 ‘깡’을 조롱하기 위해 뮤직비디오 댓글란으로 모여들었다.(2020. 05.25)


처음 발매되었던 2017년만 하더라도 비의 ‘깡(Gang)’을 진지하게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Hundred Dollar Bill’에 비유하고 자신의 컴백은 ‘왕의 귀환’이며 ‘수많은 영화제 관계자 날 못 잡아 안달이 나셨’는데 자신은 ‘꽤 많이 바빠’서 ‘귀찮아 죽겠’다는 자기애로 가득한 가사나, 몸을 엉거주춤하게 숙인 채 팔을 고릴라처럼 흔들어 대는 안무, 일렉트로-힙합으로 진행되다 말고 갑자기 깜빡이도 안 켜고 R&B로 핸들을 꺾어버리는 기괴한 곡 전개까지. ‘깡’은 자기애가 너무 과한 슈퍼스타가 그걸 과시하려다 시원하게 망해버린 트랙으로 기록됐다.

일이 희한하게 풀리기 시작한 건 2019년쯤부터였다. ‘깡’의 뮤직비디오 유튜브 댓글란 댓글작성 금지가 해제됐다는 걸 발견하면서, 사람들은 모닥불로 날아드는 부나방떼처럼 ‘깡’을 조롱하기 위해 뮤직비디오 댓글란으로 모여들었다. 비슷한 시기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의 대실패로 인해 비를 놀리면서 노는 데 재미를 붙인 사람들이 유입되었고, 그렇게 매일 노래의 기괴함을 조롱하던 사람들은 어느 순간 노래에 애착을 가지기에 이르렀다. 여전히 어느 구석을 좋아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노래지만, 자주 보고 듣다가 정이 들어버린 것이다.

“1일 1깡은 부족해요. 1일 3깡 정도는 해야지. 아침 먹고 깡, 점심 먹고 깡, 저녁 먹고 깡. 식후깡으로.” 사람들이 연신 자신을 놀려먹기 바쁜 걸 지켜보는 비의 반응은, 예상했던 것처럼 담담하다. 사실 비는 ‘깡’ 이전에도 사람들이 자신을 밈으로 소비하는 걸 원동력으로 뒤바꾼 전력이 있다. 그가 2014년에 발매했던 ‘LA SONG’은 후렴구의 ‘라-랄랄랄라-’ 부분이 아무리 들어도 태진아 같다는 놀림을 받았는데, 그 반응이 가시질 않는 걸 본 비는 아예 대선배 태진아를 모셔와 무대에 함께 세워 버림으로써 자신을 놀려먹는데 동참했다. 노래의 기괴함을 조롱하던 분위기는 자연스레 ‘대중과 함께 놀 줄 아는 광대’ 비에 대한 찬사로 뒤집어졌다. 마치 지금의 ‘깡’이 그렇듯이.

데뷔 20주년을 목전에 두고 있는 슈퍼스타지만, 사람들이 비를 바라보는 시선은 확실히 전성기 때와는 많이 다르다. ‘깡’과 ‘차에 타 봐’, <자전차왕 엄복동>을 거친 뒤 이제 비에게서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를 완전히 떼어내는 건 불가능해졌다. 비로서도 대중이 자신을 놀리는 걸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 볼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손가락질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은 있을 테니까. 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조롱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만큼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2014년에도 그랬던 것처럼, 비는 2020년에도 자신을 향한 조롱에 동참해 한바탕 같이 노는 광대가 되는 길을 택했다. 꾸러기 표정만큼은 포기 못 한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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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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