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미옥 시인 “내 안의 검열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
두 번째 시집 『힌트 없음』
전처럼 끙끙대며 멈칫하고, 생략하는 방식으로 쓰진 않았고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운동성을 가진 언어로 써보려고 했어요.(2020. 05.18)
2017년, 첫 시집 『온』을 내면서 ‘마음’이라는 단어가 시에 많이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했던 안미옥 시인은 3년 만에 낸 두 번째 시집 『힌트 없음』 에 ‘사람’이라는 단어가 많이 들어갔다는 것을 다시 발견했다. “사람들은 연결되어 있다는 걸 감각하면서 썼구나” 생각했다는 안미옥 시인은 이 연결이 “아름답고, 우아한 것이 아니라 처절하고, 상처 받는 일”이라고 말한다. 무섭지만 따뜻한 연결, 각자의 처절함을 겪어낸 후에야 가능한 연결에 대해 시인은 ‘구름이 커지고 빗소리가 거세지듯이 오해가 번져가는 것을 나는 그대로 둔다’(「훼방」), ‘너는 아무도 네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파이프가 시작되는 곳」) 라고 말하며 독자의 마음 속에 마찰음을 만들어낸다.
첫 시집을 출간하고 “공감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다”라는 독자의 반응에 무척 놀랐다는 그는 이토록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가 실은 모두가 쉽게 하지 못했던, 그러나 품고 있던 이야기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두 번째 시집에서도 힘을 냈다. 조금 더 편해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메리 올리버의 『긴 호흡』 에 실린 이 말, “책에는 편향과 열정이, 그리고 저자의 결함이 담긴다”는 말에 기대어.
“문장이 놀라운 게 머릿속으로 생각할 때와 실제로 시 안에 문장을 들여놓고 읽을 때가 달라요. 저도 독자로서 읽으면서 그 문장에 영향을 받게 돼요. 첫 시집도 그랬는데요. 시를 쓸 당시의 나와 읽은 후의 나는 차이가 있어요. 다른 시집을 읽을 때처럼 제 시집을 읽을 때도 그럴 수 있다는 게 놀랍죠. 물론 그 시에 반항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첫 시집 『온』이 많은 사랑을 받아서 두 번째 시집에 대해 부담이 있었을 것 같아요. 시집 준비하면서 어떤 고민을 가장 많이 했나요?
원래 시를 쓸 때도 부담을 많이 갖는 편이긴 해요. 이번 시집은 ‘핀 시리즈’로 기존 시집보다 볼륨이 크지 않아서 힘이 덜 들어갈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준비를 하다 보니 힘이 더 들어가는 거예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아서 좀 힘들었어요. 어떤 것을 싣고 어떤 것을 뺄 것인지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요. 『온』은 등단 이후부터 시집을 내기 직전까지 5-6년 발표한 시를 전부 모아 뺄 건 뺀 뒤 묶는 작업이었거든요. 『힌트 없음』 에는 총 23편이 실렸는데요. 첫 시집 낸 후 3년여 시간 동안 쓴 시 중에서 무엇을 빼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너무 혼란스러웠어요.(웃음)
독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겠죠. 첫 시집을 사랑했던 분들에게 어떤 시를 보여줄 것인가를 깊이 고민하는 시간이었을 것 같아요.
첫 시집 냈을 때, 시를 쓰면서 머뭇거리고 망설이며 쓴 시간들까지 시 안에 다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시간까지 읽힐 텐데 그것이 독자를 너무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싶은 거예요. 생략된 행간까지도 독자들은 읽잖아요. 그래서 이번 시집은 더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읽히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첫 시집과는 다른 시집, 다른 언어를 쓰는 시집을 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요. 첫 시집에 썼던 것을 또 쓰고 싶지는 않고, 좀 재미있는 시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죠. 사람이 확 변하는 건 아니라 잘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처럼 끙끙대며 멈칫하고, 생략하는 방식으로 쓰진 않았고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운동성을 가진 언어로 써보려고 했어요.
첫 시집의 시를 쓸 때 망설이고, 멈칫했던 이유는 뭐였어요?
검열이 되게 심했어요. ‘이런 것은 시에 쓰면 안 되지 않나?’ 같은 생각이 많았죠. 시 한 편 한 편의 밀도가 높아야 한다는 생각 말이에요. 어떤 문장을 쓴 뒤에 이게 너무 날것 같다, 더 조탁해야 할 것 같다는 압박이 있었는데요. 두 번째 시집을 준비하면서 그 생각을 덜어내려고 했어요. 쓰는 사람이 편하게 쓰니까 읽는 사람도 조금은 편안하게 읽은 게 아닐까 생각도 드는데요. 친구가 “이번 시집 보니까 말이 많아졌네?”라고 했어요.(웃음) 예전 같았으면 지웠을 문장을 그대로 두기도 했고요. 한 편의 시는 모르겠지만 한 권의 시집 안에는 들쑥날쑥한 리듬감이 있는 게 좋았어요. 책 내면서 많이 배웠죠. 생각도 많이 달라졌고요.
첫 번째 시집에서 ‘마음’을 많이 이야기 했잖아요. 이번 시집은 어떤가요? 시집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시인마다 다른데요. 저는 시집에 어떤 이야기를 담겠다는 생각으로 쓰는 편은 아니에요. 그냥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요. 나중에 봤을 때 공통된 것이 보이는 것 같아요. 쓸 때는 설명되지 않는 감각의 언어로 쓰고, 무언가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쓰진 않으니까요. 『온』도 ‘마음’이라는 단어가 많이 들어갔다는 것을 묶을 때 알게 됐어요. 『힌트 없음』 의 경우 역시 묶으면서 ‘사람’이라는 단어가 많이 들어간 걸 알았는데요. 이전에 내 안의 마음, 내 안의 상태, 감정적인 것에 더 집중했다면 이제는 ‘나’ 그만 생각하고 싶다, 벗어나고 싶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죠. ‘사람’이란 단어 안에는 복수가 포함되잖아요. 그렇듯 복수의 사람들 안에 담긴 마음으로 넘어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시집 뒤에 실린 에세이에서 “가지를 뻗어나가는 나무의 방식으로”(107쪽) 시를 쓰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그 맥락의 이야기 같아요.
비슷한 이야기예요. 최근 여러 사건들을 접하면서 사람들이 실은 다 연결되어 있고, 나 홀로 유아독존 할 수는 없는 거란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유아독존은 가능하지도 않고, 가능해서도 안 되죠. 두 번째 시집 묶인 걸 보면서 사람들은 연결되어 있다는 걸 감각하면서 썼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걸 어떤 방식으로 풀지는 써나가는 과정 같고요. 적어도 그 질문을 놓치지는 말아야겠다, 시적인 언어를 재미있게 운용하는 데에만 집중해 쓰지는 말아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번 시집을 읽는 내내 결코 가 닿지 못하는, 연결 불가능한 타인에 대한 감각을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타인뿐 아니라 저는 제 마음을 들여다볼 때도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완전하게 닿을 수 없는 불가능성이 전제되어 있는데요. 생각해보니까 제 시에는 ‘그렇구나’와 ‘그렇지만’이라는 두 가지 결이 공존하는 것 같아요. 그렇구나, 하면서 덤덤히 받아들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하면서 뒤를 생략하는 결이 섞여 있는데요. 그런 생각이 시에도 많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아주 오랫동안」이라는 시도 ‘믿었다’고 하면서 내가 믿어온 것들이 나오잖아요. 그것을 독자 분들이 ‘지금도 믿고 있다(그렇구나)’라고 읽으실지 ‘과거엔 믿었지만 지금은 못 믿어(그렇지만)’라고 읽으실지 궁금하긴 해요. 그런 식으로 믿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믿을 수 없는 상황들을 계속 마주하는 화자가 있고, 그 화자는 동시에 믿을 수 없는 것을 그냥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화자이기도 하죠.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믿었다 // 거울에 비친 얼굴이 내 얼굴이라는 것을 // 낮에는 낮 / 밤에는 밤의 속도로 시간이 자란다는 것을 // 쇠못으로 그림자를 떼어낼 수 있다는 것을 / 빛을 꺾어 땅속에 묻으면 / 뿌리를 내린 빛으로 땅 밑이 환해진다는 것을 // 천사가 있다는 것을 // 천사의 손금은 깊고 복잡하다는 것을 / 크게 웃는 사람의 침대는 슬픔으로 푹신하다는 것을
(「아주 오랫동안」 일부)
「아주 오랫동안」의 마지막에 ‘사람이 사람을 낫게 한다는 말을’이라는 말이 있어요. 저희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이 사람이 사람을 제일 병들게 한다(웃음)는 말이거든요. 사람만큼 사람을 아프게 하는 게 없다는 말을 자주 하시는데요. 그 말도 맞지만 계속 그 언어를 붙잡고 살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 제 안에 있는 거죠. 그런 생각들이 다 담겨 있는 것 같아요.
「힌트 없음」이 표제시가 된 이유가 궁금해요.
『온』도 그렇고, 뭘 말하고 싶은지를 독자들이 궁금해하게 하면서 자기만의 생각을 담을 수 있는 제목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번 시집 제목은 「힌트 없음」밖에 없구나, 이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간명하고, 덤덤한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제목을 하고 싶었고, 「힌트 없음」의 마지막 구절 ‘겪어야 할 일이면 겪어야 한다’도 제가 좋아해요.(웃음) 이 시집을 통틀어 얘기하고 싶은 한 구절을 꼽는다면 그 구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다행히 친구들이나 출판사에서도 괜찮다고 하셔서 결정하게 됐어요. 힌트 없음, 이라고 단호하게 얘기했지만 각자 자기만의 힌트를 찾아보게 되는 시집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아까 말씀하신 리듬감이 「힌트 없음」이라는 시 한 편에도 들어 있잖아요.
이 시는 『온』을 내고 얼마 안 돼서 쓴 시였어요. 그때 내 안의 검열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던 거예요. 원래 부제를 ‘익명으로 질문해서 익명으로 답하기’라고 했다 바꾼 건데요. 질의응답 같지만 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마음껏 질문하고 하고 싶은 말로 마음껏 답하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냥 질문하고 답하면서 하고 싶은 대로 해보자 생각하고 썼던 시였고요. 이 시를 쓰고 나서 조금 넘어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첫 번째 시 「조망」과 마지막 시 「미래의 시」가 묘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어요. ‘나는 이제 꺼내놓을 것들을 / 꺼내놓는다’와 ‘거기엔 뭐가 있는지 앞으로 뭐가 필요한지 / 너희에게 이야기해줄게’ 같은 구절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시집의 입구와 출구로 절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어요.
첫 시와 끝 시를 진짜 고민 많이 했어요. 「조망」은 『온』이 나오기 직전에 쓴 시예요. 쓰면서 이 시가 두 번째 시집의 첫 시가 되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미래의 시」를 첫 시로 할까 너무 고민이 되더라고요. 만약 그랬다면 시집이 완전히 달랐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미래의 시」가 제일 마지막에 쓴 시이기도 하고요. 지금의 고민이기도 해서 결국 마지막 시로 결정을 했죠.
시에 가장 많은 자극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고정되어 있진 않은데요. 시란 무엇일까, 시는 어때야 하는 걸까, 이번에는 어떤 방향으로 가고 싶은 걸까, 같이 시에 대한 생각이 가장 들끓을 때는 다른 시를 읽을 때예요. 또 시인 친구들과 시 이야기를 할 때죠. 나눈 이야기가 그대로 시가 되진 않지만 그 에너지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가끔은 그게 분노일 때도 있고요. ‘내 생각은 그렇지 않은데?’ 같은 생각 있잖아요. 왜 시를 저렇게 생각하지, 하면서 드는 자극들이 시를 쓰게 해요. 「해운대」라는 시는 몇 년 전에 부산국제영화제에 갔다가 쓴 건데요. 태풍이 왔었거든요. 태풍이 오는 바다를 보는데 신기하더라고요. 그때 본 장면, 당시의 심정 같은 걸 시로 썼죠. 그야말로 해운대에서 「해운대」를 쓴 거예요. 모든 일상이 시가 되진 않는데 어떤 일상은 이상하게 다가올 때가 있어요. 그게 시가 될 때가 많아요.
그런 시가 또 있나요?
「공 던지는 사람들」에 나오는 미로 이야기는 남편이 한 얘기예요. 그냥 “나 이런 것도 알아”(웃음) 하면서 미로를 빠져 나오려면 한쪽 벽에 손을 두고 계속 가면 된다고 말한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말한 사람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그 말이 너무 슬프더라고요. 얼마 뒤에 책상에 앉았는데 그 말이 떠오르면서 이 시를 쓰게 됐어요.
에세이에서 “돌리면 무언가 반드시 나온다는 것에 위안을 받던 시기”(96쪽), “내가 지나온 한 시절이 떠올라 드는 슬픔”(101쪽) 같은 문장을 쓰셨잖아요.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마련이기도 한 삶의 굴곡진 순간을 통과한 지금,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는 문제가 남겠죠. 지금의 시인은 과거의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요?
같은 상황도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하고, 무엇을 취사선택할 것인지에 따라 이후가 달라지잖아요. 저는 내가 전부라고 믿었던 것,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내가 만든 테두리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게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그걸 부수거나 넘어서야 다음이 있다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는데요. 지금 그때의 제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역시 「힌트 없음」의 마지막 구절, ‘겪어야 할 일이면 겪어야 한다’예요. 당시에도 그 생각으로 그 시간을 통과해온 것 같고요. 그 문장을 쓰고 나서 해방감을 느꼈어요. 삶이란 결국 무언가를 겪어나가는 것이고, 그건 꼭 필요한 겪음이라는 말은 지금의 저한테도 계속 하는 말이기도 해요. 바깥을 인식하지 않고 살다 보면 더 힘든 것 같거든요. 다만 바깥은 안을 들여다보는 힘이 있어야 볼 수 있는 것이고요. 안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 정확히 바라보는 것이 뭔지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내 안은 허허벌판인데 밖에 나간다고 바깥이 생기는 게 아니니까요.
에세이는 조금 다른 글이었는데요. 시만큼이나 좋더라고요.
“가장 불행했던 시기를 돌아보면 그때 내 생각의 중심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라는 문장을 쓰는데 너무 부끄러웠어요.(웃음) 내가 그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니까요. 사람들의 평가를 완전히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예전에는 그 생각이 진짜 심했던 것 같거든요. 그게 너무 두려웠어요. 나를 어떻게 볼까, 내 시를 어떻게 읽을까, 다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 때문이었죠. 중심이 정말이지 바깥에 있었던 거예요. 그런 상태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중심을 조금씩 옮기려고 노력했던 시간이 제게 있었고, 그걸 써내고 싶었던 건데요. 다만 그걸 써내는 것이 부끄럽고, 힘들었어요.
앞으로 산문 계획도 있나요?
알마 출판사의 ‘활자에 잠긴 시’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긴 한데요. 시와는 너무 달라서 고민이에요. 저는 문장을 쓰면서 비약을 하고 싶은데 산문은 그보다 사려 깊게 안내를 해야 하는 느낌이잖아요. 그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원래는 진작 나왔어야 하는데 자꾸 늦어지고 있어요. 게다가 저는 류이치 사카모토를 쓰고 있거든요. 워낙 방대한 작업을 하시고, 사회 운동에도 관심이 많으시고, 음악가로서 참여하려는 움직임도 많아서 정말 좋아하는 분이에요. 롤모델로 삼고 싶은 느낌인데요. 그래서 더 안 써지는 것 같기도 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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