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리차드, 로큰롤 소울을 알고 싶다면
5월 9일 87세의 나이로 타계
흑인임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흑인이라 주눅 들지 말라는 소울 정신에 가장 정확하게 어울리는 가수가 바로 리틀 리차드. 흑인은 소울이고 그 소울이 바로 리틀 리차드다.(2020. 05.15)
2020년 5월 9일, 87세로 영면에 들어간 리틀 리차드는 초기 로큰롤의 싱어송라이터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다. 척 베리, 버디 홀리, 팻츠 도미노, 에디 코크란, 엘비스 프레슬리, 진 빈센트, 제리 리 루이스 등과 함께 당시까지도 미완이었던 로큰롤이 자리 잡는데 큰 역할을 했고 이후에는 비틀즈, 프린스, 프레디 머큐리, 엘튼 존 등 위대한 후배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오른 노래는 단 한 곡도 없고 탑 텐에 오른 노래도 겨우 3곡뿐. 우리에게 유명한 'Tutti frutti'와 'Long tall Sally', 'Lucille'은 10위에 오르지도 못했는데 많은 음악 관계자들은 왜 리틀 리차드를 추앙할까?
1932년 미국 조지아 주에서 리차드 웨인 페니맨의 본명으로 태어난 리틀 리차드는 40년대 후반부터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1950년대 초반에 메이저 음반사 RCA와 계약했지만 1956년에 'Tutti frutti'와 'Long tall Sally'가 인기를 얻기 전까지는 지역구 스타였다. 거대 음반사에서 첫 음반을 내고 'Tutti frutti'로 자신의 시대를 열었지만 그 영광은 이 곡을 리메이크한 백인 스탠더드 가수 팻 분에게 돌아갔다. 팻 분은 'Tutti frutti'와 'Long tall Sally'를 커버해 리틀 리차드의 원곡보다 좋은 차트 성적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팻츠 도미노의 'Ain't that a shame'을 리메이크해서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에 올랐다.
그래서 리틀 리차드는 “로큰롤은 리듬 앤 블루스가 이름만 바뀐 것이다. 백인이 흑인의 로큰롤을 갈취해 그 영혼과 숨결을 팔아먹었다”는 주장을 폈고 사실 이 코멘트는 틀린 말이 아니다. 흑인 창법으로 노래한 엘비스 프레슬리, 팻츠 도미노와 자신의 노래를 부드럽게 이미지 세탁해 더 큰 사랑을 받은 팻 분이 그 증거. 이 상황에 화가 나고 환멸을 느낀 리틀 리차드는 1950년대 후반에 목사가 되겠다며 대중음악 계를 떠나 가스펠 음악에 전념했지만 곧바로 다시 팝계로 복귀하기도 했다.
리틀 리차드 노래에서 중심 악기는 피아노다. 고전음악 악기인 피아노는 점잖게 의자에 앉아서 연주하는 정적인 악기지만 리틀 리차드는 고리타분한 방법을 거부했다. 일어나 몸을 흔들며 연주하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는 오른발로 건반을 두들겼다. 고정관념을 탈피하려는 그의 무모해 보이는 이런 시도가 바로 로큰롤이다. 같은 시대에 활동한 백인 싱어 송라이터 제리 리 루이스, 음악 천재 엘튼 존, 1970년대를 수놓은 수많은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에서 건반을 친 키보디스트 그리고 기타 없는 록 밴드를 추구한 벤 폴즈 등은 리틀 리차드의 길을 따른 수혜자다.
하얗게 분칠한 얼굴에 짙은 아이라인으로 이미지를 강조한 그의 외모는 1980년대 프린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아바, 엘튼 존, 데이비드 보위, 키스, 티 렉스, 개리 글리터 같은 1970년대 초반에 전 세계에 붐을 이룬 글램록 아티스트들에게 동기부여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뿐만 아니라 정제되지 않은 거칠고 투박한 보컬은 흑인의 자긍심을 음악으로 표출한 소울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레이 찰스, 샘 쿡과 함께 소울 스타일을 확립했다고 평가받는 리틀 리차드의 가창에는 두려움이 없다. 직선적이며 호쾌하다. 흑인임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흑인이라 주눅 들지 말라는 소울 정신에 가장 정확하게 어울리는 가수가 바로 리틀 리차드. 흑인은 소울이고 그 소울이 바로 리틀 리차드다.
1980년대 후반에 그래미 어워즈에서 시상자로 등장한 리틀 리차드는 이렇게 얘기했다. “나는 오랫동안 로큰롤 음악을 해왔지만 단 한 번도 그래미상을 수상한 적이 없다.” 진심과 울분이 서린 이 농반진반의 말에 시상식장에 있는 모든 동료, 후배 뮤지션들은 기립박수로 그의 말에 동의했고 그를 응원했다. 1993년에 그래미 평생 공로상을 수상한 리틀 리차드가 대중음악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일 것이다. 고정관념을 타파한 '미치광이 로큰롤의 전설' 리틀 리차드의 안식을 기도한다.
- 대표곡 -
Tutti frutti
Long tall Sally
Rip it up
Lucille
Jenny Jenny
Good Golly, Miss Moly
Baby face
Slippin' and slidin'
Ready Teddy
The girl can't help it
관련태그: 리틀 리차드, 로큰롤, 흑인, 싱어 송라이터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