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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칼럼] 계약은 어려워
<월간 채널예스> 2020년 5월호
최근에는 자기 판권을 전문 매니지먼트 회사에 맡기는 작가들이 생겼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저작권상담센터나 예술인복지재단의 법률상담 카페에서는 창작자들에게 무료로 저작권 관련 상담을 해주는데, 이런 공공 서비스가 훨씬 더 확대되면 좋겠다.(2020. 05.06)
일러스트_ 이내
2011년부터 소설가로 활동하며 서명한 계약서들을 서류철 하나에 보관하고 있다. 출간 계약서가 있고, 영화사들과 맺은 판권 판매 계약서도 있다. 연재를 하거나 강연을 할 때, 방송에 출연할 때에도 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있다 보니 이게 꽤 두툼해졌다. 곧 두 번째 서류철을 준비해야 한다.
이 서류철만 대강 훑어 봐도 최근 10년 사이에 내가 몸담은 업계가 확 달라졌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서류철 뒤로 갈수록 계약서가 점점 두꺼워진다. 내용도 점점 어려워진다. 저술과 출판이 그만큼 더 차갑고 정교한 비즈니스가 되어갔다는 얘기다. 아직도 다른 업계에 비하면 한참 멀었는지 모르겠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원로 작가 중에는 출판사와 기본적인 서류도 제대로 작성하지 않는 분이 계셨다고 한다. 우리 사이에 무슨 계약서야, 하면서. 지금 생각하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데, 2010년대 중반에 그 얘기를 들을 때는 ‘출판사랑 작가가 오래 같이 일하면 그럴 수도 있구나’ 하는 정도 느낌으로 들었다. 어느 출판사 사무실에서 “뭐 이렇게 사인할 게 많나요?” 하고 투덜거리다 들은 얘기였다.
그렇게 머리 긁적이며 작성한 9년 치 출간 계약서들에서, 특히 날이 갈수록 더 어려워지면서 두툼해진 조항은 2차 저작권 관련 부분이다. 그것은 소설 집필이 점점 ‘원천 콘텐츠 창작 활동’으로 변해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2010년대 전반까지만 해도 2차 저작권에 대해 다들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어느 장편소설 출간계약서에는 2차 저작권에 대한 조항이 아예 없었다. 계약서 자체가 참 단출했다. 두 장짜리였다. 이 서류에는 ‘저작권’이라는 단어가 딱 한 번 등장한다. 계약에 명시돼 있지 않거나 해석에 이견이 있으면 저작권법과 민법과 사회통념에 맞게 처리하자고…….
2010년대 초에 맺은 다른 장편소설 계약서의 2차 저작권 관련 조항은 이랬다. ‘본서의 번역, 요약본, 시디롬 타이틀, 연극, 영화, 전자매체 등으로 변용 사용할 경우와 전집이나 선집에 수록, 출판할 경우 저작권자와 발행인은 사전에 협의하여야 한다. 그 밖의 2차적 이용에 관한 권한과 책임은 추후 협의한다.’
어느 영화사가 소설 판권을 사겠다고 연락을 해오면 그때 가서 나와 출판사가 수익을 어떻게 나눌지 논의하게 돼 있었다. 그건 그렇고 ‘시디롬 타이틀’이라니, 이게 대체 몇 년 만에 듣는 말이냐. 연극과 영화는 명시해놓고 TV 드라마는 빼먹은 이유는 뭐였을까.
어느 장편소설공모전 수상작은 주최 측이 5년 간 저작권 및 2차적 저작권을 보유하는 걸로 되어 있었다. 애초에 공고문에 그렇게 적혀 있었으니 내용에 불만은 없다. 그런데 ‘주최 측이 저작권을 보유한다’는 표현은 문제다. 주최 측도 저자 이름을 자기들이 마음대로 표기할 수 있다는 의미로 넣은 문구는 당연히 아닐 거다. 나는 저작권이 저작재산권과 저작인격권으로 구성되며, 후자는 양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그들도 몰랐던 것 같다.
내 경우 2010년대 중반에 맺은 출간계약서들부터 작가와 출판사가 2차 저작권 수입을 일정 비율로 나눈다는 조항이 들어갔다. 작가 몫을 높게 책정한 출판사는 자신들이 작가의 이익을 그만큼 우선시한다고 말했다. 비율을 다르게 설정한 출판사에서는 그들이 소설 판권을 더 열심히 세일즈하고, 영화사와 협상을 할 때 더 유리한 조건을 받아낸다고 설명했다. 다른 소설가들로부터 이런저런 조언을 듣기도 했는데 무슨 말이 옳은지는 알 수 없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출판사가 영상산업 관계자들 앞에서 신간 소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생긴 것도 2010년대 들어서다. 처음에는 출판사 직원들이 프레젠테이션을 했는데, 나중에는 몇몇 작가들이 직접 나서기도 했다. 나는 중국에서 중국 영화 관계자들을 상대로 무대에 서 봤다(엉망진창으로 했다).
최근에 서명한 계약서들에는 2010년대 초반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파생 상품이나 수익이 적혀 있다. 웹드라마, e-러닝, 캐릭터 상품, 작품 제목이나 부제를 상표 등록해서 거둘 수 있는 수입……. 팔아 본 적도 없고 팔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항목들이 있다. ‘그 외에 새로운 매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수익’이라는 항목까지 있다.
일러스트_ 이내
2차 저작물의 형태도 복잡해졌다. 메모리스틱에 담아 굿즈처럼 제공하는 오디오북과 스트리밍 서비스로 수시로 들을 수 있는 오디오북은 종이 만화와 웹툰처럼 완전히 다른 매체로 봐야 할까? 한 사람이 낭독해서 만든 음성 파일과 여러 성우가 라디오 드라마처럼 연기하고 음향 효과와 사운드트랙을 추가한 오디오 콘텐츠에 같은 요율을 적용해도 될까?
권리의 형태 역시 복잡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제는 영화화 계약서에서 속편을 만들 때는 원작자에게 얼마를 지급하고 리메이크를 제작할 때에는 수익 몇 퍼센트를 분배할지도 얘기한다. 출판사는 영화사가 각본집이나 영상 화보집을 만들 때 다른 출판사보다 먼저 협상할 수 있는 권리를 챙긴다.
한 걸음 물러나서 보면 이 모든 일이 현대의 삶에 대한 은유 같다. 주변 환경이 정신없이 변하고, 따라잡지 않으면 손해를 볼 거라고, 아니 도태되어 멸종된다고 하니까, 어, 어, 하면서 따라간다. ‘이게 바람직한 방향인가’ 겨우 묻게 됐을 때 나는 이미 그 변화의 일부다. 발전은 대개 나의 통제력 상실을 의미한다. 의학이 발달할수록 자기 건강 상태를 확신할 수 없게 되듯이, 내 권리라고 하는데 나는 거의 아는 게 없다. 결국에는,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협상 경험이 많고 변호사와 더 가까운 이들에게 유리해지는 구조가 되어간다. 당연히 작가 개인보다 출판사가, 출판사보다 콘텐츠 대기업이 그런 자원이 더 풍부하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단행본 출판사 상위 25곳의 연간 매출액을 다 합쳐야 CJ E&M 미디어부문의 한 분기 매출액과 겨우 비슷해진다. 출판사들 안에서도 ‘지식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해지는 것 같다. 모르는 곳은 너무 모른다.
최근에는 자기 판권을 전문 매니지먼트 회사에 맡기는 작가들이 생겼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저작권상담센터나 예술인복지재단의 법률상담 카페에서는 창작자들에게 무료로 저작권 관련 상담을 해주는데, 이런 공공 서비스가 훨씬 더 확대되면 좋겠다. “우리 사이에 무슨 계약서야” 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았다. 작가이건 아니건.
기자 출신 소설가. 『한국이 싫어서』,『산 자들』, 『책 한번 써봅시다』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