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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달라, 그리고 너를 사랑해

다른 존재를 사랑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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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공평하게 친하지만 나눌 수 있는 것은 같지 않다. 제각각 개인들은 제각각 나눌 수 있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매번 아프게 배운다. (2020.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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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플래쉬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밀도와 관계 없이, 그저 상대와 내가 함께 했던 물리적 시간의 총량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어떤 이와는 시간을 더 많이 보내게 되면서 멀어졌다. 서로 좋아했지만 일상을 나눌 만큼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 시절 우린 몰랐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하니 별똥별을 아주 오래 손에 잡고 있고 싶었다. 손에 잡힌 별똥별은 더 이상 별똥별이 아니라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함께 사는 일이 무섭다. 고양이가 집에 온 주에 나는 매 시간마다 잠에서 깼다. 고양이가 내는 모든 소리가 공격이었다. 자다 깨는 일을 반복하며 너와 같이 사는 것은 무리야 하고 말을 걸었다. 너를 사랑하지만 같이 살 수는 없겠어. 그 일주일이 지나고 나는 익숙해졌다. 고양이도 익숙해졌다. 고양이는 내가 불을 끄면 토독토독 발톱 소리를 내며 방 안을 오가다가 자기 자리를 찾아 눕는다. 아마 눕는 것 같다. 때로 내 발치에 눕는다. 종아리에 기대 앉는다. 너와 같이 사는 일이 너무 힘들어. 그렇지만 이 기분 좋은 온기는 같이 살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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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넘게 보아온 고양이지만 다양한 울음도, 버릇도 모두 처음이다. 나는 고양이를 돌보는 일에 지치고 많은 경우 죄책감을 느끼며 잠자리에 든다. 너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수가 없어.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야. 죄책감을 느낄 정도면 고양이를 빨리 보내는 게 좋겠는데요. 전문가는 내게 이별을 조언한다. 그렇지만 어느 하루가 모든 것을 상쇄한다. 나를 보는 고양이의 작은 얼굴, 내 앞에 들이닥친 타자의 얼굴.

 

 

타인을 위해, 타인에 의해 내가 책임적 존재가 된다는 것은 곧 내가 응답적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책임짐은 응답함이고 응답함은 부름이나 요청에 반응함이다.


- 강영안, 『타인의 얼굴』

 

 

매일 새로운 소식이 업데이트되는 친구들의 톡방이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웃고 공감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아 따로 연락하는 친구들이 있다. 다른 친구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단 둘이어야 가능한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공평하게 친하지만(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나눌 수 있는 것은 같지 않다. 공평한데 같지 않다는 것을 종종 믿을 수 없다.

 

제각각 개인들은 제각각 나눌 수 있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매번 아프게 배운다. 나의 신체적 고통에 누구보다 민감했던 사람들이 나의 정신적 고통을 가중시킬 때. 그들에게 나의 마음은 이해 범위 밖에 있다. 하지만 탓할 수 없다. 나는 부분적으로 이해 받고 부분적으로 이해한다. 파편은 숙명적이다.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받길 원하지만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칫솔질 한 번에 뽀뽀 한 번. 고양이는 뽀뽀가 무엇인지 알까, 그것이 사람에겐 사랑의 행위라는 것을. 호의가 호의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험을 한다. 어떤 호의는 내게 공포였다. 상대는 나를 영영 알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 역시도 같은 실수를 할 것이 분명했다.

 

비켜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는 연습을 한다. 상대를 배려하지만 맞춰주지는 않는 연습이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이해했지만 나는 할 수 없어요. 그럼 이만. 우리가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만날 수 없다면 어쩔 수 없군요. 조심히 돌아가세요. 먼저 작별을 고했으나 백일몽 속에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일상이 여행처럼 색달랐던, 우리가 나눈 시간은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었든 시간은 죄가 없다. 그 안의 나는 행복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나 역시 나쁘지 않다. 고양이와 짧은 일상이 내 안에 쌓여 간다. 언젠가 이 기억이, 지금의 다른 기억들이 그러하듯이, 나를 먹여 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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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아버지는 그 시절 노인이 대부분 그러하듯 나를 개별적 인격으로 인지하거나 봐준 적이 없다. 할아버지는 가끔 가족 중에서 내가 공부를 제일 잘한다고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곤 했는데, 그때도 엄마와 아빠의 기쁨이 우선이었다. 사실 나도 외할아버지가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별로 관심 없다. 다만 종종 생각한다. 터무니없이 어린 내 앞에서, 나이 든 육체가 자연스럽게 달리고 구부러지던 풍경이나, 대화라도 할라치면 숨이 턱 막히는 우리 사이를 사뿐하고 초연하게 오가던 셔틀콕, 배드민턴 이야기를 하느라 대화가 끊이지 않던 돌아오는 엘리베이터 안. 이것이 내가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방식이다. 고구마 줄기처럼 주렁주렁한 다른 손자 손녀들 중 누구와도 같지 않은.


- 이진송,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타인의 얼굴 강영안 저 | 문학과지성사
서양의 자아 중심적 철학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윤리학을 제일철학으로 내세우는 독특한 타자성의 철학으로 현대 철학사에 큰 자취를 남긴 레비나스의 사상의 깊이를 가늠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귀한 안내서이자 해설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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