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90년대생 대리랑 웃으면서 일하고 싶다고요?”
『80년생 김 팀장과 90년생 이 대리가 웃으며 일하는 법』
1990년대생의 특징은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건전한 이기주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80년대생은 이런 90년대생의 특징을 가장 잘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세대일지도 모릅니다. (2020. 03. 27)
누구의 부하도 되지 않으려는 90년생 이 대리. 리더로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80년생 김 팀장. 80년생 김 팀장은 괴롭다. 위로부터의 실적 압박은 거세지기만 하고, 팀원들과 소통해서 대책을 강구하려고 해도 ‘왜 그래야 하죠?’라고 따져 묻는 90년생 이 대리를 설득하기조차 버겁다. 팀원들이 정시 퇴근한 사무실에 홀로 남아서 상념에 젖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90년생 이 대리도 힘들다. 요즘 트렌드에 맞는 상품 기획과 홍보 전략을 올려도 “지시한 일은 잘 정리하고 있죠?”라는 팀장의 말에 기운이 빠지고, 반복되는 보고용 페이퍼 워크와 권한은 없고 책임질 것만 늘어나는 회사 분위기에 한계를 느낀다. 낀 세대 김 팀장은 이 대리와 소통이 되지 않아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밀레니얼 세대인 이 대리는 비효율적인 업무체계와 구시대적인 조직 문화에 숨이 막힌다. 두 세대 모두 각자의 닫힌 문 앞에서 힘겨워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
『80년생 김 팀장과 90년생 이 대리가 웃으며 일하는 법』 에서는 김 팀장이 리더로 인정받으며 이 대리와 함께 제대로 일하기 위한 네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서로의 ‘관계 적정거리’를 파악해야 하고, 적합한 ‘소통도구와 방식’을 택해야 하며, 일방적으로 ‘통보하지 말고 논의’해야 하며, 교감할 수 있는 ‘상대방의 언어’로 말하라고 제안하고 있다.
서로의 적정거리를 찾는 관계의 과학
『모든 관계는 말투에서 시작된다』 를 비롯하여 『저도 눈치 없는 사람과 대화는 어렵습니다만』 등의 관계에 대한 책을 많이 집필하셨는데요. 이번에는 80년대생 관리자와 90년대생 직원의 관계에 대해 책을 쓰셨습니다. 특별한 집필 동기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한 제조업체의 사장님과 90년대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분은 소통을 위해 회사의 90년대생들 몇 명을 주기적으로 불러서 이야기를 듣는다고 했습니다. 90년대생들을 선생님처럼 생각하면서 조직 내 젊은 세대의 특징을 파악하려고 노력한다고 합니다. 그분이 저에게 퀴즈를 내더군요. “지금부터 제가 10개의 단어를 말하겠습니다. 이 중에서 다섯 개 이상 의미를 정확히 말하지 못하면 꼰대입니다.” 10개의 단어는 대략 이렇게 기억됩니다. ‘싫존주의, JMT, TMI, 자만추, 뽀시래기, 쌉가능, 삼귀다, 애빼시, 제곧내, 법블레스유’ 참고로 저는 4개밖에 맞추지 못했습니다. 그럼 저는 꼰대일까요. 아닙니다.
단어 몇 개 안다고 90년대생과 웃으면서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90년대생을 우습게 여기는 것입니다. 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혹시 젊은 친구들과 일할 때 몇 개의 키워드로 90년대생을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소름이 끼쳤습니다.
아마 그때였을 겁니다. 넓게는 20~30대의 젊은 그들, 좁게는 90년대생들에 대해 내가 모르는 것을 확인해보고 싶다고. 모르는 것을 찾아보고, 나의 선입견이나 편견을 반성하고 싶다고. 그러는 과정에서 세상을 향해 함께 이야기할 만한 것들이 있다면 함께 나눠보고 싶다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고 고백컨대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눠볼 것들이 있었기에 이렇게 책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80년대생과 90년대생의 10년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80년대생과 90년대생을 포함하여 밀레니얼 세대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요. 사례 모집을 위해 인터뷰도 많이 진행하신 것으로 아는데요. 작가님께서는 회사라는 공간에서 일하는 80년대생 김 팀장과 90년대생 이 대리의 세대 차이의 정도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세대 차이로 인한 불만과 어려움? 글쎄요. 언제 없었던 적이 있나요. 하지만 90년대생과의 화해는 이전의 그 어떤 세대 차이로 인한 불화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보다 쉽지 않아 보입니다. 생활양식이 바뀌어도 너무 순식간에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향한 소통의 수단을 배우는 것을 80년대생 이전 세대는 그래도 사람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90년대생은 개인화된 무기, 즉 핸드폰에서 시작했습니다. 학창시절을 지나 사회로 나오는 그 순간부터 핸드폰이라는 개인화에 최적화된 도구를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90년대생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다르기 때문에 배척해야 한다? 절대 아닙니다. 그들은 불화의 대상이 아니라 배움의 대상일 뿐입니다. 90년대생을 ‘버릇없고 이해할 수 없는 요즘 애들’이라며 우습게 여기는 조직 문화로 가득한 기업의 미래가 밝을까요. 70년대생, 80년대생 선배들이 90년대생을 ‘요즘 애들’, ‘요즘 것들’이라고 말하는 순간 조직 내 소통은 불가합니다. ‘망치를 들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먼저 살아봤다!’고, ‘먼저 겪어봤다!’고 목소리를 키우는 이전 세대의 표현법, 유치합니다. ‘그때가 옳았고 지금은 틀리다’는 건방짐으로 90년대생과 소통하려는 건 무모합니다. 그런 방식으로 그들을 대하려다가는 90년대생으로부터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이나 듣지 않으면 다행일 겁니다. 그들을 가르쳐야 하는 대상이 아닌 배움의 대상으로 바라볼 줄 안다면 세대 차이를 극복해보겠다고 머리를 싸매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만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과제 아닐까 합니다.
‘관계의 안전거리를 넘어서면 바로 저격의 사정거리가 된다’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90년생들이 생각하는 일로 만난 사이의 적정거리 범위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여기까지는 괜찮고, 여길 넘어서면 바로 저격’당하는 그 경계선의 실체와 서로간의 적정거리가 궁금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 SD)’가 우리 사회 전반의 기본 매너로 권장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90년대생은 이미 누군가와의 거리두기에 익숙합니다. 그들은 ‘너와 나의 거리’를 잘 잴 줄 알며 그만큼 ‘너와 나의 영역’을 존중합니다. 자신의 영역이 침해된다면? 그들에겐 불편함을 넘어 모욕입니다.
직장생활 3년 차에 접어든 90년대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게 되었을 때의 일화입니다. 쉬는 시간에 90년대생 한 명이 찾아와선 이렇게 투덜대더군요. “팀장님이 슬쩍 저의 자리 뒤로 와서 노트북을 훔쳐보는 게 정말 싫습니다. 왜 엿보는 건가요? 왜 감시하는 거죠? 제 소원이 있다면 구성원들 모두 각각의 방이 있는 회사를 찾아서 이직하는 겁니다. 대한민국에 그런 곳이 있을까요?”
직속 상사인 팀장이 이 말을 들었다면 아마 ‘팀장인 내가 팀원이 뭐하나 보는 게 뭐가 그리 문제라고?’라면서 어이없어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90년대생과 쓸데없는 마찰을 피하고 싶다면 사회적 거리두기, 아니 적절한 거리두기를 잘하고 있는지 스스로 늘 체크하기 바랍니다. 괜한 접근은 ‘감시’로 생각됩니다. 90년대생들은 ‘혼자가 제맛’인 것에 익숙합니다. ‘1인 체제’가 편합니다. 자신의 영역을 누군가가 함부로 침범한다? 견뎌내기 어려운 상황이 되는 게 당연합니다.
“윗사람이라고 제 노트북을 함부로 엿봐도 되는 겁니까!”라는 핀잔을 듣기 싫다면 90년대생의 생활공간을 철저하게 인정해주기 바랍니다. 물리적 공간, 감정적 거리 모두 늘 90년대생과 관계를 맺고자 할 때, 말과 행동을 할 때 주의하고 또 주의해야 할 일입니다. “뭘 그런 걸 갖고 그래. 예민하게. 내 주변 사람은 안 그런데?”라며 말하는 사람이 당신이라면 90년대생과 다채로운 관계를 맺는 건 불가능할 테니 말입니다.
‘칼퇴’, ‘부하직원’, ‘지시’, ‘명령’ 등의 단어를 예시하면서, 90년생은 단어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하셨는데요. 왜 그런 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하시나요?
90년대생들은 ‘칼퇴’라는 말에 황당함을 느낍니다. ‘퇴근 시간이 되어 퇴근하는 것을 왜 팀장님은 ‘칼퇴’라고 하는 걸까?’싶은거죠. 주어진 시간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건 ‘칼퇴’가 아닙니다. 자신이 할 일을 했으면 그냥 각자 알아서 사무실을 나서면 됩니다. 윗사람이 ‘지금 퇴근하라!’고 말할 때까지 눈치나 보면서 남아 있어야 하는 이전의 근무환경, 그게 잘못된 겁니다. 한때 큰 인기를 누렸던 웹툰에서 본 내용입니다. 선배가 후배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퇴근할 땐 뒤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해.” 그땐 그 선배의 말이 옳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그런 말을 하면 꼰대입니다. 이렇게 말해야죠. “퇴근할 땐 뒤를 돌아보면 안 돼.”
‘피할 수 없으면 즐긴다’가 아니라 ‘피할 수 없으면 나간다’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90년대생들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대졸 신입 사원의 27%가 입사 첫해에 퇴사한다는 통계가 있는데 그 이유를 저는 연봉이나 복리후생보다 ‘칼퇴’라는 단어 ‘따위’가 아직도 남아 있는 기업의 조직문화 때문이라고 봅니다. 다행히도 대한민국의 많은 기업이 90년대생을 조직으로 포용하기 위해 유연한 근무 환경 조성, 자유로운 복장 규정, 개방형 사무 공간 등을 제시하며 다각도로 노력 중입니다. 기업이 생존을 위해 기술 개발, 새로운 시장 개척 등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것,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 이상으로 시야를 기업 내부로 돌려 소통 문화를 재정비하여 내실을 다지는 것도 경쟁력을 높이는 것에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여러 세대가 함께 일하고 있는 직장 내에서 세대 간 협력적인 조직 문화를 세우기 위해서라도 상호 공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영역을 하나씩 넓혀 가면 어떨까요.
초고를 주변에 보여주셨을 때, 80년생들은 “90년생이 자신에게 따지는 느낌이 든다”고 하고, 90년생들은 “우리의 화법이 더 드러나면 좋겠다”는 피드백이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글을 쓰시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에서 두 세대가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을 많이 살피셨을 텐데요. 두 세대가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 상태는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아쉽게도 여전히 상대방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보는 경우가 여전히 존재함을 느꼈습니다. 초고를 주변에 보여드리고 피드백을 받았을 때 90년대생 한 분은 “우리의 화법이 조금 더 드러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의견을 주셨고, 80년대생 한 분은 “90년대생이 우리에게 약간 따지는 느낌이 든다”는 말씀을 해주셨죠. 입장이라는 것이 있고, 생각이라는 것이 다르고, 사람마다 또 다르니 모든 분의 말씀이 다 새겨들을 말들이었습니다.
90년대생을 생각하면서 책을 썼지만 이쯤에서 80년대생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지금 직장에서 가장 피곤한 사람들은 80년대생입니다. 그들은 어쩌면 현재의 기업에서 소통에 관한 한 최대의 피해자입니다. 기업에서 중간관리자 혹은 선임 사원으로 근무하면서 위로, 그리고 아래로 모두 전혀 다른 세대와 소통해야 합니다. ‘70년대생의 고집스러움’, ‘90년대생의 알 수 없음’은 모두 80년대생에겐 속된 말로 ‘넘사벽’입니다. 선배인 70년대생이야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서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체념하면 되지만, 90년대생은 직접적으로 일과 연관되어 있기에 협력의 강도가 셀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90년대생이 어디 호락호락한가요.
80년대생은 90년대생이 자신을 선배로서, 아니 동료로서 더 나은 직장을 위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파트너라고 여겨주길 원합니다. 하지만 현실 속 조직에서의 대화는 삐딱합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는 거야”라는 80년대생 선배의 말에 “죄송한데 그거 안 살래요”라고 대꾸하는 90년대생 후배가 존재한다고 하니 얼마나 피곤할까요. 위아래로 치이고 볶이느라 힘들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80년대생들이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90년대생을 응원합니다. 80년대생을 격려합니다. 이전 세대로서 그들이 좀 더 아름답게 하지만 치열하게 서로의 의견을 거침없이 말하고, 거짓됨 없이 행동하며 국가를, 사회를, 그리고 일터를 혁신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응원하고 격려하면서 세상이 좀 더 좋아지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누구의 부하도 되지 않으려는 90년생과 누구도 부하로 두지 않으려는 80년생이 되길 원한다는 말씀하셨는데요. 부하가 되길 원하지 않는 90년생은 이해가 되는데, 부하로 두지 않으려는 80년생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관리자 중에서 부하 없이 혼자 일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말씀의 취지를 정확히 여쭙고 싶습니다.
언젠가 한 철학자의 책을 읽다가 멋진 문장을 발견했습니다. 갑자기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공통된 특징이 있는데 그건 ‘누구의 부하도 되지 않았고, 누구도 부하로 두지 않았다’는 것이랍니다. 저를 돌아봅니다. 과연 나는 누구의 부하도 되지 않기를 원했는가, 또 그 누구도 부하로 두지 않으려 했는가. 아닌 것 같습니다. 누군가 지시하고 통제하면 그것에 복종하기를 의심하지 않았고, 반대로 누군가를 부하로 두지 못해서 안달이 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세대 차이를 건전하게 극복하는 첫 번째 방법은 ‘누구의 부하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 90년대생과 ‘누구도 부하로 두지 않으려는’ 80년대생의 노력에서 시작되는 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조직이 성장하려면 새로움을 추구해야 합니다. 누군가의 부하로 살길 원하는 90년대생, 누구나 부하로 두려는 80년대생으로 가득한 조직의 발전은 불가합니다. 90년대생이 자신의 에너지를 새로운 역량으로 발휘하도록 하려면, 80년대생이 90년대생의 에너지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다면 부하로 살기를 원하는 구성원, 부하를 부리기를 원하는 구성원의 마인드는 이제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그때서야 80년대생은 90년대생과 웃으면서 일할 수 있을 것이고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겁니다.
독자에게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못다 한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책이 90년대생과 웃으며 일하는 모든 것을 담아내지 못한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90년대생과 말하고 관계를 맺을 때 뭔가 잘 맞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괜히 인상부터 쓰기 전에 이 책 한두 곳이라도 뒤적여 보는 건 어떨까요. 하나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90년대생을 오직 ‘소통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아 달라는 겁니다. 그들이 무슨 걸림돌인가요. 90년대생을 그 자체로 ‘소통의 목적’으로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90년대생을 우리의 세상을 더 훌륭하게 만들어주는 화두를 던져주는 세대라고 보면서 적극적으로 그들을 긍정해야 합니다. 기존 세대 그 자신들만이 알고 있던 세상보다 더 많은 세상을 알아나가는 것에 90년대생의 특징이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어렵죠. 당연합니다. 하지만 배워야 합니다. 아쉽게도 과거의 세대는 타인과의 소통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아니 소통이 아닌 것을 소통이라고 보면서 살아온 안타까운 세대입니다. 괜찮습니다. 지금이라도 배우면 됩니다. 선생님이 계시니까요. 90년대생이 바로 그 선생님 역할을 할 겁니다. 그러니 90년대생을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 느낄 때 오히려 이렇게 속으로 말씀해보십시오. ‘새로운 문화를 알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80년생 김 팀장과 90년생 이 대리가 웃으며 일하는 법
김범준 저/박진수 감수 | 한빛비즈
김 팀장이 리더로 인정받으며 이 대리와 함께 제대로 일하기 위한 네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서로의 ‘관계 적정거리’를 파악해야 하고, 적합한 ‘소통도구와 방식’을 택해야 하며, 일방적으로 ‘통보하지 말고 논의’해야 하며, 교감할 수 있는 ‘상대방의 언어’로 말하라고 제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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