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퇴사 후 창업했으나 사장이 10명 (G. 이현우 ‘십분의일’ 대표)
책읽아웃 - 김하나의 측면돌파 (127회) 『십분의 일을 냅니다』
제 마음 속에서는 일종의 베팅을 했던 것 같아요. ‘이제 나이 서른이 됐는데, 하나를 잡고 진득하게 해봐야 될 것 같은데, 그러면 뭘 하는 게 좋을까’ 했을 때 이 사람들이랑 같이 해보자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2020. 03. 19)
어떻게 직장 생활을 하다가 창업을 할 생각을 했는지 묻는 분들이 더러 있다. 사업이라기보단 재미있고 새로운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여럿이서 하니까 망해도 완전히 망가지진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고, 설령 망하더라도 인생에 무언가 남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것들이 남겨지고 있다.
이현우 저자의 책 『십분의 일을 냅니다』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터뷰 - 이현우 대표 편>
오늘 모신 분은 을지로의 핫플레이스이자 여덟 명의 사장이 공동 운영하는 특별한 와인 바 ‘십분의일’의 대표님입니다. 드라마 PD를 그만둔 후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기까지, 그동안의 이야기를 담아 책 『십분의 일을 냅니다』 를 쓰셨어요. 이현우 대표님 모셨습니다.
김하나 : 이 책에는 와인바 ‘십분의일’이 어떻게 탄생을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 이전에 이현우 대표님의 간략한 퇴사의 역사도 있는데요. 드라마 PD이셨고 CJ ENM에 계셨어요. PD가 되려고 스터디 그룹도 하셨고 그게 ‘십분의일’을 같이 하게 된 동료들과의 모태가 되기도 했는데, 그러면 PD가 되려고 오랫동안 노력을 하신 거겠네요.
이현우 : 네, 엄청 열심히 했어요.
김하나 : 어느 정도 준비를 하셨나요?
이현우 : 보통 언론고시라고 해서,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서 준비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렇게 본격적으로 준비한 건 2년 반 정도였던 것 같아요.
김하나 : 그렇게 열심히 하셔서 대기업 PD가 됐고 그렇게 열망하던 자리에 가게 됐는데, 1년 정도 지나자 마음이 많이 달라져 있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이현우 : 제가 생각했던 그림 같은 게 있었는데요.
김하나 : 그 그림은 어떤 거였어요? 작가나 배우나 많은 사람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 넘치는 PD(웃음)?
이현우 : 그렇죠(웃음). 매체에서 볼 수 있는 분들처럼 굉장히 멋있게 배우들과 술도 한 잔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일을 하는.
김하나 : 그리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드라마를 끌고 가는 힘 같은 게 있고, 그런 걸 상상하셨지만 현실에서 막내 PD의 삶은 정말 팍팍하기 그지없는 것이었죠.
이현우 : 네.
김하나 : 그런데 그런 시기들을 견디면 나중에는 원하던 그림대로 갈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 길목이 많이 힘들고 달랐겠군요.
이현우 : 그 길목이 너무 거칠었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 않은 게 너무 많았고. 사내에서 다른 PD들과 어울리는 건 너무 재밌었어요. 그런데 너무 맨날 그러고 있으니까(웃음), 사람이 집에 가서 혼자만의 시간도 갖고 부모님이랑 대화도 하고 친구 생일도 챙기고 그래야 되는데, 주구장창 그러고 있으니까 제가 생각했던 게 이 정도였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하나 : 정말 살인적이더라고요. 새벽 6시에 출근했는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촬영을 하고...
이현우 : 네, 25시간 노동.
김하나 : 말도 안 되는 스케줄이 계속 이어지고요. 그런데 다들 그렇게 버텨온 거예요?
이현우 : 그랬나 봐요.
김하나 : 그렇게 열심히 해서 PD가 되셨는데 퇴사를 하는 건 쉽지 않잖아요. 하지만 이현우 대표님의 경우에는 그런 날이 너무 정확하게 있더라고요. 그리고 그 날도 어찌나 드라마틱하던지. 일단 문제의 그날 배탈이 나셨었고, 갑자기 또 산에 가서 벌초를 해야 될 일이 있었어요. 왜 그랬던 거죠?
이현우 : 그 날은 성묘를 하는 씬을 촬영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현장에 풀이 너무 많았던 거예요. 그래서 저보다 높은 분께서 스태프들을 데리고 가서 길을 조금 다듬어 놓으라고 시켰는데, 풀을 베러 갔다가 벌에 쏘이는 일이 있었어요.
김하나 : 그래서 조퇴를 하셨는데 저녁 늦은 시간이었고, 그 이후에 어떤 사건이 있었죠?
이현우 : 그날도 스케줄표 상으로 새벽에 끝나는 거였는데 감사하게도 선배가 일찍 들어가라고 해서 9시 정도에, 그 정도면 거의 조기 퇴근이거든요. 그날 찍었던 외장 하드만 편집실에 전달하고 가라고 하셔서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고 돌아가던 길이었는데, 바로 잠에 들었어요. 그런데 잠들기 직전에 했던 생각이, 너무 힘드니까 ‘이렇게 일할 거면 병원에 한 달쯤 누워서 푹 쉬었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김하나 : 잠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잠이 든 거였죠. 하지만 생각도 못했던 반전이 일어나죠.
이현우 : 네. 그 생각을 하고 잠들었는데, 눈을 떴더니 교통사고가 났더라고요.
김하나 : 3중 추돌 사고로 결국 병원에 입원을 하시게 됐죠. 그때 많은 생각을 하셨겠네요. ‘이게 계시일까?’ 하는 생각도 들 테고.
이현우 : 원래 그런 생각을 많이 하기는 해요. 종교가 있지는 않은데 혼자 상상을 하거든요. 그런데 여러 가지로 절묘했던 게 혼자 되뇌다가 잠들었는데 사고가 났고, 그렇다고 너무 심한 사고는 아니어서 생각을 하고 움직일 수 있었고, 그 사고로 다친 사람이 저밖에 없었어요. 그런 여러 가지가 맞아떨어지니까 그 상황이 신기하기도 하고 그렇더라고요.
김하나 : 그러면 퇴원해서 다시 드라마 촬영에 참여하셨다가 회사를 그만두신 건가요?
이현우 : 맞아요. 퇴원한 직후에는 현장을 나가지는 않았고 회사에서 내부 업무를 보고 있었는데, 저는 그 정도 사고면 회사에서 3~4개월 쉬게 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한 달 채 안 돼서 또 다른 팀에 보내더라고요. 그때 이미 마음의 결정을 거의 내리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또 다른 팀으로 보내니까 확실하게 더 마음을 굳힐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김하나 : 어느 날 스타벅스에 가서 ‘이 낮에 여기 있는 사람들은 뭘 하는 사람들일까’ 하다가, 거기 앉아 있는 사람들 사진을 찍어서 예전 스터디 그룹에 보냈는데, 그게 ‘아로파’라고 하는 정체불명의 모임에 휘말려드는 단초가 됩니다. ‘아로파’가 뭡니까?
이현우 : 아로파는 굉장히 긴 사연이 있는 이름인데요. <최후의 제국>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는데, 그 다큐멘터리는 자본주의의 팍팍한 현실을 넘어서 대안 경제 모델들을 취재한 다큐멘터리예요. 그 중에 제일 많이 나왔던 게, 남태평양의 아누타 섬이라는 곳에서 살아가는 부족들이 있어요. 그 부족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인구가 많이 줄었는데 공생의 시스템을 마련한 거죠.
김하나 :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기술이라든가 같이 지켜야 할 노하우 같은 것일까요?
이현우 : 맞아요. 생선을 잡으면 공평하게 나눈다든지.
김하나 : 그런데 그 방식이, 생선을 잡은 사람이니까 많이 가져가고 그런 게 아닌가 봐요.
이현우 : 그렇죠.
김하나 : 내가 여기에 노력과 시간을 얼마나 투여했든 아니면 내가 권력을 얼마나 가지고 있든지 간에 아주 공평하게 분배하는 기술이었군요.
이현우 : 네. 거기는 작은 사회이다 보니까 ‘빅맨’이라는 촌장 같은 사람이 있어서, 그 분이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너는 힘이 센 사람이니까 집을 짓는 데 가서 도와줘라’라든가, 뭘 많이 잡아오면 ‘이쪽에는 배고픈 아이들이 많으니까 음식을 조금 더 줘야겠다’라는 식으로 컨트롤 해주는 거예요.
김하나 : 그러면 그 컨트롤을 하는 철학 같은 것, 그것의 이름이 ‘아로파’인 거군요.
이현우 : 그렇죠.
김하나 : 스터디 그룹 멤버들이 그 다큐멘터리를 같이 보고 ‘아로파’에 꽂힌 거군요.
이현우 : 맞아요. 그 다큐멘터리를 보면 (아누타 섬의 부족들이) 실생활에서 ‘아로파’라는 단어를 많이 써요. 우리가 ‘여기는 자본주의 사회잖아’라고 하는 것처럼, 그들은 ‘우리는 아로파가 있어서 괜찮아요, 아로파가 있어서 행복해졌어요’ 하는 식으로 많이 쓰는 말이에요.
김하나 : 스터디 그룹에 계셨던 분들 뿐만이 아니라 그 분들의 친구나 아는 사람이 모여서 ‘아로파’라고 하는 모임을 만들고 뭔가를 작당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을지로 3가를 배경으로 ‘우리 뭔가를 한 번 도모해 보자’라는 이야기로 이어지게 됐잖아요.
이현우 : ‘아로파’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될 때는 제가 드라마 PD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어쨌든 퇴사라는 걸 계속 생각했으니까 (회사를) 나가면 또 막막해지잖아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나오니까, 또 든든한 우리 형들이 같이 한다고 하니까, 눈에 보이는 건 없지만 ‘그래도 이 형들이랑 같이 뭘 하면 굶어 죽지는 않겠구나’라는 느낌을 은연중에 받았던 것 같아요.
김하나 : ‘청년 아로파’라는 모임의 분들이 시도해 보자고 했던 게 처음에는 카페를 열어보자는 거였잖아요. 카페가 잘 되면 이 거점을 바탕으로 조금 더 느슨하게 우리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볼 수 있도록 가능성을 넓혀 보자는 의도로 시작을 한 거죠. 그러면서 2016년은 6개월 동안 거의 백여 곳의 점포를 보러 다니셨는데, 돈이 많지 않았으니까 온갖 곳들을 다 보셨겠어요.
이현우 : 맞아요. 저는 아직 자취를 해본 적이 없어서 집을 구해보는 경험을 그때 다 했어요. 그런데 조금 힘들게 했다고 해야 될까요. 반지하부터 시작해서 철공소 골목에 있는 창고들도 보러 다녔고... 을지로 3가에 ‘철공소 골목’이라고 해서 재개발 이슈가 있었던 곳이 있어요. 거기가 원래 저희가 굉장히 많이 보러 다녔던 스팟 중에 하나예요. 거기는 정말 전기도 안 들어오고 비 오면 거의 시냇물 흐르듯이 물이 흐르는 곳들도 있었어요. 되게 많이 보러 다녔어요.
김하나 : 을지로를 생각하신 이유는 뭐였어요? 지금은 을지로가 ‘힙지로’가 되어 있지만, 2016년만 하더라도 을지로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많지 않았고, 그때만 하더라도 을지로는 밤이 되면 불 다 끄고 전부 퇴근하시던 때였잖아요. 을지로를 고집하셨던 이유가 있어요?
이현우 : 저도 그때 을지로를 처음 가봤어요. 그런 데가 있다는 건 알았는데 직접 가서 돌아다닌 건 처음이었어요. 일단 그런 동네가 있다는 자체가, 종로와 명동 사이에 끼어있는 곳인데 잘 몰랐던 동네가 도심 한 가운데 있었다는 자체가 매력 있었고요. 동네의 풍경이나 분위기가 제 취향에 맞더라고요.
김하나 : 원래는 카페를 하자고 했다가, 소주와 맥주를 팔까 하고 부화뇌동을 했다가, 와인바가 보이면 칵테일을 팔자고 했다가(웃음), 결국은 캐주얼 와인바로 결정됐어요. 그곳에 왜 이현우 작가님이 대표가 됐을까요?
이현우 : 커피를 되게 잘 아시는 형님이 있어서 저랑 둘이서 같이 카페를 만들려고 돌아다녔었어요. 그런데 프로젝트 자체가 자꾸 흐지부지되고 진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모임) 사람들이 안 나오고, 같이 다니던 형님도 본업에 충실하다 보니까 나올 수 있는 횟수가 줄어들고, 어쨌든 그때 온전히 백수인 사람은 많지 않았거든요.
김하나 : 그런데 작가님은 온전히 백수이셨군요(웃음).
이현우 : 그렇죠, 온전했죠. 드라마 작가를 준비한다고 했는데 그런 건 자연스럽게 내려놓아지던 상황이었기 때문에(웃음). 음... 제 마음 속에서는 일종의 베팅을 했던 것 같아요. ‘이제 나이 서른이 됐는데, 하나를 잡고 진득하게 해봐야 될 것 같은데, 그러면 뭘 하는 게 좋을까’ 했을 때 혼자 글을 쓰는 것보다는 이 사람들이랑 같이 해보자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키를 잡고 나아갈 사람이 불분명하니까 모처럼 내가 나서보자(웃음), 그런 마음을 가졌던 것 같아요.
십분의 일을 냅니다이현우 저 | 알에이치코리아(RHK)
십분의일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선 사장이 열 명이라는 것, 그다음은 열 명의 사람들이 매월 월급의 10%를 내고 수익은 동일하게 나누어 가진다는 것이다. 각자 본업이 따로 있기 때문에 내야 하는 월급이 저마다 다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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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이현우> 저12,600원(10% + 5%)
10명이 모여 월급의 10%씩 내서 운영하는 을지로 와인 바 ‘십분의일’ 이야기 드라마 피디 일을 그만두고 와인 바를 차리게 된 남자의 드라마 같은 에세이. 『십분의 일을 냅니다』는 을지로 와인 바 ‘십분의일’ 사장의 업무 일지다. ‘퇴사가 유행인 시대에 때마침 자신 역시 회사원 체질이 아니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