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일 “초등 공부가 수학 실력을 좌우한다”
『내가 알아야 할 수학은 초등학교에서 모두 배웠다』 최수일 저자 인터뷰
일상에서 수학의 필요성을 체험하고, 개념을 논리적으로 연결하는 과정을 통해 수학적 사고력을 기르는 데 재미를 붙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2020.03.17)
우리는 일상에서 초등수학을 우습게 생각한다. 성인들은 너무 쉽다고 생각하고, 중ㆍ고등학생은 더 어려운 문제를 푸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초등학생들조차 선행으로 초등수학을 소홀히 대하는 시대에 초등수학 개념만 알아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학은 충분하고, 중ㆍ고등 수학에서도 가장 중요한 개념은 초등학교 때 이미 배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있다. 『내가 알아야 할 수학은 초등학교에서 모두 배웠다』 의 최수일 저자다. 그는 최근 나온 개념 중심의 초등연산문제집 『개념연결: 연산의 발견』 시리즈도 집필했다.
2015년 교육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36.5%, 중학생의 46.2%, 고등학생의 59.7%는 수학을 포기했다고 응답했다. 최수일 박사는 갈수록 늘어가는 ‘수포자’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초등수학에 있다고 말한다. “중ㆍ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미적분의 기초, 삼각함수의 기초, 함수의 기초가 모두 초등수학에 있습니다. 그 개념의 연결을 체험할 때 수학을 좋아하게 됩니다. 초등학교 때 잘못 잡힌 개념이나 습관이 앞으로의 학습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특히 초등수학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연산 교육’의 폐해를 말하지 않을 수 없네요. 아이가 처음으로 접하는 수학이 연산인데, 대부분 ‘빨리 그리고 많이’ 풀라고 합니다. 수학에 대한 첫인상이 오염될 수밖에 없죠.” 최 박사가 초등 연산 학습의 단순 암기와 기계적 문제 풀이를 경계하는 이유다. 그는 연산문제집 『개념연결: 연산의 발견』 시리즈에서 ‘연산도 개념’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현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사교육포럼 대표로 있으며 변함없이 교육 혁신을 꿈꾸고 있는 최수일 저자를 만나 초등수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신간 『내가 알아야 할 수학은 초등학교에서 모두 배웠다』 는 제목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의아하기도 합니다. 정말 초등수학만으로 인생에서 필요한 수학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을까요?
정말입니다. 수학자들은 흔히 미적분을 ‘수학의 꽃’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이공계 학문에서 미적분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공계 학자가 아니라면 미적분을 쓸 일이 별로 없어요. 『내가 알아야 할 수학은 초등학교에서 모두 배웠다』 는 일반인을 위해 쓴 책입니다. 수학적 사고력을 논리적인 추론 능력이라고 할 때, 초등수학의 기초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거든요. 그 과정에서 수학적 사고력이 길러집니다. 초등수학은 쉬우면서도 논리적인 구조가 명확해요. 내적 논리가 일관적이고요. 수학과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부담 없이 수학적 사고력을 기르는 연습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공계 학자가 아니라면 정말 초등수학만으로 충분합니다.
‘초등수학 전도사’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꾸준히 초등수학의 중요성을 전파하고 있으신데요. 중ㆍ고등학교에서 오랜 시간 근무하셨는데, 어떤 계기로 초등수학에 주목하게 되셨나요?
30여 년 정도 중ㆍ고등학교 교직 생활을 했어요. 그동안 초등수학을 전혀 몰랐어요. 관심도 없었고요. 10년 전, 명예퇴직하고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회원 중 초등 부모들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초등학교 수학 교과서를 처음 접했어요. 초등학교 교과서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중ㆍ고등학교 수학의 개념이 모두 초등학교 과정에 있더라고요. 중ㆍ고등학생들이 어려워하는 개념들에 대한 근본적인 설명이 다 거기에 있었습니다. 무척 쉽게 시작하고 있어서 저 역시 비로소 수학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어요. 초등수학도 모르면서 중ㆍ고등학생들을 가르쳤다는 사실이 정말 창피했습니다. 그렇게 초등수학을 만나게 된 후로는 후배 교사들에게도 초등수학부터 공부하라고 열심히 전도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늘 문제 풀이 위주의 수학 교육을 비판해오셨습니다. 최근 집필하신 초등 연산문제집 『개념연결: 연산의 발견』 에서는 “연산도 개념이다”라고 말씀하셨죠. 관련이 있을까요?
관련이 있습니다. 초등학생들의 연산 학습 과정은 중ㆍ고등학생의 문제 풀이 위주의 학습과 비슷한 지점이 있는데, 개념에 대한 이해 없이 무조건 암기하는 방식으로 빠지기 쉽다는 것이죠. 저는 초등학교 과정에서 연산 학습을 암기로 시작하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연산도 개념 이해가 우선이 되어야 하는데 빨리, 많이 풀 것을 요구받으니 아이 입장에서는 당연히 외울 수밖에 없죠. 그런데 초등학교 단계에서 연산 학습을 암기로 시작하면 수학 공부 습관 자체가 잘못 자리 잡을 수 있어요. 저는 중, 고등학생들이 개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문제 풀이 과정과 공식을 암기하는 식으로 수학을 공부하는 게 어쩌면 초등학교 연산 학습에서 기인했을 수도 있다고 봐요. 그런데 단순 암기로는 한계가 있어요. 제가 “연산도 개념이다”라고 말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거예요.
그런데 연산 학습을 할 때는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외워야 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초등학생들에게 연산이 가장 괴로운 것이 아닐까 하는데요.
맞습니다. 구구단 같은 경우 암기를 해야지요. 다만 개념 없이 암기하는 것이 문제라는 뜻입니다. 개념적인 이해가 우선 이루어지면 암기에도 속도가 붙습니다. 속도만 붙는 것이 아니라, 장기기억으로 전환되는 비율도 높아지기 때문에 학습에 여러 이점이 있죠. 연산도 개념연결을 통한 이해가 기본 학습 방법이 되어야 합니다. 연산을 개념 있게 공부하려면 속도보다는 정확성이 중요해요. 새로운 연산이 나올 때마다 이전에 학습했던 관련 차시를 개념적으로 연결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개념연결: 연산의 발견』 을 집필하실 때도 그런 고민이 반영됐나요?
네, 『개념연결: 연산의 발견』 은 기계적인 암기를 막고 관련 차시와 개념을 연결해 학습할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쓴 책이에요. 첫 시작부터 배운 개념을 연결하게끔 유도해서 아이가 이전에 배운 내용을 떠올리기 쉽게 도와주지요.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공부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곳곳에 엉뚱한 ‘돌발 문제’를 심어 놓았습니다. ‘선생님 놀이’ 코너도 특히 신경을 많이 쓴 부분입니다. 아이가 계산 실수가 잦다고 걱정을 하시는 부모님들이 많은데요. 단순 반복 문제를 풀다 보면 아이는 유형별로 푸는 방법을 기계적으로 습득하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100점을 맞는다고 해서 그 아이가 개념을 안다고 할 수는 없겠죠. 아이가 이해했는지 안 했는지 설명을 시켜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나 형제, 친구 등에게 ‘선생님 놀이’ 문제를 풀고 설명하게 해보세요. 아이의 설명을 들어주는 것만으로 놀라운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덤으로 아이의 자존감도 올라가고요.
초등학교 때 제대로 개념을 습득하지 못한 채 중ㆍ고등학교로 진학하면 피해가 막심하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으신데, 그 말과도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럼 이미 개념이 부족한 채로 중ㆍ고등학교에 진학해 ‘수포자’의 문턱에 선 학생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오늘 배우는 개념은 어제 이전에 배운 개념과 연결되어 이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초등학교 1학년 수학부터 제대로 차근차근 공부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공부하다간 부담이 너무 커져서 정상적인 궤도로 올라오기 전에 포기하게 될 확률이 높지요. 그냥 오늘 공부한 것이 내일의 기초가 된다는 소박한 생각으로 ‘오늘 배우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일 이후에 배우는 내용의 기초가 오늘 배우는 수학이 되는 경험을 해봐야 합니다.
오늘부터 배운 수학 개념 이해에 결손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수학은 그날그날 배우는 수학 개념 이해에 꼭 필요한 내용만을 가져와 보면서 우선은 학교 수업을 따라가세요. 방학 등을 이용해 이전 학년의 결손을 점차 메워나간다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개념이 연결되는 체험을 하고 재미를 느끼면 더할 나위 없겠죠. 『내가 알아야 할 수학은 초등학교에서 모두 배웠다』 는 ‘수포자’인 학생들을 생각하며 쓴 책이기도 해요. 일상에서 수학의 필요성을 체험하고, 개념을 논리적으로 연결하는 과정을 통해 수학적 사고력을 기르는 데 재미를 붙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초등학교 연산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와 학부모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수학의 영역 중 연산은 다른 영역에 비해 소수의 나눗셈 등 일부분을 제외하면 그렇게 어려운 개념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를 배우면 여럿을 깨우칠 수 있어 배우지 않은 내용에 대한 추론도 가능하고, 선행하기도 쉬운 부분입니다. 개념 이해 과정에서 이런저런 추론을 시도하며 재미를 느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요. 그런데 연산 학습에서 정확한 이해보다 속도를 우선해 요구하게 되면 아이도 암기를 우선하게 됩니다. 암기는 쉽고 빠르고 간편하게 느껴지지만, 결코 오래 쓸 수 있는 수단은 아닙니다. 초등수학은 아이가 처음 만나는 수학이죠. 암기를 수학 공부의 도구로 삼게 된다면 중ㆍ고등학교 수학 문제도 암기하려 들기 쉽습니다. 자연스럽게 ‘수포자’의 길로 발을 들여놓을 확률도 높아집니다. 그러므로 아이가 힘들어하더라도 천천히 개념부터 공부하도록 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 최수일
수학교육학 박사로 30여 년 넘게 교직과 수학교육계에 있으면서 교육과정의 혁신을 위해 실험과 연구를 계속해 왔습니다. 수학교사들의 연대 '전국수학교사모임'을 만들었고, 전국을 돌며 수학으로 고통받고 지친 아이와 학부모들에게 수학의 희망을 전파하였습니다. 또한 여러 차례 수학교육과정 개정 작업에 참여하였습니다. 현재 수학교육연구소 소장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사교육포럼 대표, 서울시교육청 수학교육혁신TF 공동위원장을 겸임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착한 수학』, 『하루 30분 수학』, 『지금 가르치는 게 수학 맞습니까?』 등이 있습니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수학은 초등학교에서 모두 배웠다최수일 저 | 비아북
수학적 민감성을 길러주는 역할 뿐만 아니라 생활 속 지식을 늘려주는 교양서의 역할까지 톡톡히 해낸다. 또한, 아직 수학의 묘미를 깨닫지 못한 아이들에게 일상에 수학이 가득하다는 것을 일깨워 줄 훌륭한 입문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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