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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치지 않아> 탈 쓰고 콜라 마시는 동물이라고?

서로를 해치지 않는 세상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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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치지 않아>가 냉소적이기보다 따뜻한 건 선악을 갈라 대립 양상을 끝까지 가져가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향해 ‘해치지 않아’ 하는 세상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내서다. (2020. 0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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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치지 않아>의 한 장면

 

 

(벌써!) 지난해 이맘때 <극한 직업>(2019)이 코미디로 1,600만 관객의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올해 연초도 코미디 중흥의 역사적 사명… 까지는 아니어도 아무튼, ‘털 날리며 당당하게’ 웃겨주리라 도착한 영화가 있다. HUN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해치지 않아> 다. ‘해치지 않’겠다니, 무시무시한 설정으로 시작하나?

 

배경은 폐장이나 다를 바 없는 동산파크. 찾는 손님이 없어 부채가 쌓이고 그 때문에 주요 동물들이 다른 곳으로 팔려나가 우리마다 파리만 날려 곤충원으로 불러야 할 판이다. 이런 곳을 싹 다~ 재개발해주시는 건 아니고 살리겠다고 신임 원장이 부임한다. 수습 변호사 출신의 태수(안재홍)다. 태수는 속한 대형로펌으로부터 어떻게든 동물원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다.

 

태수가 떠올린 ‘어떻게든’의 방법이 기상천외하다. 끝까지 동물원을 지키겠다고 남은 전임 원장(박영규)과 수의사 소원(강소라)과 사육사 건욱(김성오)과 해경(전여빈)에게 털 날리는 동물 탈을 씌워 동물 행세를 하도록 강제한다. 사람들이 믿겠어, 정말 미쳤군, 나 이 동물원 때려치우고 싶… 지만, 별수 있나, 열심히 하겠습니다, 로 전개되면서 이들은 각각 북극곰과 사자와 고릴라와 나무늘보로 위장 근무한다.

 

발상은 가상하지만, 의심이 떠나지 않는 가운데 웬걸 사람들이 감쪽같이 속는다. 탈을 쓰고 있어 땀이 줄줄 흐르는 가운데 너무 덥다고 관람객이 던진 콜라를 따서 마시니, 각종 SNS에는 유명 콜라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북극곰이 정말 콜라를 마신다며 난리가 난다. 그러면서 동산파크에는 콜라 마시는 북극곰을 보겠다고 관람객이 개장 전부터 나래비로 줄을 선다.

 

탈 쓰고 콜라 마시는 가짜 동물들이 위험이 되지는 않을 터. 오히려 관람객이 북극곰 주제에 마시라는 콜라를 왜 마시지 않느냐며 위해 하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누가 누구를 해치는지, 그런 이유로 이 영화의 제목이 의도하는 바가 짐작된다. 동물을 우리에 가둬 볼거리로 삼는 윤리적 문제는 차치하고, 동물과 관람객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확보해 사고를 방지하는 동물원의 룰처럼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

 

태수가 동물원을 살리려는 건 대형 로펌의 머리에 잘 보여 수습 딱지를 떼고 정규직이 되려는 몸부림이다. 이 영화 속 대형로펌은 돈 많은 기득권의 편에 서서 노동자를 하찮게 여기고 등쳐먹는 악덕 집단으로 묘사된다. 계급으로 치면 노동자에 속하는 태수이기는 해도 자신의 신분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연대보다는 대척점에 있는 기득권에 충성하는 길을 택한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대형 로펌은 태수가 행하는 몸부림의 의미를 악용해 이득을 취하려 한다. 그들 눈에 들겠다며 별의별 짓을 다 하는 태수와 태수의 별스러운 제안을 순수하게 따르는 동산파크 직원의 황당무계한 시도는, 그래서 블랙 유머의 성격을 띤다. 그런데도 <해치지 않아> 가 냉소적이기보다 따뜻한 건 선악을 갈라 대립 양상을 끝까지 가져가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향해 ‘해치지 않아’ 하는 세상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내서다.

 

<해치지 않아> 는 가진 자가 힘을 앞세워 못 가진 자가 티끌만 하게 쥐고 있는 권리마저 강탈하는 무시무시한 현실을 바탕으로 하면서 불합리의 전복을 주장하지 않는다. 동물원이 필요악으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부조리한 세계를 인정하고 다만, 이득을 취하겠다고 상대의 선을 넘지 않을 때 지금보다 더 최악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 <해치지 않아> 의 코미디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착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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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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