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해치지 않아> 탈 쓰고 콜라 마시는 동물이라고?

서로를 해치지 않는 세상을 꿈꾸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해치지 않아>가 냉소적이기보다 따뜻한 건 선악을 갈라 대립 양상을 끝까지 가져가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향해 ‘해치지 않아’ 하는 세상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내서다. (2020. 01. 02)

해치지않아 1.jpg

영화 <해치지 않아>의 한 장면

 

 

(벌써!) 지난해 이맘때 <극한 직업>(2019)이 코미디로 1,600만 관객의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올해 연초도 코미디 중흥의 역사적 사명… 까지는 아니어도 아무튼, ‘털 날리며 당당하게’ 웃겨주리라 도착한 영화가 있다. HUN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해치지 않아> 다. ‘해치지 않’겠다니, 무시무시한 설정으로 시작하나?

 

배경은 폐장이나 다를 바 없는 동산파크. 찾는 손님이 없어 부채가 쌓이고 그 때문에 주요 동물들이 다른 곳으로 팔려나가 우리마다 파리만 날려 곤충원으로 불러야 할 판이다. 이런 곳을 싹 다~ 재개발해주시는 건 아니고 살리겠다고 신임 원장이 부임한다. 수습 변호사 출신의 태수(안재홍)다. 태수는 속한 대형로펌으로부터 어떻게든 동물원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다.

 

태수가 떠올린 ‘어떻게든’의 방법이 기상천외하다. 끝까지 동물원을 지키겠다고 남은 전임 원장(박영규)과 수의사 소원(강소라)과 사육사 건욱(김성오)과 해경(전여빈)에게 털 날리는 동물 탈을 씌워 동물 행세를 하도록 강제한다. 사람들이 믿겠어, 정말 미쳤군, 나 이 동물원 때려치우고 싶… 지만, 별수 있나, 열심히 하겠습니다, 로 전개되면서 이들은 각각 북극곰과 사자와 고릴라와 나무늘보로 위장 근무한다.

 

발상은 가상하지만, 의심이 떠나지 않는 가운데 웬걸 사람들이 감쪽같이 속는다. 탈을 쓰고 있어 땀이 줄줄 흐르는 가운데 너무 덥다고 관람객이 던진 콜라를 따서 마시니, 각종 SNS에는 유명 콜라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북극곰이 정말 콜라를 마신다며 난리가 난다. 그러면서 동산파크에는 콜라 마시는 북극곰을 보겠다고 관람객이 개장 전부터 나래비로 줄을 선다.

 

탈 쓰고 콜라 마시는 가짜 동물들이 위험이 되지는 않을 터. 오히려 관람객이 북극곰 주제에 마시라는 콜라를 왜 마시지 않느냐며 위해 하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누가 누구를 해치는지, 그런 이유로 이 영화의 제목이 의도하는 바가 짐작된다. 동물을 우리에 가둬 볼거리로 삼는 윤리적 문제는 차치하고, 동물과 관람객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확보해 사고를 방지하는 동물원의 룰처럼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

 

태수가 동물원을 살리려는 건 대형 로펌의 머리에 잘 보여 수습 딱지를 떼고 정규직이 되려는 몸부림이다. 이 영화 속 대형로펌은 돈 많은 기득권의 편에 서서 노동자를 하찮게 여기고 등쳐먹는 악덕 집단으로 묘사된다. 계급으로 치면 노동자에 속하는 태수이기는 해도 자신의 신분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연대보다는 대척점에 있는 기득권에 충성하는 길을 택한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대형 로펌은 태수가 행하는 몸부림의 의미를 악용해 이득을 취하려 한다. 그들 눈에 들겠다며 별의별 짓을 다 하는 태수와 태수의 별스러운 제안을 순수하게 따르는 동산파크 직원의 황당무계한 시도는, 그래서 블랙 유머의 성격을 띤다. 그런데도 <해치지 않아> 가 냉소적이기보다 따뜻한 건 선악을 갈라 대립 양상을 끝까지 가져가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향해 ‘해치지 않아’ 하는 세상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내서다.

 

<해치지 않아> 는 가진 자가 힘을 앞세워 못 가진 자가 티끌만 하게 쥐고 있는 권리마저 강탈하는 무시무시한 현실을 바탕으로 하면서 불합리의 전복을 주장하지 않는다. 동물원이 필요악으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부조리한 세계를 인정하고 다만, 이득을 취하겠다고 상대의 선을 넘지 않을 때 지금보다 더 최악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 <해치지 않아> 의 코미디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착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영화<해치지 않아> 예매하러 가기

 

 

 

 

 

 

 

 

배너_책읽아웃-띠배너.jpg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1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오늘의 책

수학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는 엄마표 유아수학 공부

국내 최대 유아수학 커뮤니티 '달콤수학 프로젝트'를 이끄는 꿀쌤의 첫 책! '보고 만지는 경험'과 '엄마의 발문'을 통해 체계적인 유아수학 로드맵을 제시한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수학 활동을 따라하다보면 어느새 우리 아이도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랄 것이다.

나를 바꾸는 사소함의 힘

멈추면 뒤처질 것 같고 열심히 살아도 제자리인 시대. 불안과 번아웃이 일상인 이들에게 사소한 습관으로 회복하는 21가지 방법을 담았다. 100미터 구간을 2-3분 이내로 걷는 마이크로 산책부터 하루 한 장 필사, 독서 등 간단한 습관으로 조금씩 변화하는 내 모습을 느끼시길.

지금이 바로, 경제 교육 골든타임

80만 독자들이 선택한 『돈의 속성』이 어린이들을 위한 경제 금융 동화로 돌아왔다. 돈의 기본적인 ‘쓰임’과 ‘역할’부터 책상 서랍 정리하기, 용돈 기입장 쓰기까지, 어린이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로 자연스럽게 올바른 경제관념을 키울 수 있다.

삶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야

저마다 삶의 궤적이 조금씩 다르지만 인간은 비슷한 생애 주기를 거친다. 미숙한 유아동기와 질풍노동의 청년기를 거쳐 누군가를 열렬하게 사랑하고 늙어간다. 이를 관장하는 건 호르몬. 이 책은 시기별 중요한 호르몬을 설명하고 비만과 우울, 노화에 맞서는 법도 함께 공개한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