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영 “천국 같은 순간은 늘 있었다”
에세이 『천국이 내려오다』 펴내
저는 여행을 다닐 때 항상 외롭다고 생각했거든요. 혼자 다니니까요. 그런데 천국 같은 순간들이 늘 있더라고요. (2019. 12. 13)
살아 있는 누구도 사후의 찬란한 천국은 가보지 못했겠지만, 마음이 천국에 있는 것 같은 순간은 안다. 지친 몸을 따뜻한 이불 속에 파묻거나 아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주 앉아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로 크게 웃을 때처럼 우리는 일상의 어떤 순간에서 종종 천국을 떠올린다. 김동영 작가는 이런 소소한 천국을 여행에서 만났다고 했다. 지난 20년간 어디론가 훌쩍 떠났다 돌아오기를 반복했던 그가 여행지에서 느낀 천국 같은 장면들이 『천국이 내려오다』 에 담겼다. 김동영 작가가 기억하는 천국은 위험을 벗어난 안도의 순간이기도 하고, 부둣가에 흩어져 누운 고양이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이의 품이기도 하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그가 만난 천국에 도달하는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소소한 천국에 대한 이야기
이번 신작은 일반 여행기가 아니라 각 여행지에서 만난 천국의 순간을 담았어요. 어떻게 기획한 건가요?
이제 여행기는 더 이상 쓸 말이 없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원래 ‘천국이 내려오다’라는 제목으로 다른 글을 쓰고 있었는데요. 이 책을 내기 전에 종교에 대해 공부하면서 세계 여러 종교마다 원하는 천국의 이상향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때마침 인도 바라나시에 가게 되었고, 거기서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천국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죠. 우리는 천국에 늘 밝은 빛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되게 행복한 이미지만 그리잖아요. 그런데 인도 사람들의 천국은 아무 것도 아닌 ‘무’로 돌아가 생을 반복하지 않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동안 항상 천국은 멀리 있고, 나는 천국에 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해왔는데 그 말을 듣고 안도했어요. 그러면서 내가 수많은 여행을 다니며 느낀 최고의 순간, 영감을 주었던 순간들을 천국이라는 주제로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그동안 우리가 알았던 거창한 천국 말고, 소소한 천국에 대한 이야기요.
전작들과 좀 다른 느낌이었어요.
요즘 에세이가 많이 출간되잖아요. 에세이는 나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하는 글인데, 뭔가 가르침이나 깨달음을 주려는 경향이 많아지는 거 같아요. 광고 홍보문구도 그렇고, 대단한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에세이가 자기개발서화 되는 게 싫었어요. 저는 항상 글을 쓸 때 독자에게 뭘 가르쳐주겠다는 거에 대해서는 관심이 전혀 없었는데, 글을 오래 쓰다 보면 자꾸 뭔가 의미를 남겨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사소한 교훈 하나 없이 장소와 순간에 대한 묘사로 글을 채우려고 노력했어요.
또 언젠가부터 책을 쓰며 그런 걸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사람들이 내 책이나 나의 이름을 검색했을 때,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문구들이 있잖아요. 독자들이 많이 인용하는 제 문구는 ‘살아가면서 산처럼 높아지는 것이 정답은 아니고, 바다처럼 깊고 넓어지는 것도 하나의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글귀인데 저는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썼거든요. 그런데 해석이 거창해서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좋은 거예요. 그러다 보니 계속 그런 문구를 써내야 한다는 게 무의식중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글을 쓰면 자꾸 제가 좋아하지 않는 류의 에세이처럼 흘러가더라고요. 이번에는 오직 독자들이 책을 읽고 여행을 한 번 떠나보길 원하는 의미로 썼어요. 리뷰를 몇 개 보았는데, 다행히 옛날처럼 인생을 다시 생각했다는 것보다 책을 읽으니 여행 가고 싶었다고 말해주시는 분들이 많아 좋았어요.
출판사에서 제작한 집필기 영상을 보니 해외에서 작업한 것 같더라고요.
저는 고립되는 걸 좋아해요. 특히 책 작업을 할 때는 집중력을 위해서 항상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글을 쓰거든요. 이번에는 일본 교토와 동경에서 4개월 정도 머무르며 썼어요. 제가 6월에 출국을 했는데 그때만 해도 한일 관계가 이렇게 극단으로 치닫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가서 지내는 동안 문제가 심각해졌어요. 저는 그 도시의 분위기가 글에 담기길 원하는 마음으로 작업할 여행지를 선택해요. 교토는 정갈하고 유니크한 느낌 때문에 선택했는데, 지내는 와중에 그렇게 돼서 돌아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되게 많이 했어요. 사실 브이로그도 제작하려고 영상도 진짜 많이 찍었는데 거의 다 못 쓰게 됐죠. 제가 쇼핑하는 걸 되게 좋아하고, 특히 이렇게 책 작업이 끝나면 저에게 큰 선물을 하나씩 주거든요. 이번에는 쇼핑을 최대한 안 했어요. 그렇게라도 애국을 하려고요.(웃음)
오래전 다녀온 여행지를 다시 되새기는 작업은 어땠나요.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아니요, 전 너무 쉬웠어요.(웃음) 작업하기 전에 우선 이제까지 찍었던 사진들을 쭉 봤어요. 거기서 기억에 남았던 장소들을 추리고 그때 있었던 이야기들에 대해 정리했죠. 그래서 그렇게 어렵진 않았는데, 그래도 집필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던 건 제가 쓸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에요. 그동안 제 글은 감성적이긴 했지만 논리적이진 못했거든요. 물론 이 책이 논리적인 내용의 글은 아니지만, 공간에 대한 묘사에 최대한 집중하려고 했어요.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같은 책을 보면 어떤 장면을 글로 생생하게 묘사하잖아요. 저도 그런 묘사 위주의 글을 쓰고 싶다는 게 제일 큰 포커스였죠. 내 감성은 드러나되,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했어요.
천국의 순간이 된 장소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택했나요?
어떤 영감을 주었던 순간들이요. 저는 여행을 다닐 때 항상 외롭다고 생각했거든요. 혼자 다니니까요. 그런데 천국 같은 순간들이 늘 있더라고요.
그럼 집필이 힘들기보단 좋았겠네요. 제일 기억에 남는 순간을 다시 떠올리는 작업이니까요.
되게 좋았는데 일본에서 쓰느라 마음 한편은 계속 불편했어요.(웃음)
이번 책에는 사진이 최소한으로 들어갔어요. 그마저도 흑백으로 처리했고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원래는 사진을 안 넣으려고 했어요. 그래도 중간 중간 사진이 들어간 것은 ‘내가 묘사한 글만 읽고 사람들이 그 장면을 연상시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오로지 확인을 위해 현실적인 사진만 넣었어요. 전처럼 글과의 시너지를 위한 게 아니라 글의 일부처럼 삽입했죠.
책에 삽입된 지도와 그림도 직접 그린 걸로 알아요.
어떻게 그곳에 도달하는지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처음에는 약도로 작업했는데 좀 더 디테일하게 그려보고 싶어서 지도를 따라 그려봤는데 퀄리티가 너무 다른 거예요. 약도는 상대적으로 빈약하고, 지도는 노동의 강도가 딱 보였어요.(웃음) 그래서 그때까지 그린 약도는 다 버리고 다시 지도를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가 나중에 후회했어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눈이 흘러내릴 거 같았거든요. 그래도 재미는 있었어요. 제가 아무리 지도를 보고 똑같이 그린다고 해도 완벽히 같을 순 없어서 상상으로 채워 넣어야 하는 부분들이 있었거든요. 덕분에 하나 알게 된 건, 잘 사는 나라일수록 지도 그리기가 쉽다는 거예요. 소위 개발도상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은 도로 정비가 잘 안 돼 있어서 곡선이 많고 길도 들쑥날쑥해요.
여행에서 느낀 최고의 순간, 천국이 되다
바라나시 화장터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비유적 천국이 아닌 죽음 이후의 천국을 생각하게 되고요. 바라나시 화장터에 왜 가고 싶었던 건가요?
바라나시에 가기 전에 오토바이를 타고 인도 라다크 지역으로 히말라야 여행을 떠났었어요. 그때 인도라는 나라를 처음 가봤는데, 제가 그동안 생각해왔던 인도와 전혀 다르더라고요. 인도가 워낙 크고 소수민족도 많다 보니까 라다크 지역에는 대중들이 알고 있는 인도의 모습이 별로 없어요. 까무잡잡한 피부의 사람들도 없고요. 그게 신기해서 구글링을 하다가 바라나시 화장터의 이미지를 보게 됐어요. 바라나시에 화장터가 있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잔인하게 탄 시체의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거든요. 그걸 보면서 ‘아 정말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라다크에서 돌아온 지 한 달도 안 돼서 바로 바라나시로 떠났어요.
그동안 주변에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돌아가신 분이 많았거든요. 어머니도 돌아가셨고요. 그런데 현실감이 없었어요. 우리는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잖아요. 전쟁도 없었고 직접적으로 죽음을 겪을 만한 재해도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내가 아는 죽음은 다 가려진 죽음인 거예요. 병원에서 임종하시는 걸 보거나 화로에 들어갔다 나오면 사라지는 것뿐이니까요. 그런데 바라나시 화장터에 가면 죽음이 우리와 그리 멀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숙소도 화장터 5분 거리에 잡고 3주간 매일, 하루 종일 화장터에 있었어요. 처음엔 화장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되게 부정적이었어요. 저 같은 관광객이 너무 많으니까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고 사진도 찍지 못하게 하더라고요. 그런데 일주일 정도 매일 가서 앉아있으니 어느 순간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그렇게 친해지다 보니 점점 제가 갈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고 시체와 더 가까워졌어요. 결국 화장터 안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볼 수 있는 정도까지 되어서 정말 자세히 볼 수 있었죠.
실제로 보니 어떻던가요?
‘저래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 시체가 막 널려있고요. 너무 함부로 대해요. 우리는 염을 해서 시체가 보이지 않도록 꽁꽁 싸매잖아요. 거긴 그런 게 없어요. 골목마다 시체를 메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고, 도착한 시체는 화장터 한 군데에 줄을 세워놔요. 가려봤자 하얀 천을 덮어놓은 거뿐이라 다 볼 수 있죠. 그리고 나무를 사서 태우는데, 시체 한 구가 다 타는 데 두 시간 좀 넘게 걸리거든요. 보고 있으면 ‘와 진짜 이래도 되는 거야? 정말 이렇게 리얼하다고?’ 이런 생각이 계속 들어요. 불에 타서 내장기관이 막 쏟아져 내리고, 화장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잘 타라고 대나무로 시체를 툭툭 쳐요. 그럼 막 부서지기도 하고. 몸에서 다리가 맨 마지막에 타거든요. 다리에는 분명 살이 있는데, 상체는 뼈만 남은 모습들이 너무 충격적이다가 나중에 알게 돼요. ‘이게 여기에서는 하나의 일상이구나. 육신은 잠시 영혼이 머물렀던 껍질에 불과하구나.’라는 걸요.
죽음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에는 변화가 있었어요?
좀 더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거 같아요. 옛날에는 누군가가 죽으면 실감이 안 났어요. 그리고 무작정 슬퍼하고 아쉬워했는데 지금은 담담해졌다고 할까요. 홀가분함을 느꼈어요. 죽고 나서 그렇게 깔끔히 사라질 수 있다는 게 오히려 다행이더라고요. 바라나시에 있을 때는 잠이 안 오면 새벽에도 나가서 화장하는 걸 보고 그랬거든요. 캄캄한 밤에도 여전히 시체는 타고 있어요. 연기가 자욱하고 불꽃이 튀면서 알 수 없는 살 타는 냄새가 나고. 그런 게 되게 안정감을 줬어요. 보고 있으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감이 장맛비처럼 내리던 날들’을 보며 포틀랜드는 글 쓰는 사람들의 천국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포틀랜드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적이었나요?
도시의 분위기 자체가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지만, 특히 재밌는 건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의 70%는 다 자기가 작가래요. 책을 내거나 어떤 결과물을 발표한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냥 글을 쓰면 작가인 거예요. 그림을 그리면 화가고, 노래를 부르면 가수고요.(웃음) 그런 당당함이 굉장한 자극이 됐어요.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는 데 인색하잖아요. 그런데 포틀랜드에서는 “나 글 쓰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면 무슨 책을 썼냐, 어떤 글을 쓰냐 같은 건 하나도 묻지 않고 “어! 그럼 너 작가네?”하면서 되게 대접을 해줘요. 항상 가는 카페에 가면 오늘은 글 잘 써지냐고 물어봐주기도 하고. 그들은 내가 한국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책을 몇 권이나 펴냈는지는 관심이 없어요. 그냥 뭔가를 쓰고 있다고 하니까, 도시 전체가 그걸 응원해주는 분위기였어요.
와 진짜 멋있네요.
우리나라는 길거리에서 하는 버스킹도 어느 정도 실력 있는 분들만 나오잖아요. 거긴 노래를 진짜 노래를 못하는 사람도 버스킹을 해요. 그냥 자기가 아티스트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모든 아티스트가 처음부터 잘할 순 없다고요. 부족한 실력으로 시끄럽게 노래 부르면 보통 불평을 할 텐데, 포틀랜드에서는 박수치고 응원하는 분위기가 도시 전체에 퍼져 있어요. 또 대부분의 카페에서 책 읽고 작업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죠. 그런 환경 덕분에 영감이 막 떠오르는 거죠. ‘이걸 써도 될까? 이 이야기를 독자들이 좋아할까?’라는 생각이 안 들어요. 다 떠나서 일단 쓰는 거예요. 우리는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포틀랜드 사람들은 결과 따윈 중요 없고, 지금 하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정말 한 카페에 앉아있으면 작가만 열 명이에요.(웃음) 또 창작하는 사람들을 굉장히 대접해줘요. 예를 들어 커피 리필이 되지 않는 카페인데, “넌 작가라서 오래 작업해야 하니까 리필해 줄게”라며 커피를 주기도 했어요. 이렇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창작하는 사람들의 활동을 도와주려고 해요. 포틀랜드는 정착민보다 이주민이 많은 도시잖아요. 그들이 만든 분위기일 거예요. 그리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포틀랜드는 되게 특별한 도시인 것 같았어요.
국내의 장소로는 신촌의 한 모텔이 등장해요. 편찮으신 어머니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있는 집을 나와 모텔에서 잠시나마 안정을 느끼는 모습에 공감했어요. 여행을 자주 떠나기에 이렇게 공간을 벗어날 때 오는 해방감을 자주 맛볼 것 같아요.
제가 여행을 언제 떠나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사람이 싫어질 때인 거 같아요. 싸우고 욕하고 그러면서 사고 칠까 봐 떠나요. 옛날엔 그러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한테 섭섭함을 잘 느끼고, 쏘아붙이게 될 때가 종종 있어요. 보통 그때 여행을 떠나는데, 일단 여행지에 가면 외롭거든요. 그럼 그들이 했던 섭섭한 행동이나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일들도 다 이해가 되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책에 쓴 천국의 순간들 중, 다시 돌아가고 싶은 천국이 있나요?
마나베섬이요. 그때 처음으로 내가 예뻐 보인다고 느꼈어요. 스스로 내가 참 사랑스럽다는 걸 느낀 건 이때가 처음이었거든요. 그 이후로도 없어요. 그 밤바다의 분위기와 널브러져 있는 고양이들이 함께 있는 풍경을 누군가 봤다면, 혹은 만약 이 장면을 영화로 찍었다면 “쟤 너무 사랑스러워”라고 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자기애가 생기더라고요. ‘나도 예쁘고 사랑스러울 수 있구나’라고요. 그걸 스스로 느끼는 경우는 별로 없잖아요. 만약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로 다시 가보고 싶어요.
세상은 언제나 상상 이상을 보여준다
여행을 떠난다고 해서 늘 특별한 경험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작가님 글을 보면 무척 특별한 일이나 인연이 참 많아요.
낚시랑 똑같은 거 같아요. 낚시할 때도 어느 곳은 물고기가 잘 잡히는데 어디는 안 잡히잖아요. 그런데 결국 이기는 건 끝까지 앉아서 기다리는 거예요. 저는 여행을 일주일, 열흘 이렇게 짧게 가지 않아요. 만약 짧게 여행을 한다고 해도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한 도시, 한 자리에 계속 머물거든요. 매일 가는 카페, 식당, 산책하는 경로가 똑같아요. 그리고 필라테스를 배운다거나 명상 클래스를 듣는 등 현지인처럼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하기 때문에 그들 입장에서 저는 흥미로운 사람인 거예요. ‘얘는 무슨 여기에 세 달씩이나 여행을 와?’라는 생각이 들 테니까요. 그냥 한곳에 매일 가서 앉아있으면 “너 여기 왜 왔어? 왜 안 가니?”같은 질문이 나와요. 그러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는 거죠.
좋아하는 여행지의 조건이 있다면요.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소일거리를 할 수 있는 배경이 되는 장소를 좋아해요. 그래서 관광객이 별로 없는 곳을 주로 가요. 또 이동수단을 타고 일주나 횡단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저는 여행지를 정할 때, 그 도시에 대한 분위기나 이미지 같은 느낌만 가지고 고르거든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상관없어요. 그런데 이제 좀 확실해진 거 같아요. 일단 영미권만 아니면 돼요. 영미권 국가는 이제 저에게 더 이상 새롭게 다가오는 게 없어서요. 요즘은 인도, 동남아시아 같은 데가 더 재밌어요. 그들이 가진 특유의 거친 에너지가 매력적이더라고요. 최근에 인도를 좋아하게 된 것도 치열한 에너지 때문이에요.
에필로그에서 ‘무언가를 기대하고 찾기 위해 떠나고 돌아오는 일에 대해 그 의미를 모르게 되었다’며 ‘앞으로는 아무도 찾는 이 없는 늪 같은 창전동 집에만 머물 거다’라고 했어요. 어떤 마음의 변화가 있었던 건가요?
지겨워요. 여행 다녀와서 방 침대에 누우면 ‘아이고 여기가 천국이네!’라는 생각이 딱 들거든요. 고양이와 강아지가 있고 익숙한 내 침대와 나의 모든 게 다 있는 곳이니까요. 누군가에게는 여행이 로망이겠지만, 그게 생활이 되면 정말 힘들거든요. 제가 지난 20여 년간 1년에 두 달 이상씩은 여행을 다녀왔더라고요. 그게 점점 길어져서 3~4개월이 되기도 하니까 필요한 물건 하나를 사려고 해도 ‘어차피 몇 달 후에 나갈 텐데’ 싶어서 그냥 대충 지내게 돼요. 요즘은 ‘내가 평생 이렇게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해요. 사실 그동안의 여행이 그렇게 여유롭진 않았어요. 늘 뭔가를 필사적으로 찾았고, 필사적으로 썼기 때문에 제겐 힘든 시간이었거든요. 무엇보다 외로웠고요. 앞으로도 여행은 계속 가겠지만, 이제 쓰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그냥 푹 쉬는 여행을 가고 싶어요.
고민이 많아진 것 같아요.
저는 심각하게 미래에 대해 준비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제게 있어서 미래는 다음 달, 6개월 후였지 10년, 20년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나이가 점점 들면서 어떤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아요. 여행에 있어서도 그렇고, 글에 대한 고민도 있고요. 저는 에세이를 주로 써왔잖아요. 에세이는 자기 이야기를 쓰는 거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앞으로 어떤 글을 써야 할까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거나 혹은 관심을 가져볼 만한 주제를 찾아서 현실감 있게 전해주는 르포를 써볼 예정이에요. 그리고 내년부터는 새로운 일거리를 좀 구하려고요.
인스타그램에 생선이라는 필명에 대해서도 글을 남겼어요. ‘살아가면서 단 한 순간도 눈을 감지 않는 생선처럼 어떤 순간에도 눈을 감지 않겠다’는 의미였지만, 이제 눈 감고 회피하고 싶은 순간도 있다고요.
책 팔리는 게 너무 스트레스예요. 옛날에는 ‘난 할 만큼 다 했어’라는 마음이었고 큰 미련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제 책이 얼마나 팔릴지 너무 궁금해요. 과거에는 그 궁금증이 ‘얼마나 많은 독자가 읽느냐’에 포커스가 맞춰졌다면 지금은 ‘얼마를 벌 수 있나’가 궁금해요. 그런 마음이 든 다음부터는 부담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직장을 구하려 해요. 책 판매량과 관계없이 생기는 수입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제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아온 인생이지만, 사실 보편적인 선에서 보면 그렇게 치열하지 않았거든요. 이제 몸을 움직이는 삶을 좀 살아보고 싶어요. 그래서 요즘 알바몬 열심히 보고 있어요.
그럼 아예 다른 직종의 일을 할 생각인 거예요?
네. 해보고 싶은 분야를 몇 개 정하고, 그에 맞는 일들을 찾고 있어요. 우선 공항에서 일해보고 싶어서 수하물창고 아르바이트를 찾았고요. 혹은 숙식제공 되는 공장이나 청소 일도 알아보고 있어요. 제가 이제 와서 번듯한 직장에 취직할 수도 없고, 또 그렇게 돈을 벌고 싶지도 않거든요. 그러니 내가 관심 있고 흥미로운 일을 해보려고요. 평생 직장 말고 3~4개월 일하다 그만 둬도 미련 없을 만한 일이요. 그냥 이렇게 흘려 보내기엔 아까운 인생인 거 같아요.
이 책을 직접 추천한다면, 어떤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가요?
일상이 지겹거나, 인생에 영화 같은 감동이 필요하신 분들이 읽어보셨으면 해요. 어떤 위로를 받고 싶어서 선택하신다면 이 책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을 테고요. 다만, 인생의 전환점이나 변화의 계기를 여행으로 생각하고 계신 분들에게 권하고 싶어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지금까지 살아보니, 세상은 항상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을 보여주더라고요. 행복, 좌절, 불운, 행운 모두 다요.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괴롭겠지만,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는 것 같아요. 또 이 책에 담긴 천국은 아주 다양한 순간들이잖아요. 독자분들에게도 이런 순간들이 정말 무지막지하게 내려왔으면, 그런 순간들을 많이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천국이 내려오다김동영 저 | 김영사
작가는 여행지에서 겪은 천국 같았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왜 하필 ‘천국’이냐고 묻자 “사람들은 천국을 떠올릴 때 아주 멀리 있고 우리가 쉽게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로 생각하지만 사실 살아가면서 어떤 순간, 장소에서 격하게 행복하거나 눈물겹도록 감동적일 때 ‘정말 천국 같다’라는 말을 내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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