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과 “인간 사회를 다르게 보게 됐어요”
『0 영 ZERO 零』
뭔가 조금 이상한 것 같은데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고,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되게 이상한 사람이고, 그런 사람 있잖아요. (2019. 12. 10)
김사과 소설가는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와 관련된 책을 읽으며 『0 영 ZERO 零』 의 인물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나’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식인食人하는 종족”이고 “세상은 먹고 먹히는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의 재능이 “짓밟히고 꺾여, 뭉개지고 피가 튀고, 헐떡거리다가, 마침내 뒈져버리는” 광경을 기다린다.
흔히 떠올리는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의 전형처럼 사람을 죽이거나 기이한 범죄를 일으키지는 않지만 ‘나’에게서 느껴지는 섬뜩함은 그에 못지않다. 게다가 ‘나’처럼 타인을 착취하는 뱀파이어 유형의 사람을 보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유 없이 타인을 괴롭히고, 그의 고통을 보며 즐거워하고, 그것을 동력 삼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누군가를, 언제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드는 까닭이다. 소설 『0 영 ZERO 零』 이 서늘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 안에 있는 ‘나’와 같은 모습들, 일상 속에 녹아든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단편소설 「영이」로 ‘2005년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김사과 소설가는 전위적인 서사와 파격적인 형식으로 단숨에 주목을 받았다. 장편소설 『미나』 , 『풀이 눕는다』 , 『나b책』 , 『테러의 시』 , 『천국에서』 , 『N.E.W』 , 소설집 『02』 , 『더 나쁜 쪽으로』 , 산문집 『설탕의 맛』 , 『0 이하의 날들』 등 거침없는 에너지로 가득한 이야기를 선보였다. 이번에는 『0 영 ZERO 零』을 통해 더 사소하고 은밀한 폭력의 민낯을 보여준다.
그런 사람 있잖아요
주인공 ‘나’는 굉장히 특이한 사람이에요. 어떻게 이런 인물을 만들게 되셨는지 궁금한데요.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에 관한 책을 많이 읽으셨다면서요?
네, 책을 읽으면서 그런 타입의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도 알았고요. 사람들의 상상과 달리, 언뜻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 중에도 그렇게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런데 창작품에서 그런 인물을 실제로 본 적이 없잖아요. 보통 살인마 같은 모습으로 나오죠. 그래서 그런 주인공이 나오면 의외로 현실적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소설을 읽은 사람들이 자신의 주변 사람 중에 ‘나’와 같은 이상한 사람들을 떠올리지 않을까 생각했고요. 뭔가 조금 이상한 것 같은데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고,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되게 이상한 사람이고, 그런 사람 있잖아요.
맞아요. 분명 쎄한 느낌은 있는데, 그 사람의 의도가 명백하게 드러나거나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는 건 아니죠.
사람들이 그냥 ‘내가 예민한가?’ 하고 생각하는 경우들이 되게 많잖아요. 그런데 의도적으로 그러는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거죠. 저도 예전에는 ‘어떻게 하다가 그렇게 된 거겠지, 내가 너무 예민한 거겠지’ 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거든요. 진짜로 나쁜 사람인 게 티 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굉장한 권력가라든지. 그렇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은 그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의도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딱히 목표가 있지 않아도, 그냥 사람들한테 공격적이고 해롭게 행동하는 경우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았어요. 인간관계라는 게 그럴 수 있다는 걸, 저 같은 경우에는 약간 깨달은 것 같아요.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에 대한 책을 읽게 된 이유가 있었나요?
그냥 궁금해서요(웃음). 예전부터 연쇄 살인범이나 그런 사람들에 대한 책을 찾아보는 걸 좋아했는데, 너무 이입을 하면 무서우니까 안 읽었었어요. 그런데 비슷한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책이 되게 많은 거예요. 미국, 영국, 캐나다 같은 곳에서는 이런 타입의 사람들에 대한 연구가 많이 되고 있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영미권 사회의 가장 안 좋은 모습, 극단적인 모습을 다룬 것 같아서 사회적인 연구 같기도 하고요. 개인주의나 자본주의적으로 굉장히 발전을 하면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큰 폭력성이나 이기심 같은 게 드러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책을 읽으면서 인간 사회에 대해서 되게 다르게 보게 된 것 같아요.
책 뒤편에 황예인 문학평론가와의 대담이 실려 있죠. 황예인 평론가가 “이 인물을 보며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자신과 닮았다고 여기는 독자들도 있을 것” 같다고 했어요. 실제로 소설을 읽으면서 많이 놀랐는데요. 내 안에도 그런 섬뜩한 마음이 조금은 있는 것 같은 거예요.
평범한 사람들도 너무 화가 나면 ‘저 사람이 잘못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죠. 그런데 그냥 생각으로 그치지, 계획을 세워서 무언가를 하지는 않잖아요. 그 점이 되게 다른 것 같아요. ‘나’와 같은 사람들은 자신한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장애물도 아닌 사람들한테 굳이 그 생각을 실행하잖아요. 생각을 한 것과 실행을 한 것의 차이는 엄청난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나쁜 거라고 여기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어떤 물건을 보고 갖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과 진짜로 훔쳐서 집으로 가져가는 건 너무 다른 거잖아요. 그 경계가 되게 큰 것 같아요. ‘나’는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실제로 하는 거니까 문제가 있는 거고요. 생각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인 거죠.
‘나’를 제삼자의 시선에서 바라보지 않았어요. 일인칭 시점에서 이야기를 하게 만들었는데요. 왜 그렇게 하셨어요?
굉장히 오랫동안 연구하고 계획해서 쓴 이야기가 아니고요. ‘이런 타입의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할까?’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가볍게 썼어요(웃음). 어떻게 보면 일인칭 작업이 제일 단순하니까 선택한 것도 있고요. 그런 사람에 대해서 책을 읽고 생각을 하면서 ‘이런 사람이겠거니’ 하고 관념적으로는 알아도, 실제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갈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는 거예요. 일인칭 시점에서 그려보면서 실제로 그 사람이 되어 보면 약간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런 점에서 일인칭 시점으로 그리는 게 개인적으로 부담이 덜했던 것 같아요(웃음).
주인공이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박세영’을 만나게 되죠. 재능 있는 학생인데 ‘나’는 세영을 파멸시키고 싶어 해요. 이유가 뭘까요?
모르겠어요... ‘나’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가르친 학생들 중에서 유일하게 먼저 접근을 해온 거잖아요. 호의를 가지고. 사실 다른 학생들은 별 관심 없이 그냥 수업을 들은 거고요. ‘그냥 그 여자애가 나한테 왔으니까, 먹잇감이 자기 발로 기어왔으니까, 안 잡아먹을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처음 ‘나’가 세영이를 보게 된 게, 수업 시간에 세영이가 제이디 스미스의 소설을 가져왔을 때거든요. 자꾸 눈에 띄는 행동을 하는 거예요. 따로 만나기도 하고 메일도 보내고, 그런 행동들을 했단 말이에요. 세영이 입장에서는 복합적인 마음이 있었을 것 같아요. ‘나’가 멋있어 보이니까 친해지고 싶기도 하고, 왠지 저 언니는 자신이 쓴 글을 알아봐줄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여러 가지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주인공 입장에서는 완전히 그냥 먹잇감으로 본 거죠. 어쩌면 자신에게 그런 식으로 접근한다는 것에 대해서 경멸적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나’가 가진 교양 있는 이미지는 스스로 만들어낸 거고, 사실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없는데, 세영이가 그걸 보고 다가왔을 때 그 여자 아이가 너무 하찮게 보이는 거예요. 내가 사기를 쳤는데 넘어온 거잖아요. 사실 ‘나’는 열등감 같은 것도 되게 많은 사람인 거고, 그래서 자신을 좋아하는 세영이가 좋아 보이지 않는 거죠. 되게 꼬여있는 사람인 거예요.
일종의 다단계 같은 느낌이에요
주인공은 “도시에서 가장 쉽고 싸고 안전한 것”이 인간이라고 말해요. “온갖 일에 써먹을 수가 있는 요상한 생명체”라고요. 인간을 수단으로 여기고, 돈으로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데요. 이런 인간형이 탄생한 데에는 사회가 미친 영향도 있을까요?
어느 것이 먼저인지는 모르겠는데, 사회가 이런 사람들이 살기에 최적화 되어 있는 부분은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사람들은 타인을 수단으로 보고 이용 가치로 판단하는데, 개개인한테 전혀 감정이입을 하지 않고 하나하나의 이용할 대상으로 보면 되게 편리할 것 같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는 ‘인적 자원’이라는 표현을 쓰잖아요. 실제로 사회는 그런 방향으로 많이 나아간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 사람들한테 제시하는 삶의 방식이 ‘나’가 말하는 것과 자꾸 겹치니까, 그게 맞는 말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많은 것 같고요.
선배 ‘김지영’의 이야기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어요. “세상 사람들이 다 내 불행을 바라는 것 같아”라고 말하면서, 암 투병 중인 ‘민희’를 만나러 가자고 하잖아요. ‘민희’를 만나고 난 뒤에는 훨씬 더 가볍고 편안해 보이고요. “자신의 불행을 가릴 커튼”이 필요했던 건데, 낯설지만은 않은 감정이에요.
사실 많이들 그럴 것 같아요.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되게 나쁜 사람이고 나쁜 행동을 하는데 ‘김지영’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태연하게 그런 행동을 하는 거예요. 그런 부분들이 주인공이 ‘그것 봐라,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한다’고 하면서 자신감을 갖게 되는 부분이죠.
‘나’와 4년 동안 연애했다가 헤어진 남자친구 ‘성연우’는 이런 말을 해요. “너는 완전히 제로야. 완전히 텅 빈……” 어쩌면 ‘성연우’가 주인공을 간파했다고 볼 수도 있는데, 그게 ‘나’에게는 가장 큰 공포였을까요?
아니요, 별로 그러지 않았을 것 같아요(웃음). 이런 사람들의 문제가 학습 능력이 없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자신이 어떤 사람한테 나쁜 행동을 했는데 통하지 않았어요. 그러면 ‘아,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하면 안 통하는구나’ 하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학습이 없대요. 그냥 ‘안 통했구나’ 하고 다음 사람한테 또 똑같이 하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뭔가가 결여된 사람들 같기도 하고, 동시에 그래서 되게 잔인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황예인 문학평론가와의 대담에서 “현실에서는 이런 식인적 행위가 상호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단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하셨어요. “피라미드식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요.
원래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요즘에는 그런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어떤 분야든지요. 예를 들어 대학원에 간다고 하면, 솔직히 요즘에는 대학원을 졸업한다고 해서 다음 단계로 가거나 교수가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대학원 사회 안에 들어있는 거잖아요. 계속 대학원을 다니고 그 근처에 머무르거나 ‘나’의 경우처럼 대학원이라는 사회 안에 본인도 들어가고 또 새로운 신입생이 들어오고... 일종의 다단계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어떤 분야든 요즘에는 성공하는 사람은 너무 극소수잖아요. 아이돌의 경우도 그렇고, 영화판도 비슷하죠. 성공하는 사람은 진짜 적고 대부분은 그냥 그 판 안에 있는 거잖아요. 직장인의 경우는 잘 모르겠는데, 많은 경우에는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생각도 한 것 같고요.
“그런데 요즘 사람들이 이런 단계적인 포식의 구조에서 자신이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에 많이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고 덧붙이셨죠. 그런 환상은 왜 갖게 되는 걸까요?
다단계 피해를 본 사람들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는데요. 되게 놀랐던 게, 의외로 명문대를 나오고 좋은 직장을 가진 사람들 중에 다단계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대요. 자기는 너무 똑똑하니까 피라미드의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남들은 못하지만 나는 할 수 있다는 거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싶으면서 너무 신기했어요. 예전에 제가 친구한테 『88만원세대』를 추천한 적이 있었어요. 물론 성공적인 삶을 사는 친구이기는 했는데, 책을 읽고 나서 들려준 감상평이 ‘나는 여기에 안 들어간다’는 거였어요. 그렇게 생각할 법도 하지만, 그런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어떤 종류의 자신감이 있다는 거잖아요. 되게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나 봐요. 그래서 피라미드식 구조도 돌아가는 거겠죠. 자신은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뛰어드는 거고, 그런데 많은 경우 주변에서 보기에는 안타까운 거죠.
0, 신비로운 숫자 같아요
‘박세영’은 피식자가 되기에 너무 좋은 위치에 있잖아요. 어리고, 사회 경험도 없고, 혼자이고... 세영이를 보면서 어떤 감정이 드셨어요?
저는 예술대학교를 나왔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예술가 지망생들이나 그와 비슷한 동기들이 주변에 많아요. 아트 스쿨 같은 곳이, 겉보기에는 어때보일지 몰라도, 그 안에서는 경쟁이나 질투가 심한 것 같아요. 사실 재능을 가진 사람은 소수거든요. 그런 사람들은 티가 나요. 그러면 집단적인 시기가 장난 아니죠. 엄청나게 눈치가 빠르거나 생존 본능이 강하지 않으면 그 안에서 적응해서 성공하기가 힘들어요. 진짜 반짝거리던 아이들이 많은 경우 좌절하는 거죠. 그런 걸 많이 봤어요. 저도 학생일 때는 주변에 무서운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했고, 내가 봤을 때는 정말 이상한 충고를 해주는 선생님인데 다른 아이들이 그 말을 계속 듣는 걸 보면서 안타까웠던 경우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더 나이가 들어서 보니까, 조금이라도 권력을 가진 어른들 눈에는 그런 아이들이 너무 쉬워 보였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예술 학교 안에서 미투 운동도 벌어지고 있지만, 성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로 착취가 이뤄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부분에서 주인공과 세영이의 관계 같은 게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기성세대는 ‘박세영’ 같은 아이를 한눈에 알아보겠죠. ‘저 아이는 잘 구슬리면 내가 원하는 대로 손쉽게 움직일 수 있겠다’ 하고요.
그렇죠. 엄청난 통찰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위치의 차이인 거잖아요.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이니까 보이는 거죠. 주변에 자신보다 더 어리거나 약자인 사람들이 보이고, 그런 사람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이용하려고 하면, 그 유혹은 되게 강할 것 같아요. 평범한 사람들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많이들 그럴 것 같고요.
‘박세영’으로 대변되는 젊은 세대의 마음도 이해가 되죠. 재능이 있어도 경험이나 인맥은 부족하니까, 상대한테 조금 쎄한 느낌이 들어도 붙잡을 수밖에 없는 거죠.
맞아요, 그렇죠. 실상은 완전히 썩은 동아줄인데... 그래도 잡는 거죠.
‘김사과의 소설은 세다’는 평가가 있었던 것 같아요. 폭력에 대한 묘사도 강하고, 날 것 그대로 서술하기 때문에 그랬겠죠.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작가님의 작품이 예전과 많이 달라진 것 같나요?
어떤 부분에서는 그런 것 같아요. 예전에는 대놓고 자극적인 묘사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잘 안 그러거든요. 요즘에는 저 스스로도 잔혹한 장면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예전에는 관심이 많으셨던 건가요(웃음)?
굳이 관심이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혈기왕성한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드니까 자극적인 건 너무 힘들어요(웃음). 이제는 제 소설에 자극적인 것들이 노골적으로 나오지는 않는데, 이야기 자체는 더 살벌하거나 더 무서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조금 더 사실적인 게 많아진 것 같거든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결과적으로 더 강해졌을 수도 있는 것 같고, 많이 달라질까 싶기도 한 것 같아요.
스물한 살에 등단하셨잖아요. 자연스럽게 작가님의 작품이 ‘요즘 세대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졌어요. 이제는 ‘90년생이 오는’ 시대가 됐는데요(웃음). 이제는 작가님이 쓰시는 이야기들도 달라졌을까요?
예전에는 스스로도 그런 게 약간 있었던 것 같아요. 뭔가 무의식적으로, 내 세대의 이야기를 해야 될 것 같은 거예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것들에서 자유로워져서 훨씬 더 나이 든 사람의 이야기도 하고, 내 이야기도 하고, 더 어린 사람들의 이야기도 하고... 훨씬 더 폭이 넓어진 것 같아요.
이번 소설의 제목이 『0 영 ZERO 零』 이고, 앞서 산문집 『0 이하의 날들』 도 쓰셨어요. ‘0’을 반복적으로 쓰시는 이유가 뭘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되게 집착하는 것 같아요(웃음). 되게 신비로운 숫자라고 생각하나 봐요. ‘0’이라는 개념이 신기하잖아요. 없다는 뜻인데, ‘없다’는 걸 개념화할 수 있다는 게 되게 신기한 것 같아요.
0 영 ZERO 零김사과 저 | 작가정신
타인으로부터 얻는 맹목적인 신뢰, 이 세계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는 듯한 견자見者적인 태도, 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 ‘나’는 “개화, 문명화된 도시의 식인종”으로서 사냥감을 찾아 헤매고, 세련되고 우아한 태도로 은밀하고도 사소한 방법을 통해 타인의 삶을 불행에 빠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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