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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표가 아닌 쉼표의, 설리와 구하라

여성들은 나서서 묻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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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와 구하라의 삶은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간다. 놀란 마음에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일지언정, 멈춘 시간은 아니다. (2019.11.28)

설리-구하라.jpg

출처 : SM 엔터테인먼트 / DSP 엔터테인먼트

 

 

잘 웃는 여자애, 밝은 여자애, 예쁜 여자애. 설리와 구하라를 함께 떠올릴 때 쉽게 붙이는 수식어들. 독특한 여자애들의 이미지를 살린 에프엑스에서, 어린 설리는 ‘두잇 두잇 츄’, ‘꿍디순디’와 같이 괴짜 소녀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파트를 맡아 부르면서 내내 해맑게 웃었다. 2009년에 설리가 갓 열다섯 살을 넘기고 걸그룹 에프엑스의 멤버로 데뷔했을 때, 구하라는 한 해 먼저 카라에 합류해 열여덟 살의 사회인이 되어 있었다. 어린 구하라는 전형적으로 예쁘고 귀여운 여자애의 이미지를 대변했다. 언제나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애교스럽게 웃는 데 열심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들이 인상에 강하게 남은 시기를 꼽으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두 사람에게는 늘 밝고 예뻤던 시절을 벗어나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기 시작한 순간들이 있다. ‘구하라를 구하라’와 같은 시시껄렁한 말장난에도 누구보다 신나게 웃고, 농촌 일에 거침없이 나서서 활기차게 살아 움직이던 구하라를 보았을 때. 그리고 두 번째 정규 앨범 ‘핑크 테이프(PINK TAPE)’의 아트 필름에서 활짝 웃기 직전, 무표정하게 카메라를 응시하는 설리가 오싹한 기분을 선사했을 때 같은. 설리는 해맑은 표정을 짓기 전에 웃지 않는 얼굴이 먼저 존재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려주었고, 구하라는 억지로 애교를 부리는 대신 활기차게 자신의 일에 열중할 때 여성의 삶이 빛난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위와 같은 시기적 구별은 사실 큰 의미가 없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걸그룹, 그리고 여성 연예인이라는 정체성 안에서 움직여 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코앞의 선을 넘어보려고 애써도, 선을 넘어보려는 그들에게서 반짝반짝 빛나는 부분을 발견했다고 다른 여성들이 외쳐도, 고작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례하기 짝이 없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폭행과 협박을 가한 전 애인에게조차 피해자인 여성이 살려달라고 무릎 꿇고 빌어야 하는 견고하게 낡은 세계관은 흔들리지 않았다.

 

여성들이 나서서 묻기 시작한다. 잘 웃는 여자애, 밝은 여자애, 예쁜 여자애가 웃지 않아도, 밝지 않아도, 예쁘지 않아도 되는 날은 언제 가능할 거냐고. 그래서 설리와 구하라의 삶은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간다. 놀란 마음에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일지언정, 멈춘 시간은 아니다. 악성 댓글을 읽으며 자신의 뜻을 굽힐 생각이 없다고 말하던 설리의 단호한 표정은 지금 무수히 많은 젊은 여성들의 표정이다. 몸매를 신경 쓰지 않는 펑퍼짐한 바지를 입고 열정적으로 일하던, 끝까지 법정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 노력했던 구하라의 굳은 표정 역시 젊은 여성들의 것이 되어간다. 그러니까 1994년생, 1991년생 여성의 삶은 절대 끝난 게 아니다.

 

다만 더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없기에,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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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희아

전 웹진 IZE 취재팀장. 대중문화 및 대중음악 전문 저널리스트로, 각종 매거진, 네이버 VIBE, NOW 등에서 글을 쓰고 있다. KBS, TBS 등에서 한국의 음악, 드라마, 예능에 관해 설명하는 일을 했고, 아이돌 전문 기자로서 <아이돌 메이커(IDOL MAKER)>(미디어샘, 2017), <아이돌의 작업실(IDOL'S STUDIO)>(위즈덤하우스, 2018), <내 얼굴을 만져도 괜찮은 너에게 - 방용국 포토 에세이>(위즈덤하우스, 2019), <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우주북스, 2020) 등을 출간했다. 사람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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