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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64화 :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아져 간다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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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이 있는 노동자는 이 땅에서는 언제나 빨갱이가 된다. 수걱수걱 주는 대로 몇 푼 받고 일만 직사도록 하면 착한 백성이라고 한다. 노예라고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2019.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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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노동자가 높은 데로 올라와 사람들에게 자기 처지와 입장을 알아달라고 농성하게 된 것만 해두 엄청난 사회적 변화라구. 우리 할머니는 늘 그렇게 말했어. 어쨌든 세상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아져 간다고.”

 

진오의 말에 김지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 우리 젊었을 적에는 노조는커녕 쟁의나 파업을 의논만 해도 아니 누군가 동료에게 그런 얘기만 속삭여도 잡혀갔어. 그래서 교회나 성당으로 찾아가 우리를 보호해 달라구 그랬던 거야. 빨갱이 누명 쓰지 않을라구. 너는 집시법 위반이었지? 감옥 갔던 게……”

 

 “한 겨울 나고 나왔어. 누나는 툭하면 대공 분실 잡혀가고 두 번이나 징역 살고 오 년 동안 잠수했잖아. 그동안 우리는 눈치코치 보다가 뒤늦게 시작했으니까.”

 

치안본부 대공 분실에서 젊은 대학생이 고문 도중에 목숨을 잃었고 나중에 여론의 압력으로 그 건물 전부가 폐쇄되기 전에는 노동쟁의의 주모자들은 그곳을 고문공장이라고 불렀다. 지숙이 누나가 다른 남자 동료들과 그곳에 끌려갔을 때 여성인 그녀만 분리되었다. 시멘트벽에 흰 페인트칠한 방에는 책상 하나 의자 두 개 그리고 군용 목침대가 전부였고 바로 옆에 화장실이 붙어 있었다. 제법 넓은 화장실에는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욕조가 놓여 있어서 무슨 모텔의 특실처럼 보였다. 그러나 욕실에 물을 채우면 그곳은 죽음의 장소로 돌변했다. 선배들 말에 의하면 그들이 저지르는 갖가지 고문들은 모두 일제 강점기부터 전해 내려오던 기술들이라고 했다. 전극을 발 뒤꿈치에 대면 충격이 장딴지를 타고 올라와 뱃속의 내장을 흔들고 척추에 거미줄처럼 집결한 신경 줄을 찢어발기고 머릿속에서 폭발한다. 두 사내가 그녀를 욕조 물속에 거꾸로 처박고 아예 물을 먹이거나, 아니면 앉혀놓고 손수건을 얼굴에 덮고 주전자의 물을 천천히 흘리면 젖은 천이 얼굴에 찰싹 달라붙어 숨이 막히고 코와 입으로 물이 들어오면서 질식했다. 발가벗겨 칠성판에 눕히고 물을 끼얹고 전극을 대기도 했고 사지의 관절을 뽑아 방치했다가 다시 맞추기도 했다.

 

대공 분실을 거쳐 나온 이들은 고문의 무서움 보다 더한 모멸감과 수치심 때문에 진저리를 쳤다. 무릎 꿇고 울부짖고 빌면서 네네, 무엇이든 불러주는 대로 받아썼다. 그들의 실직 굶주림 가난 야근 피로 질병 따위의 자세한 고통들은 간단하게 개인사정으로 지워져 버렸고, 혁명 투쟁 평양 김일성 간첩 같은 엉뚱한 단어들로 조서가 채워졌다. 수사관들도 그들의 파업이나 쟁의 목표가 좀 더 나은 임금과 노동환경을 요구하는 일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대공문제로 끌고 들어가는 것이 오랜 수사기법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정부가 설립한 부서의 이름도 대공 분실이었다.

 

 “잠수 탔을 때에 제일 힘든 게 뭔지 아니?”

 

지숙이가 묻자 진오가 말했다.

 

 “해고당했던 날이 생각나네. 갑자기 세상에서 쫓겨난 거 같더라구. 쓸모없다구 버려진 거잖아.”

 

 “그래 폐기처분 된데다 수배자라는 사회적 죄까지 짊어지게 된 거지. 제일 힘든 건 외로움이야.”

 

이진오는 지금 굴뚝 위에서 자신이 겪고 있는 외로움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동료들이 어김없이 나타나 매 끼니의 밥을 올려주고 바깥소식도 알려줄 때마다 자신을 다잡고 추스르게 되었지만 그것은 무서운 일상 속에 먹혀버렸다. 갑자기 내가 지금 무슨 소용없는 짓을 하고 있냐는 반문이 목구멍까지 차올라왔다. 혹한의 겨울밤에도 저 굴뚝 아래 아파트와 건물 빌딩들의 빛나는 창문들과 강변도로 위를 끊임없이 흘러가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물결을 볼 때마다 세상은 언제나 그냥 무심하다는 걸 실감한다. 그는 버려지거나 잊힌 것도 아니고 그냥 가로수보다도 못한 관심 밖의 미물에 지나지 않았다. 지숙이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옛날 수배 중에 고향 마을로 찾아갔던 일이 생각난다.”

 

 “그래 나두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아.”

 

지숙이 어느 결에 신작로를 따라 앞서서 걸어가고 있었고 진오는 그녀의 뒤를 따라 걸었다. 해가 등 뒤에서 저물고 있었고 신작로는 비포장 도로였다.

 

 “누나 갑자기 고향집엔 왜 찾아간 거요?”

 

진오가 묻자 지숙이 대답했다.

 

 “첫 번째 옥살이는 일 년 이 개월 만에 때우고 나왔어. 일하러 다닐 적에는 감기 한번 앓지 않았는데 웬일인지 몸이 쇠약해진 거야.”   

 

지숙은 수배자가 되어 이일 저일 닥치는 대로 하며 돌아다니다 보니 끼니도 거른 적이 많았고 과로하게 되는 날도 많아서 독감에 걸렸다. 호되게 앓고 나서 회복이 되었다 싶은데도 잔기침이 그치질 않았다. 노조 지부의 동료들 도움으로 병원 진단을 받아보니 결핵 초기였다. 결핵이 사회에서는 아예 자취를 감춘 병이라더니 과로에 영양이 부실하면 신체의 면역력이 떨어져서 누구나 걸릴 수 있다고 했다. 약을 타다 먹기 시작했는데 쉬면서 잘 먹어야 한다지만 언제 어디서 잡혀갈지 모르는 불안한 처지에다 숙소도 연탄을 때는 작은 쪽방이어서 공기도 좋지 않았다. 그녀는 절실하게 충청도 고향집 생각이 났다.

 

고향에는 어머니가 살아 계셨고 사남매의 형제들이 먹고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지만 작은 오빠가 집에 남아 비닐하우스를 돌보며 남아 있었다. 시외버스를 타고 청양까지 가서 신작로를 따라 흘러 내려오는 지천의 상류로 이십 여리를 걸어 올라가면 물안골이었다. 마을은 빈집이 많아졌고 집집마다 노인들뿐이었다. 그녀는 마을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려고 일부러 늦은 저녁 시간에 찾아 들었는데 아직도 마을길에는 가끔씩 사람들이 나다니고 있어서 어두워질 때까지 동네 앞산 언덕에 앉아 기다렸다. 어두워진 뒤에 사람들이 저녁 밥상 앞에 모여 앉았을 즈음에야 한적해져서 그녀는 집을 찾아 들어갔다. 진오도 지숙이 누나의 조심스런 걸음걸이를 따라 그 집으로 들어섰다. 낯선 개가 컹컹 짖었고 일자집의 가운데 방문이 열리면서 오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요?”

 

지숙은 마루로 다가갔다.

 

 “저예요, 지숙이에요!”

 

그의 대답에 오빠의 뒷전에 앉았던 엄마가 앉은 채로 문지방을 넘어 마루로 기어 나왔다.

 

 “누구? 지숙이라구?”

 

오른쪽 끝의 부엌에서 올케가 나왔고 밥을 먹고 있던 두 조카 남매도 마루로 뛰쳐나와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모녀를 바라보았다. 식구들이 모두 밥상 앞에 둘러앉고 진오는 벽 쪽에 선채로 이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형광등의 창백한 불빛 아래 지숙은 어린 계집아이가 되어 엄마의 밥 시중을 받고 있는 중이다. 국도 새로 데워 내오고 밥을 푸고 수저를 쥐어주고 엄마는 그녀가 좋아하는 비린생선 자반고등어를 젓가락으로 떼어 밥술 위에 얹어준다.

 

 “우리 손주가 읽어주는 편지로만 만나다가 이렇게 다 커버린 내 딸을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냐.”

 

처음 보는 올케와 조카들을 오빠가 소개하고 인사를 시키고 드디어는 마당의 황구 돌쇠까지 소개를 마쳤다. 장면이 바뀌고 지숙은 부엌 옆에 딸린 작은 방에 가서 누웠는데 기침 소리가 들린다. 오빠가 들어온다. 그의 새카맣게 볕에 그을린 얼굴 가운데서 눈만 빛이 난다.

 

 “너 또 사고 쳤냐?”

 

 “별 일 아녜요. 금방 풀릴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다만 며칠 전에도 왔더라.”

 

 “누가요?”

 

목소리에 짜증이 섞인 말투로 오빠가 말했다.

 

 “누구긴 누구야, 읍내 정보과 형사지.”

 

 “그치들이 여기까지 와요?”

 

 “낸들 아냐? 니가 빨갱이 물이 들었다면서 혹시 소식 온 게 없냐고.”

 

진오는 지숙의 등 뒤에 앉아서 우리 식구들은 평생 저 소리를 듣고 살았다고 생각했다. 의견이 있는 노동자는 이 땅에서는 언제나 빨갱이가 된다. 수걱수걱 주는 대로 몇 푼 받고 일만 직사도록 하면 착한 백성이라고 한다. 노예라고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작은 오빠가 말한다.

 

 “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니가 용접기술자가 되었을 땐 나두 너무나 부러웠고 이렇게 시골에 처박혀 살아가는 게 후회가 되기도 했다. 헌데 무엇 때문에 그 좋은 직장에서 짤리고 감옥 가고 빨갱이 소리 들으면서 고생을 하구 다니는지.”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 지 이건 너무 긴 이야기라 할 수가 없어요. 다들 살아가기 힘들죠. 그렇지만 힘들게 일하면 일한만큼 대우를 받아야 해요.”

 

 “나두 비닐하우스에 상추 고추 푸성귀 길러서 넘기고 나면 우리 식구 품값도 안 나올 때가 너무 많다. 어느 해는 수지를 맞추고 어느 해는 값이 폭락해서 그냥 들에 내다 버리기도 한다. 그게 모두 운수소관이려니 생각하구 살지.”

 

 “그게 다 장사꾼들 좋은 일 시키는 거죠. 우리는 큰 장사치들 하구 싸우는 거예요. 그 자들은 돈 밖에 몰라요. 사람 생각은 안 해요. 힘 있는 것들도 돈 가진 놈들 편이구요.”

 

 “그래도 밥 굶지 않으면 다행 아니냐?”

 

 “오빠, 나 좀 아파요. 며칠 쉬어갈까 하구 왔어요.”

 

오빠는 한숨을 쉬더니 천정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이 동네 이장이다. 남의 눈을 봐서라두 낼이나 늦어두 모레까진 너 집에 왔다구 신고해야 한다.”

 

지숙은 오빠의 말이 서운하지는 않았다. 옛날에도 공장에서 농성할 적에 경찰은 부근에 사는 여공의 가족들을 데리고 와서 그들이 끌어내도록 시켰다. 엄마와 딸이 오빠와 누이동생이 서로 외치고 끌어내고 하는 광경을 그들은 먼발치에서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튿날은 하루 온 종일 방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고 마당에 나가서 돌쇠의 머리를 쓰다듬어 볼 겨를도 없었다. 이틀 밤을 자고 지숙은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에 물안골을 떠났다.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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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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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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