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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서가 특집] 출판인 4인의 ‘내가 꿈꾸는 서재’

<월간 채널예스> 201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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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해서 책을 만들지만, 언제나 꿈은 오롯이 독자로 책을 마주하는 일이다. 출판인들에게 물었다. 당신이 꿈꾸는 서재의 풍경은 어떤 모습인가요? (2019. 11.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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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정 녹색광선 대표
 

 

나는 몇 평 되지 않는 작은 서재를 가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책을 사는 속도는 늘 책을 읽는 속도를 추월하고, 쌓여만 가는 책들을 수용할 공간은 늘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 마법이 일어나 서재가 지금보다 20배 정도로 팽창한다면? 나의 재력이 무한대라고 가정하고,(어차피 상상에 제한을 둘 필요는 없으니까) 우선은 어린 시절 책으로 집을 지어 놀곤 했던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들’ -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 딱따구리 그레이트북스, 삼중당문고, 에이브(ABE) - 을 어떻게든 몇 세트씩 구해서 상한 부분을 복원하여 가장 눈에 띄는 책꽂이에 꽂아 놓을 거다. 그 다음엔, 이미 절판된 희귀본 한국문학전집과 세계문학전집을 헌책방에서 모조리 구해 소장할 것이다. 
 
서재의 가장자리를 따라 책꽂이를 비치하고 책들을 가득 채운 후에는 서재 가운데 비어있는 공간을 채워야 할 텐데, 나와 내 지인들이 가장 편안하게 책을 볼 수 있는 장소들을 준비할 것이다. 예를 들면, 소파, 침대 매트리스, 긴 탁자와 의자, 빈백 쿠션, 야전 침대, 텐트, 이동식 욕조, (독서등이 포함된) 비행기 좌석을 놓아둘 것이다, 필요하다면 후미진 방구석까지도.
 
일주일에 단 한 번, 이 서재를 지인들에게 개방할 것이다. 그 시간 동안은 서로에게 말을 거는 것은 금지다. 각자 가장 편안한 자리를 찾아 자신의 기억을 끌어낼 수 있는 독서를 하면 된다. 모두가 가장 적절한 장소와 책을 찾아낼 것이라고 확신한다. (박소정 녹색광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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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규 포도밭출판사 대표

 

먼저 할 일은 200평쯤 되는 부지를 매입해서 건물을 짓는 것이다. 이 일부터 되도록 관심 있는 지인들과 같이 하면 좋겠다. 나는 건물 설계 과정에 이런 아이디어를 낼 것이다. 많은 방을 만들자. 인류학 책들만 모으는 방, SF 책들만 모으는 방, 페미니즘 책들만 모으는 방, 그림책만 모으는 방처럼 특정 분류의 책들만 모을 수 있는 수십 개의 방을 만들자고. 이런 식이라면 벌써 서재라기보다는 도서관에 가까운데, 내가 꿈꾸는 서재는 분명 개인 서재라기보다는 도서관 혹은 책이 많은 마을학교에 가깝다. 각 방에 어떤 책을 들여놓을지를 정하는 일은 관심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맡아주면 좋겠다. 독립적으로 수서도 하고 운영도 맡는다. 방들에서는 수시로 독서모임이 열린다. 여러 관심사를 가진 누군가는 여러 방을 오갈 것이고, 하나의 주제를 파는 사람은 한 방에 오래 머물 테다. 각 방은 아주 넓은 편은 아니라서 조금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린다면 다른 사람이 어떤 책을 읽는지 눈치 챌 수 있다. 자신이 읽은 혹은 읽으려는 책과 겹친다면 어느 날 가볍게 인사를 건네며 책의 소감을 나눌 수 있으리라. 그런 우연찮은 만남 덕분에 괜찮은 독서모임이 또 하나 만들어진다면 소득이다. 이 공간을 찾는 사람들은 책뿐만 아니라 책 읽는 사람들을 만나는데 이 경험이 그를 어디로 데리고 갈지는 모른다. (최진규 포도밭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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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진 위즈덤하우스 편집자
 

 

영화를 볼 때 배경에 등장한 책과 책장에 눈이 머물러 내용을 놓칠 때가 종종 있다. 특히 서가가 끝내주면 영화가 배로 좋아진다. 인상적인 서가가 등장하는 영화로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이 압도적 1위. 여러분 이 집 서재 보셨습니까. 보셔야 합니다. 완벽한 꿈의 서재. 우선 아버지가 사용하는 메인 서재는 벽이 책으로 가득하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고풍스러운 책상과 편하게 기대 책을 읽을 수 있는 소파, 토론이나 대화를 할 수 있는 손님용 의자도 하나하나 탐나는 물건들. 그런데 압권은 서재 밖에 있다. 집 안 곳곳 어디에나 아무렇게나 책이 놓여 있다는 것. 침대 위에 협탁 위에 1인용 소파 위에 붙박이 벽장에 창가에 바닥에. 책이 빛처럼 바람처럼 굴러다니는데, 그대로 영화 속에 들어가 어디서나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다 잠들고 싶었다. 게다가 책을 받쳐주는 배경들, 짙게 바랜 색이 우아함 그 자체인 고가구들, 페르시안 카페트, 훌륭한 조명…. 그러다 이 모든 물건을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개인적으로 모았다는 것, 그 또한 애서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의 집 인테리어까지 찾아보기에 이르는데. 네, 덕질을 좀 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은,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님, 제 서재 인테리어 좀 해주세요. (최연진 위즈덤하우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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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옥 어떤책 대표
 

 

“쿵!” 하고 벽이 울리자 책이 쏟아질까 두려웠다. 책꽂이 위로 천장까지 쌓여 있는 책탑들이 늘 아슬아슬했는데 옆방에 새로 출판사가 이사오면서 요며칠 이삿짐이 자주, 힘차게, 가벽을 강타했다. 여기는 십수 개의 작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사무공간. 방 하나마다 1~3인의 출판사들이 들어차 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쓰는 방은 가장 작고, 그만큼 공간 대비 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나도 처음에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했다. 부모님 댁 방 한 칸에서 일하다가 얻게 된, 당당히 월세 내고 쓰는 첫 사무실이었으므로 잘하고 싶었다. 하지만 작년에 집 이사를 계획하면서 우리가 새로 얻게 된 공간에 비해 책이 너무 많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십 권을 중고서점에 되팔거나 재활용으로 내놓아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뭉텅이로 책을 덜어내지 않으면 영원히 이사가 끝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소설, 예술서, 어린이책, 만화책, 과학책은 집에, 에세이, 인문서, 디자인서는 사무실로, 장르별 위치 배분은 그나마 수월한 편이었다.
 
그렇게 책이 4분의 3으로 줄었지만 지금 거실은 양쪽 벽을 책이 꽉 채우고 있다. 거실 폭 60센티미터가 줄어든 것이다. 다른 건 생각해 볼 수 없다. 내가 꿈꾸는 서재는 오늘 산 책들을 바로 꽂아 넣을 수 있는 공간이다. (김정옥 어떤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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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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