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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48화 : 경의선으로 발령이 났는데요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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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함께 화물차량 홈으로 나갔고 대기 중인 기관차로 향했다. 선로 위에 그들이 경부선에서 몰던 미카도 형이 아닌 대형 탱크형 기관차가 서있었다. (2019. 0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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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경찰은 제사공장 세 곳 중 두 군데에서 독서회 회원 열다섯 명을 체포해 왔고 처음에 연행 되었던 독서회 주동자가 이들 모두의 조직 책임자로 드러났다. 아마도 이들은 위급한 상황에 대비하여 최초에 체포당한 사람이 모든 책임을 지기로 정해져 있을지도 몰랐다. 이러한 사건에서 대부분의 평회원들은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다음에는 충실한 황국신민으로 살아가면서 성실하게 근로하며 살아가겠다, 독서회에 들게 된 것을 후회하고 참회한다, 정도의 반성문을 쓰고 기소유예 또는 훈계방면 되는 길을 택했다. 그러나 이들 중에 몇몇은 다시 조직의 지침이 오거나 선이 닿으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감당해내곤 하였다. 주동자는 만신창이가 되어 공장에서 해고당하고 재판에 넘겨져 일 년 육 개월의 징역형을 받았다. 
          
최달영은 고등계에서 야마시타 조의 잠복근무와 적색노조 독서회 검거의 성과로 우수한 근무 평가를 받았다. 그들은 다시 영등포 관내에서 있었던 노동쟁의의 주동자 및 관련자들을 사찰하는 것이 긴급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최달영은 지난 사건의 서류를 뒤지다가 안대길 방우창 등의 이름을 찾아냈고 안대길은 복역 중이며 방우창은 주소지 불명으로 나왔다. 그는 보조 밀정들을 풀어 방우창의 소재를 파악하게 하고 자기도 은밀하게 그를 수소문하고 다녔다. 최달영은 이제 자신을 버젓하게 야마시타라고 자처하고 다녀서 본서에서는 일본인 상관들은 물론 조선인 보조들도 모두 그를 야마시타 상이라고 불렀다.

 

야마시타는 마루보시 동네에 박아둔 정보원에게서 방우창의 소재를 확인하게 되었다. 정보원은 역전 화물계의 일용 일꾼이었는데 작년에 절도죄로 큰집에 다녀온 녀석이 같은 감방에 있던 주의자를 밥집에서 보았다고 그랬다는 것이었다. 그가 사람이 좋고 사식이 들어오면 방안의 복역수들에게 차별 없이 나누어 주곤 하여 모두들 그를 존경했다면서 그런 사람도 막일 잡부나 하면서 살아야 하는 세상이 참 못됐다는 이야기를 덧붙이기까지 하더란다. 야마시타는 서류에 붙은 사진으로 방우창의 얼굴을 익히고 정보원이 말하던 동네의 일세 방을 운영하는 함바집을 뒤지고 다녔다. 함바집이라고 해야 서너 군데에 지나지 않아서 그는 며칠 지나지 않아서 방우창을 발견했다. 야마시타는 헌 작업복 차림에 목에 더러운 수건 두르고 일세 방을 한간 얻어 방과 같은 집에 거처를 정하고 그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김형신의 연락 레포 청년이 방문하는 것을 보고 기회를 보던 그는 방을 미행했고 국제선의 중앙이었던 김형신을 검거하게 되었던 터였다. 이제 그는 보조를 떼고 정식으로 고등계 형사가 되었다.

 

초겨울 무렵의 어느 날 이일철은 용산역 중앙사무실에서 화물차 시간표를 보고 자신의 이름이 빠진 걸 발견했다. 일철이 당황하여 차량계의 직원에게 물으니 그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리 저리 서류를 들쳐보고는 그에게 말했다.

 

 “아, 여기 있군요. 남대문 역으로 가시오. 경의선으로 발령이 났는데요.”

 

직원이 일철에게 서류를 뽑아 보여주면서 다시 말했다.

 

 “기관수가 야마구치 타로오 상 아닌가요?”

 

 “맞습니다.”

 

 “벌써 며칠 전에 통보했을 텐데 그 사람이 잊어버렸던 모양이군요.”

 

일철은 철로가로 나아가 한 정거장 위인 남대문 역 방향으로 천천히 진행 중인 아무 기관차나 손을 흔들어 세우고는 올라탔다. 남대문 역이 즉 경성 역이었는데 현장 직원들 사이에서는 예전에 부르던 이름으로 그냥 그렇게 불렀다. 더구나 서울역이라는 역 이름은 해방이 되어서야 부르게 될 이름이었다. 일철이 역으로 가서 중앙사무실에 들러보니 과연 그는 야마구치와 더불어 경의선 화물차에 발령을 받고 있었다. 원래의 규정이 출근 시간은 운행 두 시간 삼십 분 전이니까 아직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그가 화물차량이 머물러 있는 폼으로 가서 운전계 대기실에 가보니 야마구치는 아직 보이지 않았고, 그 대신 다른 중년 사내가 몇몇 기관수들과 앉아 있다가 주뼛거리며 들어서는 일철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자네 이군인가? 야마구치 조의…….”    

 

 “그렇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노선을 인계할 기관수다.”

 

 “잘 부탁합니다.”

 

 “야마구치 상이 노련한 기관수니까 잘 해낼 것이라고 본다. 자네 총독부 철도원 양성소 출신이더군. 어느 선을 탔나?”

 

 “예 경인선 경부선을 탔습니다.”

 

 “호오, 그 정도 경험이면 기관수를 맡아도 충분하겠구나!”

 

마에다는 나잇값을 해서 그런지 너그럽고 점잖은 편이었다.

 

삼십 분쯤 지나서 야마구치가 운전계 대기실로 들어섰다.

 

 “오, 이군 미안하다. 내가 그저께 퇴근하면서 자네에게 발령 소식을 알려주었어야 하는데. 마에다 상과는 인사를 했겠지?”

 

그들은 함께 화물차량 홈으로 나갔고 대기 중인 기관차로 향했다. 선로 위에 그들이 경부선에서 몰던 미카도 형이 아닌 대형 탱크형 기관차가 서있었다. 야마구치와 이일철이 경부선 구간에서 몰던 미카도 형이 총 중량 50 톤에 기통 견인력이 4만 파운드였다면, 경의선 화물열차의 대종을 이루고 있는 탱크형 텐다 기관차는 최대 88톤에 기통 견인력이 4만 천오백 파운드에 달하는 거구였다. 텐다 기관차는 나중에 배치되기 시작한 산악형 마터 기관차와 함께 산악지대와 장거리 수송에 유리한 대륙형 기관차들이었다. 이들 기관차는 모두 자동 연결기와 공기 제동기 및 공기 펌프를 갖추었다. 텐다 기관차 가운데 대형은 거의 자동 개폐식 화구문에 역전기를 갖추고 있어서 승무원의 안전과 노고를 덜어주고 운전의 안전과 정확성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또한 신식 장치로는 자동급탄기가 저탄고 바닥에서 화구 안쪽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화부가 지켜 서서 삽으로 퍼 넣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연결된 파이프 안에서 나선형의 바퀴가 돌아가면서 석탄을 자유자재로 화구 안에 쏟아 넣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기관실에는 기관수와 기관조수 두 사람이면 되었고 화부는 필요 없게 되었다.

 

경부선의 특급 여객열차 ‘아까쯔기’ 호는 새벽이란 뜻으로 최고 시속 110킬로에 평균 시속 70에서 90을 유지하며 여섯 시간 만에 주파해냈다. 화물열차의 경우에는 정차역이 여객열차보다 적었지만 고속을 유지할 필요보다는 화물의 안전 수송이 목표였으므로 여덟 시간 정도가 동일한 거리에 소요되는 시간이었다. 따라서 경성에서 의주까지 화물열차는 열 시간 정도 걸렸을 것이다.

 

화물열차의 운행시간이 주로 야간이어서 기관수에게는 중노동이었다. 대체로 평야지대인 황해도를 지나 평안도로 올라가면서 산악지대를 통과하게 되니 많은 다리와 터널을 거쳐야 했다. 마에다가 미카도 형과 다른 점들을 지적하며 설명했고 야마구치와 일철은 텐다의 보다 진보된 기계장치들을 확인했다. 급수와 급탄을 끝내고 마에다가 직접 가감기를 잡고 당겼다가 밀었다가 하면서 천천히 화물 홈으로 몰아갔다. 덜커덩하는 소리와 함께 기관차가 화물차량에 연결되었다. 마에다 기관수는 우선 삐익 하는 기적소리를 내고는 증기를 길게 내뿜고 나서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일철은 오른쪽 계단에 내려서서 한쪽 팔을 내밀고 홈의 끝을 바라보았다. 통패를 쳐들고 섰는 선로계의 역원이 보였다. 일철은 아주 능숙하게 통패의 원형 가죽고리를 잡아챘다. 처음에는 팔을 내밀어 고리 안으로 끼워서 잡아챘는데 그때마다 팔뚝을 채찍으로 맞는 것 같은 고통과 상처가 생겼다. ‘줄 선다’는 신입 기간이 끝나고 일철은 한 달 만에 통패를 잽싸게 낚아채기 시작했던 터였다. 가죽고리의 아래쪽에 달린 작은 지갑 속에는 이 기관차의 통행증이 들어 있었고 구간은 평양까지였다. 평양에서 의주까지 다시 통패가 지급될 것이다. 텐다형 터우 기관차는 열다섯 량의 화물차를 달고 시속 육십 킬로 정도의 속도로 경성 지경을 벗어나 이제는 고양으로 접어들고 있었고 문산포에 이르렀을 때 저녁 해가 한강 너머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곧 임진강 철교를 넘어 한 시간쯤 더 가면 개성역에 당도할 예정이었다.

 

개성역에서 저녁을 먹게 되어 있었는데 저녁부터 초겨울 비가 내리더니 밤이 되자 진눈깨비로 바뀌었다. 그들은 역의 차량계 대기실로 가서 세면하고 작업복을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나서 역사 구내로 들어갔다. 개성역은 서양식으로 지은 목조건물로 가운데 높은 시계탑이 서있고 양측이 앞으로 돌출된 제법 화려한 이층 건물이었다. 이층은 경사진 지붕이 그대로 천정을 이룬 다락방 형식이었고 돌출된 창이 경사진 지붕 쪽으로 달려 있었다. 그 이층 공간의 양쪽에 카페와 식당이 있었다. 역전 그릴은 철도국 직영이어서 조선의 대도시 역사마다 있었다. 통상적인 메뉴는 일식과 양식이었는데 여객열차의 식당에서 파는 벤또와 스시, 그리고 양식으로는 오므라이스 카레라이스 하이라이스 등과 돈까스 비후까스 그리고 함박 스테이크가 있었다. 일철은 속으로 이런 날은 뻑뻑한 음식보다는 따뜻한 국물이 좋을텐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에다는 그들을 이끌고 역사의 이층으로 서슴없이 올라갔고 야마구치도 그 뒤를 따라갔기 때문에 일철은 역사 밖에 즐비하게 있을 조선 주점이나 식당으로 가자고 의견을 내볼 겨를도 없었다. 저녁 식사시간으로는 좀 늦은 때여서 그들뿐일 것이라 생각했던 일철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실내의 여러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사람들 때문에 좀 놀랐다.

 

젊은 남녀도 있고 중년층도 있었는데 대략 이십여 명쯤 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식당의 이곳저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도시락이나 라이스를 먹고 한쪽에서는 비루니 사케니 하는 술을 마시기도 했다. 자리가 빈 곳이 중앙뿐이라 그들은 두리번거리다가 홀의 가운데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네모의 공간 가녘으로 앉은 사람들 가운데 내키지 않게 자리를 잡은 그들을 먼저 와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바라보는 듯했다. 그들은 모두가 양복 차림이었고 여성들도 투피스에 코트를 걸치고 구두를 신은 세련된 모습이었다. 마에다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야, 여행객들인가?”

 

 야마구치가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국어도 들리고 조선말도 들립니다.”

 

 일철도 가만히 들어보고 나서 말했다.

 

 “네 일본인과 조선인이 섞여 있군요.”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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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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