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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한글로 이룬 풀뿌리 민주주의 그 축은?

‘백성을 위한 문자’ 한글은 어떻게 창제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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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창제를 배경으로 하는 <나랏말싸미>는 영화의 성격상 여름방학 시즌보다는 한글날을 전후한 추석 시즌에 개봉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듯하다. (2019. 0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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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랏말싸미> 포스터

 

 

<나랏말싸미>는 제목에서부터 배경을 확실히 하는 작품이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짜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할세 이런 절차로 어린 백성이 니르고져 할빼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시러 펴디 못 할 노미 하니라 내 이를 위하여 어엿삐여겨 새로 스물여덟짜를 맹그노니 사람마다 하여 쉬이니겨 날로 브쓰메 편하킈 하고져 할따라미니라` 한글로는 원문 표기가 불가해 현대식으로 바꾼 것인데 1446년 훈민정음해례본을 발표하며 세종대황이 아들 안평대군으로 하여금 받아 적게 한 서문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의 첫 문장의 첫 구(句)를 제목으로 결정한 데에는 이 영화가 한글 창제와 관련이 있음을 드러낸다.

 

‘백성을 위한 문자’ 한글은 어떻게 창제되었을까. 음운학에 뛰어난 세종이 거의 단독으로 만들었다는 설이 유력한 가운데 여러 가지 중에서 <나랏말싸미>가 취하는 건 신미(박해일) 스님과의 협업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조철현 감독의 말이다. "이 땅 오천 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성취는 팔만대장경과 훈민정음이라 생각한다. 그 두 가지를 영화화하겠다는 희망을 품은 지 15년째다. 몇 년 전, 그 두 가지 사이에 신미 스님이란 연결고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훈민정음해례본 속에 그걸 입증하는 훈민정음 코드가 있다는 걸 확인한 후, 작가들과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한글은 소리글자다. 소리를 바탕으로 표기한 문자다. 세종이 한글을 소리글자로 방향을 잡은 건 팔만대장경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다. 팔만대장경은 소리글자인 산스크리트어로 불경을 기록한 경판이다. 이를 바탕으로 발성 기관의 모양을 따 어금니 소리 ‘ㄱ’, 혓소리 ‘ㄴ’, 입술소리 ‘ㅁ’, 잇소리 ‘ㅅ’, 목소리 ‘ㅇ’을 기본자로 자음과 모음 총 28자의 한글을 창제하였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담을 수 있는 문자를 만든다는 건 무모하였을지 몰라도 이를 가능케 한 건 바탕에 일종의 전복 혹은 저항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을 대국으로 모시는 당시 조선에서 의미 문자와 다른 한글을 만든다는 것도, 불교국가의 고려를 뒤집고 유교를 국시로 삼은 조선의 왕이 스님과 손을 잡은 것도 유신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만한 요소였다. 

 

한글 창제를 배경으로 하는 <나랏말싸미>는 영화의 성격상 여름방학 시즌보다는 한글날을 전후한 추석 시즌에 개봉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듯하다. 어떤 배경으로 개봉일이 결정되었지는 알 수 없지만, 요즘 사회 분위기에 비추어 꽤 적절했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 아베 총리의 한국 무역 수출 제재와 관련해 한국의 일부 정치인이나 언론인,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되려 일본 제품 불매 운동과 같은 풀뿌리의 저항을 깎아내리는 등 일본 친화적인 태도를 취하는 까닭이다. 주체는 달라도 <나랏말싸미> 속 유신들은 세종의 한글 창제를 두고 과연 왕의 나라 중국이 이를 용납하겠느냐며 세종의 뜻에 반하는 노예근성을 조직적으로 드러내고, 백성들이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것이 국사에 무엇이 도움이 되느냐며 특권 의식에 함몰한 언행도 서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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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나랏말싸미>의 한 장면

 

 

한글 창제의 어려움은 잠시 접어두고 이들과 함께 한글을 통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과연 이룰 수 있을 것인가, 강한 의구심과 짙은 허무가 세종의 얼굴에 외상으로 남아 험난한 싸움을 예고하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나랏말싸미>가 한글 만들기의 성취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한글 창제와 함께 어떻게 모든 백성이 이를 받아들였는지 그 과정에 대해서도 다뤄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의 마지막 8년은 곧 죽음에 가까워진 기간이면서 최후의 성취가 되어야 할 한글로 죽음을 유예한 삶의 몸짓이기도 했다. 죽음을 견딘 생의 신념은 곧 새 문자를 만들겠다는 불굴의 의지와 병치하고 그 의지와 신념이 최종적으로 향한 곳은 단순히 한글이 아니라 ‘‘사람마다 하여 쉬이니겨 날로 브쓰메’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한 한글이기 때문이다.

 

한글 전파의 묘사가 전혀 없지는 않다. 세종에게 신미 스님을 소개하여 한글 창제의 길을 터준 소헌왕후(전미선)는 “암탉이 울어야 나라도 번성하리라. 새 문자를 열심히 익혀 각자 사가의 여인들에게도 퍼뜨려라” 중궁전의 나인들이 소헌왕후의 명령을 받들어 한글을 익히는 장면에서다. 한글이 퍼지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랏말싸미>가 한글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 구색을 갖추려는 인상이 강할 뿐 아니라 한글 창제 목표의 하나가 특권 의식과 엘리트주의를 깨뜨리는 데 있다는 것을 상기할 때 한글을 만든 이들에게 절대적인 비중을 내어주고 있는 것도 의아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많은 고난과 어려움의 과정을 뚫고 한글을 만들어 유신들의 반발에도 끝내 훈민정음해례본을 엮어 반포하는 영화의 결말은 큰 울림과 자부심을 준다. 한편으로 완전히 끝난 것 같지 않은 느낌인 건 한글을 널리 사용해야 할 한 축이 빠져서다. 이들이 주축이 된 그 뒤의 사연을 나는 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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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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