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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다이 소설가에게 배우는 ‘혼자 일하며 사는 법’
마루야마 겐지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
나는 그동안 나름 자리 잡은 의사로서, 또 10여 권의 책을 낸 저자로 확고한 일에 대한 태도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럼에도 책을 읽으면서 직장이 아닌 직업, 직업보다 중요한 ‘일’에 대한 마음가짐을 돌아보고, 마음을 다잡게 되는 면이 많았다. (2019. 0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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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보다 직업이, 직업보다는 일이 중요하고 지켜나가야 할 가치다. 대기업에 다니면서 자신이 그 직장의 규모와 명성만큼 커졌다고 여기는 것은 명품 매장의 종업원이 자신을 그 브랜드와 동일시하며 도도한 태도로 손님을 대하는 것만큼 헛헛한 오해다. 또 지금 종사하는 직업을 평생 갖고 갈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관찰해보면 어떤 직업을 갖고 있을 때 그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확보해 낸 사람이 다른 직업으로 전환을 하는 것도 쉽다. ‘업’의 본질을 깨닫고 난 다음에는 어떤 일을 하던 근본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한 일은 멈추기 어렵다. 그렇다면 직장과 직업보다 일이란 것을 만들고, 그것을 ‘업(業)’으로 지켜나갈 방법을 갖추는 것은 세상에서 존재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체성의 코어가 된다. 더욱이 조직의 울타리에서 나를 규정해주고 보호해주는 것에서 벗어나 오직 나만을 믿고 살아야하는 일을 하기로 결심을 한다면 더욱 그 고민은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이럴 때 독립적으로 50년쯤 자기 세계를 구축해 나간 사람의 말을 들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일의 본질에 접근하는 삶의 태도
일본의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의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 를 소개하려고 한다. 마루야마 겐지는 1943년생으로 무역회사에 근무하던 1966년에 처음 쓴 소설로 아쿠다카와 상을 받는다. 그리고 바로 1968년에 고향 나가노현으로 이주하고 모든 문단과 교류, 문학상을 거부하면서 50년 동안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공고히 만들어가고 있다. 그의 삶의 궤적을 이해해야 소설가 지망생을 상대로 쓴 이 산문집이 왜 ‘일의 본질에 접근하는 삶의 태도’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소설가로서 자기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서 예비 소설가에게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먹었을 때, 소설가가 된 후 문단이나 편집자와 관계 맺기, 독립적 소설가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자기관리를 해야할지 등에 대해 특유의 독설과 직설로 말하고 있다. 그 이야기중에서 ‘소설가’를 ‘프리랜서’ 혹은 ‘일러스트레이터’와 같이 내가 지금 하는 일로 치환해서 보면 와닿는 게 많을 것이라 믿는다.
그는 먼저 무릇 소설가는 ‘자립’을 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자립하지 못한 소설가는 파멸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 길을 걸으면서 순간적인 데카당의 빛을 보고, 그 어두운 빛을 찰나의 언어로 포착해서 읽을 만한 작품을 생산하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런 자신을 감당하지 못해 작은 성공에 우왕좌왕하는가 하면, 작은 실패에도 혼란스러운 나머지 성공에 우왕좌왕하는가 하면 작은 실패에도 혼란스러운 나머지 그다음 작품을 쓰지 못합니다.”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 고독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얄팍한 교우 관계를 모두 끊고 고립무원의 상태가 되어 오직 자기 일에만 집중하라고 한다. 창작의 세계로 발을 한 번 들이면 힘들다고 돌아가서는 안된다. 넓은 바다로 나아가되, 해안을 돌아보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혼자 일을 해나가는 사람은 고독을 숙명적으로 경험해야 하고, 고독과 싸워 이기고 마침내 초월하는 고독의 숙련공이 되어야한다고 말한다.
이제 오랜 고생 끝에 자리를 잡았고, 프로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노력의 결실로 반짝 잘 나갈 때가 올 수 있다. 진짜 일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라고 마루야마 겐지는 단언한다. 여기서 흔들리고 태도를 확실히 하지 않으면 그저 그런 사람으로 인생은 끝나버린다고. 이때 가져야할 마음가짐은 이렇다.
“허황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겁니다. 그렇게 해서 당신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고작 이 정도 빛에 현혹될 리 없다고 믿었지만, 내가 이용하면 했지 이용당하지 않는다고 큰 소리쳤지만, 지금까지 경험해본 적 없는 세상의 주목은 당장 당신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당신의 마음속에서 잠자고 있던 저속함을 일깨워 아주 짧은 기간에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흥분한 당신은 이에 예전의 차분한 생활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과 이 세상을 냉철하게 바라볼 수 없고, 허접한 오락소설밖에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중략) .바로 그때부터 소설가는 전락하기 시작합니다. 당신의 재능은 그 빛에 말라비틀어져 쓸모가 없어집니다.”
무시무시한 저주같은 말이 아닌가. 그는 그렇기에 잘 나갈 때 마음 단단히 먹고 ‘자립’할 방도를 찾고, 성공에 취해서 샴페인을 터뜨리지 말라고 강력히 조언한다. 방송 출연, 연재나 에세이 연재와 같은 사이드 잡이 아닌 오직 자기가 원하는 본질에 충실하려는 마음을 먹고, 오직 인세로만 살아가겠다는 각오로, 남는 돈을 허투루 쓰지 말고 저축해서 다음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 그 돈을 버텨야 하고, 그 금액이 커서 오래 버틸수록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경험에 우러난 이야기를 전달한다. 혹시 다른 일을 함께 하고 있다면 최소한으로 줄이고, 너무 진이 빠지지 않을 정도의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좋다. 먹고 살 방도에 너무 피곤해지면 내 일을 할 진이 빠져 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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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 때리는’ 내용으로 가득한 책
이 모든 걸 다 해결할 방법은? 바로 도시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시골로 내려가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훨씬 단순하게 살 수 있고, 소모적 관계를 맺지 않아도 되고, 도시에서 살아갈 생활비보다 아주 적은 돈으로 오랫동안 내 일을 해서 업력을 높일 시간을 얻을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점점 더 능력치가 좋아지고 세상에서 자연히 인정받는 수준의 일을 해내고 있는 사람이 돼있을 것이다.
삶은 고독하고 개인으로 생존해가는 것이라 마루야마 겐지는 강조한다.
“한 번 집단을 떠나서 나로 살기로 하면 두 번 다시 돌아보지 말라.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자세는 모든 것을 잃게 한다.”
이런 마음으로 오랫동안 꾸준히 일을 해나가기 위해 정신이 쉬 피로해지지 않게 체력을 기르고, 규칙적인 식사를 하고, 술 담배를 멀리하라는 것과 같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가이드를 제시한다. 특유의 독설과 함께,
“자유업은 혹독한 것입니다. 육체의 성능에 늘 이상이 없어야 합니다. 개중에는 일부러 병을 앓고 싶어하는 자학적인 소설가도 있지만, 그들을 따라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의 목적은 문학 그 자체가 아니라 하루빨리 죽는 것에 있으니까요. 몇 십년에 걸쳐 당신이 이상으로 삼는 작품을 쓰고 싶다면 정말 그러기 원하는 소설가라면, 체력 관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그동안 나름 자리 잡은 의사로서, 또 10여 권의 책을 낸 저자로 확고한 일에 대한 태도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럼에도 책을 읽으면서 직장이 아닌 직업, 직업보다 중요한 ‘일’에 대한 마음가짐을 돌아보고, 마음을 다잡게 되는 면이 많았다. 그만큼 마루야마 겐지의 이 책에서 하는 말들은 세칭 ‘뼈 때리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꼭 소설가가 되려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이든 일을 시작해서 자리를 잡고,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오랫동안 ‘내 일’을 만들어가려는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진지하게 삶의 태도라는 측면에서 읽어볼 만한 책이다.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마루야마 겐지> 저/<김난주> 역11,700원(10% + 5%)
마루야마 겐지는 문단과 일절 교류하지 않고 오직 집필에 전념해 온 ‘고독’과 ‘은둔’의 작가다. 그런 그가 소설에 전념한다는 철칙을 깨고 다른 사람을 위해 펜을 들었다. 이 책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는 겐지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미래의 소설가들에게 건네는 조언이다. 그들이 펜을 쥐고 글을 쓰게 될 때를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