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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 그들을 다루기 어려운 이유

해커와 창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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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까? 그들의 뇌 구조를 들여다보자. (2019. 06. 18)

초등학교 시절 486 컴퓨터에서 <페르시아의 왕자>와 <라이언 킹>을 플레이하던 기억이 난다. 486 컴퓨터는 나와 동생에게 허락된 유일한 마약이었다. 하루 1시간. 어머니에게 허락받은 1시간을 우리는 2시간으로 만드는 법을 알고 있었다. 2인용 플레이가 가능한 게임을 하는 것이다. 내 시간에는 동생이 도와주고, 동생 시간에는 내가 도와주는 식으로 우리는 하루 2시간의 환상을 즐겼다.

 

이후 나는 꾸준히 컴퓨터를 좋아했고, 컴퓨터를 좋아하니 컴퓨터학과를 가는 게 어떠냐는 아버지의 제안에 큰 고민 없이 컴퓨터학과에 입학했다. 그때만 해도 내가 개발자가 될 줄 몰랐다.

 

대학교 3학년, 나는 자서전을 많이 읽었다. 세상엔 정말 멋진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나도 그들과 함께 멋진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C언어로 만든 내 계산기와 JSP로 만든 내 게시판은 하나도 멋지지 않았다. 그 때문에 나는 개발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작은 모니터 속 0과 1로 만들어진 세상은 자서전 속 사람들보다 멋져 보이지 않았다.

 

내가 개발에 큰 흥미를 느낀 것은 스마트폰이 본격 보급되던 2011년 초. 대학교 4학년 때였다. 우연히 참가한 1주일짜리 T아카데미 <앱 비즈니스 기획> 과정에서 개발자가 어떻게 세상에 기여하는지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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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FC 앱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프로축구구단에 연락해 데이터를 받았다. K리그 광주FC가 제공해준 데이터로 일정과 선수단 정보를 볼 수 있는 앱을 만들었다. 이 앱은 졸업작품으로만 제출됐지만, 우리의 열정을 칭찬해주고 싶다며 광주FC가 회식비를 보내줬다. 내가 처음으로 돈을 받은 프로그램이다.

 

나는 그렇게 개발자가 됐고, 지금까지 여러 은행 앱을 만들었다. 이후 스타트업에 피가 끓어 창업도 해봤고, 개발자를 취재하는 기자로도 일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개발자로 돌아왔다. 그동안 나와 함께 일했던 개발자 그리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던 개발자는 수백 명에 달한다.

 

개발자를 떠난 지 1년 3개월 만에 다시 개발자로 돌아와 이제 1달이 지났다. 다시 아키텍처를 설계하고, 코드를 다듬으려니 생각만큼 속도가 나지 않았다.

 

코드 앞에서 고통을 받다가 밖에 나와 잠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너무도 맑은 하늘을 보며 나는 왜 개발자가 됐을까? 내가 어떻게 개발자가 됐을까? 개발자는 뭘까? 하는 딱딱한 생각을 했다. 그래서 개발자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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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그레이엄. / 유튜브

 

 

폴 그레이엄은 개발자이자 전설적인 액셀러레이터다. 에어비앤비, 드롭박스 등을 키운 액셀러레이터인 <와이 콤비네이터>의 수장이다.

 

어느새 7년 차 개발자가 된 나는 2004년에 출판된 그의 책  『해커와 화가』 를 펼쳤다. 이 글에서는 그가 말하는 해커, 내가 만났던 해커 그리고 지금도 어디선가 코드를 쳐다보고 있을 해커에 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해커와 창조자

 

해커(Hacker)라는 단어는 많은 사람에게 나쁜 짓을 하는 컴퓨터 기술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은 크래커(Cracker)라고 부르는 게 옳다. 폴 그레이엄은 해커에 대해 서문에서 이렇게 정의한다.

 

"해커라고? 그들은 남의 컴퓨터를 침범하는 족속들 아닌가? 문외한에게는 그렇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 세상에서는 사물에 정통한 프로그래머들이 자신을 스스로 해커라고 부른다. 이 책의 목적은 컴퓨터로 이루어진 우리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설명하는 것이므로, 나는 우리가 원래 쓰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위험을 무릅쓰기로 했다."

『해커와 화가』 한빛미디어

 

폴 그레이엄의 '해커'에 대한 사랑은 유튜브 영상(//youtu.be/SKQyVC7-Ahk)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영상에서 폴 그레이엄은 엔지니어(Engineer)는 관료적인 조직에서 프로그래머를 부르는 단어, 개발자(Developer)는 덜 관료적인 조직에서 프로그래머를 부르는 단어라고 말한다. 자신이 프로그래머를 부르는 단어는 프로그래머와 해커, 두 단어뿐이라고 한다.

 

위 멘트만으로도 폴 그레이엄의 캐릭터가 명확히 보이는 듯 하다. 나 역시 이 글에서는 엔지니어, 개발자, 프로그래머를 해커라 부르겠다.

 

앞서 내가 해커가 된 계기를 말했다. 해커가 어떻게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됐다고 말이다. 이보다 더 명확한 표현이 이 책에 적혀있다.

 

"해커들에게 있어서 컴퓨터는 자기를 표현하기 위한 매체에 불과하다."
해커와 화가』 한빛미디어

 

이 문장을 보고 '나는 해커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됐다. 내가 프로그래밍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스마트폰을 통해 내 아이디어를 실체화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모두의 손에 들려있는 이 기기를 통해 내 아이디어를 보여줄 수 있었다. 당시엔 이보다 더 흥분되는 일이 없었다.

해커로서 당시의 흥분이 여전히 느껴지지만, 아마 많은 사람이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안타깝게도 해커가 회사 내에서 고통을 받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소규모 극장에서 공연하는 것은 전시장에서 인형 옷을 입고 있는 것보다도 돈벌이가 적다. 소설을 쓰는 것은 쓰레기 처리와 관련된 광고 문구를 쓰는 것보다도 돈벌이가 적다. 그리고 프로그래밍 언어를 만들어내는 것은 어떤 회사의 낡은 레거시(legacy) 데이터베이스를 웹 서버에 연결하는 것보다도 돈벌이가 적다."
- 『해커와 화가』  한빛미디어

 

많은 해커가 돈을 벌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프로그래밍을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은 돈벌이가 전혀 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마니아들만 좋아하는 그림과 음악을 하는 예술가들과 해커는 어깨를 나란히 한다. 물론 오픈소스 생태계가 성숙해지면서 프로그래밍만 하면서도 생계를 유지할 방법이 열리고 있지만, 여전히 바늘구멍이다.

 

창조자로서의 해커, 이해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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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와 화가

 


해커와 스타트업

 

전설적인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이기도 한 폴 그레이엄답게 '부'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무척 중요하다. 해커가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그래밍을 하면서도 높은 지위를 가질 방법이기 때문이다. 바로 스타트업이다.

 

"경제적으로 보았을 때 스타트업이란 한 사람이 평생 할 일을 몇 년이라는 짧은 시간으로 압축시키는 것이다. 낮은 밀도로 40년 일하는 대신, 당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밀도로 딱 4년만 일하는 것이다. 이렇게 일하는 태도는 빠른 속도가 삶과 죽음을 가르는 테크놀로지 분야에서는 큰 장점이다."
- 해커와 화가』 한빛미디어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부에 대한 갈증이 있고, 도전해보고 싶은 욕구가 있다면, 나는 도전해보길 권한다. 도전하는 순간에는 성공을 위해 달려야겠지만, 꼭 스타트업으로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엄청난 시야 확장을 경험할 수 있다.

 

"당신이 제법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부자가 될 가능성이 없다.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는 영향력이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  『해커와 화가』  한빛미디어

 

폴 그레이엄은 부자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정당한 평가와 영향력>을 꼽는다. 어디서 들었던 것인지, 그냥 내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좋은 조직의 조건으로 <합당한 보상과 적절한 권한>을 꼽곤 했다. 두 조건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내가 부자가 되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점 그리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해커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체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건 분명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해커 대부분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위한 일을 하지 못한다. 회사가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극소수의 해커만이 소프트웨어를 실제로 설계할 수 있으며,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들이 그 일을 대신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의 회사는 소프트웨어의 미래를 한 명의 천재적인 해커에게 맡기기보다는, 여러 명으로 구성된 팀으로 소프트웨어를 설계하고 해커들에게는 단순 구현을 맡긴다."
-  해커와 화가』  한빛미디어

 

폴 그레이엄은 스스로 설계하며 훌륭한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위해서는 직접 스타트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프로그래밍 외 부차적인 일이 더 많고, 흥미로운 프로그래밍이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언급한다.

 

"벤처 투자자들은 특별히 주의해야 하는 위험에 대한 목록을 가지고 있다. 목록의 맨 위에 있는 항목 중에는 사용자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보다 단순히 재미있는 기술적인 과제에 더 집착하는 테크노 마니아가 운영하는 회사를 피하라는 것이 있다. 스타트업은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사용자들이 필요로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  『해커와 화가』  한빛미디어

 

스타트업이 망하는 가장 큰 이유가 시장이 원하지 않는 제품을 만들어서다. 특히 개발자로 구성된 팀은 자신들이 만들고 싶은 훌륭한 제품을 만든다. 아니, 기술적으로 훌륭한 제품을 만든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스타트업을 만들어서 4년 동안 40년만큼의 밀도로 시장이 원하는 제품을 기술적으로 뛰어나게 만들면 된다. 참... 쉽죠?

 

 

해커와 철학

 

내가 만난 해커 대부분은 자기 철학이 있었다. 이들은 업무 특성상 '명확함'을 추구해야 하기에 어떤 주제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는 편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흑백논리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해커의 글은 읽기가 매우 편하다. 비비 꼬인 것 없이 직설적이다.

 

내가 기자로 일할 때 어려웠던 점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나 역시 해커이기에 명확함을 추구한다. 하지만 언론 업계에서는 명확함을 추구하지 않았다. 해석에 따라 너무도 달라질 수 있는 의견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견제했다. 1년여 업계에 있었지만, 나는 늘 그들의 화법이 피로했다.

 

1달여 다시 프로그래밍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무언가를 만들기 위한 전진이라기보다, 다음 장애물을 찾아가는 탐색이랄까? 문제는 늘 눈앞에 있고, 그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가는 과정. 다른 일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바닥은 너무도 명확해서 조금만 어긋나도 '에러'가 난다는 것.

 

어쩌면 프로그래밍은 자신의 논리에 오류를 제거해가는 과정, 자신의 논리를 단단히 하고 증명해내는 과정. 이 경험치가 자신을 철학자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마무리

 

해커는 창조자이며, 원하는 것을 위해 자유를 쫓는 철학자다. 그들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하도록 두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야 한다. 이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공식을 풀었을 때 '성공'이라는 열매를 함께 취할 수 있다.

 

"해커는 다스릴 수 없는 존재다. 바로 그것이 해킹의 본질이며, 미국이 가진 자유스러움의 본질이다."
해커와 화가』  한빛미디어

 

내가 1년여 기자로 일하며 해커 수백 명을 만나 깨달은 것을 폴 그레이엄은 대수롭지 않게 첫 장에서 풀어냈다. 해커는 다루기 어렵지만, 같은 맥락에서 그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소통한다면 그들과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함께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분야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 얼마나 지속적해서(종종 무의식적으로도) 노력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예를 들어서 사람들은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을 보면 그가 그러한 재능을 타고났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은 그림을 그리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해 왔다. 그들이 그림을 잘 그리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마찬가지로 인기도 그저 인기가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서 만들어나가는 무엇인 것이다."
-  해커와 화가』  한빛미디어

 

물론 그들을 이해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과 같은 해커가 되는 것이다.


 

 

해커와 화가폴 그레이엄 저/임백준 역 | 한빛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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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세용(글 쓰는 감성 개발자)

6년간 안드로이드 개발자로 일했다. 도밍고컴퍼니를 창업해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 <도밍고뉴스>를 만들었다. 소프트웨어 전문지 <마이크로소프트웨어>에서 개발하는 기자, ‘개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백엔드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따뜻한 커뮤니티 STEW>에서 함께 공부한다. http://bit.ly/stew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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