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특집] 쓰레기도 덕질합니다
<월간 채널예스> 2019년 6월호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활동도 이렇게나 넓고 촘촘하다. 환경운동가 고금숙의 일상, 따라잡긴 어려울 진 몰라도 쓰레기 하나는 확실히 줄일 수 있다. (2019. 06. 14)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선 환경운동가가 망원시장에 들렀다. 반찬 가게에 들러 용기를 내밀자 주인은 갖가지 나물들을 골고루 담아 준다. 지불은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지역 화폐인 ‘모아 쿠폰’과 현금을 같이 내고, 조금 있다가 시장 옆 제로웨이스트 카페인 ‘카페 M’에 그동안 모인 종이백을 가져다 주겠노라 약속한다. 원하는 이들에게 비닐봉지 대신 물건을 담아 줄 종이백과 에코백은 집에 있는 것들을 누군가가 기증한 것들이다. 활동가는 시장에서 자주 장을 본다. 김밥은 밀랍을 먹여 만든 꿀랩에 돌돌 말아오기도 하고, 포장되지 않은 사과 몇 알, 바나나 한 송이를 가방에 넣어 온다. 떡집에선 김이 모락모락한 절편을 역시 직접 가져간 용기에 ‘므흣하게’ 담아 오기도 한다.
환경운동가 고금숙, 그녀는 ‘발암물질 없는 사회 만들기 국민행동’에서 반상근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유해물질 없는 세상을 꿈꾸는 이 환경 단체는 생활 속 유해물질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생산단계부터 유해물질을 저감시키는 방안들에 대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사이드 프로젝트로는 알맹@망원시장 프로젝트, 쓰레기 덕질 프로젝트 등을 하고 있는데, 망원시장에서 진행하는 이 프로젝트는 재래시장에서 나오는 속 비닐, 비닐 봉투와 같은 1회용 플라스틱 껍데기를 줄이는 ‘No플라스틱 마켓’ 프로젝트로 지난해 9월부터 시작했다. 사람들이 기증한 장바구니를 비치해 비닐봉지 대신 대여해주고 있다. 처음에는 다들 귀찮아 했다. 몸에 익은 관행을 버리기도 쉽지 않았고 장바구니를 보관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알맹서포터즈들이 빈 용기를 가져가 비닐봉지 대신 담아 달라고 하고, 장바구니가 필요하다고 하는 등 알음알음 찾아오는 이들의 요구가 있다 보니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자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권하는 정성도 한 몫 했다. 처음엔 시장 상인 중 열여섯 곳이 참여했지만 지금은 열 아홉 곳이 ‘알맹@망원시장’ 현판을 달고 있다.
쓰레기 덕질은 쓰레기를 줄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다. 일주일 동안 쓰레기가 얼마나 나오는지 일기도 쓰고, 카페 매장에서 사용하는 일회용품 사용량을 모니터링 해서 결과를 내기도 하고, 등산 가서 쓰레기를 ‘줍줍’하기도 하는데, 회원 수는 300명 이상이지만 관심있고 재능기부 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 따라 헤쳐 모이는 느슨한 모임이다. 그녀가 이렇게 프로젝트를 이끌고 모임을 만드는 이유는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개인적 실천이 기업을 흔들기는 힘들다. 지금의 생활쓰레기도 개인이 배출하는 양은 전체의 20%정도 밖에 안된다. 나머지 75%는 건설과 산업폐기물이다. 경제 구조가 바뀌어야 하는 문제이지 개인의 노력으론 역부족이다. 개인이 쓰레기를 줄이려고 몸부림을 쳐도 시스템은 어쩔 수 없는 쓰레기를 생산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시장에서 비닐봉투 없이 장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고 개인적인 실천만 강조하는 것도 문제다. 솔직히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들고 다녀야 하는 게 보부상 저리 가라다. 깜박 잊고 텀블러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면 빌려 줄 수 있고, 장바구니를 가져오지 않아도 빌려주고 이걸 다시 재사용할 수 있는 등 사회적인 시스템이 깔리는 게 중요하다. 사회적인 모임으로 확대하고 압력을 행사하고 인프라를 깔 수 있는 힘은 사람들의 물결이여야 가능하다.
영화도 찍었다. 가편집본으로 한 차례 상영회를 열기도 한 다큐멘터리 <플라스틱 프리 어디까지 가봤니>는 인도, 케냐, 태국에서 만난 쓰레기 이야기를 담았는데 개인적 차원에서 실천하는 것이 아닌 제도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고 싶었다. 정부의 규제를 찾다 보니 비닐봉지를 판매하거나 사용하기만 해도 벌금 4천만 원, 징역 4년형까지 구형하는 케냐를 찾게 됐다. 규제가 일상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뒷거래가 있는지, 사람들의 속마음은 어떤지 알고 싶었는데, 여행 내내 비닐봉지를 사용한 사람은 딱 한 사람, ‘듀티 프리’ 비닐백을 들고 있는 일본인 관광객이었다. 또 진흙과 썩지 않은 비닐봉지가 한 몸으로 지층을 이루고 있는 풍경 앞에서 연신 ‘이것도 엄청 깨끗해 진 것’임을 강조하는 현지인을 많이 만났다. 이 다큐멘터리는 쓰레기 없는 마을을 실천 중인 일본의 가미카쓰 마을과 한국의 이야기까지 같이 묶어서 올해 말에 완성할 것 같다.
고금숙이 생각하는 쓰레기에 대한 생각은 이렇다. 쓰레기를 어떻게 버릴 것인가에 앞서 중요한 것은 애초에 쓰레기 발생량을 줄이는 것. 프리사이클링이라고 하는데 되도록 장바구니나 용기를 들고 장을 보는 습관도 큰 역할을 한다. 일단 발생한 쓰레기는 ‘비운다, 헹군다, 섞지 않는다, 분리한다’라는 4대 원칙에 충실하게 처리하면 된다. 이물질 없이 깨끗하게 비워서 헹구고 잘 분리해서 나눠 배출하는 것이 좋다는 말. 헌데 이 분리의 관점에서 제도의 헛점이 큰 불편을 야기한다.
일본의 경우 요구르트 용기를 보면 뚜껑부터 본체까지 폴리프로필렌이라 굳이 뜯어 버리지 않아도 재활용이 된다. 플라스틱 재활용의 핵심은 이 ‘심플함’인데, 우리의 경우 요구르트는 알루미늄 뚜껑을 따로 뜯어 버려야 하고 페트병에 라벨도 잘 뜯기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대로 된 재활용을 위해선 생산 단계부터 달라져야 한다. 그럼에도 철수세미는 어떻게 분리수거 하는지, 마스킹 테이프는 어떻게 하는지, 연고는 어떻게 버리는지 등등 아리송한 분리배출 요령은 환경부에서 운영하는 ‘내 손안에 분리배출’이라는 앱을 활용하면 좋다. 이 앱에서 사용자들의 문의 내용을 살펴도 도움이 되며, Q&A에 물어보면 일주일 안에 상세한 답이 달린다. 쓰레기를 버릴 때 어떻게 버릴 지 고민하는 것, 굉장히 중요한 변화이고 긍정적인 신호다.
사실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별로 멋있거나 거창하지 않았다. 여성학을 공부하다가 페미니즘에 빠졌고 페미니즘을 하다가 에코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됐다. 생활에서 할 수 있는 페미니즘을 찾다가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어떻게 하면 내 삶과 공동체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여기까지 굴러오게 만들었다.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지만 곳곳에 환경을 생각하는 습관이 숨어 있다. 일단 일어나면 대나무 칫솔로 이빨을 닦고, 몸을 씻는다. 치약은 만들어 쓴다. 레시피가 다양하다. 베이킹소다와 죽염에 페퍼민트나 스피아민트 같은 오일을 섞어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비누도 직접 만들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올인원으로 사용한다. 유기농 면사로 짠 그물망에 비누를 넣어 쓰고 그대로 말려 쓴다. 화장품도 직접 만들어 재사용 유리를 소독해서 담아 쓴다. 여러 단계 나누어 다양한 제품을 쓰는게 아니라, 주로 한 종류만 사용하며 선크림 정도만 추가한다.
또 캡슐 커피 대신 모카포트로 내려 먹고, 종이필터 대신 융드립으로 내리는 핸드드립 맛도 예술이다. 음식도 잘 사먹지 않는다. 웬만하면 집에서 간단하게 해먹는 걸 즐긴다. 집에서 요리할 때 일회용품은 쓰지 않는다. 비닐 랩 대신 밀랍을 먹인 랩을 씻어서 사용하고 키친타월 대신 행주를 쓴다. 그렇다면 뚜껑이 필요하다면? 대충 덮을 수 있는 접시를 얹어 놓으면 된다. 깨끗이 씻기만 하면 되는 손이 있으니 비닐장갑은 필요 없다. 음식물쓰레기는 퇴비화를 한다. 조리를 하기 전 나오는 양파껍질이나 과일 껍질 같은 염분기 없는 쓰레기의 수분을 쫙 빼서 퇴비화에 도움을 주는 미생물 효소와 낙엽, 톱밥, 흙 등과 섞어 뒷마당에 내놓으면 3개월 안에 윤기가 좔좔 흐르는 퇴비가 되어 있는데 볼 때마다 신기하다.
화장실엔 수동 비데가 있다. 세면대와 연결되어 있어 변기 옆에 달린 꼭지를 돌리면 물이 나오고 그걸로 씻으면 된다. 엉덩이를 따뜻하게 데우는 기능만 안될 뿐이지 나름 편리하고 건강에도 좋다. 그러다보니 화장지는 진짜 안 쓰게 된다. 6년 전 이사할 때 선물로 받은 화장지를 지금도 쓰고 있다. 생수 담는 페트병? 당연히 안쓴다. 온수기는 비전력 온수기를 사용한다. 원시시대 집 같겠지만 아니다. 미니 태양광 발전기가 일 많이 한 달에는 전기료가 890원 나오기도 하는데 사람들은 대체 뭘 쓰면서 사냐고 묻지만 노트북부터 있을 건 다 있다. 42인치 텔레비전도 있고, 넷플릭스도 본다.
망원역 주변의 중고상점들을 구경하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아름다운가게나, 중고물품샵인 마켓인 유는 단골 가게. 자주 가야 예쁜 물건을 득템할 수 있으니까 일주일에 한 번은 들른다. 장은 일주일에 3일 정도 보는데 망원 시장이나 생협을 이용한다. 물건은 웬만해선 오프라인으로 구매한다. 구할 수 없는 것들만 택배 주문을 하는데, 박스에 붙은 테이프 뜯어 내고 송장 종이 뜯어 내고 비닐 등을 일일이 분리수거 하다보면 진짜 힘들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러다보니 택배는 힘들어서라도 잘 안 시킨다.
이런 일상? 그닥 불편하지 않다. 이건 불편이 아니라 그녀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법이다. 쓰레기 안쓰고 건강하게 집안 살림 돌보며 사는 삶, 고금숙은 그게 좋다. 뭐 엄청 깨끗하게 사는 편은 아니지만 반가운 손님에게 일회용 잔을 내밀지 않고 제삿상에 일회용 그릇을 올리지 않듯, 자기 삶에서 대접받고 살고 싶으면 좋은 걸로 깔아놓고, 좋은걸 먹듯 그렇게 할 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열심히 자신을 돌보고 열심히 대접해주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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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스 에디터. 결혼과 함께 귀농 했다가 다시 서울로 상경해 빡세게 적응 중이다. 지은 책으로 <서른, 우리가 앉았던 의자들>, <시골은 좀 다를 것 같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