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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특집] 방마다 공기청정기를 두고 싶은 미니멀리스트의 고백

<월간 채널예스> 2019년 6월호 특집 환경을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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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이 “미세먼지가 없는 도시는 어디인가요?”라는 질문을 요즘 들어 자주 한다. 그러면 우리는 한국보다 미세먼지가 심한 나라는 별로 없다고, 웬만해서는 다들 숨 쉴 권리를 보장받고 산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2019. 0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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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 이사를 했다. 아파트 사이로 울창한 나무 공원이 조성돼 있고 초중고 학교로 둘러 쌓인 살기 좋은 동네이다. 누군가 에게는 창문을 열면 들려오는 비행기 소리가, 39.9m2 밖에 되지 않는 사이즈가, 지하철을 타려면 마을버스를 타고 나가야 한다는 불편함이 불만이겠지만 우리로서는 이전 집에 비해 주거 환경이 100단계쯤 상승했다고 느껴진다. 무엇보다 이 집은 빛이 잘 든다.

 

ㄱ 자 형태의 집은 태양이 움직이는 방향대로 방, 거실, 부엌 순으로 환해진다. 이사 온 처음 며칠은 볕이 드는 게 신기해 빛을 따라 동선을 짤 정도였다. 오전 동안 방에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고 정오가 넘으면 거실에서 일을 하고, 늦은 오후에는 부엌에서 요리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빛이 잘 드는 집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사람이 생활하면서 내 보내는 먼지의 양을 바라보며 우리는 미세먼지가 많은 날에도 멀쩡할 수 있었던 건 볕이 안 드는 반지하의 먼지 덕분이었음을 깨달았다. 집 안의 먼지가 결과적으로 폐를 단련시켜 주었으리라.

 

하루만 청소를 안 해도 소복이 쌓여 있는 먼지를 바라보며 결국 우리도 공기청정기를 사들였다. 새로운 물건 하나가 집 안에 들어오기 위해선 적어도 반 년, 길게는 일 년 정도 숙고한다면 이번 공청기는 최단 시간 안에 입성한 셈이다. 다행히 공청기는 제 역할을 톡톡히 해주어 우리 부부의 최애템이 되었다. 심지어 각 방마다 그리고 거실, 부엌까지 공청기를 왜 들여놓는지도 이해가 될 정도다. 매번 커다란 제품을 이리 저리 옮기느라 낑낑거릴 때마다 작은 사이즈의 공청기를 인터넷으로 찾아보니까.

 

그런데 집 안에서만 깨끗한 공기를 마시는 게 무슨 의미일까? 사람이 공기 때문에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과연 정상일까? 라는 의문이 깊어진다. 공기청정기를 살 때 마음이 무거웠던 건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는 삶을 방해해서도, 물건 값이 비싸서도 아니었다. 이 제품을 만드는 공장이 중국이었고 미세먼지에 내가 산 제품도 기여했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제품이라고 달랐겠는가. 우리가 입고 쓰고 생활하는 물건 대부분이 화석연료를 사용해 만들고 오염물질을 내뱉는다.

 

물건을 살 때 환경까지 고려하는 이들은 드물다. 나만해도 미니멀라이프를 살지만 그 시작이 환경 때문은 아니었다. 가능하면 적게 가지고 사는 것이 언제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오랜 여행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물건을 사지 않는 삶은 물건 하나를 살 때 남들보다 열 배의 고민이 필요하다. 사지 말아야 할 이유를 열거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에게 환경 문제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미니멀라이프의 본질은 에너지 낭비를 줄이는 것이며 불필요한 물건을 정리하고 물건을 적게 사면 이런 낭비를 막을 수 있다.

 

해마다 50도가 넘는 온도 차를 경험하는 나라는 흔치 않다. 한국의 사계절이 아름답다는 말은 온도 차가 심하지 않았을 때 이야기다. 환경오염이 이대로 지속된다면, 멈추고자 하는 노력이 다음 세대로 계속 미뤄진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숨 쉬기 힘든 여름, 길고 긴 겨울을 보낼 것이다. 비관적인 예견으로는 환경의 재앙을 막기에 늦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여기에 미세먼지까지 더해졌다.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였던 날씨는 너무 당연한 것이 되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혀져 갔다. 미세먼지가 등장해서야 당연한 기본권 중 하나인 숨 쉴 권리를 되찾으려니 인간이란 참으로 어리석다.

 

독자들이 “미세먼지가 없는 도시는 어디인가요?”라는 질문을 요즘 들어 자주 한다. 그러면 우리는  한국보다 미세먼지가 심한 나라는 별로 없다고, 웬만해서는 다들 숨 쉴 권리를 보장받고 산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그래도 몇 개의 도시를 꼽자면 네팔 카트만두, 인도 델리, 태국 방콕, 이란 테헤란, 중국 베이징 정도이다. 환경 보다 다른 데에 시간과 열정을 더 많이 쏟을 것 같은 나라들이다. 이 도시들 뒤에 한국이 줄을 설 정도니 독자들이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만도 하다.

 

환경 의식은 시민 의식과도 닿아 있다. 나보다는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우리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다 보면 지구 환경의 문제가 결국 내가 사는 곳만의 사정이 아니라 전 세계 어디서나 겪는 '우리'의 문제임을 통감하게 된다. 하지만 당장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한 시민대학 강의를 듣고 있는 와중에도 조금 덥다고 -실제로 바깥 기온은 25도 였다. - 에어컨을 트는 사람들은 학습은 학습이요, 더운 건 더운 거라고 별개로 여기는 듯 하다.

 

생활 속에서 이론과 실천이 합일을 이루면 좋겠다 만은 쉽지 않다. 당장 공청기를 사면서 집 안 먼지는 해결했을 망정 나로 인해 환경 오염에 보탬이 되었으니 말이다. 여기서 내가 하는 최선은 각 장소마다 공기청정기를 사고 싶은 충동을 누르는 것일 테다. 100리터의 작은 냉장고를 유지하면서 주 1회 세탁기 사용을 하고 샴푸, 컨디셔너, 바디용품 등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오는 제품들을 비누로 대체 하고 있다. 물과 동물, 바다 생명체를 위해 샤워나 머리 감기도 이틀에 한 번으로 줄였다. 쓰레기 안 만드는 인간으로 재탄생 하기가 쉽지 않지만 이것은 나의 숨 쉴 권리를 찾기 위한 작은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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