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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18화 : 여기는 조선 땅이고 우리가 쥔이란 말이야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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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은 몇 달 때쯤 지난 뒤에야 이런 일이 결국은 당을 건설하기 위한 노력임을 알게 된다. 이미 수년 전에 조선공산당은 창립 되었으나 몇 달 만에 일제에 의해 검거되었고 뒤를 이은 사회주의자들의 이차 삼차 재건 운동이 계속되고 있었다. (2019. 0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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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방은 이어서 말했다.


 “선반부와 주조부가 치수와 주형의 착오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다투다 보면 우리끼리 인심 사나워질 테고 싸움이 커지면 누군가 해고될게 뻔하지 않소. 조선도 그렇게 해서 망한 거요. 여우 같은 일본은 그런 식으로 조선백성을 가지고 노는 거요.” 


 “우리가 다 조선사람이라는 말에 모두들 입을 다물었지요.”


이철이 진심으로 감명을 받았다는 듯이 말하자 방이 막걸리 사발을 들어 주욱 들이켜고는 말했다.


 “그걸 모두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우리네끼리만 아웅다웅 하지. 여기는 조선 땅이고 우리가 쥔이란 말이야.” 


 술이 거나하게 오르자 방은 자연스레 이철에게 말을 놓았다.


 “자네 공일날엔 뭐하구 지내나?”


 “머 그냥 집에서 딩굴대지요.”


 “내 아는 동무들이 있는데 천렵을 가기루 했거든.”


 “좋지요. 내가 준비할 건 없나요?”


 “자넨 술이나 한 병 받아 와. 딴 건 우리가 다 준비할 테니.”


일요일이랬자 바로 사흘 뒤였다. 이철은 시장에서 막소주 한 되짜리를 받아서 옆에 끼고 뚝방으로 나갔다. 시장거리에서 뚝방까지는 바로 지척이라 단숨에 뚝 위에 오르니 샛강 변에 먼저 와서 기다리던 방과 낯선 사람들 두 사람이 보였다. 방이 이철에게 자기 동무들을 인사시켰다. 홍씨 지씨 등이었는데 이철이 그들을 자세히 보니 그들은 각 부서에서 인부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 낯이 익었다.


 방이 누군가 한 사람이 더 온다고 하여 잠시 기다렸더니 얼굴이 가무잡잡하고 다부지게 생긴 청년이 나타났다. 그는 한쪽 어깨에 둘둘 말아 접은 투망을 가지고 있었다. 방이 그를 이철에게 소개했고 다른 이들은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안씨라고 했는데 갑종용인으로 화차부 소속이었다. 공장의 일터는 합금주물, 전기, 객화, 화차, 시야게, 도장, 강판, 등이 있었다. 갑종용인이라면 기술도 어느 정도 인정받고 견습고원의 문턱에 있는 인부였다. 안은 이십대 말에서 삼십대 초반으로 보였고 이름은 대길이라고 그랬다. 방이 그를 소개하면서 웃기는 소리를 했다.


 “이름자는 크게 길하다고 그랬지만 성이 나빠서 아니라는 게여.”


안은 사람좋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이름을 좋게 지어도 안씨는 아닌 게 되니까.”

 

 “투망은 우리 동네 인근 사방에서 솜씨 제일이지.”


홍씨가 말하자 방이 얼른 끼어들었다.


 “성은 붙이지 말자구. 그냥 투망꾼이라고만 해여.”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군데군데 떠있었고 햇볕은 뜨거웠다. 모두들 웃통을 벗고 개천이나 다름없는 샛강을 건너서 곳곳마다 너른 웅덩이가 되어 있는 곳으로 몰려갔다. 모래밭에 식기며 양념 채소 등을 벌려두고 돌을 주어다 냄비를 얹을 아궁이까지 만들었다. 누군가 말했다.


 “어이 그물이 떠들썩하고 재밋는데 투망은 너무 도 닦는 거 같단 말야.”


안대길이 혼자 물이 무릎에 닿을만한 깊이까지 걸어 들어가 수면을 노려보다가 투망을 펼쳐 던지자 그물이 아름답고 둥글게 펼쳐지면서 물 위로 덮쳤다. 세 차례쯤 투망을 던졌는데 바구니에 크고 작은 민물고기들이 가득 찼다. 그들은 잔챙이들을 골라내어 물에 던졌다. 한 시간쯤 지나서 바구니를 보니 메기 쏘가리 붕어 모래무치 등속이 가득했다. 운 좋게 마포강의 명물 장어도 두 마리나 걸려들었다. 그들은 장어를 통째로 지글지글 구어서 소금만 뿌리고 어죽이 끓는 동안 첫 소주잔을 들었다. 술 마시고 어죽 먹고 물에서 텀벙거리며 더위를 식히고 나서 근처 당산나무 그늘로 가서 둘러앉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놀이 겸 모임을 전에도 했던 모양이었는데 이철은 그들에게서 처음으로 신기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철은 방우창이 천안사람이란 것만 알았지 그가 소싯적에 만세에 가담했던 일은 처음 들었다. 그가 아직 어렸을 적에 경성과 경기도는 물론이요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 운동이 벌어졌던 얘기는 물론 들어 보았다. 사람들이 여럿 죽고 다치고 잡혀가서 곤욕을 치르고 감옥살이를 했다는 소문도 알고 있었지만, 그런 일을 겪은 이가 방씨라는 게 새삼 놀라웠다. 천안 장터에서 삼천여 명이 모여서 만세를 불렀다니 그것도 대단하고 그 자리에서 수십 명이 일본군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는 것이다. 방씨는 그 무렵에 사월 한 달 내내 산에 올라가 봉화 불을 올렸고 장터에서 붙잡혀 헌병대로 끌려가 죽도록 맞고 육 개월이나 옥살이를 했다고 그랬다.


안대길의 말은 더욱 신기했다. 만세나 부른다고 독립이 되지도 않으려니와 우리 같은 맨손의 노동자나 땅도 없는 농사꾼들은 자신은 물론이고 제 자식 손자 대에 이르기까지 이런 가난을 면할 길이 없다고 했다. 우리는 무겁게 겹친 바위에 깔린 개구리와 같다는 것이다. 일본과 자본에 이중으로 억눌려 있다고도 했다.


 “자본이 뭐요?” 


 말하는 도중에 이철이가 물으니 안이 말했다.


 “그건 쉽게 말해서 돈이요.”


 “돈은 벌면 되잖아요?”


 “맨손으로?”


 안이 말했다.


 “땅이나 공장이 생산수단인데 그게 다 돈이거든. 그걸 일하는 사람들이 함께 가지면 골고루 먹구 살 수 있지만, 그걸 다 차지하구 있는 몇몇 놈들이 우리를 맘대루 부리잖소? 옛날에는 왕과 측근의 벼슬아치들이 차지하고 있다가 그들 주변의 권력자들이 대물림하여 재부를 차지했고, 이제 일본놈들이 우리나라 전체를 차지하여 그놈들과 더불어 우리를 부려먹구 있소.”


방이 말했다.


 “이철이는 보통학교까지 나왔다네.”


 “그럼 조선말 일본말도 읽을 수 있겠구먼.” 


 “어려운 건 잘 모르우.”


하여튼 그들의 얘기는 어딘가 어렵기는 했지만 이치에 맞는 소리 같았다. 아라사에서는 십수 년 전에 이미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황제를 몰아내고 인민의 정부를 세웠다는 것이며, 만주에서는 수많은 조선인 애국자들이 무기를 들고 일본과 싸우고 있다는 것이며, 조선도 일본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혁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식민지 인민의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려는 사회주의 사상이 들어와 지난 십수 년간 농촌에서 소작쟁의가 전국적으로 천여 번 이상 벌어지고 공장 광산 항만 부두에서도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싸움은 우선 조직이 없으면 불가능하고 조직은 과거처럼 책깨나 읽은 지식인이 위에서 지시하여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일하는 노동자 스스로가 자기들의 생활을 개척해 나아가면서 동료들을 모아서 그중에 대표와 지도자를 만들어내어 조직의 최고 단계인 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철은 나중에야 이런 일이 결국은 당을 건설하기 위한 노력임을 알게 된다. 이미 수년 전에 조선공산당은 창립 되었으나 불과 몇 달 만에 일제에 의해 검거되었고 뒤를 이은 사회주의자들의 이차 삼차 재건 운동이 계속되고 있었다. 산에 오르는 길이 여럿이듯 독립운동을 하는 길도 여러 갈래여서 사상과 정견의 차이가 있었지만 가장 치열하게 싸우는 쪽은 역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무산자를 배경으로 한 사회주의 계열이었다. 안대길은 그러한 이야기까지는 하지 않았으나 방이 슬그머니 전해준 공책에는 여러 가지의 내용이 실려 있었다. 그것은 여러 사람이 직접 손으로 써서 모아놓은 공책으로 매우 구체적인 내용이었다.


노동자의 파업투쟁의 자유, 즉 파업에 대한 경찰 군대의 탄압 절대 반대. 노동조합 기타 일체의 노동자 조직의 자유. 노동자를 탄압하기 위한 모든 악법 절대 반대, 특히 치안유지법, 출판법, 폭력행위 취체령 등 반대. 일체의 정치범 즉시 석방, 사형제도의 반대. 노동자의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 정치적 집회 시위의 자유. 일체 경영위원회 창설의 자유. 노동자에 대한 일체의 봉건적 기숙사제적 속박 반대. 하루 7시간 1주 40시간 노동제 획득. 처가 있는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제 획득. 야전적 노동강화, 대우개악, 임금인하, 시간연장 등 부르조아적 산업 합리화 절대 반대. 동일노동에 동일임금제 획득. 부인 아동의 연기 계약제 및 매매제 절대 반대. 전경성적 산업별 노동조합의 촉성. 전국적 산업별 노동조합의 촉진.
그리고는 지난 오년 동안 조선 신문에 실린 여러 사건의 기사를 년도와 날짜별로 오려서 붙여 놓았다. 을축 1925년부터 신문기사가 추려져 있었다.


4월에 조선공산당이 창립되었고 11월에 신의주 사건이 터져 수많은 사회주의자들이 피검되었음. 경성전기 파업, 전조선 기자대회가 열리고 적기를 들고 시위행진. 무안군 농민들 소작쟁의 무장경찰과 충돌. 나주 동척 소작인 1만명 경찰과 충돌. 노동쟁의 55건, 5700명 참가, 소작쟁의 204건 4002명 참가. 독립군 출동회수 454회, 일경찰관서 습격 12회, 독립군의 일본군과의 충돌 만주 59건, 국내 89건.


6. 10 만세운동 순종 국장일에 일어남. 제2차 공산당 사건. 의열단원 나석주 식산은행과 동척에 투탄, 경찰과 교전하다 자결. 무안군 소작쟁의로 천여명의 소작인과 경찰 충돌. 목포 제유회사 공원 임금인상 요구 파업. 경성전기 폭리 규탄 시민대회. 전조선 인쇄직공총연맹 창립. 인천 9개 정미소 남녀직공 3천여명 임금인상 직공대우 노동시간 등에 대한 요구조건을 내걸고 총파업. 함흥 원산 마산 인쇄공 파업. 목포의 파업 중인 제유공들 공장 습격. 경성제사 여공 6백여명 임금 중간착취 문제로 동맹파업. 평양 조선물산상회 여공 파업. 대동강 석탄 선부들 임금인상 요구 동맹파업. 노동쟁의 81건, 5984명 참가, 소작쟁의 198건, 2745명 참가.


민족운동 단일체 신간회 창립. 여성운동 단일전선 근우회 창립. 평북 용천 불이농장 소작인 쟁의. 수원 인쇄주식회사 직공 파업. 광주고보 일본학생과의 차별에 항의 동맹파업. 경성인쇄소 직공 임금인상 동맹파업. 영천 5백여 농민 연초 밀경 조사반과 격투. 장진강 수몰지구 농민 피해보상 요구 농성. 옥구군 일본농장 소작인 불납동맹 결성하고 항쟁중 경찰과 충돌. 창원 가와사키 농장 소작인 불납동맹으로 항쟁. 노동쟁의 94건, 10523명 참가. 소작쟁의 275건 3973명 참가.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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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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