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덕 해변에서 바라본 서우봉
지난 새벽에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봄에 제주에 내리는 비는 고사리 장마라 부른다. 이 시기에 오름에 가면 막 피어난 어린 고사리가 가득하다. 얼마 전 나는 제주시 조천으로 이사를 왔다. 조천에서 가장 유명한 바다는 함덕해수욕장이고, 바로 그 오른편에는 함덕 서우봉이 있다. 제주공항에서 자동차로 30분이면 도달할 수 있는 편리한 접근성과 더불어 드넓게 펼쳐진 푸른 바다가 무척 아름답다. 서우봉은 함덕리와 북촌리를 나누는 지점이기도 하다.
서우봉 산책로는 걷기 참 좋다
서우봉은 얼핏 평범한 산으로 볼 수도 있지만 제주도 386개 오름 중 하나이다. 물소가 막 바다에서 기어 올라온 형체라서 서우봉이라 부른다고 전해진다. 서모오름 또는 서산이라고도 부른다. 서우봉은 두 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남쪽에는 서모봉, 조금 떨어진 북쪽에는 망오름이 봉긋하게 솟아 있다.
서우봉 둘레길 주변에 조성된 유채꽃
서우봉 입구에 주차하고 느린 걸음으로 2분 정도 오르면 서우봉 둘레길과 산책로로 나뉜다. 노약자나 시간이 부족한 사람이 가기 좋은 둘레길은 걷다 보면 바로 밑에는 푸른 바다가, 뒤편으로는 한라산과 여러 개의 오름이 줄지어 있다. 좌측의 바다를 끼며 걷는 둘레길 주변에는 계절별로 오색 꽃이 만발한다. 유채꽃과 메밀꽃, 청보리, 코스모스 등이 푸른 함덕 바다와 서우봉과 절묘하게 어울려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비가 내린 숲은 싱그럽다
이곳은 함덕초등학교 총동창회가 주축이 된 서우봉 지킴이 단체에서 열심히 가꾼다. 서우봉 지킴이는 2003년부터 이 지역 청년들이 산책로를 개설했고, 2011년 올레길로 지정된 후에도 지속해서 관리를 해왔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1단체 1오름 가꾸기 운동을 실시 중인데 2017년과 2018년에 최우수 단체로 선정되었을 정도로 모범이 되고 있다.
서우봉에 봄이 왔다
대부분의 여행객은 꽃길만 둘러보거나 둘레길을 적당히 걷다가 돌아간다. 하지만 서우봉의 매력은 다양한 숲길이다. 제1 숲길(960m), 제2 숲길(500m), 제3 숲길(200m)을 비롯한 서우봉 둘레길, 망오름길, 진지동굴 길이 거미줄처럼 촘촘히 엮여 있다. 둘레길은 아직 일부 미개통 구간이 있다. 이 모든 길을 한 번에 모두 걸으면 대략 두 시간은 걸린다. 따라서 여유가 없다면 두세 번에 나눠서 걷는 게 좋다. 서우봉 숲길은 언제 걸어도 좋다. 특히 비가 내린 직후가 가장 환상적이다. 비에 촉촉이 젖은 수풀과 꽃이 유난히 싱그럽고 공기는 상쾌하다. 서우봉은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서 찾는 동네 주민이 많고 여자 혼자 걸어도 위험하지 않다.
중간중간 쉴 수 있는 벤치도 넉넉하다
서우봉 정상(표고 111m, 비고 106m)에 이르니 함덕해수욕장과 조천 서쪽 시내가 훤히 보인다. 저 멀리 원당봉과 별도봉도 보인다. 해 질 무렵이면 이곳에서 석양을 볼 수 있는데 제주에서 일몰을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이다. 뒤를 돌아보면 동쪽으로는 힘차게 돌아가는 월정리 부근의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정상 부근에는 우거진 나무 사이로 곳곳에 벤치가 있다. 늦은 밤에 이곳에 누우면 나무 사이로 밤하늘이 가깝게 느껴진다. 주변에서는 풀벌레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새들도 쉴새 없이 지저귄다. 낮에는 들리지 않던 파도 소리도 유난히 크게 들린다.
진지동굴로 가는 입구
제2 숲길에서 북쪽으로 걷다 보면 굴물이라는 부르는 작은 굴이 눈에 띈다. 동굴 안에 있는 물은 오랜 가뭄에도 거의 메마르지 않으며 동굴 안에 물이 고이면서 굴물이라고 부른다. 이곳 또한 일본군에 의해 구축된 진지동굴이다. 상수도 시설이 개설되기 전 소풍이나 밭일을 왔을 때 음용수로 사용했었고 방목하던 소와 말 그리고 새들도 이 굴물까지 자연스레 찾아와 목을 축이곤 했던 생명수였다. 70여년 전까지 인근에 절이 있었는데 음용수로 이용했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음용이 불가하다.
동굴 주변은 수풀로 무성하다
동굴 진지 길이는 20~30m에 이른다.
붕괴 위험이 있으니 출입은 자제하는 게 좋다.
동굴 입구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4.3사건 때 피난민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서우봉에는 동굴이 여러 개 있다. 이것들은 자연 동굴이 아니다. 1940년대, 일본군이 제주도민을 강제 동원해서 파놓은 인공 동굴이다. 그 길이가 30m에서 40m에 이른다. 일제강점기 말 당시 함덕국민학교에 주둔하던 일본군 전투병력 1개 대대에서 보급로와 피난처로 진지동굴을 설치하던 중에 해방이 되어 중단되었다. 당시 20세 이상은 징용에 끌려갔고, 15세부터 19세까지는 강제동원되어 근로봉사대라는 명목으로 강제노역을 했다. 4.3사건 때는 주민들의 피난처로 사용되었다.
산책길 곳곳에 수많은 야생화가 폈다
정상 부근에 오르면 서쪽 전망이 훌륭하다
서우봉의 서쪽 바로 아래에는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다. 수심이 얕고 파도가 잔잔해서 아이들도 물놀이 하기 좋지만 사실 이곳은 잘 알려지지 않은 스노클링 명소이다. 물고기가 많아서 한여름에는 스노클링을 즐기기 딱 좋다. 수온이 높은 날에는 간혹 해파리가 출몰하니 조심해야 한다. 한겨울에도 서핑을 즐기는 사람이 많으며, 해변에는 웨딩촬영하러 온 예비 신혼부부로 항상 붐빈다. 나도 언젠가는 이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스냅사진을 찍을 날을 고대해본다.
◇ 접근성 ★★★★★
◇ 난이도 ★★
◇ 정상 전망 ★★★★
사랑의 잔상들
장혜령 지음
"살면서 내가 보고 듣거나 겪은 일을 토대로 글을 쓴다고 생각해왔지만,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쓴다는 것은 언제나 과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편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지는 이러한 재편의 과정 너머에 있다. 서사가 시간의 질서를 따른다면 이미지는 무시간적이다. (느닷없이 출현하고, 시간의 흐름을 벗어난 자리에서도 성립한다.) 서사를 둘러싼 감정은 변하거나 사라지지만 이미지는 영원히 남는다. 그러므로 감정은 뜨겁지만 이미지는 차갑다." - 장혜령, 『사랑의 잔상들』 중에서
자동차로 올 경우에는 지도 앱이나 내비게이션에서 '서우봉' 또는 '함덕쉼팡', '캠핑스타 제주라운지'로 검색하면 된다. 주차장이 있지만 성수기나 주말에는 빈자리를 찾기 쉽지 않다. 버스는 다양한 노선이 있다. 제주공항에서 급행버스 101번을 타면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다. 함덕 환승 정류장에서 하차 후 10분 정도 걸으면 함덕서우봉 입구에 도착한다.
◇ 주소 :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250-2
델문도 카페
제주에서 바다 전망이 가장 환상적인 카페이다. 함덕해수욕장 한가운데, 그것도 바다 한복판에 있다. 제주도에 난개발이 시작되기 전에 생긴 건물이라 가능했다. 이 카페의 커피는 추천하지 않지만, 빵은 맛있다. 가끔 카페 앞바다로 야생 돌고래 떼가 지나간다.
◇ 주소 : 제주시 조천읍 조함해안로 519-10
◇ 전화 : 064-702-0007
◇ 영업시간 : 매일 07:00 ~ 24:00
순옥이네명가 함덕점
제주공항 근처에 있던 본점에 이어 함덕에도 지점이 생겼다. 순옥이네물회와 전복물회가 유명하다. 오분작뚝배기와 전복 코스요리(1인 4만원)도 추천한다. 참고로 전복과 멍게는 연중, 소라는 10월부터 5월까지, 해삼은 12월부터 5월까지, 성게는 6월부터 7월까지, 한치는 6월부터 9월까지 먹을 수 있다.
◇ 주소 : 제주시 조천읍 함덕로 6
◇ 전화 : 064-784-4813
제주항일기념관
일제강점기 시절 제주 역시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다. 이에 대항하여 제주도민은 수차례 민란을 일으켰다. 제주 해녀들의 항일운동은 유명하다. 제주항일기념관은 3.1운동 당시 선열들의 뜻을 기리고 계승하기 위하여 세운 기념관이다. 누구나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 주소 : 제주시 조천읍 신북로 303
◇ 전화 : 064-783-2008
◇ 시간 : 09:00 ~ 18:00 (휴관: 1월1일, 설날/추석연휴)
4년차 제주 이주민이다. 산과 오름을 좋아하여 거의 매일 제주 곳곳을 누빈다. 오름은 100여회 이상, 한라산은 70여회, 네팔 히말라야는 10여회 트레킹을 했다. 스마트폰으로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담고 있으며(www.nepaljeju.com), 함덕 부근에서 에어비앤비 숙소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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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에세이를 읽을 때 우리는 모든 능력이 활발하게 깨어 즐거움의 햇볕을 쬐는 느낌이 든다. 또 좋은 에세이는 첫 문장부터 우리를 사로잡아 삶을 더 강렬해진 형태의 무아지경으로 빠뜨린다”라고 말한 건 버지니아 울프다. 그 에세이가 십 년에 걸쳐 쓰인 사랑에 관한 이미지들이라면 어떨까. 손에 잡힐 듯, 그러나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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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그녀는 사랑의 글들을 소유하게 됐다.” _김연수(소설가) ―십 년에 걸친 어떤 사랑의 기록 “좋은 에세이를 읽을 때 우리는 모든 능력이 활발하게 깨어 즐거움의 햇볕을 쬐는 느낌이 든다. 또 좋은 에세이는 첫 문장부터 우리를 사로잡아 삶을 더 강렬해진 형태의 무아지경으로 빠뜨린다”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