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최무성의 콧대 : 말 없이도 웅변하는

인물의 감정과 생각을 일직선으로 쏘아 올리는 콧대의 위력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그의 속내도 사실 이처럼 걷잡을 수 없는 비탄에 젖어 있음을 곧 발견하게 될 테니. 복잡한 속내와 불길한 예감을, 최무성은 입 한 번 안 떼고도 얼굴만으로 표현해낸다. (2019. 05. 13)

1.jpg

 


영화 <살아남은 아이>(2017)의 첫 장면은 가정집 천장을 뜯어내는 인테리어 업자 성철(최무성)의 얼굴로 시작한다. 마감재를 뜯어내 그 안쪽을 들여다보는 일은 고단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뜯어보지 않으면 어디서 물이 새고 곰팡이가 스는지 알 수 없다. 아마 영화 전체의 줄거리를 상징적으로 축약한 오프닝일 것이다. <살아남은 아이> 또한 보기 좋은 거짓말로 간신히 덮어둔 비극의 포장을 뜯어내어 상처의 근원을 찾아 들어가는 영화니까. 대사 한 마디 없이 진행되는 이 장면에서 감정이라 할 만한 걸 보여주는 건 성철의 얼굴뿐이다. 쇠지렛대에 힘을 싣는 성철의 얼굴엔 익숙한 피로와 다소간의 짜증이 어려 있는데, 내장재 안쪽에 가득한 습기와 곰팡이를 보며 내뱉는 그의 탄식은 영화의 앞날을 예고한다. 그의 속내도 사실 이처럼 걷잡을 수 없는 비탄에 젖어 있음을 곧 발견하게 될 테니. 복잡한 속내와 불길한 예감을, 최무성은 입 한 번 안 떼고도 얼굴만으로 표현해낸다.
 
그런 얼굴들이 있다. 온갖 극적인 요소들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을 마치 확성기처럼 증폭시키는 얼굴. 최무성의 얼굴 또한 그렇다. 끝이 날렵하게 빠진 눈은 그 빛이 제법 매서우나, 필요하다면 섬세하게 진 쌍꺼풀로 누그러뜨릴 수 있다. 작은 입은 굳게 닫는 순간 집요해 보이지만, 부피감이 있는 입술 덕에 조금만 웃어 보여도 인상은 드라마틱하게 푸근해진다. 강인한 턱과 단단한 하관이 인물의 감정을 지탱해주는 가운데, 깎은 듯한 광대가 인상에 무게를 실어준다. 그리고 그 모든 요소들은, 얼굴 한가운데를 굵고 힘있게 가로지르는 그의 콧대를 통해 관객의 시야에 꽂힌다. 일말의 주저도 없이 일직선으로 시원하게 뻗은 그 콧대는, 인물이 느끼는 희로애락을 정면으로 쏘아 올리는 위력을 지녔다. 그의 초반 필모그래피가 <세븐 데이즈>(2007)나 <악마를 보았다>(2010) 등의 소름 끼치는 악역들에 몰려 있던 것도, tvN <응답하라 1988>(2015-2016)의 택이 아버지가 유달리 대사가 적었던 것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성능 좋은 확성기와 같은 얼굴의 위력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는 유혹을, 어느 연출자라고 떨쳐낼 수 있었을까?

 
SBS <녹두꽃>이 5척 단신의 작은 키 탓에 별명이 ‘녹두’였던 전봉준 역할을 굳이 키 182 cm의 거구 최무성에게 맡긴 것 또한 그 때문일 것이다. 고부 장터 약재상에서 말없이 작두로 약재를 썰던 첫 등장부터, 혁명의 동지들과 함께 거사의 방향을 논하는 장면들에서, 이 단호하고 타협을 모르는 혁명가는 입을 닫고 있는 순간조차 온 얼굴로 제 뜻을 웅변한다. 선운사 앞마당에 구름처럼 몰려들어 부패한 관군을 무찌르는 혁명군을 가리키며 전봉준은 말한다. “보시오, 새 세상이오.” 확신과 신념으로 가득 찬 전봉준의 말이 최무성의 얼굴을 통해 육화되는 순간, 시청자들은 동학농민혁명이 어떻게 끝났는 줄 알면서도 그의 말을 믿게 되는 것이다. 신념을 향해 한치의 의심 없이 일직선으로 달려가는 저 직선적인 콧대의 사내를, 뉘라고 쉬이 거부하겠는가.


 

 

 

배너_책읽아웃-띠배너.jpg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

오늘의 책

산업의 흐름으로 반도체 읽기!

『현명한 반도체 투자』 우황제 저자의 신간. 반도체 산업 전문가이며 실전 투자가인 저자의 풍부한 산업 지식을 담아냈다.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반도체를 각 산업들의 흐름 속에서 읽어낸다. 성공적인 투자를 위한 산업별 분석과 기업의 투자 포인트로 기회를 만들어 보자.

가장 알맞은 시절에 전하는 행복 안부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사람, 작가 김신지의 에세이. 지금 이 순간에 느낄 수 있는 작은 기쁨들, ‘제철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1년을 24절기에 맞추며 눈앞의 행복을 마주해보자. 그리고 행복의 순간을 하나씩 늘려보자. 제철의 모습을 놓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은 우리 곁에 머무를 것이다.

2024년 런던국제도서전 화제작

실존하는 편지 가게 ‘글월’을 배경으로 한 힐링 소설. 사기를 당한 언니 때문에 꿈을 포기한 주인공. 편지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모르는 이와 편지를 교환하는 펜팔 서비스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성장해나간다. 진실한 마음으로 쓴 편지가 주는 힘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소설.

나를 지키는 건 결국 나 자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물질적 부나 명예는 두 번째다. 첫째는 나 자신. 불확실한 세상에서 심리학은 나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무기다. 요즘 대세 심리학자 신고은이 돈, 일, 관계, 사랑에서 어려움을 겪는 현대인을 위해 따뜻한 책 한 권을 펴냈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