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씹어먹듯 읽은 책과 멍한 여행이 만든 히어로

영화 <안도 타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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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여행이 만들어낸 히어로의 섬세함과 거침없는 추진력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배우고 새기고, 무엇보다 키워야 할 근육이다. 책을 읽자, 길을 떠나자. (2019. 05.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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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안도 타다오>의 포스터

 

 

‘노출 콘크리트’의 건축가, ‘빛의 교회’를 지은 예술가 안도 타다오(외래어표기법으로는 안도 다다오)는 건축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익숙한 이름이다. 복서 출신, 대학교를 나오지 않은 독학의 건축가, 건축계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 수상자.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에 대한 책은 서점에도 있고 한국에는 그가 설계한 건물도 있다. 서울, 제주, 원주에 자리한 그의 건축물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노출 콘크리트의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형태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다큐 영화를 보기 전에는 더 이상 새로운 게 있을까, 나는 안도 타다오에 대해서 알 만큼 아는데, 라는 다소 나이브한 생각이 있었다. 그런 나에게 첫 장면부터 안도가 툭툭 잽을 날렸다. 생물학적 나이 일흔이 넘은 안도는 풀밭에서 복서의 자세로 몸을 움직인다. “우선 창조적인 근육을 단련해야 해요. 영화 보고 음악회 가고 미술관 가고 남이 건축한 것을 보고 그 이상을 만들겠다는 그걸 초월하겠다는 용기를 가져야지. 늙어서 체력이 떨어지면 싸울 마음이 사라져요. 창조적 근육이 없어질 경우에도 마찬가지죠.” 창조적 근육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나에게 유혹의 말을 건넨 것이다. 알 만큼 안다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물러터지고 처진 군살 같은 자만심이란 말인가.
 
안도 타다오는 대학 진학 대신 건축 일을 하고 싶어했다. 건축 현장에서 기웃거리며 몸으로 배운 것도 있지만 그에게 가장 중요한 학교는 ‘책’과 ‘여행’이었다. 짧은 복서 시절 권투는 홀로서기라는 것을, 누구도 대신 싸워주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체감했기에. 그 교훈은 씹어먹듯이 책을 읽고 멍한 여행을 다님으로써 깨쳤다. “스스로 길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종일 걸어다니다 멍하게 멈추고 건물을 떠올리고. ‘걷고 멍때리기’의 나날 청춘을 보낸 것이다.
 
여행 중에 만난 로마의 판테온과 롱샹성당을 보고 안도는 감동했다.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롱샹성당을 본 안도는 “내부로 빛이 덮쳤다. 빛으로 홍수가 난 듯” 하며 감상의 말을 잇지 못했다. 콘크리트로 지은 부드럽고 우아한, 단순한 곡선의 성당이었다. 롱샹 언덕의 전경을 그대로 살리는 것에도 크게 느낀 바 있는 안도는 이후 르 코르뷔지에의 정신을 이어받기로 하고 ‘노출 콘크리트’ 미학을 평생 구현했다. 말 그대로 ‘콘크리트로 쓴 시’를 짓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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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안도 타다오>의 한 장면 

 

 

1969년 28세의 안도는 겁도 없이 ‘안도 타다오 건축연구소’를 열었다. 두 명의 스태프와 함께. 그리고 몇 년 동안 마치 연구소가 없는 듯 일거리를 받지 못했다. 그사이 끊임없이 공공기관에 건축물 제안을 했다. 일본 미의식에 근접하면서도 파격적인 제안을 받아들이는 곳은 없었다.
 
그의 1976년 데뷔작을 보자. 오사카, <나가야>라고 불리는 작은 주거 건축물은 얼마나 놀라운가. 건물 내부의 3분의 1을 중정으로 만들어 비효율적인 공간 구성을 했다. 생활 동선으로 보면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이 작은 집에 하나의 커다란 우주를 만들고 싶었다’는 안도의 뜻에 따라 거주인은 방과 방 사이 노출된 다리를 건너야 한다. 그 다리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오로지 그의 것이라는 게 안도의 설명. 밖에서 보이는 건물 외관보다 내향적인 공간 구성이 중요하고 개인의 체험이 더 소중하다는 종교적이기까지 한 건축 철학이었다.
 
영화는 그의 건축 기행이기도 하다. 고베 <록코 집합주택>, 홋카이도 <물의 교회>, 오사카 <빛의 교회>, 이탈리아 트레비소의 베네통 커뮤니케이션 연구센터 <파브리카>, 미국 세인트루이스 <퓰리처 예술재단>, 오사카 <사야마이케 박물관>,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 미술관>, 나오시마 <지중미술관>, 미국 매사추세츠 <클라크미술관>, 중국 상해 <폴리 그랜드 시어터>. 뉴스와 화보에서 보았던 그의 건축물을 안도가 안내하는 영상은 ‘창조적 근육’ 만들기 스파링 같다. 건축가의 속내와 마음가짐을 읽으며 건축물을 따라가는 경험은 소중하고 흥미롭다.
 
안도는 현재 투병 중이다. 췌장과 비장, 몸의 장기 두 개를 들어낸 상태로 여전히 건축가로 살아간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것. ‘공간 자연 인간’의 합일점을 찾는 안도의 마음이 압도적인 건축물에 스며들어 성스러움마저 안긴다.
 
책과 여행이 만들어낸 히어로의 섬세함과 거침없는 추진력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배우고 새기고, 무엇보다 키워야 할 근육이다. 책을 읽자, 길을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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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마음산책> 대표. 출판 편집자로 살 수밖에 없다고, 그런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일주일에 두세 번 영화관에서 마음을 세탁한다. 사소한 일에 감탄사 연발하여 ‘감동천하’란 별명을 얻었다. 몇 차례 예외를 빼고는 홀로 극장을 찾는다. 책 만들고 읽고 어루만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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