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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서점에 갑니다

오롯이 혼자를 맞이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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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지도 못할 책들이 꽂힌 서가를 보면 왜 안정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혼자를 고독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서점을 통해 찾아보는 나의 홀로 살이 연대기. (2019. 0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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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교동 이후북스. 작은 서점이지만 알차게도 사람들은 들락거리고, 볼 책도 많다. 나처럼 혼자 찾은 사람들이 많았다.

 

 

혼자 어딘가를 여행 할 때면, 이상하게도 서점 쪽으로 발길이 닿는다. 가까이에서 서점을 찾을 수 없다면 책이 제법 꽂혀 있는 카페라도 발견해서 꼭 들르곤 한다. 매일 책과 함께 하는 일을 하면서도 낯선 곳에 가면 또 책을 찾는 노릇이라니, 누가 보면 책덕후인 줄 착각 할 듯한 여행 버릇이다. 그러나 나는 평소에 책을 읽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편은 아니다. 정독을 하기보다는 훑어 읽기를 좋아하는 날라리 독자이며, 책을 통해 쌓은 지식이 그리 많은 편도 아니다. 그럼에도 혼자 있는 시간에 책이 있는 곳을 찾게 되는 것은 수많은 책들이 각각 말하고 있는 목소리들을 들으며 위로 받기도 하고, 내 목소리는 어디에 있는지 찾고 싶어서가 아닐까. 실은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다 읽지도 못할 책들이 꽂혀 있는 서가를 보면 왜 안정이 되는지를.


가족들과 잠시 다녀 온 저번 달의 도쿄에서, 마지막 날 나는 혼자 남기를 택했다. 가족들이 먼저 돌아가고 혼자 남은 내가 가장 먼저 들른 곳도 서점이었다. 가족들이 같이 있을 때는 서점에 가 볼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의 나는 그 사람들과의 시간을 중요히 생각하는 편이어서, 다른 데 신경을 쓰는 것이 힘든 편이다. 책 구경을 재미있어 하는 내게는 서점이란 오롯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공간이었던 가보다. 서점은 내게, 혼자 있는 시간을 고독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곳이었다. 오래 혼자 살아도 가끔 채워지지 않는 홀로 남았을 때의 공허함을 달래주는 어떤 욕구가 충족되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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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긴자 츠타야 서점. 혼자 남은 도쿄에서 이곳에 갔을 때만큼 흥분한 적은 없었다. 외서를 수입하는 서점 직원인 내게 이곳은 보물창고와도 같았다.

 

 

혼자 산 지 벌써 9년차인 나는 룸메이트가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혼자 살아온 시간만큼 오롯한 내 시간, 내 공간의 의미는 더욱 커졌다. 처음 혼자 살았을 때는 외로워서, 혹은 너무 공허해서 휴대전화만 들여다보던 나였다. 그래도 국어국문학과 학생이었던 나인데, 이상하게도 그땐 책을 읽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갑자기 혼자가 된 그 공허함을 달래줄 것은 사람뿐이라는 생각이 앞섰던 것 같다. 그 외로움은 대학 시절의 연애를 낳았었고, 여러 친구들을 불러내었다. 이 때의 내가 써 냈던 시들을 가만 보면, 내 방은 눈물과 무력감이 가득한 우울하기 그지 없는 곳이었다. 그렇게도 고독이라는 단어가 내겐 불안하고 내가 설 자리를 자꾸만 없어지게 만드는 파괴적인 것이었다.


풀리지 않는 의문들 정답이 없는 질문들

나를 채워줄 그 무엇이 있을까

이유도 없는 외로움 살아 있다는 괴로움

나를 안아줄 사람이 있을까

목마른 가슴 위로 태양은 타오르네

내게도 날개가 있어 날아갈 수 있을까
- 자우림, 6집 <ashes to ahes>, 수록곡 「샤이닝」 중

 

그러나 이제는 내가 결혼이란 걸 만약 하게 된다면, 가장 힘들어 할 것은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사실 자체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되었다. 주말 중 하루는 혼자서 고스란히 보내야만 주간을 지낼 힘이 충전되는 것만 같고, 퇴근 후에는 운동을 끝내고 홀로 앉아 드라마를 보는 것이 가장 기다려진다. 누군가와의 약속이 생기면 그것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만의 시간이 사라지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집에서 휴대전화만 들여다보던 나는, 어느새 고독을 즐기는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요즘의 내가 쓰는 글들은 그래서인지 예전보다는 여유가 있어졌다. 불안은 조금 거둬졌고, 혼자인 방은 생각보다 외롭지 않으며,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사실은 바쁘다는 것을 깨달은 직후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혼자가 늘 좋은 건 아니지만, 혼자를 즐길 줄 알게 된 것은 스스로 대견스럽기는 하다.

 

어떤 사람들은 혼자인 상황을 즐기며 때로는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고독의 시간 동안 특히 생산성과 창의성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는 실제로 고독한 기질의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경우이다. 그들은 혼자이면서도 결핍이나 공백을 느끼지 않는다. 한편 고독의 다양한 성질들의 요인들과 고독을 느끼는 여러 가지 방식들이 최근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중략)
고독은 인구 과잉 도시들에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을 덮친다. 그리고 우리 삶의 공간이 끝없는 혼란 속에서 위협받는 것처럼, 익명의 군중들 틈에 섞여 각자 자신 안으로 침잠하게 된다. 우리는 손님들로 가득 찬 카페테라스를 바라보며 만남의 욕망을 느끼고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충만한 사회생활을 원하고, 타인의 경청과 인정, 타인과의 공유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는 삶을 꿈꾼다.
- 모니크 드 케르마덱 저/김진주 역,  『혼자를 권하는 사회』  중

 

서점이 좋다고 하다가 나의 홀로 역사를 돌연 말하게 된 것은, 지난 주말에 3년 전까지 살던 동네에 찾아가 여행하듯 서점을 들렀기 때문이다. 홍대에 3년을 살았는데, 그곳에서는 혼자 집에 있는 것이 때로 너무 고독해져서 카페에 나가 있거나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데에 내 시간들을 모조리 써버렸다. 어딘가 말하고 싶고 누군가의 경청이 그리웠던 그때의 나를 생각나게 하는 거리들을 걷다 보니 기분이 묘하게 씁쓸해졌다. 감상에 젖기도 했고, 괜히 그 때 찍었던 사진들을 들춰보기도 했다.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이대부터 망원까지 모두 내 구역이라고 홍대를 사랑하던 나는, 그 말을 하면서도 이 넓은 곳 어디에도 나는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설 곳이 이 곳 어딘가 있기는 한가? 하는 생각들을. 홍대는 내게 그래서 친근하고 늘 그립지만, 내내 이방인이라는 ‘낯선 친숙함’을 느끼게 했던 곳이었다.


그런 곳에 가서 내 여행 버릇을 끄집어 내 서점에 가 있자니, 묘할 수밖에 없었다. 늘 어딘가 허전하게 만들었던 동네의 서점에 적당한 기대감을 안고 가서는, 그 무슨 안정을 취하려 하다니. 3년 사이 너무도 달라진 나의 변화가 너무 와 닿아서 기분이 이상했던 것 같다. 자그마한 동네 서점에 가서 그곳에 있는 책을 모두 꼼꼼히 열어보고서는 책 하나를 골라 자주 가던 북카페에 들러 책을 읽었다. 그 평온한 시간은 지금의 내가 외로움이나 고독 같은 단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스스로 공허한 마음을 달랠 줄 아는 내가 되었다는 것. 허전함을 다른 누구를 통해 달래려 하는 게 아닌, 자가 치유의 여유를 부릴 줄 아는 사람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은 내게 꽤나 큰 의미였다.

 

혼자 있는 시간에 외로움하고 같이 있지는 말아야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방문해줄 단 하나의 위대한 친구가 문 바깥에서 서성이다 그냥 돌아갈 테니까. 그렇게 된다면 정말로 외로운 사람이 되는 거니까.
그런 때가 있었다. "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라는 말이 "난 혼자 있는 시간이 싫어"라는 말로 곧장 해석되던 때. 내가 그때 감정을 내몰던 방법을 익혀 집에 돌아와 시를 썼던 것처럼 "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라는 말이 결국엔 무슨 자랑처럼 하는 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도 그녀도 잘 알고 있으리란 걸 나는 안다.
- 김소연,  『나를 뺀 세상의 전부』  중

 

혼자를 권하는 사회에서 이 권유를 뿌리치지 않고 잘 받아들이고 살기까지 외롭다는 말을 몇 번이나 읊조린 지 모르겠다. 고독이 익숙해진 지금도 간혹 급습하는 공백들을 채워나가려고, 가끔 나는 서점에 들를 테다. 그것이 언제까지 혼자일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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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이나영(도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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