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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의 재발견
『예술가들이 사랑한 날씨』 연재 ④
그렇다면 루시 허친슨은 잠깐이라도 신의 섭리를 의심했을까? 즉 부싯돌이 마찰해서 일으킨 불꽃처럼 번갯불도 더 이상 신의 섭리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떠올렸을까? (2019. 01. 18)
교황 식스토 4세를 위해 지롤라모 디 마테오가 필사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1483)
로마시인 루크레티우스가 쓴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는 15세기에 재발견되었다. 그런데 그 텍스트가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시기는 1650년대였다. 적어도 세 사람의 번역자가 비슷한 시기에 그 작품을 영어로 번역했다. 하지만 루크레티우스와 관련된 논쟁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뒤를 이은 루크레티우스는 우주가 맹목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무한한 수의 입자라고 이해했다. 여기서 ‘맹목적blind’이란 단어가 나오는 까닭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아서라는 의미가 있지만 그 단어는 자연에 관한 루크레티우스의 믿음과도 강하게 연결되어있다. 즉 자연은 만물을 꿰뚫어 본다는 신에 의해 의식적으로 고안되지도 않았고, 미리 예견된 끝을 향해 움직이는 것도 아니었다. 루크레티우스는 신은 존재하지만 세상을 창조한 것은 아니라고 믿었다. 또한 신이 인간에게 관심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인간은 공간 속을 떠도는 아주 작은 입자들로 이루어진 우주에서 살아가고, 우리 자신 역시 그 입자의 연합체이다. 신은 이 과정에 어떤 힘도 행사하지 않는다. 그러니 인간이 신에게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루크레티우스의 이런 생각을 일부 받아들이거나 또는 이런 식으로 사물의 질서가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떠올리는 것만 해도, 17세기에는 대단히 급진적인 일이었다. ‘에피쿠로스적인 계기(Epicureanmoment)’는 긴장된 타협안을 포함하고 있었다. 데카르트는 자신이 원자론자임을 부정했다. 중요한 이유는 루크레티우스의 입자들이 떠다니는 텅 빈 공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자들이 결합하여 일어난 ‘놀랍고 경악스러운 일’에는 루크레티우스와 마찬가지로 좌절감을 느꼈다. 두 사람 모두 날씨에 주의를 기울였다. 날씨는 사람들이 느끼는 불필요한 공포의 일차적 원인이기 때문이다. “폭풍과 번개의 번쩍임이 내 노래가 되어야 한다”고 루크레티우스는 쓰고 있다.
하늘이 둘로 쪼개질까 두려워서
그대들은 어리석게도 벌벌 떨고 있지.
또 하늘을 날아가는 번갯불이 어느 쪽에서 와서
어느 쪽으로 갈지 추측하느라 바쁘지.
또 어떤 식으로 건물의 벽들을
꿰뚫고 지나갈지 추측하느라 분주하지[…]
마치 루크레티우스가 17세기의 논객들에게 직접 말을 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7세기 논객들은 번개가 치는 각도를 측정하고, 목격담들을 수집하고, 공포를 고조시킨 뒤 독자들이 벌벌 떨면서 회개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여러 부류의 자유사상가들은 자기 처벌적인 이 학대 행위로부터의 해방을 설파하는 루크레티우스의 생각에 매료되었다. 독실한 청교도였음에도 불구하고 루시 허친슨은 30대에 라틴어로 된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를 몇 년에 걸쳐 최초의 영어 완역본으로 옮겼다. 허친슨은 햇빛 속에서 떠도는 티끌처럼 공중에서 춤추는 원자들이라는 루크레티우스의 이미지를 영어 시로 옮겼다. 그녀는 경악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루크레티우스의 권고를 영어로 옮겼다. 또 번개는 부싯돌이 마찰하며 불꽃이 일어나는 것처럼 구름이 부딪쳐서 생겨난다는 루크레티우스의 설명을 영어로 옮겼다.
그렇다면 루시 허친슨은 잠깐이라도 신의 섭리를 의심했을까? 즉 부싯돌이 마찰해서 일으킨 불꽃처럼 번갯불도 더 이상 신의 섭리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떠올렸을까? 허친슨이 직접 쓴 원고는 전혀 출간된 것이 없어서 그녀의 생각이 어땠는지는 알 수 없고 또 1660년대에는 그 번역 프로젝트에서 자신을 분리했다. 그런데 1675년에 루시 허친슨은 자신이 완역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의 복사본을 만들어 학식 있는 한 친구에게 소포로 보내면서 자기가 과거에 행했던 ‘무신론과 불경스러움’은 단지 젊은 시절의 호기심 때문이었을 뿐이라고 첨부한 편지에 썼다.
예술가들이 사랑한 날씨알렉산드라 해리스 저/강도은 역 | 펄북스
아무도 밖을 쳐다보며 자기가 본 것을 기록하진 않았던 중세에 홀로 날씨를 기록한 최초의 사람 윌리엄 머를이나 17세기 일기 기록자 존 이블린의 기록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관련태그: 예술가들이 사랑한 날씨, 사물의 본성, 루시 허친슨, 신의 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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