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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토> 이념과 음악을 초월해 신화가 된 청춘(들)

청춘을 신화로 접근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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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최의 전기영화일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레토>는 청춘을 신화로 접근한다. 다시 신화의 얘기로 돌아와, 레토의 남편 제우스는 크로노스와 레아의 막내아들이었다. (2019. 01.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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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레토>의 한 장면

 

 

‘저항해라. 변치 않는 유일한 것은 변화뿐이니.’

 

중국 출신의 미국 이민자 켄 리우의 단편집 <종이 동물원> 중 한 편인 <파>(波)에 나오는 문장이다. 빅토르 최를 주인공으로 한 <레토>를 보고 이 문장이 떠올랐다. <레토>와<파>는 각각 음악영화와 SF소설의 장르 차이만큼이나 분위기가 확연히 다른 작품임에도 ‘진화 進化’를 테마로 한다는 점에서 통하는 데가 있다.

 

그렇다고 이 지면에 <파>의 이야기를 요약해서 <레토>와 비교할 생각은 아니다. 요는, 이 글의 첫 줄에 인용한 <파>의 문장이 <레토>의 주제를 압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진화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종(種)과 같은 생물이 과거로부터 현재에 걸쳐 변화해 온 과정이 하나요, 사물 혹은 상황이 더 나은 상태로 바뀌는 게 또 하나다.

 

<레토>는 이 두 가지 진화의 양상을 모두 품은 이야기다. 때는 1981년, 장소는 레닌그라드. 구(舊) 소련으로 불리던 당시 러시아의 젊은이들은 귀를 열고 몸을 맡겨 시야를 넓혀줄 음악, 그중에서 록(rock)을 맘대로 연주할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젊은이들의 저항을 막고자 감시가 일상화된 사회에서 뮤지션은 제한적인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위해 반(反) 체제적인 가사를 순화해야 하는 수치를 감내해야 했다. 청중은 흥겨운 음악에 맞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몸을 흔들기라도 하면 퇴장을 감수해야 했다.

 

마이크(로만 빌릭)는 저항과 순응 사이에서 절묘하게 줄타기 하는 로커였다. 이기 팝, 티렉스, 데이빗 보위 등 미국과 영국의 록이 금지된 상황에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그들의 음악을 지향하며 지배 권력을 자극하지 않는 가사로 인기를 끌었다. 얼마간은 순응적인 마이크와 다르게 빅토르 최(유태오)는 기성의 심기를 거스르거나 말거나 록의 저항에 뿌리를 두되 영미의 록과는 다른 스타일의 음악으로 이후 러시아의 전설적인 뮤지션이 되었다.

 

<레토>를 비롯해 많은 예술매체가 록 음악을 경유해 청춘을 묘사하는 이유는 질주하는 본질이 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대가, 일방적인 이념이, 기성세대가 아무리 젊음을 질투하고 시기하고 제도 안에 가두려 해도 그 시도는 미수에 그치거나 쫓는 데 급급하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경직된 사회의 변화를  앞장서 외쳤던 건 젊음이었고, 그 젊음이 나이를 먹어 퇴장해도 자연의 법칙은 다음 세대에게 바통을 이어주는 까닭에 중단 없이 뜨거운 태양의 기운을 전매특허로 발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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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레토>의 한 장면

 

 

젊음을 계절로 비유하면 ‘여름’이다. 러시아어로 여름은 ‘레토 Лето’다. <레토>는 ‘초’여름부터 ‘한’여름까지 여름 한철을 배경으로 진행된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레토는 모성의 여신으로도 유명하다. 레토에게는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두 자녀가 있었다. 태양의 신 아폴론과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다. 영화 <레토>의 흐름상 두 주인공에 대입하면 마이크는 아르테미스, 아폴론은 빅토르 최에 해당하는 듯하다.

 

마이크는 영미 록을 향한 동경과 열망을 음악에 담았지만, 제도권이 선을 그어놓은 금기 탓에 마저 발산하지 못한 에너지가 마음에 쌓여 달의 허무가 짙었다. 그때 등장한 빅토르 최는 마이크를 따르면서도 그와 다르게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태양의 음악으로 젊은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렸다. 공산주의에 대한 회의와 자유를 향한 민중의 갈망은 마이크에서 빅토르 최로 확성기를 갈아탔다. 마이크는 저무는 해이자 지는 여름이었고, 뜨는 해 빅토르 최는 초여름의 시기를 지나 곧 한여름을 맞이할 터였다.

 

빅토르 최의 전기영화일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레토>는 청춘을 신화로 접근한다. 다시 신화의 얘기로 돌아와, 레토의 남편 제우스는 크로노스와 레아의 막내아들이었다. 크로노스는 폭군 아버지 우라노스를 죽인 후 왕이 된 까닭에 같은 운명이 될까 두려워 자식이 태어나면 곧바로 먹어 치워버렸다. 이를 염려한 레아는 제우스가 태어나자마자 크로노스의 감시가 닿지 않는 섬으로 피신시켰다. 살아남은 제우스는 후에 아버지에 맞서 전쟁을 벌였고 결국 승리해 올림포스의 신이 되었다.

 

신화는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는 ‘살부 殺父’의 테마가 횡행(?)하는 무대다. 이와 관련해 켄 리우의 <파>에서는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를 설명하며 이렇게 말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자식이 들고일어나 아버지를 내쫓는 걸 몇 번이나 목격한 신이야. 신세대가 구세대의 자리를 대신하는걸, 그렇게 해서 매번 세상을 다시 새롭게 만드는 걸 봤단 말이야. 그러니까 그 신이 인간한테 한 말이 뭔지는 짐작하고도 남지.

 

저항해라. 변치 않는 유일한 것은 변화뿐이니.’

 

마이크와 빅토르 최는 이념을 고삐 삼아 젊음을 옥죄는 아버지 세대의 전횡에 맞서 청춘들과 음악으로 저항해 다양성으로의 변화, 즉 ‘사회의 진화’를 이끌었다. 빅토르 최는 자신의 재능을 알아보고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음악적 아버지 같은 존재 마이크를 넘어 더욱 ‘진화한 존재’로 러시아 음악사에 길이 남을 이름이 되었다. 이념과 음악을 초월해 신화가 된 이들의 이야기, 바로 <레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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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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