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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주 "사소하지만 시시하지 않은 행복"

『그래도 오늘은 좋았다』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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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사실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제가 좋아서 그리는 게 다라면 그림도 계속 못 그릴 텐데, 제 그림이 좋다고 해주시는 분들 덕에 계속할 수 있는 힘이 생겨요. (2018.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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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 당산역과 합정역을 잇는 당산철교 위에서는 ‘마법’이라 할 만큼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강 건너의 빌딩숲, 국회의사당, 양화대교, 그리고 강물의 물비늘……. 이곳을 지나는 순간만큼은 스마트폰을 하던 사람도, 책을 읽던 사람도 한 번은 고개를 든다. 행복이란 이렇게 어쩌다가, 어렴풋하게,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리 대단치 않기에, 너무나 흐릿하기에 사람들은 쉽게 지나치곤 한다. 그러고는 인스타그램 피드 속 사람들을 좇아 여행을 떠나고, 맛집을 찾고, 사진을 찍어 남기다 헛헛함이 밀려올 때면 다시 이런 행복들을 그리워한다.

 

햇볕이 좋아서, 창가에 기대 잠드는 게 좋아서, 내리고 타는 사람들의 표정을 구경하는 게 좋아서 지하철로 30분이면 가는 길을 1시간30분 걸리는 버스를 고집한다는 그녀. 왕십리 올리브 치아바타, 상수 바질 크런치, 도산공원 버터 프레츨……, 우리를 웃음 짓게 하는 건 바로 곁에 있는 것들이라고 말하는, 스물다섯 살  그래도 오늘은 좋았다』  의 이민주(무궁화) 작가를 만나 보았다.

 

영화 포스터, 리릭비디오 작업, 문구 브랜드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단행본은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첫 그림 에세이  『그래도 오늘은 좋았다』  속 100가지 이야기들은 어떻게 모인 건가요?

 

이 책은 여러 가지 주제들을 담아낸 책이잖아요. 처음에 출판사와 책을 쓰기로 했을 때 이런 저런 주제로 그림들을 묶어서 나열해볼까……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다 제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 그대로 책을 구성하면 어떨까 생각했죠. 외출하고 돌아올 때 지하철에서 마주친 사람의 얼굴, 산책길에 만난 강아지와 주인의 행복한 모습 같은 것들을 기억해뒀다가 그림을 그리거든요. 그 순간들을 한데 모아놓으면 사람들이 잊고 있던 행복의 감각을 깨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제 일상을 가공하지 않고 전달하고 싶은 마음도 컸고요. 아마 제 책을 보시는 독자분들은 있는 그대로의 저를 들여다본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론 그림 속에 제 이야기를 쓰는 것에 고민이 많았어요. 내 이야기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나한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닐까? 하고요. 그런데 쓰다 보니 사람들이 SNS에 올리는 글과 제 이야기가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저의 이야기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더 솔직하게 쓰기 시작했죠.

 

무궁화 작가님 그림의 가장 큰 특징을 꼽자면, 아무래도 색연필로 그림을 꼼꼼하게 그린다는 것인데요. 그림을 색연필로 그리는 건 언제 시작했나요?


입시 미술을 했을 때, 같은 주제로 그림그리기를 반복하고, 많은 사람과 한 반에서 경쟁하고…… 이런 형식의 미술공부 때문에 대학교에 입학할 즈음에는 ‘그림 그리기’라는 행위에 약간 질려버렸어요. 그래서 대학교를 다닐 땐 ‘그림을 그리기 싫다’라는 지경까지 갔죠. 대학교에서도 과제 때문에 야작을 매일같이 했거든요. 어느 새인가부터 그림그리기가 참 즐겁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방학이 되어서 맘껏 쉬던 중에 방 청소를 했어요. 그때 책상 밑에 묵혀 놓은 색연필을 발견했는데 미술용 비싼 색연필이라 그냥 두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뭐라도 그려볼까 고민하다 동물, 사물을 그렸는데 다시 그림이 재밌어지더라고요. 2016년부터는 본격적인 색연필 그림 작업에 돌입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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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대학생 때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책에 씌어 있어요. 친구들이 회사에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프리랜서를 하겠다고 결심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취미로 색연필 그림을 시작하다가 2016년도 하반기부터 일러스트 작업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카카오톡 이모티콘 작업이 그중 하나였죠. 대학교 입학 전에도 일러스트레이터가 꿈이긴 했지만, 이 직업이란 게 사실 누가 불러주기 전에는 고정적이지 않고, 수입도 불안한 직업이라 망설임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 성격이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고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언젠가 친구랑 사주를 보러갔는데, ‘넌 그냥 혼자 일해. 남 밑에서 일 절대 못해!’라는 말을 듣기도 했고요. 사주 때문은 아니지만, 저의 성격과 작업 장식에 대한 고민 끝에 남들이 다하는 취업 준비를 과감히 안 하기로 결심했어요. 대신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가 되기로 마음먹었죠. 그랬더니 오히려 설렁설렁하게 취미로 그림을 그리면 안 되겠더라고요. 내 그림으로 나를 더 알려야겠다, 인정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정말 열심히 그렸어요.


지금도 사실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제가 좋아서 그리는 게 다라면 그림도 계속 못 그릴 텐데, 제 그림이 좋다고 해주시는 분들 덕에 계속할 수 있는 힘이 생겨요. 그게 제일 커요. 사람들이 저에게 해주는 말은 느낌이 굉장히 다르거든요. 이번 디자인 페스티벌에서 어떤 분께 손편지를 받았거든요. 마음이 힘들 때나 허할 때 그 편지를 열어봐요.

 

책 속에 누워 있는 그림이 많은 이유가 작업을 하느라 피곤한 날, 눕고 싶으니까 그 욕망을 그림 속에 불어넣었다는 글을 봤습니다. 그렇다면 요즘의 욕망은 무엇인가요? 그게 가장 잘 담긴 꼭지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요즘엔 그림 작업 의뢰가 너무 많아서, 사실 그림을 잘 못 그리고 있어요. 게다가 이 책을 만드느라 지금 좀 지친 상태기도 하고요. 그래서 요즘엔 여행에 대한 욕망이 커요. 저한테는 집 근처로 막냇동생과 조잘대며 함께 산책하는 것도 여행이라 시간 나면 하고 있고, 얼마 전에는 서울에 숙소를 잡고 서울 여행을 하기도 했어요. 더 많은 곳에 가서 사람들 사는 모습,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빛깔 같은 것들을 눈에 많이 담고 싶어요.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제주도와 부산이에요. 서울을 벗어나 아래 지방으로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거든요. 제주도에 간다면 택시를 타거나 걸어 다니면서 모르는 동네를 하염없이 돌아다니고, 드넓은 바다도 보고, 그곳의 하늘도 맘껏 구경하고 싶어요. 부산 바다도 제대로 느껴 보고 싶고요.
제 욕망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가장 빠르고 만족스럽게 그려낸 그림이 있어요. 이 책에 있는 ‘53 잘 자요’라는 강아지와 함께 자고 있는 그림이에요. 그걸 그린 날이 생각나는데, 과제에 지쳐 집에 돌아와서 ‘샤샥’ 저의 모습을 그려냈죠.

 

작가님이 말하는 ‘사소하지만 시시하지 않은 행복’ 그 말이 참 인상 깊어요. 보통은 나이가 들거나 큰일을 겪은 후에나 이런 게 소중하다는 걸 깨닫거든요. 작가님은 언제부터 그런 행복을 찾기 시작하셨나요?


대학교에 들어와서 정말 많은 과제를 해야 했어요. 예를 들어 교수님이 일주일 동안 로고 100개를 그려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고는 다음 주에 학생 한 명 한 명이 그린 로고 100개를 창에 띄워놓고 교수님이 자기 마음에 드는 게 나올 때까지 “다음, 다음, 다음”을 외쳤죠. 이렇게 해도 마음에 드는 게 없으면 다음 주에 또 100개, 많을 때는 2,000개도 그렸죠. 매일 이런 과제 스케줄을 소화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심지어 저는 과제를 하면서 의뢰받은 일러스트 작업도 했었거든요. 어느 날에는 과제 제출일과 일러스트 작업 마감 시간이 3~4시간 간격으로 몰아닥친 적이 있었어요. 밤을 새워가며 과제를 하다가 새벽에 부랴부랴 정신없이 집으로 달려가서 후다닥 일러스트를 그려서 담당자한테 보냈죠. 씻지도 않은 채 다시 학교로 와서 과제를 마감했던 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무슨 재미로 살지?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을 텐데?’


그때부터 전철이 아닌 버스를 타고 다녀봤어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얼굴 보고, 햇볕을 쬐면서 창문에 기대어 자려고요. 사소하지만 제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 저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행동이니까요. 어떻게 보면 그게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어요. 친구들은 미쳤다고 했죠. 왜 1시간 걸려서 집 가는 거리를 버스타고 1시간 반 넘게 걸려서 가느냐고. 그럴 때마다 말했죠. 제가 좋아서 그런다고. 그 시간동안 보는 하늘, 사람들의 표정,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너무나 좋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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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에 벌써 여러 분야 아티스트와 협업하고, 자신의 문구 브랜드도 내고, 단행본 출간에 쇼룸도 운영하고 있어요. 혼자 일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동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해요. 제 또래 친구들은 직장 다니느라 저와 스케줄이 안 맞아서 만나기 힘들고요. 제가 맏이라서 항상 힘들다는 말을 남에게 안하는 편인데, 그런 힘듦을 나눌 수 있는 또래가 있었으면 했어요. 그런데 쇼룸에서는 그림 수업도 하거든요. 여기에 수업받으러 오는 분들 덕에 그런 또래가 생겼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분들과 대화를 하면서 새로운 생각이나 이야기도 듣고, 그런 속에서 힘듦이 중화되는 기분이에요. 그림을 그리는 것도 제 힘든 마음을 풀어내는 과정이지만, 이 두 가지가 각기 받는 스트레스를 상쇄하는 기분이랄까. 그리고 편집자님이 말했던 그 느낌, 맞는 거 같아요. 저는 뭔가를 하지 않고 있는 게 제 스스로에게 스트레스거든요. 깨어 있을 땐 항상 뭔가 하고 있어야 하는 성격인 것 같아요.

 

책 표지에 ‘라떼에 바닐라 시럽 추가, 언제나 행복해질 수 있어요’라는 문구가 눈에 띄어요. 프롤로그에 씌어 있기도 하고요. 작가님이 ‘최고의 바닐라 라떼’ 라고 손꼽는 카페를 독자분들께 소개해주세요.


네, 있어요! 망원동에 있는 ‘스몰토크’라는 곳입니다. 저는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곳을 찾아서 저만의 맛집을 개척하는 걸 좋아하는데, 이 집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밖과의 소리가 차단돼요. 고요한 공간에서 편안함이 찾아오죠. 독자분들께만 팁을 드리자면, 겨울 한정으로 특별히 나오는 메뉴가 있어요. ‘딸기라떼’인데 그게 참 별미예요.

 

책에는 커피 외에도 빵에 대한 이야기가 꽤 있어요. ‘왕십리 올리브 치아바타, 상수 바질 크런치, 도산공원 버터 프레츨’이라고 리스트를 꼽을 정도로요. 요즘 찾은 새로운 빵 맛집이 있나요?


제가 요새 빵을 끊긴 했는데…… 풀빵에 맛을 알았어요. 막냇동생이랑 산책하면서 동네 구석에서 발견한 풀빵을 먹고 너무 반했어요. 흐르는 듯한 팥소에, 한 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 단맛을 싫어하는데 풀빵에 팥소는 묽어서 좋더라고요. 풀빵이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오늘은 좋았다이민주 저 | 비사이드
그들에게 무궁화의 글과 그림은 ‘무언가를 사거나 어딜 가야만 행복한 건 아니야’라고 말해주며 자극적인 행복에 가려 우리가 잊어온 행복의 순간으로 안내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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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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