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버리지 못하는 병

어느 맥시멀리스트의 변명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내게 즐거움을 주는 컵이 일곱 개인데, 아니 더 마음에 드는 컵을 만나게 되면 열 개가 될 수도 있는데, 부정적인 파동을 발산하는 컵은 단 한 개도 없는데 대체 어떻게 물건을 줄이지? (2018. 11. 16)

kevin-laminto-767273-unsplash.jpg

              언스플래쉬

 

 

한 번 내 손에 들어온 물건은 오랜 시간 나와 함께 한다.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 경우엔 애정을 너무 듬뿍 줘버려서 이것도 저것도 다 소중한 물건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매번 버리는 일에 실패하면서도 미니멀리스트를 향한 도전은 멈추지 못했다.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책이 새로 나올 때마다 한 권도 빠짐없이 정독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마음이 약해져서 버리지 못하고, 오직 상상 속에서만 미니멀리스트로 존재하는데 만족하고 만다. 결국, 미니멀해지려고 사들인 책들이 버리지 못할 물건으로 탈바꿈 하면서 미니멀리스트는 더 요원한 꿈이 돼버렸다.

 

세상에서 제일 하기 싫은 일 중 하나가 바로 이사. 이상하게도 회사에서 자리를 이동할 일이 유독 많았는데, 짐을 싸고 풀 때마다 내가 가진 짐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깨달았다. 이중 삼중으로 책꽂이에 가득 꽂혀 있는 책도 책이지만, 책상 위에 일곱 개의 컵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 마시는 컵, 커피 마시는 컵, 차 마시는 컵, 양치 컵 말고도 기분 따라 컵을 바꿔가며 쓰기 때문에 언제 수가 그렇게 늘었는지도 몰랐는데… 그렇지만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모두 필요한 컵들이라 하나도 빠짐없이 옮기게 된다.

 

이사할 때마다 끝도 없이 나오는 내 물건들을 보면서 많은 동료들이 혀를 내두르지만, 그들이 모르는 비밀이 하나 있다. (믿거나 말거나) 사실 나는 정리를 꽤 잘한다.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 사용하고 난 물건은 처음에 그 물건이 있던 자리에 꼭 다시 놓아둔다. 일곱 가지 컵의 경우를 얘기하자면, 이들에게도 각자의 자리가 있다. 찬장처럼 세워놓고 쓰는 책꽂이의 맨 위 칸에는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작은 찻잔이, 커피 컵과 납작한 컵, 중간 크기의 컵이 그 아래층에, 커피를 내리거나 차를 우릴 때 쓰는 서버와 겨울에만 쓰는 컵이 가장 밑에 있는 식이다. 하지만 아무리 정리를 잘한다고 해도 물건의 개수가 지나치게 많다 보니 책상은 항상 가득 차 있고, 그래서인지 내가 정리를 잘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는 게 함정이다.

 

물건은 우리 감정을 담아 내는 그릇이다. 따라서 쓸모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라 즐거움도 줄 수 있어야 한다. 너절하고 장소에 맞지 않는 물건은 모두 치우거나 버리자. 그런 물건들은 부정적인 파동을 발산하기 때문에 소음 공해나 해로운 식품만큼이나 우리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마음에 안 드는 물건들에 계속 둘러싸여 지내면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진다. 그 물건들이 신경을 거슬리게 해서 나쁜 호르몬이 분비되는 탓이다. 물건 때문에 짜증스런 말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아! 저것 때문에 귀찮아 죽겠네. 저것 때문에 정말 열 받네. 저것 때문에 진짜 미치겠네.”

 

그에 반해 마음에 꼭 드는 물건은 크나큰 위안과 안도감, 평화를 가져다 준다. 좋아하는 물건만 곁에 두자. 그 외의 것은 의미가 없다. 시시한 물건이나 한물간 물건이 우리의 세계를 잠식하게 내버려 두지 말자.
- 도미니크 로로,   『심플하게 산다』  40-42쪽

 

책을 읽다가 이런 부분을 만나면 나의 고민이 시작된다. 내게 즐거움을 주는 컵이 일곱 개인데, 아니 더 마음에 드는 컵을 만나게 되면 열 개가 될 수도 있는데, 부정적인 파동을 발산하는 컵은 단 한 개도 없는데 대체 어떻게 물건을 줄이지? 물은 이 컵에 마셔야 가장 시원하고, 홍차는 저 컵에 마셔야 제일 향긋한데, 그래서 뭔가를 마실 때마다 크나큰 위안과 안도감, 평화를 느끼는데… 조금 과장을 보태 『심플하게 산다』를 100번 정도 읽었는데, 다양한 물건을 돌려가며 사용하고 그 물건을 바라보면서 행복을 느끼는 맥시멀리스트의 물건 사랑의 크기는 어떻게 줄여야 하는 건지 여전히 모르겠다.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를 열망했다가, 그냥 생긴 대로 살자며 포기했다가, 이대로는 물건들이 내 삶을 잠식해 버릴까 걱정돼 정말 버릴 물건이 없나 살펴보는 반복의 과정 중에 문득, ‘물건이 많으면 정말 안 되는 걸까?’ 의문이 피어났다.

 

주중은 5일이고, 주말은 2일이다. 퇴근 후 집에 가면 저녁 먹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드는 게 주중의 일상이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길고, 회사에 있는 동안 업무를 위해 들이는 에너지와 노력이 상당한데, 그렇다면 오랜 시간 머무는 장소를 나를 위한 최상의 상태로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 원하는 차를 언제든 끓여 마실 수 있으려면 컵 말고도 최소 10가지 정도의 다양한 차가 담긴 티 박스와 전기 주전자, 티팟도 함께 갖추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주변을 둘러싼 많은 물건들이 나를 짜증나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물건들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 물론, 나름의 규칙과 질서를 만들어 많은 물건들을 보기 좋게 수납한다면 더 좋겠고.

 

우리는 질병과 죽음 그리고 잠든 동안 우리를 덮치는 온갖 악몽 앞에서 무력하다. 하지만 정돈된 공간은 우리가 적어도 우주의 작은 한 모퉁이에 질서를 부여할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한다.

 

(중략) 주변에 질서를 부여하면 마음에도 질서가 자리 잡는다. 서랍에서 자질구레한 물건을 치우거나 벽장을 정돈하는 등 주변을 정리하고 단순하게 만들 때마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에서 무언가를 통제하고 있다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 도미니크 로로,  『심플하게 산다』  86-87쪽

 

제목만 봐도 힘이 되는 책, 쓸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펜, 기운을 북돋아주는 아로마 오일 등, 참 많은 물건들에게 위안을 얻으며 살아간다. 언제 어떤 방법으로 힘이 될지 모르는데, 그것들을 어떻게 버릴 수 있을까? 오늘도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방법을 상세하게 알려주는 책을 반복해 읽었지만, 이것도 저것도 다 소중해 작은 것 하나도 버리지 못했다. 100개의 물건에서 골고루 기운을 얻는다면, 100개의 물건과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인 거다. 맥시멀리스트의 물건 사랑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배너_책읽아웃-띠배너.jpg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최지혜

좋은 건 좋다고 꼭 말하는 사람

심플하게 산다

<도미니크 로로> 저/<김성희> 역 10,800원(10% + 5%)

전 세계 100만인이 공감한 삶의 방식, ‘심플’ 유럽, 북미, 중국, 일본, 아랍 국가에 이르기까지 36개국에서 100만부 이상 판매되며 ‘심플한 삶’에 대한 전 세계적인 공감을 일으킨 『심플하게 산다』. 프랑스 출신인 저자는 동양적인 아름다움에 빠져 1970년대 말부터 일본에 살기 시작했다. 서구와는 ..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ebook
심플하게 산다

<김성희 역>,<도미니크 로로 저> 저8,000원(0% + 5%)

전 세계 100만인이 공감한 삶의 방식, ‘심플’ 유럽, 북미, 중국, 일본, 아랍 국가에 이르기까지 36개국에서 100만부 이상 판매되며 ‘심플한 삶’에 대한 전 세계적인 공감을 일으킨 『심플하게 산다』. 프랑스 출신인 저자는 동양적인 아름다움에 빠져 1970년대 말부터 일본에 살기 시작했다. 서구와는 ..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산업의 흐름으로 반도체 읽기!

『현명한 반도체 투자』 우황제 저자의 신간. 반도체 산업 전문가이며 실전 투자가인 저자의 풍부한 산업 지식을 담아냈다.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반도체를 각 산업들의 흐름 속에서 읽어낸다. 성공적인 투자를 위한 산업별 분석과 기업의 투자 포인트로 기회를 만들어 보자.

가장 알맞은 시절에 전하는 행복 안부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사람, 작가 김신지의 에세이. 지금 이 순간에 느낄 수 있는 작은 기쁨들, ‘제철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1년을 24절기에 맞추며 눈앞의 행복을 마주해보자. 그리고 행복의 순간을 하나씩 늘려보자. 제철의 모습을 놓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은 우리 곁에 머무를 것이다.

2024년 런던국제도서전 화제작

실존하는 편지 가게 ‘글월’을 배경으로 한 힐링 소설. 사기를 당한 언니 때문에 꿈을 포기한 주인공. 편지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모르는 이와 편지를 교환하는 펜팔 서비스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성장해나간다. 진실한 마음으로 쓴 편지가 주는 힘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소설.

나를 지키는 건 결국 나 자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물질적 부나 명예는 두 번째다. 첫째는 나 자신. 불확실한 세상에서 심리학은 나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무기다. 요즘 대세 심리학자 신고은이 돈, 일, 관계, 사랑에서 어려움을 겪는 현대인을 위해 따뜻한 책 한 권을 펴냈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