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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1446>의 부드럽지만 강한 세종대왕, 배우 정상윤
한 회 한 회 소중한 마음으로 공연하는 정상윤 배우
한글을 그냥 읽고 써왔는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한글을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 좀 더 의식이 생긴 것 같고요. (2018. 10. 31)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창작뮤지컬 <1446>이 지난해 트라이아웃 공연에 이어 올해 국립중앙박물관 극장용에서 정식으로 공연되고 있습니다. 올해 572돌을 맞은 한글은 지난 1446년에 반포됐는데요. 뮤지컬 <1446>은 한글 창제를 비롯한 세종대왕의 수많은 업적과 함께 그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한 인간으로서의 갈등과 고뇌를 담아냅니다. 우리의 역사이고, 핵심을 잘 살려낸 이야기 전개와 강렬한 음악으로 초연인데도 객석의 반응이 좋은데요. 공연을 즐겨 보는 관객이라면 의외의 캐스팅이라 생각했던 배우들의 호연에 더 큰 재미를 느끼지 않을까 합니다. 특히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면모로 세종대왕을 연기하고 있는 배우 정상윤 씨를 빼놓을 수 없겠죠. 공연이 시작되기 전 정상윤 씨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이 작품은 관객들도 많이 좋아하시지만 배우들도 얻는 게 많아요. 한글을 그냥 읽고 써왔는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한글을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 좀 더 의식이 생긴 것 같고요.”
처음 세종대왕 역을 제안 받았을 때 어땠나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알고 존경하는 인물이라서 부담도 컸을 텐데요.
“일단 기분은 좋았어요. 그런데 대본과 음악을 받고는 방대한 양에 많이 놀랐죠. 대사가 정말 많거든요. 노래도 많고. 매일 공연 전에 혼자 런쓰루를 하고 있어요. 그동안 나쁜 인물, 착한 인물, 여린 역할, 센 역할, 이상한 사람, 웃긴 사람 등 다양한 캐릭터를 많이 해왔다고 생각하는데, 세종대왕은 새로운 도전이고 또 한 번의 좋은 기회지 않았나 싶어요.”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기는 했지만 ‘한국인’으로 참여한 작품은 많지 않아서
공연을 보기 전까지는 세종대왕 캐스팅이 의외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상윤 씨의 항변은 영상에서 직접 확인해보시죠!
세종대왕의 업적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을 담고 있어서 캐릭터를 잡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극이 어떤 특정 사건을 파고든다기보다는 삶 전체를 다루는데, 그렇다고 연대기적인 느낌도 아니에요. 그래서 캐릭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역할이었어요. 세종대왕이라고 하면 성군으로만 생각하지만, 다양한 면이 있을 수 있잖아요. 집착도 있고, 고집도 있고, 여린 모습도 있을 테고요. 세자로 살 수 없었던 충녕대군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왕권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어릴 때부터 봐왔으니까 그 부분에 대해 많은 것도 느꼈겠죠. 자신에게도 아버지의 피가 흐르니까 그런 기질도 없지 않고요. 나이가 들면서 점점 단단해져 가는데, 태종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 기질을 표현하느라 수많은 갈등과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그 시대 선왕이었던 아버지의 뜻을 거역한다는 게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일 텐데, 그 부분을 극에서 자연스럽게 넘기는 게 힘들었을 텐데요.
“그렇죠. 평소 공부를 많이 하고 책에 파묻혀 사셨던 분이라 준비는 굉장히 많이 했을 것 같아요. 실제로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다 들은 뒤에 타협점을 찾거나 자기주장을 밀어붙였다고 하고요. 1막은 특히 시간적으로 점핑되는 부분도 있는데, 처음에는 나약하고 수동적이고, 편전에서도 대신들에게 휘둘리지만 어느덧 단단해져서 아버지에게도 정확한 의사를 밝히잖아요. 그 과정에서 차이를 줄이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중간에 장영실을 만나고, 소헌왕후를 바라보는 장면이나 백성들의 모습도 점점 심지가 굳어가는 계기들인데, 개인적으로는 편전 장면이 한 번 더 있었으면 좀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전체 공연 시간이 늘어나겠지만요.”
뮤지컬 <1446>에는 전해운이라는 창조된 인물이 있잖아요. 내용을 기사에 밝힐 수는 없지만, 전해운과의 관계만 봐도 세종이 태종처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 무서운 사람이구나 싶습니다(웃음).
“맞습니다, 더 무서운 거죠(웃음). 태종과 방식이 다를 뿐 성격은 강한 분 같아요. 왕은 어쨌든 결정을 해야 하잖아요. 천문 쪽이나 훈민정음만 봐도 명나라를 상당히 경계했고, 대신들과 끊임없이 갈등이 있었고, 백성을 위해 시행한 정책으로 인해 고통 받는 백성을 보고 괴로워하면서도 자신이 생각한 것을 시행하는 결단력이 있잖아요. 그래서 고뇌도 많았을 테고요.”
태종 역을 함께 맡은 남경주 씨와 고영빈 씨는 나이나 이미지가 많이 다른데, 무대에서도 많이 다르죠?
“많이 다르죠. 영빈이 형은 강하지만 부드러움도 있고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라는 느낌이 든다면 경주 선배 같은 경우는 좀 더 냉철하고 철저하게 왕권 강화를 위한다는 느낌이 있어요. 두 분이 달라서 상대배우로서는 재밌죠. 그런데 작품을 준비하고 공연하면서 한 가지 슬픈 건 세종이 태종과 마음을 나누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비록 마음에 차지 않아서 꾸짖지만 양녕은 그만큼 아꼈다면 충녕은 따로 부성애를 느낄 수가 없잖아요. 외로운 싸움을 하도록 키워냈지만, 자식으로서는 아쉽고 그래서 더 외로운 것 같아요.”
그나저나 예전에는 조금 까칠하다는 소문도 있고, 허세 가득한 농담도 많이 하셨는데, 오늘은 작품의 영향인지 정상윤 씨 분위기가 전혀 다르네요(웃음).
“그럴 수 있어요. 작품을 하면 실제 생활에도 영향을 받거든요. 차갑고 까칠한 역할을 맡으면 평소에도 묻어나죠.”
프로필 사진도 굉장히 어울리는데, 세종대왕과 비슷한 점을 찾는다면요?
“세종대왕도 몸집이 크고 후덕하셨다고 해요. 고기도 많이 좋아하고(웃음). 그리고 저도 평소에 상대방 얘기를 많이 들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사람도 좋아하고요.”
사극이라서 힘든 점도 있을 텐데요?
“수염이 잘 떨어지더라고요. 지금은 익숙해졌는데, 강하게 말할 때도 입모양을 덜 움직이는 등 기술적으로 신경 쓸 부분이 있어요. 그리고 말이 지금 쓰는 표현도 아니고 좀 길어요. 대사가 조금씩 길다 보니 감정을 드러내는 데 있어 처음에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힘들더라고요.”
뮤지컬 <랭보>도 시작했잖아요. 올해는 <붉은 정원>부터 계속 글과 관련이 깊은 인물이네요.
“모두 창작 초연이고요. <랭보>도 열심히 준비했는데, 이제 거의 매일 공연이라서 관리 잘해야죠. 두 작품에 모두 깊게 들어가서 관객들이 좋은 공연 봤다고 생각하실 수 있도록 하는 게 저의 올해 목표예요.”
<1446>, <랭보>와 함께 연말연시를 맞게 될 텐데, 올해는 새로운 작품, 새로운 인물을 많이 연기해서 돌아보면 무척 뿌듯할 것 같습니다.
“네,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다양한 장르, 다양한 캐릭터에서 즐겁게 작업하고 싶어요. 일단 <1446> 무사히, 뜨겁게 잘 끝내야죠. <1446>이라는 작품에서 세종대왕이라는 인물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공연할 수 있었다는 건 제가 나중에 이 세상과 이별하게 됐을 때 돌아보면 정말 소중한 기억이 될 것 같아요. 그 정도로 정말 감사하고, 한 회 한 회 소중하게 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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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