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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주혁의 웃음 : 깊고 단 나무그늘 같던 사람의 부재
한없이 소중했던 사람이 있었음을 계속 곱씹었던 1년
한없이 소중했던 사람이 있었음을, 그 굳고 정한 나무 같던 사람이 펼쳐준 그늘 아래에서 달게 쉬어 가던 시간이 우리에게도 있었음을 내내 곱씹었던 1년. (2018. 10. 29)
그늘이 깊은 곳에서 나무에게 감사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언제나 그 자리에 서서 그늘을 내어주는 게 나무의 당연한 일이라 여기니, 매번 그 고마움을 곱씹을 일이 많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무는 종종 존재가 아니라 부재를 통해 제 존재감을 드러낸다. 나무가 스러지고 베어져 나간 뒤에야, 너무도 당연한 것 같았던 그 깊고 단 그늘이 사실은 하나도 당연한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김주혁도 나무 같은 사람이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처럼 든든하면서도, 굳이 제 존재감을 소리 높여 주장할 만큼 이기적이지는 않은 사람. 속 깊고 세심한 이들이 종종 그렇듯, 김주혁 또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다 함께 빛나는 쪽을 택한 사람이었다. 그는 현장에서 부상을 입은 스태프가 주연배우 휴게실에서 잠들어 있는 걸 보고는 스태프가 잠에서 깰까 소리 죽여 휴게실을 나서던 사람이었고, 여자 주인공에게 충분히 포커스가 갈 수 있도록 자기 욕심을 줄이는 것을 ‘서포트’가 아니라 ‘앙상블’이라고 생각했던 배우였다. 영화 <청연>(2005)과 <비밀은 없다>(2015)에서, <싱글즈>(2003)와 <방자전>(2010)에서, 김주혁은 함께 일하는 여자 동료 배우들이 충분히 제 몫의 서사를 확보할 수 있도록 기꺼이 공간을 내어주었던 넉넉한 품의 소유자였다. 그런 사람이었던 탓에, 지난 한 해 내내 대중문화계의 화두였던 ‘영상 콘텐츠 제작 스태프 처우 개선’이나 ‘여성 중심 서사 영화의 필요성’을 이야기할 때면 사람들은 그의 빈 자리를 생각하곤 했다. 김주혁이 있었다면. 그래, 김주혁이었다면 좀 달랐을 텐데. 배우 본인은 이러다가 자기 인상이 흐릿해져서 사람들에게 잊히는 건 아닌가 걱정했다지만, 그가 남기고 간 빈 자리는 생각보다 넓고 깊어서 사람들은 그의 부재 앞에서 그의 존재감을 뼈 아프게 추억했다.
김주혁은 1주기를 코 앞에 둔 지난 10월 22일 열린 제55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과 특별상을 수상했고, 24일에는 2018 대중문화예술상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그 상들은 김주혁이 tvN <아르곤>(2017)과 <흥부>(2017), <독전>(2018)을 통해 보여준 다채로운 활약에 대한 찬사인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순간을 그가 펼친 그늘 아래에서 쉬어 갔는지를 곱씹어 본 결과일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며 무심코 ‘벌써 1주기’ 라고 쓰고 흠칫 하고는 백스페이스 키를 눌렀다. 혹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정신 차려보니 1년이 됐다’는 말인 양 들리면 어쩌나 싶어서. 김주혁이 없던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벌써 1주기라는 말은, 그가 언제라도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웃으며 화면 위에 등장해 그늘을 드리워줄 것만 같던 거짓말 같은 시간이 벌써 1년이라는 의미였다. 한없이 소중했던 사람이 있었음을, 그 굳고 정한 나무 같던 사람이 펼쳐준 그늘 아래에서 달게 쉬어 가던 시간이 우리에게도 있었음을 내내 곱씹었던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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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