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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가 내게 준 것

집요한 나, 끈기 있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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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이 또 이렇게 다치더라도, 나는 조금씩 또 달려볼 테다. 내 몸과 마음을 새로 정비할 시간을 준 달리기이니까. 내 집요한 끈기를 자극해 준 내 몸의 움직임이니까. (2018. 10. 19)

 솔직히 말해서_1019_이나영.jpg

            pixabay

 


저번 주말도 10km를 달렸다. 이번 기록은 1시간 8분. 길다면 길고 누구에게는 짧게 느껴질 시간이지만, 뛸 때마다 나를 새롭게 들여다보게 되는 나에 대한 발견의 시간이다. 저번 달 대회 때 같이 뛰던 사촌언니는 내게 말했다. “누가 그러던데, 달리는 사람들은 저마다 달리게 된 사연이 다 있대. 그래서 더 간절하게 뛰는 거고.” 나는 어떤 사연으로 달리게 된 걸까. 움직이는 일이라면 아직까지도 귀찮아 하는 내가, 굳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강변에 나가 달리는 행동을 스스로에게 어떻게 납득을 시켜야 할까.

 

어릴 때부터 통통했던 나는 뛰는 것, 그러니까 운동이라면 몸치인 나를 탓하며 자신 없어하기 일쑤였다. 체력장을 하는 날이면, 유연성 테스트에서만 오로지 자신이 있었고, 멀리뛰기나 단거리 달리기는 뒤에서 몇 번째 가는 체력과는 거리가 먼 아이였다. 그러니까 부모님은 10km씩 달려내는 요즘의 나를 보고는 꽤나 많이 놀라고 계신다. 고작 몇 번 달렸을 뿐인데도 ‘선수가 되는 거 아니냐!’ 하고 아직까지도 대견해하시는 걸 보면.


그러나 그 체력장 중에서도 중간 성적은 되던 종목이 있었는데, 바로 장거리 달리기였다. 그건 내가 체력이 좋아서도 아니고, 잘 달려서도 아니었다. 오로지 나는 이 거리를 꼭 달려내고야 말겠다는 질긴 끈기뿐이었다. 간혹 친구들이 더는 못 달리겠다고 이탈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시작한 것은 꼭 끝을 봐야만 했던 집요한 나는 장거리 달리기만큼은 꽤 괜찮은 성적을 냈다. 기왕 시작했는데, 끝을 보지 않으면 시도한 내 노력이 아까워서 무엇이던 마지막까지 해내야 했다.


이런 질기고도 집요한 끈기는 지금까지도 남아서 내게 장점이 되었다가 또 이내 단점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와 헤어지는 마당에도 이 관계를 끝까지 파 봐야 직성이 풀렸고, 게임을 시작하면 일주일은 내내 폐인처럼 살다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하고서는 지워버리고, 한 가수에 빠지면 그 가수의 전 앨범을 통틀어 외우고야 말았다. 또 모두가 포기하는 티켓팅에 간혹 성공하는 경우가 있는데, 누군가가 취소할 때까지 매일 들어가서 남은 자리를 확인하는 집요함 덕분이었다. 글쎄, 이렇게 말하고 보니 징그럽게 집요해서 질리는 사람이 된 것만 같다. 이미 그럴 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몸치인 내가 달리게 된 사연을 스스로에게 납득 시키기 위해서는 나의 집요한 끈기를 들고 와야만 했다. 첫 시작은 스포츠 브랜드에서 매년 개최하는 마라톤에 돈을 내면서였다. 5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결제한 나는 어떻게든 이 대회를 끝내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대회를 앞두고 혼자서 5km를 처음 뛰어봤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무리 달려도 5km는 오지 않았다. 뛰면서 휴대전화의 러닝 어플을 계속 쳐다보면서 언제 5km가 되나, 혹시 거리 측정이 잘못 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힘에 겨워했다. 그렇게 혼자서 10km를 뛰어보지도 못하고 대회에 나갔는데, 오기와 승부욕 덕분인지 첫 대회에서 1시간 13분의 기록이 나왔다. 꽤 늦은 기록이지만, 운동과 담 쌓고 지내던 내겐 스스로를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 후로 나의 기록을 매번 갱신하고픈 마음에 자꾸만 대회를 등록하게 되더라는 이야기. 그래서 다음 달에도 대회 하나를 더 앞두고 있다. 점점 내 기록도 단축 되기를 바라면서.

 

달리는 동안 나는 여러 가지를 생각한다. 나는 왜 달리는지, 지금 내 몸 상태는 어떠한지, 달리고 난 뒤의 내겐 무엇이 남을지, 이 달리기에 대한 보상으로 난 스스로에게 무얼 선물할지까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나에 대해 스스로 점검해보게 되고, 그 점검과 물음에 대해 답이 생길 때면 나에 대한 확신이 조금 더 생겨난다. 쉬는 날 멍하니 집에 누워 있는 것도 무척 좋아하지만, 간혹 그렇게 멍한 시간이 지나고 난 뒤 오는 허무함이 있어 되도록 쉬는 날에는 한 번은 밖에서 뛰고 오려는 편이다. 신기하게도 몸을 움직이고 나면 미루던 집안일도 어떻게든 하게 되고, 책장에 쌓아두었던 책들도 손에 한 번은 들게 되더라는 것.


몸을 움직이는 행위를 조금씩이나마 지속하다 보니, 특히 달리기를 시작하고 난 뒤부터, 다른 일들에서도 끈기가 꽤나 오래 지속되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나는 본디 바닥을 보고 나면 쉬이 빠져 나오는 ‘짧은 끈기’의 소유자였다. 물론 아직까지 인내심이 많은 사람이 되지는 못하였지만, 연인의 연락이 몇 시간 동안 되지 않으면 불 같이 화를 내던 내가, 그가 늦으면 어떤 사연이 있겠지, 하고 한번 더 기다려보게 되더라는 것. 친구들에게도 기분 상하게 된 즉시 화를 내기 보다는, 그 친구는 왜 그런 말을 하게 되었나, 하고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예전보다는 화도 적어진 편이다. (그래도 화가 많은 사람이긴 하다.)

 

뛰는 행위는 단순히 내 몸을 움직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도 들게 하고 사유할 공간도 주는 것임을 조금씩 깨닫고 있는 중이다. 숨을 마시고 내쉬면서, 나의 이 시공간을 내 몸에 받아들여 채워가도록. 그래서 나는 얼마 전 수영도 다시 시작했고, 되도록 회사 밖에서는 몸을 움직이기 위해 부지런한 척이라도 해본다. 나는 매일 움직이는 부지런한 사람은 못 된다. 하지만 이 움직임을 끊기도록 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에너지가 넘치지는 않아도, 끈기 있게 이어나가는 집요함으로.

 

몸치인 내가 달리다 보니, 실은 몸에 이상도 생겼다. 최근에는 허리가 안 좋아져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아주 아이러니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여태껏 나는 잘못 달리고 있던 것이라는 사실. 엉덩이를 뒤로 빼고 뛰다 보니 팔다리 힘으로만 뛰고 있었다. 그러니까, 코어 근육은 내게 뛸 때 거의 쓰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달리기는 내게 또 새로운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내가 몸을 제대로 쓰는 방법을 알려줄 시간을 준 게다. 코어 근육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서 숨을 쉬는 방법도, 앉거나 서는 방법도 나는 서서히 다시 익혀야 한다. 신생아처럼. 이렇게 다치고 새로 익혀야 하더라도, 나는 조금씩 또 달려볼 테다. 내 몸과 마음을 새로 정비할 시간을 준 달리기이니까. 내 집요한 끈기를 자극해 준 내 몸의 움직임이니까.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마주 앉는다
따르는 규범과 체질이 엄연히 다른 두 사람이다
"나는 소리 없이 들리는 사랑을 좋아해"
"나는 빛나지 않는 단어들을 비추는 일에 빠져 있어"

 

한 사람과 한 사람은 광택을 찾는 일에 매달리는 중이고
남은 별을 헤아릴 수 없을 때는 새로운 단어를 찾듯이
각자의 거울을 바라본다

 

나르시시스트와 나르시시스트가 거울과 마주 앉는다
자기 앞의 거울은 하나씩 자신을 비추고
나르시시스트와 나르시시스트는 아주 멀고
괴리라는 말을 먼저 배우게 되고
각자 자신을 위해 면죄를 위한 노래를 듣고 용서를 부르고
서로 떨어지고 떼어놓고 더 멀어지면서
거울의 방향이 아리송할 때에는 두려워져
순종을 하거나 복종을 하려 하기도 하지만
"아침이 되어도 나는 오지 않는구나"
"움직이지 않으면 나에 대한 의심이 더 많아져"

 

한 사람과 나르시시스트가 마주 앉는다
한 사람이 묻고 나르시시스트가 대답한다
"당신은 누구인가"
"나는 나"

 

거울은 언제나 취급 주의
오늘은 내일의 햇빛을 밝게 예보했고
나는 반사될 것이니
다음의 방향은 어디인가
"그런데 아까부터 너는 누구니?"
"……나?"
- 황혜경, 시집 『나는 적극적으로 과거가 된다』  中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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