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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에 대하여

삶을 좌우하는 절대성과 인간의 노력 카렐 차페크의 『초록숲 정원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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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정원사들이야말로 인류의 낙관주의를 증명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날씨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예측할 수 없는 날씨 때문에 불안한 소식들로 가득하지만, 그래도 봄이 오면 정원사들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정원에 나선다는 것이다. (2018.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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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운전을 할 수 있다는 말과 운전을 한다는 말은 다르다. 운전을 할 수 있다는 건 면허를 따고 (사정에 따라 연수를 받은 후) 가끔 차를 몰고 도로에 나가는 행위를 내포하고 있다. 즉, 할 수 있다는 말은 언제나 잠재와 가능성, 불확실성을 내포한 추측과 연결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자기가 “운전을 한다”고 말한다면, 그는 운전을 일상 활동의 범주 안에서 습관적으로 하고 있다는 뜻이다. 해왔으며,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것 같은 일.

 

면허를 따고, 연수를 받고, 직진을 시작한 이후의 나는 아직 ‘운전을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상태에는 이르지는 못했다. 나의 운전은 주차의 용이성, 시간대, 길의 상황에 너무도 무력하게 좌우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결정 요인은 날씨였다. 비가 오는 날에는 운전이 위험하다는 건 모두 아는 상식! 안전 운전은 초보운전자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수칙이다! 수막현상이라는 말 정도는 운전자라면 누구나 들어봤겠지. 마르고 평탄한 길도 자신 있게 나갈 수 없는데, 비 오는 날의 미끄러운 도로라면 말할 것도 없어. 그리하여 지하주차장에서 나갈 때 앞 유리에 빗방울이 떨어지면 나는 망설임 없이 차를 돌려 세운 뒤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탔다.

 

비가 오는 날에는 운전을 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원칙은 얼마 되지 않아 회의에 빠졌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얘기를 나누던 중, 그가 물었다. “그래서 요새는 운전 잘하고 다녀요?” 그때는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했으므로 나는 대답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 “네, 그럭저럭. 하지만 오늘은 비가 와서 가져오지 않았어요.” 그는 숙련자들이 초보에게 갖는 동정과 걱정, 권위를 내비치며 말했다. “원래 운전은 비 오는 날을 위한 거예요. 그게 운전의 정수죠.”

 

운전은 이 문에서 저 문으로 이동, 도보 거리를 최소로 줄이고 싶어 하는 사람을 위한 행위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옷이 젖을 염려도 없고, 먼 거리를 좀 더 수월하게 갈 수 있다. 그는 심지어 이런 말까지 덧붙였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 차가 더 막히는 거죠.”

 

초보 운전자는 비 오는 날의 교통 체증은 단지 모든 이들이 차를 더 조심스럽게 운전하기 때문이라고 순진하게 믿었건만! 그때야 나는 운전자들의 역설을 하나 더 발견하였다. 비는 운전에 위험하다. 하지만 운전은 비 오는 날의 편리를 위한 것이다. 이 말은 문명의 본연적 성격과 연결된다. 그도 그럴 것이, 자동차는 자연환경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만들어낸 역사적 발명품 아닌가? 하지만 그만큼 날씨에 좌우되기도 한다. 문화의 인간이여, 어떤 날씨에도 생존하기 위해 온갖 것을 만들어내지만 날씨를 적수로 삼는 한 완전한 승리란 없다. 결국에는 그에 지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다.

 

사람이 하는 일에 날씨만큼 중요한 요소가 또 있겠는가. 하늘이 반들반들해지는 아침이나 길게 날리는 구름이 보랏빛을 띠는 저녁이면 마음이 부드러워지기 마련, 좋은 날씨만큼 사랑스러운 게 또 있을까. 바람이 비단 같고, 햇빛이 온화하며, 모두가 제빛을 띠는 날씨를 느낄 때의 마음이 아마 가장 티끌 없는 사랑에 가까운 것이리라. 반면, 바람이 포악한 침입자처럼 창문을 흔드는 밤에는 기분도 그에 따라 가라앉는다. 사람의 마음 상태를 가리킬 때 ‘저기압’이라는 은유를 쓸 수 있는 것도 우리 마음이 그처럼 날씨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운전자를 포함하여 모두가 날씨에 민감하겠지만 그중 가장 예민한 직업은 정원사일 것이다.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의 에세이집  『초록숲 정원에서 온 편지: 식물을 가꾸는 즐거움』 은 한 송이 종꽃을 키우기 위해 노동해야 하는 정원사의 열두 달을 그리고 있다. 정원사는 매사 불평하지만 인내심이 한없이 깊고, 순수한 열정이 넘치지만 그로 인해 편집증적 성벽을 갖게 되는 인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날씨 때문에 1년 내내 끙끙 앓고 있다.

 

원제가 “The Gardner’s Year”인 이 책은 외국 온라인 서점에서는 만들기와 취미 섹션, 원예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있고, 국내에서는 나무와 물고기, 개구리와 뱀에 관한 책들을 펴내는 출판사에서 나왔다. 그나마 국내 온라인 서점에서는 문학 에세이로 분류되어 있는 게 다행이다. 자칫해서 라이프스타일이나 가정/살림으로 구분되어서 화훼와 원예 서가에 놓이고, 정원을 가꾸고자 하는 열망에 가득 찬 누군가가 필연적 착각으로 이 책을 집어 들었다면 그의 정원은 꽤 곤란해졌으리라(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는 절판 상태로 그 어느 서가에도 놓일 수 없다). 이 책에서는 구체적인 원예의 팁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카렐 차페크는 부조리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러 인간 군상들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내는 미스터리형의 단편소설집과 ‘로봇’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희곡 「R.U.R」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아마추어 정원사의 정열과 소설가의 시선을 결합해서 날씨와 식물과 노동에 관한 기억할 만한 에세이를 썼다. 1929년에 쓰인 만큼 여성을 꽃에 비유한다든가 하는 시대착오적 대목이 있지만, 많은 사람에게 낯선 과업인 원예를 경쾌하고도 신랄하게 묘사한 문체는 여전히 생생하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는 풀 한 포기 제 손으로 뽑아본 적 없고, 반경 5미터 안의 모든 식물을 죽이는 불운한 사람도 공감할 만한 설명들이 있다. 가령, 날씨에 대한 이야기가 그러하다.

 

“알다가도 모를 것이 날씨라는 녀석이다. 날씨는 제대로 들어맞은 적이 없다. 언제나 이래저래 예상을 빗나간다. 기온은 지난 100년간의 평균치와 일치할 때가 한 번도 없다. 항상 평균치보다 5도 낮지 않으면 5도 정도 높다. 강수량은 기준치보다 10밀리미터 적지 않으면 20밀리미터 많다. 게다가 지나치게 가물거나 지나치게 비가 많이 온다.” (22쪽)

 

90년이 지나 과학기술이 놀랍게 발달한 지금에도 날씨는 여전히 예측 불가능일 것을 카렐 차페크는 알았을까? (10월 초순임에도 급강하한 온도에 나는 지금 집 안에서 털 조끼를 입고 날씨의 예측 불가능성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인간은 추위와 더위, 비와 바람과 눈에 대항해서 싸울 운명 타고나나, 그들이 어떻게 닥칠지 완벽히 알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정원사들은 그런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구근을 심고, 거슬리는 민들레를 뽑고, 가뭄에 물을 대고, 냄새나는 거름을 만들고, 이듬해의 꽃들을 계획한다.

 

작가는 정원사들이야말로 인류의 낙관주의를 증명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날씨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예측할 수 없는 날씨 때문에 불안한 소식들로 가득하지만, 그래도 봄이 오면 정원사들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정원에 나선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너무도 불가사의한 불멸의 낙관주의를 여실히 증명하는 존재”(65쪽)가 바로 정원사들이다.

 

날씨뿐만이 아니다. 인간의 생존을 결정하는 모든 조건들은 우리의 힘으로 완전히 통제 불가능하다. 소풍날 비를 막을 수 없는 건 물론, 비가 오지 않는 날을 골라 잡는 것조차 쉽지 않다. 태풍과 홍수, 기근처럼 거대한 규모의 기후변화라는 불안한 뉴스가 뜨면 안심할 수가 없다. 지진과 해일 등 거대한 재난은 아무리 대비해도 위험하다. 그래도 인간은 늘 노력한다. 더 나은 예보 체계를 만들고, 그를 이길 수 있는 장치들을 개발하고, 방재 시스템을 세운다. 그리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재건 대책까지 고민한다. 이 모든 일들에는 불멸의 낙관주의가 면면히 흐르고 있는 것이다. 우주가 상대인 한 인간은 여지없이 진다고 해도, 늘 맞서려는 의지가 있다. 크로커스와 스노드롭을 피우고, 완두콩을 수확하기 위해.

 

나는 비 내리고 눈 내리고 바람 부는 날의 운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이건 날씨와의 대결 같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당히 보슬비가 내리는 날에는, 그리고 나를 부르는 일상의 용무를 해결해야 하는 날에는 운전을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운전자는 완전히 날씨를 예측할 수는 없다. 맑은 날 나갔어도 펄펄 내리는 눈 속에서 벌벌 떨며 운전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그런 용도로 사람은 운전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조건이 발생해도 일상의 궤도는 돌아야 하기 때문에. 날씨 나쁜 날에 모두가 운전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 빗속을 한없이 걸어야 한다. 그리고 비가 내리는 날에도 젖지 않고 이 건물에서 저 건물로 옮겨 다닐 수 있다는 건 인간이 만든 도로와 교통, 건축구조의 사소한 승리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그런 승리를 성취하기 위해 반드시 내가 그 운전하는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운전자의 미덕이기도 할 것이다. 날씨와 같은 자연의 힘이 강력히 느껴지는 때면, 연약한 인간은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보다 능숙한 운전자들이 있다. 다 같이 힘을 모아 대처해보자고 존재하는 대중교통 시스템이 있다. 지금의 나는 비 오는 날에 문명의 발명품, 자동차 속에 들어가 안온함을 누릴 수 있는 기쁨을 발견하였지만, 날씨의 힘에 복종하며 동료 시민의 기술에 의존하는 안도감도 잊지 않았다. 인간보다 더 거대한 환경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신념을 갖되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확실히 파악하기, 그건 타인을 믿는다는 면에서 또 하나의 낙관주의일 것이다.


 

 

초록숲 정원에서 온 편지카렐 차페크 저/윤미연 역 | 다른세상
취미로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뿐 아니라, 원예를 힘들고 귀찮은 일로 여기는 사람들, 그리고 원예에 관한 것이라면 아예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에게도 소중하게 간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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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현주(번역가)

소설을 번역하고 에세이와 로맨스 추리 소설을 쓴다. 그리고 드라마를 본다.

초록숲 정원에서 온 편지

카렐 차페크 저/윤미연 역7,650원(10% + 5%)

정원을 가꾸게 되면 비가 와도 그냥 비가 오는 것이 아니다. 내 정원에 비가 오는 것이다. 정원을 가꾸면서 알아가는 삶의 지혜. 식물에게서 얻는 위안과 행복, 놀라움이 유쾌한 글과 그림으로 전해진다. 원예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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