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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수살인> 형사도, 범인도, 우리도, 아무도 모른다

명색(?)이 살인범인 이놈 목소리를 믿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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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원래 그런 존재다. 희대의 살인마도 실제 보면 순한 인간의 모습일 때가 있고 거칠고 우락부락한 인상의 소유자가 겉보기와 다르게 도움의 손길을 내어주어 이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데 일조하기도 한다. (2018. 0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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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암수살인>의 한 장면

 


* 영화 관람을 방해할 만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암수살인> 제목만 보고는 살인범이 내면에 ‘암’컷과 ‘수’컷, 즉 양성을 모두 갖춘 일종의 싸이코 드라마인 줄 알았다. 오산이었다. 피해자는 있지만, 신고도, 시체도, 수사도 없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살인사건을 ‘암수살인’이라고 이 영화의 보도자료는 전한다. 덧붙여, 해당 범죄가 실제로 발생하였으나 수사기관에 인지되지 않거나 수사기관에 인지되어도 용의자 신원파악 등이 해결되지 않아 공식적인 범죄통계에는 집계되지 않는다고도 한다.

 

이 소재로 한국에서 영화가 만들어진 것은 처음이지만, 대중에 노출된 건 그 전이다. 2012년 TV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가 다룬 암수살인을 처음 접한 김태균 감독은 이에 흥미를 느끼고는 관련 인물을 만나 취재를 하고 조사를 진행한 끝에 영화로 완성했다. 언급한 관련 인물이란 <암수살인>에서 형사 김형민(김윤석)의 실제 모델을 말한다.

 

영화에 따르면, 수감 중인 살인범 강태오(주지훈)는 김형민을 불러 알려지지 않은 추가 살인 일곱 건을 자백한다. 강태오는 왜 하고많은 형사 중 김형민을 주목한 걸까. 김형민이 뛰어난 수사 능력을 갖춘 형사라서? 잘 구슬리면 형량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오산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돈을 요구하면 돈을 넣어줘, 수감자 사이에서 주목받고 싶다며 햇빛이 비치면 선글라스로 변하는 안경을 가져다 달라면 가져다줘, 강태오에게 김형민은 그냥 잘 해주는 형사다. 단, 추가 살인과 관련한 정보를 주는 데 한해서다.  

 

그래도 명색(?)이 살인범인 이놈 목소리를 믿어도 될까, 의문이 들기 무섭게 강태오는 기선제압처럼 물증이 될 만한 피해자의 물건이 있는 장소를 김형민에게 알려준다. 빙고, 강태오의 말이 바르다고 판단한 김형민은 해당 서에 지원을 요청한다. 안 그래도 해결해야 할 사건이 많은데 뭔 놈의 암수살인을 해결하겠다고 덤벼드는 김형민의 요청을 동료 형사들은 귀찮다고 무시한다. 단 한 명, 조 형사(진선규)만은 김형민의 진정성을 믿고 수사에 동참한다. 그래, 조 형사 한 명만도 어디냐,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김형민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결정적인 증거를 손에 넣는 데 실패한다. 강태오 이놈이 수수께끼 풀기 하듯 단서를 알려주는 까닭에 사건 해결에 애를 먹는 것이다.

 

제목만 보고 영화의 내용을 잘못 예측한 것처럼 내게 <암수살인>은 몇 가지 점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범죄물이었다. 제목에 이어 두 번째로 오판한 지점은 강태오를 연기한 주지훈의 존재감이었다. 주지훈은 젊은 나이대의 배우 중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시 말해, 출연하는 작품이 많다는 얘기다. 올여름만 해도 <신과 함께-인과 연>의 저승 삼차사 중 한 명인 해원맥으로, <공작>의 북경 주재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 과장 정무택으로 연달아 출연하며 얼굴을 자주 비춘 편이었다. <암수살인>까지 더하면 세 달 사이에 무려 세 편의 영화다. 관객이 물리게 느낄 법도 하다.

 

그의 연기에 관해서는 감정의 진폭을 크게 가져가지 않아 각이 잡힌 캐릭터에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코믹 요소가 담긴 해원맥보다 이념에 따라 움직이는 군인 역할의 정무택이 더 맞는 옷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두 번째 오산이었다. <암수살인>에서는 어떨 때는 철부지처럼 김형민에게 협조적이다가 순간 척을 지고 살인범의 살기등등함을 드러내기도 하는 등 일종의 1인 2역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변화의 폭이 큰 캐릭터를 오버하지 않고 깔끔하게 소화한다. 눈이 비추는 안경일 때는 건달의 무지함으로, 빛을 차단하기 위해 알이 검게 변해 눈이 보이지 않을 때는 속내를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살인범인 것처럼 기능성 선글라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듯한 경제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그와 같은 경제성이야말로 <암수살인>이 자극적인 설정과 묘사가 난무하는 한국영화의 범죄물과는 선을 긋는 태도다. 김태균 감독은 이 영화의 주제와 관련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세상 그 누구도 관심 없던 한 사람. 수사기록에 증거 쪼가리로 존재하는 피해자가 아니라 살인범에게 희생되기 전, 누군가의 딸, 그리고 아들 또는 엄마였던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밝힙니다. 이 형사는 사건 해결이 아니라, 살아 숨 쉬고 있었을 그 한 사람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한 형사의 모습에서 이 시대의 파수꾼 같은 모습을 발견했고 이를 영화 속에 오롯이 담고 싶었습니다. 그런 사람들 덕분에 이 세상은 정화되고 돌아가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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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암수살인>의 한 장면

 

 

시대가 원하는 상식과 정의에 부합하기 위해 자신의 본분을 굳건히 지켜낸 형사를 다뤄보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은 차치하고, 나는 강태오를 바라보는 이 영화의 시선이 과한 감정의 동요나 신파 없이 경제적이면서 담백한 영화를 이끈 결정적인 설정이라고 보는 쪽이다. <암수살인>은 강태오가 살인범이 된 주요한 배경으로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받은 폭력과 그에 대한 과격한 저항으로 설명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를 이해하겠다는 동정적이거나 오만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이런 감독의 시선은 그대로 김형민에게 투형되어 있는데 김형민이 보기에 강태오는 사건 해결의 도움을 주는 것도,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아니다. 도저히 속내를 알 수 없다.

 

인간이란 원래 그런 존재다. 희대의 살인마도 실제 보면 순한 인간의 모습일 때가 있고 거칠고 우락부락한 인상의 소유자가 겉보기와 다르게 도움의 손길을 내어주어 이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데 일조하기도 한다. 어떤 대상의 진정한 정체나 본질은 아무리 유능한 사람일지라도 이해하거나 안다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다. 하물며 영화가 어떻게 극 중 캐릭터를 다 안다는 듯이 묘사할 수 있단 말인가. 세상은 늘 예측불허이고 암수살인이 존재하고 그래서 김형민 같은 형사는 이유도 없이 죽어간 피해자의 영혼과 주변 사람의 억울한 심정을 조금이나마 풀어주기 위해 오늘도 불철주야 신고도, 시체도, 실체도 없는 사건 해결에 매달리는 것일 테다.

 

그렇듯이 범죄물이 늘 같은 소재와 비슷한 분위기로 극장의 관객을 맞이한다면 그것은 직무유기다. 영화를 그저 단순 공정의 돈벌이 수단으로 바라보는 태도다. 이 세상을 넓게 바라보는 시야를 제한할 수가 있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어진다. <암수살인>을 보기 전에 뻔한 또 한 편의 범죄물일 거로 생각해 기대감을 낮춘 것이 이 영화를 향한 나의 세 번째 오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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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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