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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성> 이제 물러서는 법도 알아야 할 때

추석에 당신은 어떤 영화를 보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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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안시성>에 가진 ‘고구려’ 배경의 기대감은 역시나 추석 대목을 맞아 흥행이라는 키워드에서 마케팅 포인트로만 작용했을 뿐 기존의 사극과 차별을 갖지는 못했다. (2018. 0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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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안시성>의 한 장면

 


풍성한 수확의 계절을 맞아 한국 영화계 또한, 추석 맞이 다양한 영화로 관객몰이를 할 생각에 한창인 시즌이다. <명당>과 <협상>과 <안시성>(이상 9월 19일 개봉)과 <원더풀 고스트>(9월 26일)까지, 나열 만으로 한 줄을 차지하는 작품’들’이 개봉 대기 중에 있다. 이 중에 한 편을 골라야 한다면 여러분의 선택은 어떻게 되십니까. 나는 <안시성>을 골랐다.

 

나열한 영화들은 장르의 보기 면에서 새롭다고 하기는 힘들다. 여름과 겨울 방학 시즌을 제외하고 설날과 함께 가족 관객을 끌어모을 수 있는 추석 대목에는 ‘연성’의 장르, 즉 한국 관객에게 폭넓게 어필할 수 있는 12~15세 관람가의 사극(<광해, 왕이 된 남자>(2012) <관상>(2013) <사도>(2014) <남한산성>(2017) 등)과 코미디(<스파이>(2013) <탐정: 더 비기닝>(2015) 등)와 스릴러(<살인자의 기억법> <범죄도시>(이상 2017) 등)와 같은 장르가 멀티플렉스를 장악한다. 사극 <명당> <안시성>과 스릴러 <협상>과 코미디 <원더풀 고스트>는 예상 가능한 장르 목록으로 다양하다는 평가와는 별개로 개성이나 새로움을 배제한다.

 

그럼 왜 <안시성>을? 보통 한국영화의 사극은 그나마 사료(史料)가 비교적 충실하게 남아 있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와 다르게 안시성은 스크린에서는 좀체 접하기 힘들었던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다. <안시성>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고구려에 대한 사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 <안시성>도 역사에 남아있는 안시성과 양만춘에 관한 세 줄뿐인 기록으로 시작된 영화다’라고 전한다. 그 짧은 기록을 토대로 시작된 <안시성>의 이야기를 짧게 설명하면, 동아시아 전쟁사에서 가장 극적이고 위대한 승리로 전해지는 88일간의 ‘안시성 전투’다.

 

짧은 기록에 맞춰 짧게 설명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짧은 소개만큼이나 <안시성>의 완성도는 신장으로 치면 단신에 속한다. ‘양만춘과 당 태종, 사물 등 주요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살리기 위해 100권의 서적을 참고하는 등 잊힌 승리의 역사를 그리려고 여러모로 힘썼다’는 보도자료의 문구가 무색하게 전투 장면을 제외하고 이 영화가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은 전형적이다. 인물 그 자체로 전형적인 게 아니라 흥행에 검증된 감정선의 관점에서 철저히 기능적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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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안시성>의 한 장면

 

 

전쟁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아 ‘전쟁의 신’이라 불린 당나라 황제 이세민(박성웅)이 이끄는 20만 대군 앞에서 고작 5천 명의 안시성 군사들은 성주 양만춘(조인성)을 해바라기처럼 바라본다. ‘성주, 어서 빨리 나와보셔야겠습니다’, ‘성주, 어서 명령을 내려주시옵소서’, ‘우리는 성주만 바라보며 삽니다’ 같은 류의 대사에서 드러나듯 양만춘은 안시성의 영웅이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유오성)과 척을 져 배신자로 낙인찍힌 양만춘을 제거하겠다고 굳게 다문 입으로 굳은 의지를 드러낸 사물(남주혁)은 백성을 따뜻하게 대하고 당의 대군에 맞서 제 한 몸 아끼지 않는 양만춘의 인간적인 매력과 호걸아다운 면모에 금세 넘어간다.

 

내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양만춘의 카리스마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것처럼 불리한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데, 나 잘 났네, 내가 더 잘 났네, 아군끼리 선을 넘을 정도로 신경전을 벌이던 환도수장 풍(박병은)과 도끼부대 맏형 활보(오대환)는 양만춘 곁에서 몇 번의 전투를 겪으며 ‘전형적인’ 전우애의 참(?)모습을 실현한다. 그 와중에 백하 부대 리더이자 양만춘 동생 역의 백하(김설현)와 미래를 보는 신녀 역의 시미(정은채)의 여성 캐릭터들은 남성들이 활보하는 공간에서 민폐를 끼치는 역할을 맡는다는 것도 남성 중심의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전형적’이다.

 

그렇다면 남는 건 전투 장면 묘사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펼쳐지는 주필산 전투와 영화 중반부의 2번의 공성전, 그리고 하이라이트 격인 토산 전투 등 액션 묘사는 135분의 러닝타임에서 반을 넘어설 정도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스카이워커부터 로봇암까지, 최첨단 시스템으로 구현했다는 전투 묘사는 스케일은 눈에 보이되 디테일한 액션 연출을 보는 쾌감은 없고 오로지 양만춘을 돋보이게 하는 카메라 워킹과 편집은 ‘고구려 시대에도 어벤져스의 호크아이에 버금가는 활쏘기 꾼이 있었구나 하는 우스갯 30자평을 떠올리게 한다. 그럴 정도로 <안시성>은 완성도 여부를 떠나 보통 한국 영화의 거대 제작사들이 믿는 흥행 공식을 최대화하는 방식으로 전형성을 우려먹는다. 

 

내가 <안시성>에 가진 ‘고구려’ 배경의 기대감은 역시나 추석 대목을 맞아 흥행이라는 키워드에서 마케팅 포인트로만 작용했을 뿐 기존의 사극과 차별을 갖지는 못했다. 흥행에 함몰한 완성도는 <안시성>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어서 또 다른 한국영화들도 그만저만한 완성도와 전형성으로 대형 제작사의 힘과 압도적인 배급을 앞세운 멀티플렉스의 독점을 등에 업은 박스오피스에서의 높은 수치만을 바라볼 뿐이다. <안시성>에 달린 포스터의 태그 중 하나는 ‘우리는 물러서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이다. 대형 제작비가 대형 흥행을 가져온다는 이상한 한국 영화계의 믿음, 그와 같은 맹목에서 한 발짝 물러서 바라볼 때 새로운 영화의 돌파구는 열릴 테지만, 아직은 물러서는 법을 모르는 것만 같다. 그런 점에서 대형 한국영화들은 물러서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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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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