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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피하는 혐오

퀴어문화축제 참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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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저들이 데꾼한 눈을 떨어뜨리고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갈 것을 안다. 저들도 멋쩍게 손을 씻고 나갈 때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2018. 0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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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ages by Heejune Kim - Amsterdam Rainbow Dress Foundation, 2018 (Seoul City Hall images)

 

 

올해도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석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까지는 아니어도, 이번에는 정말 진실로 더웠다. 축제 장소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실려나가지 않겠다는 의지로 계속해서 물을 몸속에 밀어 넣었다. 오백 밀리미터짜리 생수 다섯 통을 비우고 커피와 탄산음료를 들이켰는데 수도꼭지처럼 땀이 나는 바람에 행사 시간 내내 화장실에 가지 않아도 괜찮았다.


이번 축제가 열린 시청광장에 12만 명이 방문했다고 한다. 건물 위에서 찍은 축제 사진을 보면 인파로 잔디가 까맣게 물들어 거대한 쉼표 모양을 그린다. 협소한 입구와 출구를 제외하고 거대한 철벽으로 둘러싸이기 때문인데, 축제를 반대하는 사람들과 참가자를 분리하려는 장치다. 출입구 쪽에는 확성기와 거대한 표지판을 들고 동성애는 죄악이라고 외치는 사람들과 광장의 죽일듯한 햇빛에 지쳐 빠져나오는 인파와 마냥 신나고 즐거운 사람들이 한데 섞여 정신이 쏙 빠진다.


한편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장소 근처의 화장실이나 식당, 카페를 가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다. 거울 앞에서는 서로 집사님과 권사님이라고 부르는 분들이 한복의 옷고름을 고쳐 매고, 그 옆에서는 드랙킹이 눈썹을 진하게 그린다. 식당에서는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밥을 기다리며 무지개 부채와 에이즈 반대 부채를 부친다. 누구도 누구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스피커 볼륨을 높이고 대거리를 하거나 통성기도를 하는 기세는 어디로 가고 모두 암묵적으로 천부인권을 합의한 것 같다. ‘먹고 싸는 동안에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다.’


그들의 혐오는 매우 연약하다. 같이 뭉쳐 있을 때는 목소리가 커지다가도, 전체에서 개인이 되어 뿔뿔이 흩어지면 눈을 피한다. 어찌 보면 부끄러워하거나 무서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해마다 무엇인가 반대하고 혐오하려고 땡볕에 나오는 마음은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한다. 혹자는 정권이 바뀐 이후로 기세가 확 줄어든 이유를 들며 저들의 열정은 돈에서 나온다고 했다. 누군가는 그들도 놀고 싶은데 참고 있다가 남들이 축제를 연다니까 옳다구나 끼는 거라고 했다. 어떤 해석이든 축제 참가자들은 열심히 그들을 놀리려고 한다. 조롱과 유머 말고는 딱히 혐오의 공격을 무력하게 만들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축제를 준비하던 이들 중 한 명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이러다가 진짜 저분들 중 누구 돌아가시는 거 아냐? 나이 많은 사람들 많을 텐데… 아니 이 사람들아, 이 어쩔 수 없는 사람들아, 저 사람들 걱정할 때가 아니라고. 노인 혐오 반대한다! 서로 장난기 어린 말을 받은 기억은 올해 인천퀴어문화축제 소식을 들으며 와르르 부서졌다. 반대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축제에 참가한 사람보다 많아지자, 그들은 경찰의 별다른 제지 없이 저지선을 밀고 들어와 깃발을 부러뜨리고 퍼레이드 차량의 바퀴를 펑크냈다. 급격히 자신만만해진 사람들은 축제 참가자들을 때리고 뒤를 쫓아가며 협박했다. 피해 사례를 모아놓은 뉴스를 보면서 다시금 그들의 연약한 혐오를 생각한다.

 

혐오가 생리적이라면 분노는 사회적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으면 분노도 생기지 않는다. 분노는 정의의 관념을 먹고 자란다. 그러나 혐오는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즉 동물적인 감정에 가깝다. 그래서 혐오감에 사로잡힌 사람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차별과 부조리에 대해 혐오할 수 있을까? 아니다. 우리는 차별과 부조리에 대해서는 분노한다. 분노의 이유를 설명할 수도 있다. 혐오와 달리 분노는 말이 통하는 감정이다. 그래서 혐오의 입은 ‘입’이 아니라 토해내는 ‘주둥이’에 가깝다. 분노에서 말을 제거하면 혐오가 된다. 혐오에는 ‘왜’나 ‘이유’가 없다.
『혐오, 감정의 정치학』 , 9~10쪽

 

그들은 혐오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했다. 혐오가 생리적이라면, 그들은 퀴어를 혐오하지 않는 게 맞다. 더러운 것은 피하게 마련이고, 싫은 사람은 옆에 가기도 싫다. 그러나 저들은 하루라도 퀴어를 보지 않으면 못 배기듯이 축제 자리마다 나타난다. 그렇다고 해서 저들이 퀴어를 사랑하나? 사랑해서 귀에 대고 욕을 퍼붓고, 퀴어들이 축제를 해서 자신이 피해를 봤다며 바닥을 구르나?


연약한 사람들도 혐오를 한다. 다들 눈도 못 마주칠 정도로 약해서, 무서워서 이유 없이 남을 물어뜯는다. 타자를 타자이기 때문에 싫어하고, 타자가 소수가 되는 순간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약함을 감추려고 한다.


그들을 ‘그들’ ’그것들’이라고 부르며 혐오하기가 너무 쉽다. 그러나 그러지 않기로 한다. 스스로 품위를 잃지 않겠다는 마음과 저 약한 사람들이 품위를 잃지 않도록 해주겠다는 마음으로 매번 불가마 같은 축제와 얼음장 같은 시위에 나가 목소리를 낸다. 어느 순간 저들이 데꾼한 눈을 떨어뜨리고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갈 것을 안다. 저들도 멋쩍게 손을 씻고 나갈 때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 때까지 여름마다 몇 번은 더 뜨거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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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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