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보르스카, 우리가 사랑해야 할 사람
『읽거나 말거나』 추천사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를 말해주는 독서칼럼은 많다. 하지만 어떤 책이 어떤 점에서 나쁜 책인지를 말해주는 독서칼럼은 드물다. (2018. 09. 05)
이 글은 쉼보르스카에 대해 쓰는 열 번째 글쯤 될 것 같다. 다른 글에 인용을 한다거나, 강의의 내용에 소개하는 것까지를 포함하면 적어도 수십 번 쉼보르스카를 인용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적인 자리에서 쉼보르스카라는 이름을 꺼낸 건 수백 번은 될 듯하다. 나는 그냥 쉼보르스카가 좋다. 깊어서 좋고 통쾌해서 좋고 씩씩해서 좋고 소박해서 좋다. 옳아서 좋고 섬세해서 좋다. 발랄해서 좋고 명징해서 좋다. 그러면서도 뜨겁고 진지해서 좋다. 내가 알던 시와 어딘지 달라서 좋다. 쉼보르스카의 얼굴도 좋고 웃는 표정은 더 좋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더 좋다. 다른 시인들과 어딘지 다른 개구 진 표정들이 좋다. 시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수고 싶은 순간마다, 특히 여성 시인에 대한 고정관념과 마주칠 때마다 쉼보르스카를 언급했던 것 같다.
맨 처음 쉼보르스카에 대한 산문을 썼을 때에는 ‘비미의 미’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 글에는 쉼보르스카의 시선집 『끝과 시작』 을 두 번 구매하게 된 이유에 대하여 적었다. 쉼보르스카의 시를 맨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쉼보르스카를 소화할 그릇이 못 되었다. 히말라야에서 매일매일 고행처럼 산행을 하던 시간에 읽었기 때문이다. 그땐 등산화 속에서 발을 꺼내놓고 삐걱대는 침대에 겨우 몸을 누인 시간이었으므로, 쉼보르스카가 나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거절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육체적으로 피곤했다. 그곳에 두께가 있는 시집 한 권을 남겨두는 것이 내일의 가벼운 짐을 도모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 숙소에 한국 사람이 묵게 되면 반갑게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며 버리고 돌아왔다. 그때는 내가 서울로 돌아와 쉼보르스카의 시집을 다시 구매하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자주 그녀의 시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가물가물한 기억이 간절함 비슷한 것으로 옮겨갈 무렵, 전문을 찾아 읽어야겠다며 다시 시집을 샀다. 이후론 언제나 곁에 두고 읽어온, 나달나달해진 나의 최애 시집이 되어 있다.
이 독서칼럼에는 한 권 책으로 인해 인생이 바뀌었다는 표현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필독을 권하는 서평문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쓴 칼럼이었다. 쉼보르스카다웠다. 역사에 길이 남을 명저나 깊이 있는 문학서적들보다는 실용서와 대중학술서들을 많이 다루었다. 『동물의 음성?생체음향학 입문』이나 『암살 백과』 같은 책들을 소개하는 쉼보르스카의 호기심 어린 눈빛이 생생하게 상상되었다. 1972년 12월 31일에는 『1973년 벽걸이 일력』에 대한 칼럼을 썼다. 365페이지짜리 두꺼운 책에 대하여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적어두었다. 능청스러운 유머로써 저자에게 이의제기를 하는 쉼보르스카를 엿보는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무엇을 찬양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에 반대하는지를 알게 될 때에 그녀를 더 존경하게 되었다. 『모두를 위한 하타 요가』나 『포옹 소백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쉼보르스카의 성격이 느껴지고 마침내 친구에게 느끼는 듯한 사랑스러움도 전해진다. 특히 대문호들에 관한 저서에서 이의를 제기할 때 쉼보르스카는 단호하다. 도스토옙스키의 아내 안나 도스토옙스키가 쓴 『나의 가여운 표도르』에 대한 글과 찰스 디킨스의 전기 『찰스 디킨스』 에 대한 글. 쉼보르스카의 시 「선택의 가능성」에서 “도스토옙스키보다 디킨스를 좋아한다”라는 시구가 취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윤리관에 입각한 이야기였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만 하던 내게 그 윤리관의 정확한 정체를 알게 한 중요한 글이었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를 말해주는 독서칼럼은 많다. 하지만 어떤 책이 어떤 점에서 나쁜 책인지를 말해주는 독서칼럼은 드물다. 좋은 책을 알아보는 안목만큼이나 나쁜 책을 알아보는 안목이 소중하지 않은가. 이 책을 읽다보면, 나쁜 책이 어떤 점에서 나쁜지에 대한 안목을 재정비하는 즐거움을 보너스처럼 누리게 될 것이다. 쉼보르스카가 어떤 시인이었는지 그녀의 시를 통해 느끼는 시간들이 나에겐 무척이나 든든한 시간들이었다. 이 서평집을 통해서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 비로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녀의 독서경험들이 어떤 식으로 그녀의 시에 들어왔는지를 포함해서. 드디어 나는 든든한 시인이 아니라 든든한 사람을 얻게 된 것 같다. 쉼보르스카가 디킨스를 일컬어 인류도 사랑하지만 인간도 사랑한 드문 존재라고 말해두었는데, 나는 쉼보르스카를 이렇게 말해두고 싶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시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사랑해야 할 사람이라고.
읽거나 말거나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저/최성은 역 | 봄날의책
옷차림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지적인 스타일의 남자에게 끌리고, 선배 시인 체스와프 미워쉬 앞에서는 항상 소녀 팬처럼 얼굴을 붉히는 쉼보르스카의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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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트위터 @catjuice_ 시집 <극에 달하다>,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눈물이라는 뼈>, <수학자의 아침>과 산문집 <마음사전>, <시옷의 세계> 등을 출간했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저/<최성은> 역18,000원(10% + 5%)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를 말해주는 독서칼럼은 많다. 하지만 어떤 책이 어떤 점에서 나쁜 책인지를 알려주는 독서칼럼은 드물다. 좋은 책을 알아보는 안목만큼이나 나쁜 책을 알아보는 안목도 소중하지 않는가. 책과 마주하는 순간, 쉼보르스카는 그 어떤 가식도 없이 온전히 그 자신이 된다. 폴란드 문단을 대표하는 지식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