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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의 축제
내가 딱 저렇게 살아야 하는데, 싶었다
나는 살면서 소소한 나만의 의식(儀式)을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다. 의식이라는 말은 말이 어렵지, 내겐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2018. 09. 03)
이것은 일본 이야기다. 아니다. 그냥 게스트하우스 이야기다. 나는 사실 게스트하우스를 불편해 한다. 이유는 단 하나. 사람들과 계속해서 마주쳐서다. 인사를 해야 하고, 표정 관리를 해야 하고, 공동 공간에 사람이 없나 눈치를 봐야 하고, 모르는 사람하고 한 방에서 잠을 자야 하는, 그게 영 잘 안 된다.
하지만 사람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게다가 더 나이 들어서는 바닷가 마을에 게스트하우스를 차리고 싶어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게스트하우스에서 며칠을 묵는 것은 ‘어정쩡하게 들어갔다가 뭉클해져서 나오는 연극’ 한 편을 보는 일과도 같으며, ‘양산을 쓰고 나갔다가 때마침 급습한 소나기를 맞는 일’과도 같다.
일본의 야마가타(山形)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민타로 헛(Mintaro Hut : 뉴질랜드의 호수 이름을 딴 이름으로 뉴질랜드 여행에서 묵었던 동명의 게스트하우스를 만든 것)은 특별하다. 우선 매일 밤 주인장인 사토 히데오 씨가 요리를 한다. 손님들은 술을 사오거나 음식을 사와도 되지만 굳이 사오지 않더라도 그날 밤 술자리에 참석할 수 있다. 사토 씨의 요리 실력은 엄청난데 만두를 빚어서 요리로 차려내는 데 채 20분이 안 걸리고 고깃국이며 샐러드며 튀김 요리까지 못하는 게 없다. 먹는 걸 아주아주 좋아하는 사람 맞다. 그리고 또 나처럼 사람들에게 먹이는 걸 아주 좋아하는 사람인 것도 맞다. 그래서 매일 밤 서너 명에서 많게는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처음 보는 얼굴로 인사하며 술 한잔과 음식들을 가운데 놓고 이 얘기, 저 얘기를 풀어놓게 된다. 어쩌면 여기까진 흔히 있는 게스트하우스의 이야기 혹은 풍경쯤 되시겠다.
술자리가 파할 무렵, 아니 술자리가 파하든 말든 밤 열한 시 무렵이 되면 히데오 씨는 슬그머니 운동화 끈을 조여 맨다. 약 10킬로미터에 이르는 저녁 산책을 하는 것. 하지만 무심히 그를 따라 나갔다가 그가 걷는 속도를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술을 그렇게 마시고는 이렇게나 빠른 속도로 걷다니.
매일 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그 속도로 걷는 이유를 묻자, 쉽게 말해 ‘걷기 중독’이라고 한다. 그런 사람이니 당연히도 마른 체형의 다부진 몸매를 가졌다. 한 며칠 그가 만들어준 요리를 ‘많이’ 먹고, 직접 설거지도 하고, 또 내가 직접 한국 요리도 만들고 하면서 그와 조금은 가까워졌는데, 실은 매일 밤 그의 산책에 동참하면서 부쩍 더 가깝게 되었는지도.
아니다. 음식을 차려 놓기만 하고 통 먹지를 않는 그에게 뭐라고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 한마디 때문에 더 그 사람을 가까이 지켜보자 싶었던 것인지도.
“왜 이렇게 음식을 안 먹죠?”하고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이랬다. “다 아는 맛인데요, 뭘.”
세상에나. 아는 맛이라고 음식을 입에도 안 대다니. “인간이 아니라 신선이네요.”라고 되받아칠 수도, 그렇다고 까무러칠 수도 없는, 경지의 경지.
내가 딱 저렇게 살아야 하는데, 싶었다. 너무 많이 먹는 내가, 허기지지 않아도 음식에 코를 박고 먹는 나 같은 사람이 살아야 할 방향은 꼭 저것인데 싶어 슬쩍 약이 올랐다. 패자의 기분도 들었다. 그런데도 히데오 씨는 꽤 많은 양의 술을 마신다. 술은 왜 그렇게 마시냐고 물으면 돌아올 대답은 뻔해서 안 물었다. 예를 들면 이런 대답일 테니. “술은 마셔야 하니까요.”
나는 살면서 소소한 나만의 의식(儀式)을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다. 의식이라는 말은 말이 어렵지, 내겐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생일에 혼자 조용히 여행을 떠나기, 술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아무렇게나 자라고 있는 식물 꺾기, 높은 데 오르면 왜 좋아하는 사람이 떠오르는 건지 아무튼 떠올리기, 술잔, 커피잔 모으기, 한 사람 모르게 그 한 사람을 사랑하기, 사력을 다해 혼자 있는 시간을 버티기… 이 모든 것들이 의식에 해당한다. 그러지 않으면 인간적으로다 적적함과 심심함을 당해낼 길이 없으므로. 그리고 그런 의식들은 자주 축제로 발전되기도 하는데 그렇게라도 혼자서, 최대한 조용히 나대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종자의 인간이라서 그렇다. 그렇다면 먹지 않는 히데오와 걷기만 하는 히데오가 살아가는 방식도 ‘의식’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나는 추측하고 싶다.
민타로 헛에는 60대의 남성, 네 명이 묵고 있었다. 삿포로에 살고 있는 두 명의 남성이 도서관에서 따분히 고문서를 들춰보다가 생각난 듯이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오래전 동창에게 전화를 건 것으로 이번 여행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 네 사람은 야마가타 대학교 동창이었는데 17년 만에 만나 야마가타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는 것으로 그렇게나 죽여놨던 청춘의 한 때를 꺼내보려는 것 같았다. 대학 교정을 찾았으며 천문대에 올라 별을 봤으며 불쑥 후배의 집을 방문해 후배를 놀래 주기도 했다.
이분들과의 술자리는 즐거웠다. 쌍방의 호기심이 단초였겠으나 나는 그들이 음악적 취미를 배경으로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그들이 몸담았던 대학 밴드부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궁금해 했다. 마침 두 사람은 기타를 들고 여행을 왔고, 한 사람은 리코더를 챙겨 여행을 왔으며 나머지 한 사람은 세 사람의 영향으로 이번 여행에서 급히 리코더를 샀다고 했다. 나는 취한 김에 부채질을 했다.
“그러니까 내일 밤에 콘서트를 여는 거예요. 분명 아름답겠죠?”
한 사람이 대답했다.
“아, 우리더러 연습을 하라는 말이네요.”
그리고 이틀 후 연주회가 열렸다.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그새 A4 용지에 볼펜 글씨로 연주회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팀의 이름은 사쿠란보 리코더 콰르텟(사쿠란보는 ‘체리’를 뜻하는 말로 초여름의 야마가타는 체리가 풍년인 시기). 게스트하우스는 고급스런 클래식 음악 연주를 시작으로 이리저리 불꽃이 튀었다. 가만히 놓아둔 젓가락과 술잔들이 여진을 이기지 못하고 울렸다. 이내 나는 슬퍼졌다. 아름다운 것 앞에서 슬퍼지자는 것이 나의 의식이려니, 나의 축제려니 나는 그렇게 먹먹해졌다. 그날 밤, 그곳으로 모든 별들의 기운들이 다 모여들고 있었다. 단지 한여름의 난로만 가만히 쉬고 있었다.
초로의 사내 넷이 연주하는 것은 음악이 아니라 인생의 의미였을 것이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떤 찬사도 덧붙일 수 없었다. 그때 삿포로에서 온 사내가 이런 말을 했다.
“나이가 이렇게 되어서, 아무런 일도 없을 줄 알았는데 불쑥 여기 와서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엄청난 일이 일어났어요. 등을 떠밀려 연주도 했지만 연주를 잘 못한 것만 빼고 정말 이런 시간이 있다는 게 놀랍네요. 한 번도 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안 했는데 이젠 한국도 가고 싶어졌어요. …삿포로에 오면 나를 만나 주겠어요?”
늦은 그날 밤, 히데오 씨와 나는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매고는 채 가시지 않은 분지의 열기로 가득한 밤길을 서둘러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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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좋은 사람들」,「그날엔」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저서로는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찬란』 등과 여행산문집 『끌림』(2005) 등이 있으며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