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김교석의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여름을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건, 에어컨과 전축
방 안 온도를 낮췄으면 이제 내면의 온도를 낮출 차례
여름밤만큼 음악이 잘 어울리는 계절도 없다. 느리고 가벼운 템포에 훵키하면서도 청량한 리듬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휴양지의 선배드나 가제보에 누워 있는 듯한 여유를 선사한다. (2018. 07. 24)
sensis.pl
열돔 현상으로 인해 무더위가 지속되고 있다. 우기로 접어들고 있는 동남아 휴양지보다 훨씬 덥고 습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데, 까딱하면 한 달 이상 지속될 수 있다고 한다. 이번만큼은 오보이길 바란다. 잠 못 드는 열대야는 상대하기 꽤나 곤혹스러운 불청객이다. 이런 무더운 여름철에 홀로 살림을 꾸려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에어컨과 여름밤 분위기를 내어줄 그럴듯한 오디오 시스템이다. 이 정도 날씨를 홀로 이겨내기 위해선 물리적인 접근과 정서적 테라피가 병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진지하게 환경 운동을 하는 중이 아니라면, 이제 에어컨은 냉장고, 세탁기와 같은 필수 편의 가전이란 걸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캐리어가 없었다면 지금 지구상의 몇몇 대도시들은 여전히 19세기에 머물고 있을 것이고, 중동 오일 달러 스웩은 볼품없었을 것이다. 아미쉬가 아니면서 에어컨을 들이지 않은 사람들은 대체로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내 집도 아닌데 에어컨 구입과 설치에 비용을 들이는 것에 대한 거부감, 뭔가 거대한 것을 들인다는 심적 부담감, 투철한 절약 정신이 체화된 가정교육. 나도 한때는 그랬다. 허나 몸집 작은 1인 가구의 몇 안 되는 미덕 중 하나가 ‘쓸건 쓰고 사는 태도’다.
그래서 설치를 고려한다면 기본형 벽걸이 에어컨을 추천한다. 전력 소비도 예상보다 많지 않을뿐더러 공간 차지도 덜 하고, 바람이 너무 강하지 않은데다 신기술과 잔기술이 없어서 저렴하다. 설치와 이전 시 드는 비용을 투명하게 제안해서 견적 비교를 할 수 있는 인터넷 서비스 업체까지 생겨나면서 설치비용의 표준화도 어느 정도 이뤄졌다. 위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작년에 전기요금 누진세도 어느 정도는 완화됐다. 전격 가동 중이라면 사용 후 20여분 정도는 송풍이나 청정 모드로 에어컨을 말리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자. 또한 오피스텔이나 원룸에 빌트인 된 에어컨을 청소하지 않고 그냥 쓰는 사람들을 간혹 본 적이 있는데, 적어도 한 달에 한번은 필터를 빼서 베이킹 소다로 청소하고 에어컨 전용 스프레이 등을 내부에 분사해 주기적으로 청소하길 권고한다. 관련 방법은 인터넷에 매우 자세히 나와 있다.
방 안 온도를 낮췄으면 이제 내면의 온도를 낮출 차례다. 에어컨만 튼다고 축 쳐진 몸과 마음이 뽀송해지는 건 아니다. 숨통이 트일 뿐, 하루 종일 짓누르고 있는 더위는 쉽게 가시진 않는다. 그런 밤에 TV와 컴퓨터의 전원을 끄고, 시원한 음료를 곁들이면서 여름밤에 어울리는 청량한 음악을 듣길 추천한다. 에어컨 아래 음악은 보리수 아래의 명상처럼 내면의 평온과 마주할 수 있는 현대인의 참선과 같다. 괜히 여름만 되면 주말 오전부터 온 동네 스타벅스가 미어터지는 게 아니다.
야먀하뮤직
사실, 여름밤만큼 음악이 잘 어울리는 계절도 없다. 느리고 가벼운 템포에 훵키하면서도 청량한 리듬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휴양지의 선배드나 가제보에 누워 있는 듯한 여유를 선사한다.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지구 온난화와 해가 거듭할수록 뜨고 있는 트로피컬 하우스의 전 세계적인 인기 사이의 상관관계는 분명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단 장르나 리듬의 문제만이 아니다. 여름밤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오래전 사둔 CD를 꺼내 튼다거나 작은 핀 조명 아래서 턴테이블에 올릴 판을 고르는 일종의 디깅(digging)은 왠지 모를 로망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요즘 시대에 이런 저장매체를 이용해 음악을 듣는 다는 것 자체가 미련한 처사라는 지적도 있지만 세상을 항상 효율만 따지고 살 수는 없다.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주는 위안, 과거의 한 순간을 다시 꺼내보고 마주하는 일상에 특별함을 가져다주는 행위는 아무리 아무것도 하기 싫고 축 처지는 여름밤에도 기꺼이 방 안을 밀양 얼음골로 변화시키는 정서적 동굴이 되어준다.
그래서 자기만의 작은 공간을 갖춘 사람이라면 집 안 한구석을 내어, 과거의 유물로도 만족도 높은 음질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작은 음향 시스템을 갖춰놓길 추천한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컴포넌트를 신혼살림의 필수품처럼 여겼던 것을 복원하자는 거다. 일본 힙스터처럼 카세트데크나 붐박스를 다시 집으로 들이자는 것까진 아니지만 CD 플레이어가 달린 올인원(박스만한 크기에 앰프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기능을 집약해 놓은 미니오디오) 정도가 한 가지 대안이 되겠다. 추천하는 제품은 온쿄 CR-N775D, 에어릭스 듀엣, 캠브리지오디오의 one, 보스 사운드터치 시리즈, 조금 더 공간을 근사한 공간을 꾸미고 싶다면 미니컴포넌트의 향수가 짙게 베인 야마하 MCR-N670 제품을 추천한다.
나의 경우 영국 캠브리지오디오사의 구형 one 모델을 와피데일 스피커에 물려 10년 이상 사용하고 있는데, 그 다음은 아무래도 온쿄 제품을 쓸 것 같다. 스피커는 와피데일, KEF, 쿼드, 클립쉬, 야마하 수준에서 가장 저렴한 북쉘브 스피커라도 물리면 작은 공간에서 나름 훌륭한 음악을 누릴 수 있다. (보스나 에어릭스는 스피커까지 포함된 올인원) 혹은 이마저도 어렵다 싶으면 무인양품 제품이라도 쓰길 권한다.
사실 음향과 선택의 다양성 측면에서 CDP가 달린 올인원, 일명 CD 리시버는 좋은 선택이 아니다. 테이프, CD, LP와 같은 저장 매체 대신 디지털로, 이제는 대부분 무선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 빅뱅이 일어나면서 오디오는 더 이상 아날로그의 감성만을 쫓는 기기라기보다 무선네트워크에 강한 디지털 기기로 세월에 보조를 맞춰나가고 있다. 초고가 하이엔드 업체를 제외한 오디오 업계는 이런 추이를 따라 ‘PC파이’의 시대를 거쳐 와이파이, 브루투스 스트리밍과 파일 재생에 최적화된 ‘네트워크 오디오’로 눈을 돌린 지 오래다. 그렇게 진일보를 거듭하던 중 최근에 들어서야 기존 아날로그 재생기능을 병행하려는 회귀의 경향이 살짝 나타나는 중이다. 아무래도 플라스틱과 종이 인쇄 냄새를 맡으며 CD를 케이스에서 꺼내 트레이 위에 살짝 올리고 재생 버튼을 누르는 행위는 이제 제의적 지위를 갖췄다고 본다.
오디오만큼 취향의 차이와 투여 비용의 격차가 큰 분야도 없다. 위의 선택지는 그간 컴퓨터 스피커나 20만원 상당의 브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듣는 대신 보다 제대로 된 음향 시스템을 갖추고 즐기려는 사람들을 위한 최소한 안내다. 그러나 이 정도만 갖춰도 일전에 브로콜리 너마저가 짚었던 것처럼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는 최상의 음질을 아낌없이 누릴 수 있다. 여름밤, 에어컨 바람을 타고 추억이 깃든 음악이 방 안을 채운다면 요금 고지서가 날아오기 전까지 열대야 걱정과 짜증은 사라질 것이다.
푸른숲 출판사의 벤치워머. 어쩌다가 『아무튼, 계속』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