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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발레하기
‘하필’이란 말 앞에서 나는 늘 골똘하다.
날씨는 가끔 순간을 ‘생경하게’ 들여다보게 만드는 거울 역할을 한다. (2018. 06. 28)
언스플래쉬
rain
빗소리에 눈을 뜬다. 커튼을 재껴 여니 세상은 이미 빗속에 잠겨있다. 나무들이 머리를 감는 듯 물기를 치렁치렁 매달고 서있다. 사과와 두유를 먹으며 늦장을 부린다. 시계를 보니 늦을 것 같다. 발레복을 챙겨 후다닥, 집을 나선다. 빗물이 종아리를 때린다. 찰박찰박. 빗물과 신발이 만나는 소리. 빠른 걸음으로 20분 즈음 걸으면 내가 다니는 발레 교습소가 있다.
강습생들은 벌써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서둘러 발레 타이즈를 신고 레오타드와 스커트를 입는다. 거울에 발레복을 갖춰 입은 오동통한 여자가 서있다. 이게 나라고? 맞다. 이게 나다.
뒷자리에 매트를 펴고 수업에 합류한다. 뻣뻣한 팔 다리를 늘리고 어깨와 머리통 사이는 가능한 한 멀리, 멀리 떼어, 위를 향하려고 애쓴다. 두 다리를 벌려 고관절을 풀고 몸통을 비틀어 옆구리를 늘린다. 멀리 가기 전, 몸에 시동을 거는 거다.
바(Ballet bar) 앞에 서서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간다. 선생님이 시범을 보이고 동작의 순서를 말해주면(매일 조금씩 바뀐다), 음악에 맞춰 따라한다. 허벅지 안쪽 근육을 써서 다리를 구부렸다 펴고, 까치발로 서고, 팔을 길게 뽑아 선반에 올려놓은 듯 들고 있는 동작들. 목은 위에서 누가 뽑으려는 것처럼! 길게 세우려 애쓴다. 팔을 신경 쓰면 배가 풀리고, 배에 힘을 주면 팔이 느슨해지기 일쑤다. 관절을 따로따로 쓰면서, 동시에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게 쉽지 않다. 우아하게 하고 싶지만 여유가 없다.
우르르 쾅쾅, 갑자기 벼락이 친다. 굵어진 빗줄기에 나무들이 휘청인다. 누군가 “무서워” 하고 중얼거린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번개가 친다. 클럽 조명처럼 몇 초 동안 번쩍이는 하늘. 거센 빗소리. 세상의 마지막 날 같다.
“웬 비가 이렇게 온담. 집에 어떻게 가지?”
요란한 비와 천둥 때문에 연습실 안이 술렁인다. 오전인데 벌써 저녁이 내린 것 같다. 기분이 묘하다. 비가 뛰고 달려, 땅에 처박히는 것처럼 보인다. 별안간 이 순간이 생경하단 생각이 든다.
‘이렇게 비가 퍼붓는 날, 파주에서, 나는 왜 발레 연습을 하고 있는 걸까? 하필.’
‘하필’이란 말 앞에서 나는 늘 골똘하다. 날씨는 가끔 순간을 ‘생경하게’ 들여다보게 만드는 거울 역할을 한다. 사람의 생각을 정돈하거나 헤집어 엎지른다. 쨍하게 해가 좋은 날도, 눈이 내리는 날도, 폭풍우가 치는 날도 사람을 불러 세우고 ‘지금, 여기, 나’의 모습을 살피게 만든다.
나를 ‘처음으로 춤추고 싶게 만든’ 독일 안무가, 피나 바우쉬는 연습시간 때 이런 것을 알아내야 한다고 했다.
“여러분들이 갓난아기나 아이들에게서 보았는데 여러분 자신은 이미 그것을 잊고 말아서 아쉬운 것. 더 이상 없어서 섭섭하다고 생각하는 것,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아 아쉬워하는 그런 것” 1 을 알아내야 한다고.
그게 뭘까? 내가 잊어서, 잊고 말아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만든 것. 아마도 많겠지. 너무 많을 것이다. 번개와 비, 어두운 하늘, 잊어버려서 잃어버린 것들로 가득한 지금. 문득 두렵다.
다시 한 손을 바에 올리고 거울을 본다. 빗소리는 여전히 거세다. 음악과 섞이지 않는다. 모두 얼굴을 거울로 향한 채, 뒤통수로는 내리는 비를 주시하는 것 같다. 나처럼. 무지막지한 비다. 비 오는 날 발레라, 나쁘지 않다. 그런데 마음은 왜 술렁이는 걸까? 모두들 동요하고 있을까? 나처럼. 그런데 왜?
“집에 갈 때 차 태워 줄게요.”
누군가 내게 말하고, 나는 그에게 미소를 보낸다. 괜찮다는 듯이.
1 『피나 바우쉬』, 요헨 슈미트, 을유문화사, 103쪽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덕여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 '얼음을 주세요'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가 있고, 산문집『소란』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