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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하지만, 행복해지고 싶어요

내가 나로 살아가는 방법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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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어느 자기계발서 혹은 에세이에서 읽어보았을 법하지만, 늘 우리는 까먹고 살아가는 이야기. 더 잘 살고 행복해지고 싶어 방법을 찾아 헤매는 나와 우리의 이야기. (2018. 0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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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삶의 낙이 무엇이냐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물어보곤 했다. 무언가에 진득하게, '덕후'라고 불릴 만한 것이 내 인생에는 없다고 생각해서이기도 했고, 과연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누리기 위해 살아가는지 궁금했다. 맹렬히 어떤 연예인에 빠져본 기억이 오래되었고, 어떤 음반을 직접 사서 그 음반만 오래도록 들어본 적도 최근에는 없었다. 이번 월급을 받으면 이번에는 꼭 무얼 해야지, 하는 위시리스트도 그다지 없던 내 모습을 보면서 나는 과연 어디에서 행복을 찾는 것인지 스스로를 곰곰이 들여다 보게 되었다. 그러니까 잘 살고 싶었고, 행복이라는 단어를 내 인생에 놓고 싶어서 다른 이들의 낙을 물어보았다는 말이다.

 

며칠 전, 퇴사를 하고 인도와 이집트를 한 달 간 여행하고 온 후배를 만났다. 모두가 여자 혼자서는 위험하다고 한 여행지이지만, 제주도가 고향이어서인지 언제나 바람이 되길 꿈 꾸듯 종잡을 수 없는 그녀에게는 꼭 어울리는 여행지였다. 그녀는 평소에도 스스로 행복해지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는데, 이번 여행 이후에는 '쉽게 감사할 줄 아는 행복'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인도에는 얼음이 잘 없어서, 더운 날에 뜨거운 커피를 마셔야 했던 그녀는 돌아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들이키면서도 행복을 느꼈다며 웃었다. 기차가 제 시간에 출발하는 것도 감사한 일이었고, 깨끗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넓디 넓은 세상에서 나와 그녀가 이 카페에서 만나 다른 나라에서 겪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 순간조차도 굉장한 일이라면서. 그랬다. 굳이 어떤 낙이 있어야만 행복을 찾을 수 있던 건 아니었다. 작은 것이라도 감사함을 느끼는 것만으로 행복은 내게 찾아올 것이었다. 내가 그녀를 만나고 돌아오는 귀갓길에 늘 몽글몽글한 노래를 들었던 것은 그녀에게서 그런 행복의 기운을 받아서였던 것 같다고 그날 생각했다.

 

웃는다

내 눈 속에서


파도가
자꾸 몸에 상처를 낸다


그럴 때마다 내 몸을 다시 한번
돌아본다

 

날마다 파도치는 일이 무거워지면
바다도 자꾸 바퀴 같은 포말을 만든다


굴러가려고 움직이려고 살아보려고

세상 속으로


자꾸 바퀴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늘어나는 바닷가

 

내 눈 속에서
너와 내가 지나온 세상이 부서지며
웃는다

- 이사라, 「웃는다」, 시집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  중

 

실은 어떤 일에도 덤덤한 척 하는 고얀 성향 탓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은 순간을 표현하지 못했던 나였다. 좋아도 좋다고 말하는 것이 왠지 부끄러웠고, 생일 축하 식사 자리에서 입을 삐죽거리며 머쓱해 했다. 이 순간이, 지금 당신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 그리도 어려웠다. 이상하게도 행복하다, 기분이 좋다, 고맙다는 말을 잘 못하던 그 때의 나는 다른 표현에서도 부족했다. 모든 표현에 서툴렀다. 다른 이를 칭찬하는 것도 ‘오글거린다’는 이유로 기피하곤 했다. 가만 생각해보면 그 때의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지만, 변하기도 한다. 아니, 자신이 좋은 방향으로 성장하기도 한다고 말하는 편이 낫겠다. 요즘의 나는 알고 있었고, 늘 생각했다. 행복하기 위해선 별 게 필요 없다는 사실을. 지금 당장 내게 웃음이 지어진다면, ‘와 지금 정말 행복하다’고 말을 뱉었다. 아니면 SNS로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했다. 지금 내겐 웃음이 지어지고 있다고. 좋다고 말하는 게 그리도 부끄럽던 내가, 입으로 스스로의 행복을 내뱉게 되기까지 나는 변해왔다.

 

어떻게 살아야 내가 만족하며 살 수 있는지를 생각했더니 비로소 변화가 시작됐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닌 나를 제대로 알고서 나를 사랑해주고 싶었다. 나는 어떤 기호를 지닌 사람인지, 상황마다 나는 어떻게 행동하는지, 내가 누구를 싫어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왜인지. 내가 하는 모든 것에서 이유를 찾다 보니, 물론 한참 모자라고 완벽하지 못하지만 내가 나로 살아가는 데에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해독(解讀)'은 풀이하여 읽음 혹은 잘 알 수 없는 글이나 암호를 읽어서 푼다는 의미다. 이 단어에 디톡스의 본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 몸에 막혀 있는 게 무엇인지, 암호를 푸는 게 먼저다. 무엇이 나를 괴롭히는지 알고 나서 디톡스를 실천해야 한다. 외국 모델이 레몬주스를 먹는다고, 누군가 엄청난 효과를 봤다고 해서 시작하는 디톡스는 '나'라는 주체가 쏙 빠져있다.


무엇을 해독하는가? 디톡스는 내 몸과 마음의 자물쇠에 질문의 열쇠를 던지는 것에서 시작한다.
- 박민정, '디톡스의 진정한 의미', 『서른의 식사법』  중

 

틈 날 때마다 이 정도면 살 만 한 게 아닐까, 일상에서의 행복이 내겐 자주 찾아오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특별한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건지, 난 자꾸만 그 순간들을 까먹었다. 그래서 스스로 노력해야만 나를 보듬을 수 있었다. 나와 내 사람들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이 노력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몇 명의 사람들을 잃고 나서야 깨달았다.

 

치기 어린 질투심과 자존심을 가장한 비뚤어진 시선으로 인해 그 사람들을 내 생에서 스쳐만 가도록 내버려두었다. 무언가를 지키고 가지기 위해서는 포기해야만 한다는 당연한 이치를 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내 사람이라 생각되는 사람들을 지켜내기 위해, 나를 안아 일으켜 세우려 한다. 그러니까 내가 잘 살고 싶다고 막연히 바라던 것은 잃었던 것들을 떠올리면서 시작된 것이기도 했다. 다시 무언가를, 누군가를 잃으면서 후회하지 않도록. 물론 언제고 다시 나는 잃을 것이고, 후회도 할 테지만 그것 역시 삶의 이치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봄나물에는 쓴맛이 나는 것들이 많다. 쓴맛이 나는 나물들은 기분 좋은 향도 함께 가지고 있다. 신기하게도 다른 양념과 먹으면 쓴맛은 고소하거나 상큼한 맛으로 변한다. 오히려 맛과 향이 살아난 반찬을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중략)


지난날 내 인생을 되돌아보니 참으로 쓴맛이 많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20대 초중반에는 달콤함을 느낄 새도 없이 쓴맛이 휘몰아치는 시간이 많았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런 순간들이 지금의 인생을 더 맛깔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다른 채소들과 함께 먹을 때 더 고소한 맛을 내는 쓴맛처럼, 쓰디쓴 인생의 경험들을 잘 요리하게 되면, 더욱 더 맛깔난 인생을 살게 해 줄 재료가 되지 않을까?
- 박민정, '인생에 쓴 맛이 필요한 이유', 『서른의 식사법』  중

 

행복해지길 강요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죽지 않고 생을 이어나가는 것은 그래도 이 생을 잘 살아내고 싶다는 조그만 희망이라도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나로 제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려는 노력만으로도, 내 행복들은 자라날 것이라고 믿는다.

 

어쩌면 어느 자기계발서 혹은 에세이에서 읽어보았을 법한 이야기. 하지만 늘 우리는 까먹고 살아가는 이야기. 내 행복을 찾는, 더 잘 살고 싶어 방법을 찾아 헤매는 나와 우리의 이야기.

 

문의 비밀

 

사람은 마음을 굴려가며
이 세상을 지난다

 

무너지지 않는 벽 속에서

춥고 불편한 지층은


아픈 풀 한 포기도 그냥 피우지 않는데

잡음의 뒷모습이 얽혀 있는

전장을 지탱하던 날들이 흘러가는데

 

누구도 감히
두드려볼 수 없다면


쇠망치로 부술 수 없다면

심장의 박동을 들려줄 수는 없을까

 

몸안에서 혁명이 일어나기까지
보고 듣고 만지고 말하고


그 시간들이 눈빛 하나로 뭉쳐지는 순간이 오기까지

언제나 너는 벽인 줄 알았는데


오래도록 그렇게 열리지 않는 문이었구나

멈출 수 없는 길을 달려가지만


그렇게 뒤늦게 고백하고 싶다

세상 가슴은 한없이 넓고 깊으니

- 이사라, <문의 비밀>, 시집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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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나영(도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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